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신비의 돌-영천 돌할매 글/사진: 이종원
무게 10kg. 어린아이도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무게다. 복채 1천원을 내고 돌할매에게 질문하고 소원을 빈다. 돌할매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판단되면 이 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번 영천천하대장사에 출전한 씨름선수조차 이 돌을 들 수 없을 정도란다. 내 눈엔 그저 평범한 화강암이다. 언제 어디서 이 촌마을까지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음력 6월 15일은 돌할매의 생일이란다. 무슨 근거로 그 날을 생일을 잡았는지 모른다. 이 돌이 왜 돌할매라고 불리어졌는지도 묻지마라. 샤머니즘에 퀘퀴스쳔 마크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와, 보름날은 할머니를 위한 기도날인데 벌써 예약이 끝났을 정도란다. 신비롭게도 돌할머니가 소원을 들어준 이야기가 여럿 들린다.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더니 합격했더라. 신규사업을 했는데 성공했더라. 그런데 슬픈 사연도 들린다. 결혼날짜를 잡고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자꾸만 돌이 들리는 것이었다. 신랑은 안절부절...그런데 얼마 후 신부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어쨌든 대학입시철에는 이 돌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할 정도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보다. 수 백년부터 이 마을의 숭배대상이었다. 60년대 새마을운동이 일어나 미신타파에 나섰지만 마을사람들이 강력히 막아 오늘날 돌할매가 건재했던 것이다. 돌할매는 마을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갚아주고 싶었을까? 지금 이 돌할매는 관리마을사람들에게 보배나 다름없다. 돌할매가 번 돈으로 마을의 지역사업을 척척 해내고 있다. 대로에서 마을까지 8km 아스팔트길도 돌할매가 깔아주었을 정도다. 그 외에도 도내 불우이웃돕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돌할매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마을사람들이 2교대로 24시간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CCTV까지 설치했을 정도다.
돌할매를 감싸고 있는 보호각.
돌할매를 친견하기 전에 부처님께 마음을 비우고 기도를 바친다.
일단 한번 들어본다. 누구나 쉽게 들린다.
복채 1천원을 함에 넣고 주소, 나이. 성명을 알린 뒤 염원을 한다.
함께 간 다음레저의 홍사장은 돌이 들리지 않아 무척이나 기뻐한다.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돌이 들리는 것이 더 많습니다. (소원을 들어주지 않음). 그것은 허황된 꿈을 꾸고 들어 달라고 보채기 때문이지요. 소원은 그저 소원입니다. 실현 가능한 작은 소망을 기원애지요.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들어지지 않지요." 이 마을 주민이자 오늘 당번인 김상도(60세. 북안면 관리)에게는 말썽꾸러기 아들이 있었는데 삼수까지 했는데 전문대학마저 떨어졌다고 한다. 4수째 되는해에 돌할매에게 물어 보았더니 돌이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4년제 대학에 들어간다고 돌의 효험에 극찬을 한다.
나는 돌할매를 만나기 전에 만난 저수지 마현재에 더욱 애착이 간다. 1600년 김효달 개인이 만든 것인데 죽기 전 유언이 이 저수지의 주인은 김씨 후손이 아니라 경작자 모두의 것이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 유언이 아직까지 받아들여 마을의 못계에서 유지 관리되고 있었다. 그런데 둑이 터져 마을에 홍수가 나자 말을 사서 등에 무거운 돌을 지게 하고 터진 둑에 말을 순장을 시켜 물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가슴을 쓰리게 만든다. 농민을 생각하는 김효달의 애민정신. 진정한 돌할매는 바로 김효달의 마음씨다.
* 돌할매 가는법 서울-영천IC에서 경주방면으로 가다보면 북안면 농공단지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5km가면 돌할매가 나온다.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
첫댓글 중간 부분으;ㅣ 사진은 양영훈 선생님 아니신가요?ㅎㅎ 영험 하군요..
잘 봤습니다....신기하네요...언제 경주내려갈때 들러서 가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