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밤 2022년 12월 24일 루가 2:1-14.
깨닫는 자에게 오신 성탄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생명이 탄생하였고 우리는 그 사실을 기뻐합니다.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토의 호적 등록 명령에 따라 남편인 요셉과 함께 먼 길을 떠났고 낯 선 타향인 베들레헴에서 출산을 합니다.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동네 나자렛이라는 곳에 평범한 직업을 가난한 부모는 해산을 하고도 아기를 뉘일 곳조차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 아기가 누운 곳은 마구간의 구유였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는 식민지 조국의 서글픔을 안고 눈물 날 만큼 가엽게 태어납니다.
부모의 옹색함에 더해서 아기 예수를 먼저 경배한 이들은 가장 천한 직업 중 하나였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짐승들과 엉켜 있고, 밥그릇인 구유에 누웠으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복음은 아기의 탄생이 온 백성,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라 선포합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성탄을 정의하자면 한 마디로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나는 캐럴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까지...
성탄은 기쁜 날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왜 기쁜지를 깨달은 초기 신앙인들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는 습성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처럼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나약하고 아주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성탄은 ‘인간’으로 오신 구원자 예수님의 가난하고 나약한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권력과 부와 호화로움으로 오시지 않았기에 우리는 오히려 그 분을 경배합니다.
이 역설을 깨닫고, 나약한 탄생이 온 인류의 큰 기쁨이었음을 선언한 복음을 깊게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구세주다!” 하고 선언하시며 태어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인간의 온갖 바람과 상상을 초월하여 아무도 몰라주는 아주 작은 존재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모습과 목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이 가장 천한 자리에 오셨다는 그 본질을 믿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구유에 누운 아기에게 무릎을 꿇는 사람에게만 그리스도는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자가 비천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 거룩한 역설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약함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을 복음에서는 어둠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분은 빛으로 오셨지만 여전히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태어난 진리에 여전히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무릎을 꿇지 못할까요?
나의 이기심, 자존심, 세상의 상식과 이성, 교만함, 욕망이 우리의 고개를 뻣뻣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은 용서와 겸손을 가르치셨지만 우리 인간은 욕망과 교만으로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가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해야 일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는 우리의 삶 안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너무나 골몰한 나머지 말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곤 합니다.
이 모두가 어둠입니다.
성탄은 이제 내려놓음과 비움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아직도 맹렬하게 어둠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괴롭히고 있지만 결코 빛의 삶을 절망과 두려움이 이길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분의 탄생과 그 말씀이 빛이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하늘 높은 곳에는 영광이고, 땅에서는 그분의 사랑받는 이들에게 평화’를 고백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깊이 깨달아 알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영광의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구간 구유에 오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세상과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먹이로 주시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죽음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음의 본질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먹이로 삼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성탄은 해마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매일 매일의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 사건은 진정으로 낮아지셔서 우리 인간을 위해 헌신하셨던 그분을 내 안에 모셔 나도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을 낳습니다.
성탄은 그 의미를 깨닫는 자에게 주신 가장 큰 기쁨이고 선물입니다.
이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신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