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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없었다면 이자리에 없었죠" | ||||||||||||||||||||||||
[성공시대]IMG 골프장 김춘배 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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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말단 경리직에서 30대에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김춘배(41) IMG 골프장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김 대표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김 대표 자신이 살아온 길, 스스로를 지탱해 온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상고 출신으로 말단 경리직원부터 시작해 30대에 회사의 대표이사가 됐다. 남들이 볼 땐 꽤 일찍 사장자리에 올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때론 너무 젊다는 것만으로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나 김 대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바로 수긍하게 된다. 김 대표는 현재 IMG 골프장(충남 연기군 전의면 소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 대표는 IMG 골프장을 세계 100대 골프장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MG에는 뛰어난 코스관리, 코스 레이아웃, 공정한 부킹 시스템, 주말부킹권 보장, 접근의 용이성, 투자의 안전성 등 명문 골프장으로서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김 대표는 충분히 100대 골프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44만 8000여 평의 부지에 한국에서는 드문 업다운 설계가 최적화돼 있는 27개 홀의 뛰어난 코스, 7∼8분의 여유로운 티오프와 더불어 티에서부터 그린까지 넓은 페어웨이는 물론 해저드까지 고도로 정밀하게 설계돼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더군다나 고속철도 개통과 더불어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뛰어나고, 리츠칼튼 C.C, 중앙 C.C, 힐튼남해 골프&스파 리조트, 금강산 골프&스파리조트를 운영하는 골프전문 레저기업형 그룹체계를 갖추고 있어 명실공히 명문 골프장의 조건을 충족해 나가고 있다.
김 대표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 마산면 삼월리로 50호 정도의 농가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었다. 그곳에서 김 대표는 2남 4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김 대표는 "아버지는 마을의 담배농사를 관장하는 책임자로 우리집이 담배를 유통시키는 총 대리점이었다"며 "아버지는 직접 산더미처럼 쌓인 담뱃잎을 수작업으로 등급을 매기는 등 무척이나 성실한 분이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의 빚 보증이 화근이 돼 김 대표 가족들은 모든 것을 청산하고 1979년에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한다. 고향과 작별을 고하면서 김 대표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언제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이 다음에 반드시 성공해서 마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당당하게 고향의 품으로 돌아올테다. 나 김춘배, 그때까지는 절대 고향땅을 밟지 않을 것이다"라고. 고향에서 빚을 정리하고 나자 김 대표 가족들에게 남겨진 돈은 딱 250만 원이었다. 김 대표 식구들은 건국대 후문 근처에 있는 2층짜리 연립주택의 1층을 전세로 얻었지만 셋째 누이가 시집을 가는 바람에 150만 원을 따로 챙겨가 결국 신당동에 100만 원짜리 전세 방 한 칸을 얻어 옮기게 됐다. 서울 성수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 일을 도우려 다니셨고 막내누이도 직장에 다녔지만 생계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동대문상고에 입학, 밥 대신 포장마차에서 남은 떡볶이 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고 신당동에서 동대문까지 뛰어서 학교에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해서 고향땅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내 곁에는 오로지 내가 잘 되길 바라며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가난이 주는 시련은 단지 나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 주는 환경에 불과했지요." 동대문 상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또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대학에 다닐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김 대표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열아홉 살, 김 대표는 맨 주먹밖에 없었지만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뛰고 더 빨리 이루어서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셔야 했고 반드시 사업가로 성공해서 고향땅에 돌아간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가야할 길이 아주 분명해보였다는 김 대표는 "열정이었죠. 지금도 열정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열정만은 항상 품고 살아왔어요." 1983년 1월 동대문상고 교복을 채 벗기도 전에 김 대표는 하루에 세 군데의 직장을 다니게된다. 아침에는 건물상가와 아파트주택의 경리일을 총괄했으며 오후에는 학교선배가 운영하는 주산학원의 강사, 밤에는 나이트클럽의 경리를 보는 일이었다. 김 대표는 "학교다닐 때부터 주산부 반장을 지낼 만큼 주산 실력이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남들 만큼 일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어느새 내 머리속에 철저하게 박혀 있어 저는 조금이라도 쉬지않고 열심히 일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죠." 김 대표는 주산 5단, 부기 2급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의 공인회계사에 해당하는 상업계산 1급도 획득했다. 그렇게 여러회사의 경리업무의 중책을 맡으면서 실무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중 김 대표를 골프업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이자 회사의 모든 일을 믿고 맡겨주며 한 배를 탄 몸처럼 아껴준 이중명 회장을 만나게 된다. 당시 이 회장은 김 대표가 있던 회사에 투자자의 한 사람으로 경영진에 속해 있어 김 대표와의 접촉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첫 만남은 다소 거리가 있었고 서로에 대해 모른채 세월이 흘러 1995년에 다시 이 회장과 재회를 하게 된다. 이 회장의 근황이 보도된 신문을 본 김 대표는 반가운 마음에 만나게 되고 소주 한 잔 하면서 인연을 다시 쌓게돼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요청으로 김 대표는 중앙 골프장에 경리과장으로 일을 하게 된 후 이후 리츠칼튼 골프장과 현 IMG 골프장을 인수까지하는 중책을 맡는다. "당시 이 회장은 더 높은 임원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내가 원했던건 높은 위치가 아니라 회사의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즉 내 손으로 회사를 키우고 싶었던 것이죠." 김 대표는 1995년 이중명 회장을 따라 충북 진천의 중앙 골프장에 경리과장으로 들어온 지 7년 만에, 2002년 39살의 나이로 한 회사의 대표가 되면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사장 취임 후 현재까지 김 대표는 골프장 근처 노인분들을 매달 초청해 경로잔치를 벌이는 한편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 충남골프연합화 회장과 연기군 체육회 부회장, 충남도 골프협회 부회장, 공주시 태권도협회 고문, 대전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나는 일개 골프장 사장이고 기업인으로서 회사를 키워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단지 회사가 혼자서만 배부른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의 경제를 일으키고 주민들과 화합하며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회사가 되길 희망할 뿐입니다" 골프장이 있는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는 김 대표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꿈꾸었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자랑할만한 기업인으로, 주민으로 튼실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그 답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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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훌륭한 후배군요!! 앞으로도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 확신이 생깁니다!! 글 올린 한덕수후배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닉~ 바꿉니다.실명으로....구, 나이스...
자랑스러운 청원인 이십니다.
자랑스런 후배님 ! 고생은 성공의 어머니 -- 앞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