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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사랑의 언어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실상은 작은 것이 아닐 수 있고, 작은 것이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진리를 좀더 확증하기 위해서 우리의 일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다뤄보자.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왜 작은 일을 가지고 싸우게 될까? 부부 싸움을 생각해보자. 큰 일로 부부 싸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로 작은 일로 싸운다. 치약을 왜 앞에서부터 짜느냐, 변기 덮개를 왜 내려놓지 않느냐, 왜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느냐(우리 집에는 한 가지 불가사의한 일이 있는데 그 많은 양말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내가 혼자 자취할 때는 몇 달이 지나도 양말이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다. 양말을 새로 구입해도 몇 주만 지나면 짝이 안 맞는 양말이 부지기수다. 우리 부부는 고민하다가 세탁기 안에 블랙홀이 있다는 과학적인 결론을 내렸다.), 왜 약속시간에 늦느냐, 왜 뭘 자꾸 잃어버리느냐, 왜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느냐, 어떻게 결혼기념일을 잊을 수 있느냐, 왜 부모님께 자주 전화하지 않느냐,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 잠자는 시간이 왜 이렇게 안 맞느냐, 집안 온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오죽하면 냉온 겸용 전기장판이 나왔겠는가?) 등등. 큰일을 가지고 싸우는 부부는 별로 없다. 이라크 파병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지고 박 터지게 싸우는 부부 보았는가? 주로 작은 것 가지고 싸운다. 왜 이렇게 작은 일로 싸우게 될까?(크기는 거리의 문제다)
작은 일로 싸우게 되는 것은 내가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큰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다고 생각한 것이 내가 보기에 작을 뿐 상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관점이 달라 내가 그것을 작게 여기고 있을 뿐 상대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상대에게는 그것이 목숨 걸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상대에게 있어서는 태도나 성격이나 품성을 드러내는 큰 일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마다 상대는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나는 그런 큰일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방식에서도 이것이 나타난다.
게리 체프만은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서 사람마다 사랑에 대해서 느끼는 방식이 다 다르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느끼는 제 2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체프만은 그것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인 접촉, 그리고 봉사. 이상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는데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달라서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사랑이라고 느낀다. 결혼을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이나 이런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상대의 사랑의 언어를 모르면 내 식으로 사랑을 해놓고 상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의 사랑의 언어를 알 필요가 있다. 사랑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내가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은 것이 아니며, 실상은 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한 가지씩 알아보자.
인정하는 말, 그에게 비난은 독약이다
첫째는 ‘인정하는 말’이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인정할 때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나머지 네 가지가 사랑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사람에게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나 기념일을 기억하여 선물을 하는 일이나 육체적 만족감을 주는 일이나 여러 가지 희생을 통해 봉사하는 일은 사랑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나머지 네 가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로 여겨질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 높여주는 말, 존경하는 말, 고마움의 말을 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남들 앞에서 깎아내리는 말을 듣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삼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일이 장난 정도나 하소연 정도일지 모르지만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이것을 모르고 남들 앞에서 이런 부류의 배우자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부부가 있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부부와 함께 만나다 보면 사람들은 ‘기회가 찬스다’하고 그동안 배우자를 통해서 당했던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과 상대의 단점을 헐뜯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때마다 내가 속으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 아마 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 말들이 다 옳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 해도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배우자에게 그것은 독과도 같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말은 절대 금물이다. 좀 힘들어도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주라. 그러면 나머진 만사형통이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과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게 해 주었을 때 폭발력 있는 변화가 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인정하는 말’이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돼도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라.
함께 하는 시간, 그에게만 집중하라
두 번째 사랑의 언어는 ‘함께 하는 시간’이다. ‘함께 하는 시간’을 사랑의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사랑을 경험한다. 그러니 ‘함께 하는 시간’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깊은 연대감을 가지고 상대에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며, 마음 깊은 것을 나누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번 것이나 비싼 선물을 사주거나 칭찬하는 것을 통해서는 결코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은 충분히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성들은 ‘공간적 사랑’을 하기 때문에 직장의 일을 그만 두고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을 주었고 사랑을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재미있는 통계를 하나 보았는데 미국에서는 프로포즈의 80%가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는 같이 있는 공간을 기억하고 여자는 같이 나눈 말을 기억한다고 한다. 남자가 공간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하기에 남자는 집안에서 TV를 보고 신문을 보고 있어도 함께 한 공간 안에 있으면 사랑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함께 하는 시간’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의 사람이 원하는 것은 깊은 연대감을 가지고 온통 모든 관심을 그 사람에게 집중시키며,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둘이 손잡고 산책을 하거나 아이들을 맡기고 둘만이 외식을 하거나 음악회나 영화를 보거나 퇴근 후 그날 있었던 일을 같이 나누고 토요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소풍을 가거나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는 일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에게 온전한 관심을 갖고 그에게 집중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라. 그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선물, 당신 자신을 선물하라
세 번째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다.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선물이야말로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된다. 선물을 통해 내가 기억되는 존재요,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반지나 결혼 예물을 소홀히 다루고,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등을 쉽게 잊어버린다. 내 아내가 전형적인 인물인데 내 아내는 결혼 한 지 일주일 만에 결혼반지를 잃어 버렸고, 이주일 만에 결혼 시계를 잃어버렸다.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나 또한 ‘선물’이 사랑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그 행위를 사랑의 배신행위로 생각했을 것이다.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내게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인정하는 말을 해도 결혼기념일을 잊는 따위의 행위를 사랑을 저버린 배신행위로 여긴다. 반대로 평소에 배우자에게 헌신적이었던 사람은 결혼기념일을 잊은 것 가지고 토라진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 많을 것이다. 이것이 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선물’이 사랑의 언어인 배우자에게 집에 들어갈 때 피자 한 판을 사들고 들어가거나 장미 한 송이를 예쁘게 포장하여 선물하고, 화분을 사들고 들어가고, 거기에 예쁜 카드 한 장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는 행복을 주게 될 것이다. 각종 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작은 선물을 건넨다면 금상첨화이다. 또 가장 어려운 시기나 힘든 일을 겪을 때 자신을 사랑의 선물로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존재의 선물이니까.
육체적 접촉,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네 번째 사랑의 언어는 ‘육체적인 접촉’이다. ‘육체적인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여기는 사람에게 육체적인 접촉은 매우 중요하다. 육체적인 접촉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육체적인 접촉을 속물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가 많다. 혹 속물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사랑의 언어로까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인 접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이 사랑의 언어가 많기 때문에 갈등이 많이 생긴다.
남성과 여성은 성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 사랑의 언어의 차이까지 겹치면 매우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선배목사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에 대해서 남자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여성은 ‘되면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남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에 관한 한 하면 된다. 방금 전에 부부싸움을 했어도 성은 그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존재가 남자이다. 그러나 여성은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의 분위기가 익어야 할 수 있다. 감정과 정서가 충분히 해결되어야 육체적인 접촉이 가능하다. 여성은 정말 되야 할 수 있다. 존 그레이가 쓴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침실 가꾸기>를 보면 남성은 성관계를 가지고 나면 정서적이 되어 여성의 정서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여성은 정서가 만족이 되어야 비로소 성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고 한다. 제대로 봤다.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서로 다르니 더군다나 ‘육체적인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차이점 때문에 더 심각한 갈등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이 경우가 정말 힘든 경우인데 ‘육체적인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가지고 있는 남자라면 여자는 되지 않더라도 배우자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그 남성은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모든 여성이 그러하기는 하지만 특히 ‘육체적인 접촉’를 가진 여성이라면 남성은 정말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여성의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새마을 운동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다. 충분히 여성의 정서가 사랑의 상태에 이르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여성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이라면 울고 있는 배우자를 껴안아 주는 것 이상 좋은 사랑의 표현은 없다. 마음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배우자와 친밀한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만큼 사랑을 표현할 좋은 기회는 드물다. 이러한 사랑의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리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정하는 말을 하고 선물을 준다할지라도 육체적인 접촉을 꺼려하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봉사, 일상의 작은 감동을 주라
마지막 사랑의 언어는 ‘봉사’이다. ‘봉사’가 사랑의 언어인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위해서 일상적인 일들을 해줄 때 사랑으로 여긴다. ‘봉사’가 사랑의 언어인 여성이라면 남편이 이런 일을 해 줄 때 사랑으로 느끼지 않을까? 요리하는 일, 집 안 청소를 하는 일, 설거지를 하는 일, 옷장을 정리하는 일,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 아이 유치원 보내는 일 등등. ‘봉사’가 사랑의 언어인 남성이라면 아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사랑으로 느끼지 않을까? 따뜻한 밥을 정성들여 해 주는 일, 와이셔츠를 깔끔하게 다려주는 일, 자녀를 위해서 헌신하는 모든 일, 시댁 식구들을 신경 써 주는 일, 남편의 힘든 일을 도와주는 일 등등.
서로를 위해 일상의 작은 일을 해줄 때 상대는 감동하고 사랑받았다고 느낀다. 일상적인 작은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 귀찮을지 모르지만 상대가 그것을 사랑으로 느낀다면 낮아져서 섬기라. 그러면 그것을 최고의 사랑으로 알고 감동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라고 해서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좋은 반응이 아니다. 자신이 어떨 때 사랑을 느끼는 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요청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구’가 아니라 ‘요청’할 때 상대는 자신을 존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의 언어를 찾는 법
이상 5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그러면 나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는 상대가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안다. 상대가 어떻게 했을 때 상처를 받는지를 살펴보면 상처를 받는 것에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이다.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면 당신은 함께 하는 시간이 사랑의 언어일 것이고, 기념일을 기억하며 선물을 하지 않는 것에 상처를 받는다면 선물이 사랑의 언어일 것이고, 육체적인 접촉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나면 육체적인 접촉이 사랑의 언어일 것이고, 배우자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면 봉사가 사랑의 언어일 것이고, 무시하는 듯한 말을 들었을 때 과도하게 화가 나면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언어일 것이다.
둘째는 내가 상대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나의 사랑의 언어를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요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해 줄 때 사랑을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에 사랑을 느낄만한 것을 상대에게 요구한다. 그러니 내가 자주 요구하고 있는 그것이 내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셋째는 내가 상대에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식이 사실은 내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을 느끼는 방식으로 상대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방식으로 사랑을 베푸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내가 상대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을 살펴보면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사랑을 느끼겠지 하는 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사랑의 언어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마다 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 서로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언어가 아니면 상대의 사랑의 언어를 작은 일로 치부하기 쉽다. 상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인데도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 사실은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고 내가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상대에게 그것을 행하면 상대는 벅찬 감격에 사로잡힐 것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라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책이 있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너무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있기 때문에 자주 싸우고 만족을 모르고 관계가 어려워지고 작은 일에 힘들어하고 생산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강하게 말한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어라.”
내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에 상대는 이미 목숨 걸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목숨 걸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함께 목숨 걸면 관계에 핵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나 자신의 사소한 것에는 목숨 걸지 말고 상대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라. 내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사랑의 언어에 목숨을 걸라. 내 사랑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일 수 있다. 내 사랑의 언어가 아닌 것들은 사실 작게 여기는 것들 아닌가? 그러니 작은 것들을 하겠다고 결단만 하라. 그러면 작은 것을 하고도 큰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