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허물이 하늘까지 닿습니다.

[정일]

2 년 전! 공부하는 모임의 카페에

어느 분의 공부 하시던 얘기를 옮겨 봅니다!

글이 길어 중간 부분을 생략을 했는데도 길어 졌습니다!

..............

정 일 입니다,

글이 나눠져 있어 한곳으로 모았습니다!

가능 하시면 공부 인들에게 한 말씀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제 허물이 하늘까지 닿습니다.

용서 하십시오!

정 일님이 메일로 다담 실에 와서 말씀을 나눠 달라 하시나

천성이 사교성 제로인 사람으로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곰곰 생각하다 이 공부 하는 사람들끼리 나눌 이야기는

공부 이야기밖에 없다 싶어 부끄럽지만 지나온 일들,  이야기 삼아 올립니다.

...........

19세 대입학력고사가 끝나고 무료한 겨울 보낼 즈음

4살 위 누이의 서가에 꽂힌 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라>와 <자기로부터의 혁명>

<자기로부터의 혁명>은 두어 페이지 읽다가 그만 딱딱한 문체에 질려 덮어버렸고

<잠에서 깨어나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많은데도 이상하게도 술술 읽혀

끝까지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 이런 세계도 있구나!

공부라고는 대학입시밖에 몰랐던 제게 라즈니쉬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첫 번째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 다니시던 부모님 덕에 집에 굴러다니는 

신약성경 가운데 4복음서를 많이 읽어서인지

또래들과 달리 종교적 심성은 있었으나 제도권 종교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성당과 교회를 잠시 들락거렸으나 복음서를 통해 만난 예수를 불행히도

그곳에서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갑작스레 목표를 상실한 저는 하루하루 주어진 공포 스 런 자유를

어찌할 바 몰라 음주가무 이성교제로 허송세월했습니다.

다행히 전공서적은 들춰보지 않으면서도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라즈니쉬 선집과

노자 도덕경, 장자 등을 읽으며

막연히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는지라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는 큰 공감을 하면서도 대립과 투쟁, 분열과 통합의 이분법적 시각은

본능적으로 거기에 빠져들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가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고........

지금 생각해 보면

꼭두각시처럼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온 듯합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듯한, 아쉬움, 갈증, 안타까움이 일상 가운데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번뇌라 할까, 괴로움이라 할까........

이십대 후반에 대전 역 근처 불교서점에서 <천수경이야기>란 책을 우연히 사서

읽다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불교란 산중에 울긋불긋한 집을 지어놓고 금부처, 돌부처,

나무부처에 이상 망측한 우상들을 잔뜩 만들어 놓고

할머니 아줌마들이 쌀과 돈을 갖다 바치며 요란스레 절을 올리는

기복 불교만 알고 있었는데 그 책 덕분에 불교의 또 다른 면이 있음을

눈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이런 저런 경전, 어록, 책들을 읽다가 라마나 마하리쉬의

<있는 그대로>란 책을 읽을 무렵이었습니다.

결혼도 하게 되고 자식도 얻었으나 통속적인 생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지라

주말이면 산사를 찾아 소일하는 버릇이 있어서 어느 주말,

집 근처에 있는 석불사란 절에 갔었습니다.

자연암벽에 솜씨 좋은 석공이 관세음보살을 비 롯, 각종 조각을 해 놓아 볼거리가 많은

사찰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한눈에 봐도 제 정신일 것 같지 않은 사람이-눈은 황달인지 누런데

충혈 되어 있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 린 듯 구릿빛에다, 옷차림도 마을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 나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른 척 하고 석불을 구경하며 자리를 옮기려는데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처사, 그 손에 든 책이 무슨 책이오?"

저는 말을 섞기 싫어 책 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본들 라마나 마하리쉬를 알지도 못하겠지만 하는 마음으로...

그러자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라! 참 제목이 좋구려. 그런데 책은 읽어봐서 알겠지만,

처사는 처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시오?"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했던 그 사람의 질문에

갑자기 숨이 막히고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수많은 불교서적과 인도 성자의 책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말과 글을 따라가기 바빴지

한번도 나 자신은 진정 누구인가를 궁구해 보지는 않았었습니다.

좌우간, 그 순간, 몇 초였는지 몇 분이었는지 모를 시간이 흘렀습니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 그저 후덜 거리는 다리로 버티고만 서있자

그 사람이 혼잣말 하듯 말했습니다.

"쯧쯧........ 업장이 두터워 안 되겠구나!"  

그리고는 발길을 돌려 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저 사람을 놓치면 안 되겠구나 싶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말 한마디 뱉을 수 없었고 발 한 걸음 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돌부처처럼, 넋 빠진 사람처럼 서 있다가

겨우 기운을 차려 산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신문에 난 해인사 백련암 하계 수련회 공고를 보고

난생 처음 사찰 수련회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3박4일 간 진행되는 수련회였는데 첫날 백련암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3천배는 제가 겪은 고행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었습니다.

6시간 이상 진행되는 3천배는 그날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끝났고

그 다음날 법명과 마 삼근이란 화두를 적은 종이를 받았습니다. 

참선(좌선) 지도도 처음 받았는데 가르쳐 준 대로 화두를 들어 보았으나 

좌선이 주는 육체적 고통 때문에 순일하게 의정을 일으켜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어쨌든 짧은 수련회 경험을 계기로

그 수련회를 추진했던 OO불교문화원 참선 반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OO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 단체에서 일주일에 이틀

퇴근 후의 시간 동안 좌선 수행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10중 8,9는 좌 복 위에서 졸기 일쑤이고

화두 의정은 도무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간혹 시간을 잊은 듯한, 경계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허송세월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이끌어 줄 스승이 절실히 필요하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중략)

'선'이니 '깨달음'이니 '부처'니 '불성'이니 그런 말과 개념에 끄 달리지 않으면

'선'이 곧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부처'이고 '불성'이어서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선'은 다름 아닌 (책상을 치며) <이것>입니다!

'설법'은 '법'을 '설'하는 게 아니라 '설'하는 것이 바로 '법'입니다!

'견성'은 성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것'이 바로 '성품'입니다! 

지금 바로 눈앞의 일이 그대로 깨달음이고 진리이고 부처이니

따로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모든 조사들께서도 이미 그렇게 말씀을 해놓으셨단 것이죠!

그분은 오히려 공부하려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저 설법을 아무런 판단 없이 잘 들어 보라!

모든 개념이나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그저 설법에 귀를 기울여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전등록> 어디에도

좌선하다가 선정에 들어서 뿅~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죠...

모두 말끝에 또는 복사꽃을 보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얻어맞고, 경이나 어록을 보다가... 깨달음을 체험하게 된다는 거죠.

일자무식꾼인 혜능이 신수를 제치고 육조가 되어 그가 남긴 어록이

부처님 말씀에나 붙이는 <경>이라 불려 <육조단경>이 된 것도 육조혜능은 철저한 

不二법의 입장에서 수행과 깨달음, 선정과 해탈을 둘로 나눠보는

그 당시 전도된 수행관을

혁명적으로 뒤바꿔 놓았단 것입니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수 있기에 혜능이야말로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자

실질적인

선종의 출발점이란 말씀이었습니다.

신수와 혜능의 게송 대결이 삿된 공부와 올바른 공부를 잘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수행해서 깨닫는다! 말 한마디에 곧바로 깨닫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말 한마디 끝에

곧바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해, 분별 심은 둘로 나눠야 직성이 풀리고

둘로 설명해야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 선법은 불가사의 미묘 법문인지라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선 선을 신비주의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어쨌든 그 분을 만나 기존의 상식이 완전히 박살난 저는

한동안 그 분의 회상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어쨌든 그분 회상에 6개월쯤 나갈 무렵!

이상한 경험들을 종종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잠에서 깨어날 무렵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엔 아랫배에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기운이랄까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온몸을 전율케 하여 저절로 몸이 떨렸습니다.

강한 황홀감과 희열이 온몸을 세차게 훑고 지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연히 스님들이 보던 <서장>을 보고는 자신의 체험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후론

출가를 포기하고 홀로 어록을 보며 인연 닿는 이들을 지도하다가

우연히 하숙하던 근처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노 거사님의 설법을 몇 년 듣던 선생님은 어느 여름날 노 거사님이

 “선이란 어려운 게 아니라, 이게 바로 선인 것이여...” 하시며

방바닥을 손가락으로 톡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선의 체험을 하시게 되었답니다.

좌우간 두 분을 스승으로 삼고 열심히 그분 회상에서 설법을 들으면서 그분들이 줄곧

가리키시는

 ‘이것’... 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의문을 키워 나갔고..

그 동안에도 이런 저런 체험들이 왔다가 사라졌지만 매번 그런 것이 아니란 말씀에

더 이상 그러한 체험에 신경 쓰지 않고 설법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 년이 지났고 도반 가운데 한두 사람이 공부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회상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

2003년에 들어설 무렵,

집사람이 갑자기 내가 요즘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1998년 결혼하고 이듬해 첫딸을 낳고 살림을 살면서 퇴근하면 선방으로,

주말이면 산사로, 스승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고 출가를 하네, 어쩌네 하면서

마음 고생시키던 남편이 얼마 전부터

더 이상 밤마다 방석위에 앉아 있지도 않고 채식해야 한다며,

음식 까탈도 부리지 않고 가정에도 충실하면서도 전보다 편안해진 것을 느꼈는지,

종교나 수행에는 통 관심 없던 아내가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베스트셀러인 <달라이라마 행복 론>을 주면서 읽어 보라고 했더니

며칠 후 참 재미있다며 이런 공부라면 자기도 해보고 싶다기에

우선 불교나 선에 문외한인 아내를 위해 대구에서 도덕경을 가지고

인연 닿는 이들과 공부를 하는 김모 선생님이 한 달에 한번 정도

부산에서 도덕경 강의를 하니까 거기에 나가보라고 했습니다.

한두 달 도덕경 강의를 다니던 집사람이 공부에 열의를 보이자

그동안 회상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2002년 8월에 여러 도반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회상을 마련한 선생님 법회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3개월이나 지났을까 내외가 공부에 푹 빠져 지낼 무렵 우리는 법문을

녹음하였다가 자기 전에도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날 밤 이어폰을 끼고 법문을 듣고 잠자리에 들던 아내가

“여보! 여보...” 하면서 다급히 부르기에 웬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집사람의 몸이 몹시 떨리고 있었습니다.

몸에 손을 대려 하자 손대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보이기에 잠시 있었더니

떨림이 멈추고 평상으로 돌아온 아내가 법문을 듣다가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한 체험과 비슷해서

나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 법회 날 아내와 개인 면담을 가진 선생님께서 몇몇 도반들에게

내 아내가 좋은 체험을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체험을 한 아내를 면담하고

이제 문턱을 넘었으니 더욱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 순간! 아내를 축하해 주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몹시도 당혹스럽고 난처한 감정, 어떻게 이럴 수가.........

다른 도반들이 좋은 소식이 오는 것과, 바로 한 이불 속에 사는 아내가,

그것도 도니 마음이니 깨달음이니 진리니 수행이니,

이런 말과는 담 쌓고 관심도 없던 아내가

5개월도 되지 않아 ‘이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 제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질투가 나고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뭔가 잘못된 거야!

하루는 너무나 의심쩍어서 점심 준비를 하는 아내 곁에 다가가

쭈뼛쭈뼛 물었습니다.

“여보, 도가 뭔데?”

그러자 아내가 옆에 있던 고춧가루 통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집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법문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도 아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혼자 작은 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19살 이후 줄곧 찾아왔던 사람은 나인데!

난 뭐가 잘못된 것인가!

아아~~~ 그 절망감! 그 분노! 그 실망감! 그 부끄러움! 그 비참함!

저는 나락 끝까지 떨어진 심정이었습니다.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몰랐고 길을 걸어도 몸뚱이만 갈 뿐

의식조차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멍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았습니다!

아내에게 변화가 찾아온 이후

얼빠진 사람처럼 어떻게 일상을 살아왔는지 모르게 살아왔습니다.

처음의 당혹감과 질투와 분노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곳에도 의지할 것이 사라진 절망감이랄까, 허탈함,

아무 것도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완전한 포기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에서야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놓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TV에서 정성스레 절을 올리는 사람이 화면에 나오면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나보다 비천하고 못난 사람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리속에 콘크리트를 바른 듯

공부와 관련해서 어떤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어느 책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과 관련된 글을 읽었을 때

그 당시의 제 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놀랐었습니다.

하느님마저 나를 버리신 듯한, 절대적인 절망!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선가에서 말하는 은산철벽이니 의단이니 하는 말도

이 시기를 지내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의문 속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유위 적 행위는 힘이 모자랍니다.

조사선과 간화선, 아니 모든 영적 탐구에서 살아있는 스승의 중요성은

나 자신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완전한 수동성이랄까, 무위법이랄까?

그러한 상황에 갇혀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칠 때,

크게 한 번 죽어서 다시 살아날 때 영적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애벌레에게 고치는 무덤입니다.

그러나 그 무덤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비로서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좌우간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갔습니다.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법문이었지만

수요일, 토요일의 선생님 법회와 일요일 오후의 노 거사님 법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그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이므로!

지금 바로 이것뿐 다른 물건은 없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바로 이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법문을 주의를 기울여 들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노 거사님의 <서장> 법문을 듣다가 졸았습니다.

그러다 잠에서 스스로 깨어났을 때

평소와 달리 노 거사님이 제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죽비를 딱 치시며, “이렇게 두드려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하시고는

죽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뒤로 감추시고는,

“지금 이렇게 두드리지 않아도 소리가 납니까?”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납니다.”라고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그러자마자 노 거사님은 “어디서 소리가 납니까?”라고 물으시기에

“시계가 똑딱똑딱합니다.”

(거사님 앞에 법회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탁상시계가 늘 있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노 거사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습니다.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헤아리려 하였습니다.

그때 노 거사님은 “분명합니까?”라고 물으셨고,

저는 저도 모르게 “분명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노 거사님은 “그것 뿐 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렇게 법회는 끝나고 도반들이 제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도..............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오솔길에 접어들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헤아려 보려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생각을 일으키려는 찰나,

크기도 모양도 위치도 없는 한 점이라 해야 할지?

블랙홀 같은 어떤 것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휘말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도, 숲도, 길도, 하늘도, 순식간에 그것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말들, 의미들이 몰록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는 다시 나도, 숲도, 길도, 하늘.....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거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강렬하게 온몸으로 알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아왔다는 듯이........

분명 몸뚱이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몰랐을 수가 있지?

어떻게 걸어 집으로 왔는지 몰랐습니다.

너무나 가슴 벅찼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고마워, 여보! 고마워! 이 모든 것이 아내 덕이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공부에 대한 체험이 없었던들 저는 여전히 책에 의지하거나

스승의 법문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분석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당시의 체험은 눈알이 거꾸로 박힌다는 선가의 표현 그대로 였습니다.

그 이전엔 무언가 확고부동한 중심점이 없이

바깥 외물(자신의 내면 생각도 외물입니다)에 끄달려 다녔는데

손을 잡을 수 없지만 분명한 발 디딜 곳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바깥 사물 하나하나에서 나를 확인한다고 해야 할까?

풀끝마다 조사의 뜻이 라거니, 두두 물물이 부처 라거니,

무정이 설법한다는 말이 허황한 말이 아니란 사실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심지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이것 알려고 그 고생을 했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예전 어느 스님 법문 집에 석가가 꽃을 들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는데........

그 미소는 비웃음이었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또 그 당시 체험 이후 재미있는 체험들이 왔는데!

책을 읽거나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무심코 사물들의 움직임을 보다가

온몸이 전율하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노자와 장자도 새롭게 이해가 되면서

모든 신비주의들의 비의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신비는 신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서 어느 구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을 현명하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가장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다...

이런 구절을 본 것 같은데,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법열에 젖어 살았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이후의 이야기가 정말 제 공부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아직 이렇게 객관화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눈 밝으신 분들이 많으시니 아실 것입니다.

진짜 공부는 공부가 한 고비를 넘은 이후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수많은 선배 공부 인들이

저 지점에서 수없이 나자빠지고 엎어졌듯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저 어떤 이의 꿈 이야기라 여겨주십시오.

제 이야기지만 저 스스로도 그저 꿈속의 이야기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꿈 속 사람이 꿈속에서 또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십시오. 꿈에서 깨어나셨습니까?

제 허물이 하늘까지 닿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덕산]

하하하! 대단한 근기의 처사같군요!
어쨌던 공부를 하면 작은 체험이라도 느껴쟈야 궤도에 오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小覺小覺 쌓여 大覺을 이루지요! 그날까지 꾸준히 정진하시기를 빕니다. 하하하!

[정일]

예! 선배님!
10년 전 얘기인데
지금쯤은 후학을 지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연락이 끊어져(2년전) 그후 소식을 모르지요!

[원심]

정일님 공부하시는 분의 좋은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잠시도 눈을 뗄수 없이 한숨에 끝까지 읽어 내렸습니다.
공부인으로써 맛보는 전율과 고통, 그리고 인내의 일상들이
저에게는 좋은 대리체험이었습니다.

[정일]

말과 개념에 끄달리지 않으면
'선'이 곧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부처'이고 '불성'이어서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선'은 다름 아닌 (책상을 치며) <이것>입니다!
'설법'은 '법'을 '설'하는 게 아니라 '설'하는 것이 바로 '법'입니다!
'견성'은 성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것'이 바로 '성품'입니다!

지금 바로 눈앞의 일이 그대로 깨달음이고 부처이니
따로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선'은 다름 아닌 (책상을 치며) <이것>입니다!

" 탕~~!"

위에 분이 얘기 하고자 하는 얘기 같습니다!
자주 여러번 읽어 보시죠!^^

[가다오네]

형님,,대단하십니다. 더욱 도를 높이시어 적멸보궁에 먼훗날 사리 몇알좀 남기소서..가능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정일]

예! 남에 글 입니다!
대단 하긴요~!ㅋㅋ

[法身淸淨전영덕]

정일거사님~ 좋은 수행담 퍼가도 되겠습니까?
후학들에게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정일]

예!
제글은 아니지만
후학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바람직 하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