김유정 소설 슬픈 이야기
-통짜구조의 원작 소설을 사설시조 23수로 구분함-
(1) 암만 때렸단대도 내 계집을 내가 쳤는데야 네가, 하고 덤비면 나는 참으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제 계집이기로 개 잡는 소리를 가끔 치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까지 불안스럽게 구는 이것은 넉넉히 내가 꾸짖을 수 있다는 말이다.
(2) 그것도 일테면 내가 아내를 가졌다 하고 그리고 나도 저와 같이 아내와 툭축거릴 수 있다면 혹 모르겠다. 장가를 들었어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을 만치 나이가 그토록 지났는데 어쩌는 수 없이 사글세방에서 이렇게 홀로 둥글둥글 지내는 놈을 옆방에다 두고 저희끼리만 내외가 투닥투닥 하고 또 끼익, 끼익, 하고 이러는 것은 썩 잘못된 생각이다. 요즈음 같은 쓸쓸한 가을철에는 웬 셈인지 자꾸만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이래서 밤잠이 제대로 와주지 않는 것이 결코 나의 죄는 아니다.
(3) 자정을 넘어 새로 두 점이나 바라보련만도 그대로 고생고생 하다가 이제야 겨우 눈꺼풀이 어지간히 맞아 들어오려 하는 데다 갑작스리 쿵, 하고 방이 울리는 서슬에 잠을 그만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재론할 필요 없이 요 뒷집의 건넌방과 세 들어있는 이내 방과를 구분하기 위하여 떡 막아놓은 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울섶으로 보아 좋을 듯싶은 그 벽에 필연 육중한 몸이 되는대로 들이받고 나가떨어지는 소리일 것이 분명하다. (4) 이렇게 벽을 들이받고, 떨어지고 하는 것은 일상 맡아놓고 그 아내가 해주므로 이번에도 그랬었음에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들릴까 말까 한 나직한, 그러면서도 잡아먹을 듯이 앙크러뜯는 소리로 그 남편이 중얼거리다 퍽, 하는 이것이 발길이 허구리로 들어온 게고, 그래 아내가 어구구, 하니까 그 바람에 옆에서 자던 세 살짜리 아들이 어아, 하고 놀라 깨는 것이 두루 불안스럽다. 허 이놈 또 했구나 싶어서 나는 약이 안 오를 수 없으니까 벌떡 일어나서 큰일을 칠거라도 같이 제법 눈을 부라린 것만은 됐으나 그렇다고 벽 너머 저쪽을 향하여 꾸중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점잖은 나의 체면을 상하는 것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5) 이렇게 되면 잠자리는 영 그른 공산인고로 궐련 하나를 피워 물었던 것이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놈의 소행이 괘씸하여 그냥 배기기 어려우므로 캐액, 하고 요강뚜껑을 괜스리 열었다가 깨지지 않을 만큼 아무렇게나 내리 닫으며 역정을 내본단대도 저놈이 이것쯤으로 끄뻑 할 놈이 아닌 것은 전에 여러 번 겪었으니 소용없다. 마땅치 않게 골피를 접어 혼자서 끙끙거리고 앉아있자니까 아이놈이 깬 듯싶어서 점점 더하는 것이 급기야엔 아내가 아마 옷 궤짝에나 혹은 책상 모서리에나 그런 데다 머리를 부딪는 것 같더니 얼마든지 마냥 울 수 있는 그 설움이 남의 이목에 걸리어 겨우 목젖 밑에서만 끅, 끅,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이놈이 사람을 잡을 작정인가, 하고 그대로 있기가 안심치가 않아서 내가 역정 난 몸을 불쑥 일으키어 가지고 벽과 기둥이 맞붙은 쪽으로 헌 지 오래된 도배지가 너털너털 쪼개지고, 그래서 어쩌다 뽕 뚫린 하잘 것 없는 구멍으로 내외간의 싸움을 들여다보는 것은 좀 나의 실수도 되겠지만 이놈과 나와 예의니 뭐니 하고 찾기에는 제가 벌써 처신을 잃어놨거니와 그건 말고라도 이렇게 남 자는 걸 깨놓았으니까 나 좀 보는데 누가 뭐랠 테냐. (6) 너털대는 벽지를 가만히 떠들고 들여다보니까 외양이 불밤송이같이 던적맞게 생긴 놈이 전기회사의 양복을 입은 채 또는 모자도 벗는 법 없이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저보다 엄장도 훨씬 크고 투실투실히 벌은 아내의 머리를 어떻게 하다 그리도 묘하게스리 좁은 책상 밑구멍에다 틀어박았는지 궁둥이만이 위로 불끈 솟은 이걸 노리고 미리 쥐고 있었던 황밤 주먹으로 한번 콕 쥐어박고는, 이년아 네가 어쩌고 중얼거리다 또 한 번 콕 쥐어박고 하는 것이다. (7) 아내로 논지면 울려들었다면 벌써도 꽤 많이 울어두었겠지만 아마 시골서 조촐히 자란 계집인 듯싶어 여필종부의 매운 절개를 변치 않으려고 애초부터 남편 노는 대로만 맡겨두고 다만 가끔가다 조금씩 끽, 끽, 할 뿐이었으나 한편에 울룽이 놀래 앉았는 어린 아들은 저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잡는 줄 알고 때릴 때마다 소리를 빽빽 질러 우는 것이다. 그러면 놈은 송구스러운 그 악정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겁 집어먹은 눈을 이리로 돌리어 아들을 된통 쏘아보고는 이 자식 울면 죽인다, 하고 제깐에는 위협을 하는 것이나 그래도 조금 있으면 또 끼익, 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막고서 따귀 한 대를 먹여놓았던 그것이 그 반대로 더욱 난장판이 되니까 저도 어처구니없는지 멀거니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는다. (8) 놈이 워낙이 대담치가 못해서 낮 같은 때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제가 감히 아내를 치기커녕 외출에서 들어올 적마다 가장 금실이나 두터운 듯이 애기 엄마 저녁 자셨소 어쩌오, 하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두었다가, 다들 자고 만 뒤 잠잠한 꼭 요맘때 야근에서 돌아와서는 무슨 대천지원수나 품은 듯이 울지 못하도록 미리 위협해 놓고는 은근히 치고, 차고, 이러는 이놈이다. 허기야 제 아내 제가 잡아먹는데 그야 뭐랄 게 아니겠지.
(9) 그렇지만 놈이 주먹으로 얼마고 콕콕 쥐어박아도 아내의 살찐 투실투실한 궁둥이에는 좀처럼 아플 성싶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두 손가락을 집게 같이 꼬부려 가지고 그 허구리를 꼬집기 시작하는 것인데 아픈 것은 참아왔더라도 채신이 없이 요렇게 꼬집어 뜯는 데 있어서야 제 아무리 춘향이기로 간지럼을 아니 타는 법은 없을 게다. 손가락이 들어올 적마다 구부려 있던 커다란 몸집이 우질근 하고 노는 바람에 머리 위에 거반 얹히다시피 된 조그만 책상마저 들먹들먹하는 걸 보면 저 괴로워도 요만조만한 괴롬이 아닐 텐데 저런저런 계집을 친다기로 숫제 뺨 한 번을 보기 좋게 쩔꺽 하고 치면 쳤지 난 참으로 저럴 수는 없으리라고, 아아 나쁜 놈, 하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울화가 터지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보다도 우선 아무리 남편이란대도 이토록 되면 그 뭐 낼쯤 두고 보아 괜찮으니까 그까짓 거 살팍한 살집에다 근력 좋겠다 달룽 들고 나와서 뒷간 같은 데다 틀어박고는 되는 대로 두드려 주어도 아내가 두려워서 제가 감히 찍소리 한 번 못 할 텐데 그걸 못 하고 저런, 저런, 에이 분하다. 그럼 그것은 내외간의 찌들은 정이 막는다 하기로니 당장 그 무서운 궁둥이만 위로 번쩍 들 지경이면 그 통에 놈의 턱주가리가 쳐 받쳐서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는 꼴이 그런대로 해롭지 않을 텐데 글쎄 어쩌자고, 그러나 좀 더 분을 돋워놓으면 혹 그럴는지도 모를듯해서 놈의 무참한 꼴을 상상하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은근히 조를 비볐던 것이 이내 경만 치고 말므로 저런, 저런 하다가 부지중 주먹이 불끈 쥐어졌던 것이나 놈이 휘둥그런 눈을 들어 이쪽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내 주먹이 벽을 울려 친 걸 알고 깜짝 놀랐다. (10) 허물 벗겨진 주먹을 황망히 입에 들이대고 엉거주춤히 입김을 쏘이고 섰노라니까 잠 안 자고 게 서서 뭘 하오, 하고 변소에 다녀가는 듯싶은 심술궂은 주인 노파가 귀찮게 바라보더니 내 방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와서 눈을 찌긋하고 하는 소리가 왜 남의 계집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류, 괜히 맘이 동하면 잠도 못 자고, 하고 거지반 비웃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나이찬 홀몸이고 또 저쪽이 남편에게 소박 받는 계집이고 하니까 이런 경우에는 남모르게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 사차불피(死且不避)의 일이라고 제멋대로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요즘으로 들어서 나의 일거일동, 일테면 뒷간에서 뒤를 보고 나온다든가 하는 쓸데적은 그런 행동이나마 유난히 주목하여두는 버릇이 생겨서 가끔 내가 어마어마하게 눈총을 겨누는 것도 무서운 줄 모르고 나중에는 심지어 저놈이 계집을 떼던지려고 지금 저렇게 못살게 구는 거라우, 이혼만 하거든 그저 두말말고 데꺽 꿰차면 그만 아니오, 하며 그러니 얼마나 좋으냐고 나는 별로 좋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주 좋다고 깔깔 웃는 것이다. (11) 이 노파의 말을 들어보면 저놈이 13년 동안이나 전차 운전수로 있다가 올에서야 겨우 감독이 된 것이라는데 그까짓 걸 바로 무슨 정승 판서나 한 것같이 곤댓짓을 하며 동리로 돌아치는 건 그런 대로 봐준다 하더라도 갑작스리 무슨 지랄병이 났는지 여학생 장가 좀 들겠다고 아내보고 시골뜨기하고 살면 내 낯이 깎인다 하며 친정으로 가라고 줄청같이 들볶는 모양이니 이건 짜장 괘씸하다. 제가 시골서 처음 올라와서 전차 운전수가 되어 가지고, 지금 사람이 원체 착실해서 돈도 무던히 모였다고 요 통안서 소문이 자자하게 난 그 저금 8백 원이라나 얼마나를 모으기 시작할 때 어떻게 생각하면 밤일에서 늦게 돌아오다가 속이 후출하여 다른 동무들은 냉면을 먹고, 설렁탕을 먹고, 하는 것을 놈은 홀로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언제나 잊지 않고 꼭 대추 두 개로만 요기를 하고는 그대로 자고자고 한 그 덕도 있거니와 엄동에 목도리, 장갑 하나 없이 그리고 겹저고리로 떨면서 아침저녁 겨끔내기로 변또를 부치러 다니던 그 아내의 피땀이 안 들고야 그 7백~8백 원 돈이 어디서 떨어지는가. (12) 그런 공로를 모르고 똥개 떨 거 다 떨고 나니까 놈이 계집을 내차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제놈 신세는 볼일 다 볼 게라고 입을 삐쭉이다가 아무튼 이혼만 하였다면야 내가 사이에서 중신을 서주기라도 할 게니 어디 한 번 데리구 살아 보구려, 하며 그 아내의 얼마큼이든가 남편에게 충실할 수 있는 미점을 들기에 야윈 손가락이 부질없이 폈다 접었다, 이리 수선이다. 이 신당리라는 데는 본시라 푼푼치 못한 잡동사니만이 옹기종기 몰킨 곳으로 점잖한 짓이라고는 전에 한 번도 해본 일 없이 오직 저 잘난 놈이 태반일진댄 감독 됐으니까 여학생 장가 좀 들어보자고 본처더러 물러서 달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고, 또 한편 거리에서 말똥만 굴러도 동리로 돌아다니며 말을 드는 수다쟁이들이매 밤마다 내가 벽틈으로 눈을 들여놓고 정신없이 서 있어서 저 남의 계집 보고 조갈이 나서 저런다는 것쯤 노해서는 아니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것 같다.
(13) 이놈의 늙은이가 남 곧잘 있는 놈 바람맞히지 않나 싶어서 할머니나 그리로 장가가시구려, 하고 빽 소리를 질렀던 것이나 실상은 밤낮 남편에게 주리경을 치는 그 아내가 가엾은 생각이 들길래 그럴 양이면 애초에 갈라서는 것이 좋지 않을까보지만은 부부간의 정이란 그 무엔지 짧지않은 세월에 찔기둥찔기둥이 맺어진 정은 일조일석에는 못 끊는 듯싶어 저러고 있는 것을 요즈음에는 그 동생으로 말미암아 더 매를 맞는다는 소문이었다. 한편에다 여학생 신가정을 꿈꾸는 놈에게 본처라는 것이 눈엣가시만치나 미운데다가 한 열흘 전에는 시골 처가에서 처남이 올라와서 농사 못 짓겠으니 나 월급 자리에 좀 넣어 달라고 어린애까지 세 사람을 재우기에도 옹색한 셋방에 깍짓똥[몸집이 몹시 뚱뚱한 것] 같은 커단 몸집이 널찍하게 터를 잡고는 늘큰히 묵새기고 있다면 그야 화도 조금 나겠지. 하지만 놈에게는 그게 아니라 하루에 세 그릇씩 없어지는 그 밥쌀에 필연 겁이 버럭 났을 것이다. (14) 그렇다고 처남을 면대 놓고 밥쌀이 아까우니 너 갈 데로 가라고 내쫓을 수는 없을 만큼 놈도 소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적실히 놈의 불행이라 안 할 수 없는 것으로 상 앞에서는, 아 여보게 고만 자시나, 물에 말아서 찬찬히 더 들어 봐, 하고 겉면을 꾸리다가 밤에 들어와서는 이러면 저두 생각이 있으려니, 확신하고 아내를 생트집으로 두드려 패자니 몇 푼어치 못 되는 근력에 허덕허덕 그만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처남은 누이 맞는 것이 가엾기는 하나 그렇다고 어쩌는 수도 없는 고로 무색하여 밖으로 비슬비슬 피해 나가는 것이다.
(14)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 그 아내의 처지는 실로 딱한 것으로 이대로 내가 두고 보는 것은 인륜에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담날 부리나케 찾아가 놈을 꾸짖었단대도 그리 어줍은 일은 아닐 것이다. (15) 내가 대문간에 가 서서 그 집 아이에게 건넌방에 세들은 키 쪼꼬만 감독 좀 나오래라, 해가지고 그동안 곁방에서 살았고 또 전자부터 잘났다는 성식은 익히 들었건만 내가 못나서 인사가 이렇게 늦었다고 나의 이름을 대니까 놈도 좋은 낯으로 피차없노라고 달랑달랑 쏟으며 멋없이 빙긋 웃는 양이 내 무슨 저에게 소청이라도 있어 간 것같이 생각하는 듯하여 불쾌한 마음으로 나는 뭐 전기회사에서 오란대도 안 갈 사랑이라고 오해를 풀어주고는 그 면상판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오 네가 매 밤의 대추 두 개로 8백원을 모은 놈이냐, 하고는 그 지극한 정성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6) 비록 낯짝이 쪼글어들어 코, 눈, 입이 번뜻하게 제자리에 못 놓이고는 넝마전 물건같이 시들번이[여기저기] 게붙고 게붙고 하였을망정 사람이 제법 총기 있어보이는 맑은 두 눈이며 깝신깝신 굴러나오는 쇠명된[쇳소리 같은] 그 음성, 아하 돈은 결국 이런 사람이 갖는 게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는 바람에 그제야 나의 이 심방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허나 그대로 네 계집 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게니까 아참 전기회사의 감독 되기가 무척 힘드나 보던데, 하며 그걸 어떻게 그다지도 쉽사리 네가 영예를 얻었느냐고 놈을 한창 구슬리다가, 뭐 그야 노력하면 될 수 있겠지요, 하며 흥청흥청 뻐기는 이때가 좋을듯싶어서 그렇지만 그런 감독님의 체면으로 부인을 쿡쿡 쥐어박는 것은 좀 덜된 생각이니까 아예 그러지 마쇼, 하니까 놈이 남의 충고는 듣는 법 없이 대번에 낯을 붉히더니 댁이 누굴 교훈하는 거요, 하고 볼멘소리를 치며 나를 얼마간 노리다가 남의 내간사에 웬 참견이요, 하는 데는 그만 어이가 없어서 벙벙히 서 있었던 것이나 암만해도 놈에게 호령을 당한 것은 분한 듯싶어 그럼 옆집 사람까지 집을 쳐서 개 잡는 소리를 끼익 끼익 내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도 못 자게 하는 것이 잘했소, 하고 놈보다 좀더 크게 질렀다. (17) 그랬더니 놈이 빠안히 쳐다보다가 이건 또 무슨 의미인지 잠자코 한 옆으로 침을 탁 뱉어던지기가 무섭게, 이것이 필연 즈 여편네의 신이겠지, 커다란 고무신을 짤짤 끌며 안으로 들어갔으니 놈이 나를 모욕했는가 혹은 내가 무서워서 피했는가, 그걸 알 수가 없으니까 ⑥옆에서 구경하고 서 있던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그 감독을 나오라고 시키어보았던 것이나 인젠 안 나온대요, 하고 전갈만 해오는 데야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망할 놈, 아주 겁쟁이로구나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좀더 행위가 방정토록 꾸짖어 주지 못한 것이 유한이 되는 그대로 별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나 밤이 이슥하여 잠결에 두 내외의 소곤소곤 하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 올 적에는 아하 그래도 나의 꾸중이 제법 컸구나, 싶어 맘으로 흡족했던 것이 웬일인가.
(18) 차츰차츰 어세가 돋아져서 결국에는 이년 하는 엄포와 아울러 제걱, 하고 김치 항아리라도 깨지는 소리가 요란히 나는 것이 아닌가. 이놈이 또 무슨 방정이 나 이러나 싶어 성가스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벽 틈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놈이 방바닥에다 아내를 엎어 놓고 그리고 그 허리를 껑충 타고 올라앉아서 이년아 말해, 바른 대로 말해 이년아, 하며 그 팔 한 짝을 뒤로 꺾어 올리는 그런 기술이었으나 어쩌면 제 다리보다 더 굵은지 모르는 그 팔목이 호락호락이 꺾일 것도 아니거니와, 또 거기에 열을 내가지고 목침으로 뒤통수를 콕콕 쥐어박다가 그것도 힘에 부치어 결국에는 양 옆구리를 두 손으로 꼬집는다 하더라도 그것쯤에는 뭣할 아내가 아닐 텐데 오늘은 목을 놓아 울 수 있었던 만치 남다른 벅찬 설움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들을 만치 타일렀건만 이놈이 또 초라니 방정을 떠는 것이 괘씸도 하고 일방 뭘 대라 하고 또 울고 하는 것이 심상치 않은 일인 듯도 하고 이래서 괜스리 언짢은 생각을 하느라고 새로 넉 점에서야 눈을 좀 붙인 것이 한나절쯤 일어났을 때에는 얻어맞은 몸같이 휘휘 둘리어 얼떨김에 세수를 하고 있노라니까 주인 노파가 부리나케 다가와서 내 귀에 입을 들이대고는 글쎄 어쩌자고 남 매를 맞히오.
(19) 무슨 매를 맞혀요, 하고 고개를 돌리니까, 당신이 어제 감독보고 뭐래지 않았소. 그래 저의 아내 역성을 들 때에는 필시 무슨 관계가 있을 게니 이년 서방질한 거 냉큼 대라고 어젯밤은 매로 밝혔다는 것인데, 아까 아침에 그 처남이 와서 몇 번이나 당부하기를 내가 찾아와 그런 짓을 하면 저 누님의 신세는 영영 망쳐 놓는 것이니 앞으론 아예 그러한 일이 없도록 삼가달라고 하였으니 글쎄 반했으면 속으로나 반했지 제 남편보고 때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매우 딱하게 눈살을 접는 것이다.
(20) 그리고 보니 그 아내를 동정한 것이 도리어 매를 맞기에 똑 알맞도록 만들어 놓은 폭이라 미안도 하려니와 한편 모든 걸 그렇게도 알알이 아내에게로만 들씌우려 드는 놈의 소행에는 참으로 의분심이 안 일 수 없으니까, 수건으로 낯도 씻을 줄 모르고 두 주먹만 불끈 쥐고는 그냥 뛰어 나갔다. 가로지든 세로지든 이놈과 단판 씨름을 하리라고 결심을 하고는 대문간에 가 서서 커다랗게 박 감독, 하고 한 서너 번 불렀던 것이나 놈은 아니 나오고, 한 30여세 가량의 가슴이 떡 벌어지고 우람스런 것이 필연 이것이 그 처남일 듯싶은 시골친구가 나와서 뻔히 쳐다보더니 마침내 말없이도 제대로 알아차렸는지 어리눅는 어조로, 아 이거 글쎄 왜 이러십니까, 하며 답답한 상을 지어보이는 것이 아닌가.
(21) 그리고 넌지시 하는 사정의 말이 이러시면 우리 누님의 진정은 아주 망쳐놓으시는 겝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생각을 고치라고 촌뜨기의 분수로는 너무 능숙하게 널찍한 손뼉을 펴들고 안간다고 뻗디디는 나의 어깨를 왜 이러십니까, 하고 골문 밖으로 슬금슬금 밀어내는 것이었으나 주춤주춤 밀려나오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변변히 초면 인사도 없는 이놈에게마저 내가 어린애로 대접받는 것은 참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22) 나중에는 약이 바짝 올라서 어깨로 그 손을 뿌리치며 홱 돌아선 것만은 썩 잘된 것 같은데, 시커먼 낯판대기와 떡 벌은 그 엄장에 이건 나하고 맞투드릴[맞닥뜨릴]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어째보는 수 없이 그대로 돌아서고 마는 자신이 너무도 야속할 뿐으로 이렇게 밀려오느니 차라리 내 발로 걷는 것이 나을 듯싶어 집을 향하여 삐잉 오는 것이다. (23) 내가 아내를 갖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놈이 신당리를 떠나든지 이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으리라고 마음을 먹고는 내 방으로 부루루 들어와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거듬거듬[대강대강] 뭉치고 있는 것을 한옆에서 수상히 보고 서 있던 주인 노파가 눈을 지그시 그 왜 짐을 묶소, 하고 묻는 것까지도 내 맘을 제대로 몰라주는 듯하여 오직 야속한 생각만이 들 뿐이므로 난 오늘 떠납니다, 하고 투박한 한마디로 끊어버렸다. 주영숙 옮김
김유정(소설가)
1908. 1. 11 강원 춘성~ 1937. 3. 29 경기 광주. 본관은 청풍. 어렸을 때 이름은 멱설이. 주로 자신의 생활이나 주변 인물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토속어·비속어를 많이 썼다. 아버지 춘식(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靑松沈氏) 사이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안회남과 친하게 지냈으며, 이때 김나이(金羅伊)로도 불렸다.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고, 1929년 고향 춘성군 신동면 실레 마을로 돌아왔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한때 금광에 손대기도 하고 들병이들과 어울려 무질서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1932년 마음을 고쳐잡고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1935년 '구인회'에 가담해 김문집·이상 등과 사귀었다. 1935~37년까지 2년 동안 단편 30여 편과 장편 1편(미완), 번역소설 1편을 남겼다. 29세 때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죽었다. 1968년 춘천 의암호 옷바위 위에 시비가 세워졌다.
우리 민족의 해학과 풍자의 특성 및 전통은 조선 후기에 와서는 봉산탈춤과 같은 전통적 민속극, 판소리 사설, 사설시조 등에서 맥을 볼 수 있으며, 현대 문학기에 들어와서는 김유정 소설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견해이다. 우리 민족의 이른바 ‘해학 풍자’ 전통의 맥이 구지가에서 고려가요 쌍화점으로, 쌍화점에서 다시 민속극과 판소리, 운문소설, 사설시조로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김유정 소설이 판소리와 사설시조의 특성이나 표현기법을 잘 살려내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김유정이 활동한 193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식민지 후기에 해당하는 동시에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궁핍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다. 매우 어려운 농촌현실을 허구화함으로써 이러한 시대 조건을 반영한 셈인 김유정은 그 과정에서 놀이와 게임의 즐거움을 십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설에는 대체로 생활 능력을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사회 계층, 농촌의 빈농이나 도시의 빈민으로 설정되었고, 이와 같은 등장인물의 설정은 당시의 모습을 관념이 아니라 실상으로 파헤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라는 보편적인 관점을 벗어나 김유정이 채택한 소설기법을 보자면 거기에는 어떤 ‘힘’이 서렸다.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과 기지들, 논리와는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비유법들, 인간 본연의 생동감과 발랄함,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 구성, 장단과 사설이 효과적인 결합을 하는 붙임새와 시김새, ‘이면’을 표현하는 여러 조의 활용, 생활인들의 소박한 철학, 연주형태의 일체감, 임기응변으로 나오는 연기나 몸짓 등이 그 힘의 단편적인 현상들로써 이러한 ‘힘’이 곧 판소리의 미학일 것이다.
문학성의 관점에서는 ‘표현 속에 잠재된 언어의 내포적 의미와 정서적 감응을 야기하는 미적 표현효과’를 규명함으로써 적절히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표현상의 특징들로부터 환기되는 정서의 실상이 규명될 때 비로소 구체성을 띌 수 있다고 보면 김유정의 소설기법 중심에는 판소리의 미학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확연하다. 허구적 놀이 공간에서 연출되는 품위 있는 농담이빠르고 날카로운 기지에 비해 느리고 부드러운 편이어서 더욱 한국적인 풍자와 해학을 갖춘, 김유정 소설의 진면목일 수 있는 것이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원제 ‘따라지목숨’으로 당선한 <소낙비>는 고향을 떠나 타관으로 떠도는 1930년대 한국 유랑 농민의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으로서, 김유정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농촌의 극심한 가난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의 전체 문장은 마치 처음부터 사설시조 형식을 구가한 것처럼 되어있다. 김유정 소설에 아이러니, 골계미, 풍자, 해학 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흔한 논지인데, 이러한 특성을 사설시조와 연관시켜 구분할 때는 그것이 일종의 기법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김유정의 어떤 작품들은 아이러니, 골계미, 풍자, 해학 등은 이미 내포되어 있으므로 <초, 중, 종>장의 구분만 하여도 그 작품이 몇 수의 사설시조로 형성되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두꺼비와 소낙비 두 작품을 사설시조 형식으로 면밀히 구분하면 40수 가량의 사설시조 양식, 즉 판소리 한 판이 드러난다는 것이 그 증명인데, 소낙비의 도입부를 사설시조 형식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초) ①음산한 구름이 ②하늘에 ③뭉게뭉게 ④모여드는 것이 (중) ⑤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듯하면서도 ⑥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⑦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⑧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종) ⑨이따금 ⑩생각나는 듯 ⑪살매들린[산도깨비가 몸에 들어붙은] 바람은 ⑫논밭 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