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뉴 그랜저의 외장 디자인을 담당한 허용준 책임연구원(좌)과 클레이 모델러 남운규 기술선임(우)
'더 뉴 그랜저'가 새로운 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새 이름과 함께 안팎으로 크게 달라졌다. 그랜저의 33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커다란 부분변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더 뉴 그랜저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래서 더 뉴 그랜저의 스타일링을 담당한 현대디자인센터 허용준 책임연구원과 남운규 기술선임을 만났다. 남운규 기술선임은 1986년 현대차 입사 후 33년간 수많은 현대차의 클레이 모델을 손으로 빚은 장인이다. 이들이 말하는 더 뉴 그랜저의 외장 디자인에 숨은 비밀을 전한다.
더 뉴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Q.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더 뉴 그랜저의 디자인 배경과 과정이 궁금하다.
허용준 책임연구원(이하 허용준) | 지금은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변화에 익숙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 큰 변화를 요구한다. 페이스리프트 단계에서 이처럼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한 건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로서 그랜저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더 뉴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큰 폭의 변화를 위해 풀체인지 모델과 같은 디자인 과정을 거쳤다. 앞문짝만 제외하고 모든 부분에서 변화했다. 그랜저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실무진과 경영진의 공감대를 통해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능했다.
더 뉴 그랜저의 외장 디자인을 함께 완성한 남운규 기술선임(좌)과 허용준 책임연구원(우)이 더 뉴 그랜저의 확인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
남운규 기술선임(이하 남운규) | 현재 자동차 디자인은 스케치로 시작해 알리아스(Alias) 프로그램을 이용한 3D 디지털 데이터 작업, 클레이(공업용 점토) 공작기계로 차체를 깎는 1:1 NC 밀링(Milling), 클레이 모델에 디테일을 더하는 클레이 모델링 순으로 이뤄진다. 클레이 모델의 대략적인 형태를 만든 뒤 클레이 모델을 다시 스캔해서 산출한 데이터를 이용해 NC 밀링, 클레이 모델링 과정을 반복하며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후 부분 수정을 거쳐야 양산차에 가까운 디자인의 클레이 모델이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디자인 승인 모델을 만들고, 1호 시험차의 디자인이 의도한 대로 만들어졌는지 대조하기 위해 레진(resin, 합성수지) 소재로 확인 모델을 만든다. 더 뉴 그랜저의 클레이 모델은 2018년 초에 처음 제작돼 약 7개월간 2번의 임직원 내부 품평회를 거친 뒤에 완성됐다. 더 뉴 그랜저가 신차 수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랜저의 헤리티지를 표현하는 테일램프. 내부 그래픽은 정교하게 가공한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채웠다
Q. 그랜저는 30년 이상의 헤리티지를 가진 프리미엄 모델이다. 그랜저의 헤리티지와 혁신적인 변화를 함께 이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듯하다.
허용준 | 그랜저에 대한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모험이었다. 많이 고민하고 의견을 조율했으나 변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랜저의 고객 연령층도 낮아졌다. 더 뉴 그랜저의 주요 고객층은 성공한 젊은 40대, 즉 ‘영포티’다. 캐주얼한 스타일을 즐겨 입고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며, 변화와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 중년이다.
자동차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그랜저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해 새롭고 혁신적인 경험을 제시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를 결합한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다이아몬드 패턴을 보여주는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이 어우러지도록 표현한 이유다.
허용준 책임연구원은 하나의 입체적인 면으로 이뤄진 앞모습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팀과 엔지니어링팀의 긴밀한 협업이 있었다고 말했다
Q. 더 뉴 그랜저는 기존 모델과 전혀 다른 디자인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허용준 | 더 뉴 그랜저는 르 필 루즈 콘셉트에서 처음 선보인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 '센슈어스 스포티니스(Sensuous Sportiness, 감성을 더한 스포티함)'가 반영돼 있다.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는 비례, 구조, 스타일링, 기술 등 4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디자인 철학이다. 기존의 그랜저가 오목 볼록한 형상으로 입체감을 강조했다면 더 뉴 그랜저는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엮는 개념으로 입체감을 표현했다. 특히 후드부터 범퍼까지 하나의 입체적인 면으로 엮은 앞모습이 그렇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범퍼를 하나로 디자인한 개념은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없던 일이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통틀어 긴밀한 협업과 수많은 시도가 이뤄진 끝에 지금의 앞모습이 태어날 수 있었다.
뒷모습은 기존 모델을 계승하는 방향을 유지하되 좀 더 커다란 조형과 디테일에 집중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어가면서 입체적인 그래픽의 테일램프, 크롬 머플러 가니시 등 정교한 디테일로 디자인의 품질을 높인 것이다. 휠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램프, 그릴, 휠 내부의 패턴이 모두 연결성을 갖도록 디자인했다. 설계 기술이 발전하고, 디자인 창의성이 많이 개선된 덕분이다.
남운규 기술선임은 더 뉴 그랜저의 입체감과 볼륨감을 살리기 위해 클레이 모델의 선과 면을 세심하게 다듬었다
남운규 | 더 뉴 그랜저는 볼륨감 넘치는 옆모습과 강렬한 입체감의 뒷모습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역시 앞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범퍼와 그릴, 헤드램프의 일체감을 위해 하나의 면으로 다듬는 작업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클레이 모델의 후드 높낮이를 쉴 새 없이 조절하고 선과 면을 다듬으면서 멋진 비율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클레이 모델링은 선과 면 하나하나를 세심히 다듬는 작업이다. 차의 형태에 감성을 더해 생명력을 부여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결합된 구조는 감성적인 디자인과 최신 기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Q.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를 결합한 개념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허용준 |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예전부터 여러 요소를 통합하고 이음새가 없는 자동차를 그리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SF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자동차처럼 말이다. 지금은 이런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디자인과 기술 부문이 협업해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다. 더 뉴 그랜저의 앞모습은 센슈어스 스포티니스의 4가지 요소(비례, 구조, 스타일링, 기술) 중 기술적으로 진보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여러 선과 물체를 결합했을 때 자칫하면 복잡한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린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에 히든 라이팅 기술을 접목했다. 쏘나타의 경우 쏘나타만의 전통적 디자인 요소인 크롬 몰딩으로 라이팅 아키텍처를 구현했다. 더 뉴 그랜저도 기본 개념은 같다. 크롬 코팅한 렌즈에 레이저로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빛을 투과시키는 방식은 감성적인 디자인과 최신 기술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뉴 그랜저의 혁신적인 변화를 알리는 일등 공신은 역시 앞모습이다
Q. 외장 디자인 변화에 있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은?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도 같이 설명 부탁드린다.
허용준 | 가장 많이 신경 쓴 건 역시 앞모습이다. 한눈에 혁신적인 인상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더 뉴 그랜저의 파격적인 디자인에 불안한 시선도 꽤 있었다. 내부 품평회도 조심스러웠고, 경영진도 심사숙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혁신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한 결과, 양산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기존 그랜저의 디자인에 대한 평가도 좋았지만, 더 뉴 그랜저의 혁신적인 디자인도 분명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뉴 그랜저는 휠베이스 40mm, 전장 60mm가 늘어나고 C필러 부위가 좀 더 가팔라진 까닭에 옆모습이 한결 젊고 역동적으로 보인다. 리어 펜더는 캐릭터 라인과 휠 아치의 간격을 넓혀 볼륨감이 돋보이도록 디자인했다. 그랜저는 FF(앞 엔진, 전륜구동) 구조이기 때문에 앞바퀴가 탑승 공간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체를 늘리면서 후륜구동 모델처럼 역동적인 비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남운규 기술선임은 가장 만족하는 결과물로 C필러와 리어 펜더를 꼽았다
Q. 더 뉴 그랜저를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남운규 | 클레이 모델러는 디자이너의 의도와 방향성을 잘 파악해서 수없이 소통하고 교감하며 디자이너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 뉴 그랜저는 앞문짝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을 새롭게 바꿨다. 33년간 많은 클레이 모델을 만들었는데, 더 뉴 그랜저는 그중에서 수정 작업을 가장 많이 거친 모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공을 들이고, 가장 만족스럽게 다듬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리어 쿼터 패널(뒷문 뒤쪽 부위)이다. 담당 디자이너와 가장 많은 의견을 나눈 부분 중 하나다. C필러와 리어 펜더, 새로운 캐릭터 라인을 이용해 차체의 볼륨감을 표현하는 작업이 어려웠다. 선과 면, 그리고 C필러 각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차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뉴 그랜저는 현대차의 혁신적인 디자인 변화를 알리는 플래그십 모델이 될 것이다
Q. 더 뉴 그랜저를 통해 향후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방향성을 살펴볼 수 있을까?
허용준 | 현대디자인센터장 이상엽 전무가 더 뉴 그랜저 디자인 프리뷰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더 뉴 그랜저의 디자인이 새롭고 혁신적이긴 하지만, 지금 이건 진보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미래로 향하는 중간 단계라고 보면 좋겠다.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 그릴과 헤드램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다른 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차종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콘셉트는 유지하며 진화할 것이다.
더 뉴 그랜저는 안팎 디자인은 물론 기계적인 완성도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Q. 더 뉴 그랜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허용준 | 앞서 말한 것처럼, 더 뉴 그랜저의 주요 고객층은 영포티다. 변화에 민감하고 트렌드와 혁신을 주도하는 고객이라면 이 차의 가치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더 뉴 그랜저에 담으려 노력했다.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차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고민했다. 자동차는 대부분 앞뒤 모습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데, 후측면에서 바라본 더 뉴 그랜저의 모습도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