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엘로 "시스티나 성모Sistine Madonna" < 마태복음 18장(2020.11.8.일)> 2020. 11. 8일- 마태복음 18장(현대어성경) 18:1 그때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위대한가를 물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한명은 예수 그리스도, 세례 요한이나 자신의 어릴적 아이 이미지를 담았는지 모른다. 다른 두 명은 아기천사 푸토, 케루빔, 큐피드다. 푸토(Putto 복수형 푸티 Putti)는 통통한 남자아이로 묘사된 예술작품에서 주로 벌거벗고 때로는 날개짓을 하는 천사다. 원래 상징의 불경한 열정에 한정되어 있던, 이 푸토는 신성한 천사를 나타내게 되었고, 바로크 미술 시대에는 그 푸토가 신의 편재, 큐피드를 나타내는 푸토는 아모리노(amorino) 또는 아모레토(amoretto)라고도 한다. 라파엘로는 아이 모델의 순간적인 느낌을 포착했고 아이를 천사 푸토로 묘사했다. 내 생각은 이 푸토는 생각 많은 서영이와 무가다 수인이을 무척 닮았다. 가끔씩 빙글빙글 도는 눈망울을 재치있게 돌리는 수인이가 무섭기도 하다. 위쪽을 바라보는 왼쪽 천사는 서영이, 오른쪽 골똘이 생각하며 눈망울을 빙빙 돌리고 있는 푸토는 영락없는 수인이. 엄마도 그렇다고 한다. 수인이는 왼쪽 푸토를 하고 싶다고 꼬장을 부린다. 서영이 역시 왼쪽 천사를 욕심낸다. 두 천사와 달리 슬픈 표정의 성모 마리아님의 품에 있는 아기 예수의 눈망울도 청명한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라파엘로의 심성에는 어머니의 품에서 사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예수를 그렸는지 모르겠다. 들여다 보니 아기 예수의 눈망울과 아기천사 푸토의 눈망울은 같은 눈망울이다. 이 아이의 눈망울에 비친 세상은 모두 다 똑 같이 신비롭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이 처럼 모든 것이 꽃처럼 아름답고 또 어른 처럼 꽃처럼 서럽다. 아이의 마음이 맑은 눈망울 곳곳에 아로 새겨져 있다. 맑고 신나고 즐겁게 뛰놀고 싶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으로 1514년에 로마 바티칸 궁정 시스티나 성당의 중앙 제단화 종교화로 봉헌되었다. 이 성당의 성모상을 다른 종교화와 구분짓는 커다란 특징은 선한 마리아와 어머니 품에 안은 예수의 부리 부리한 표정의 대비다.
라파엘 센찌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이탈리아 우르비노 출생으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 중 한 사람. 라파엘로는 그의 자화상에서의 용모처럼 온화하고 순수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그림은 레오나르도다빈치에게서 배운 인물의 배치, 구도상의 교묘한 기법 등으로 후세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인물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현실의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닌 라파엘로의 마음에 있는 어떤 생각과 이상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지금껏 자연을 묘사하고 모방하려는 르네상스 미술의 세계와 또 다른 비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연을 추구하다가 인위적으로 자연을 바꿔보려는 우를 범했던 르네상스 미술을 넘어선 그의 업적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의 초기 작품은 청순한 색채와 감미로운 음악적 리듬이 보이며, 격정이나 위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매력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는 스승인 페루지노의 기풍을 익혀《성모대관》,《그리스도의 책형》, 《성모의 결혼》 등은 페루지노의 그림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공간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에는 그의 스승에게서 볼 수 없는 신선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후에 그는 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 구성과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페루지노의 화풍을 탈피하여 피렌체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았고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아가《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 구성에 있어서의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내었다. 그는 비록 서른 일곱.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걸작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라파엘로는 렘브란트처럼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이다. 자화상, 조반니 다라고나, 라 포르나리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 톰마소 잉기라미, 아뇰로 도니, 마그달레나 스트로치 등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자기 색깔로 자신만의 자존감으로 새로운 양식을 만든 화가이다. 여러 그림 중에 그가 그린 인물화 중에는 성모자 상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성모자상을 수없이 그렸고, 지금도 거의 모든 카톨릭 신자들과 그온유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복제판의 성모자상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 작품은 원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분묘를 장식하기 위해서 주문했던 것이다. 화면의 왼쪽에 보이는 시스투스 1세는 델라 로베레 가문의 율리우스 파의 수호신이었으므로 시스티나 성당의 장식 벽화에 그를 그렸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 쪽에 그려진 성녀 바르바라는 맨 아래 날개가 달린 푸토를 바라보면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성녀 바르바라는 중세시대에 14명의 수호성인으로 대중적인 성녀에 속한다. 그녀는 이교도인 디오스코루스(Dioscorus)의 딸로서 뛰어난 미인이었다. 성녀의 부친은 청혼자들을 물리치고 세상에 의해 딸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은 탑 속에 그녀를 가두었다. 어느날 부친은 바르바라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고는 격분해서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다행히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나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아버지에 의해 재판관 막시미누스에게 넘겨져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배교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때 아버지 디오스코루스가 직접 딸을 참수했는데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번개에 맞아 죽었다. 성녀 바르바라의 상징은 탑, 왕관, 종려가지와 칼이다. 그런가 하면 푸토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푸토는 날개 달린 어린 천사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어린이를 의미하는 라틴어 푸투스(putus)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예술에서 보는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와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 아모르, 큐피드, 비너스 등이 푸토의 전형이다. 어린 아이 모습의 푸토는 결혼이나 장례 행렬을 상징한다고 한다. 라파엘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라파엘로 그림의 성모 마리아 모델은 대부분 그녀 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하면서도 동거 관계만을 유지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라파엘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친분 이 있었던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의 조카딸과 약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결혼 상대가 높으신 분인 추기경 의 조카딸인데다, 추기경 역시 라파엘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여서 차마 파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낼 수도 없었던 그는 약혼을 해놓고도 결혼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버틴 것이다. 덧칠로 지워버리는 바람에 이 사실은 500년이 지난 2001년에서야, 비로소 (복원 과정 에서)밝혀지게 된다. 한편 마르게리타 루티 는 라파엘로가 죽은 후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하며, 이후의 일생은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수도원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생을 마친 것으로 짐작 되고 있다. 혹여 사랑했던 마르게리타와 두 아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처럼 사랑했어도 결혼할 수 없고 숨어서 남으로 살아야 될 비극적인 운명성 속에 아이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동정녀처럼 살아야할 마르게리타와 두 아이들이 아들로 등장함을 헤아려볼 수 있다. 스웨덴 베리는 죽은 아이는 다 천사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누구나 천사의 심성을 가지고 있고 천사는 신의 심성을 담고 있다. 어릴적 어린 아이의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재미 없어라, 맥빠진 모습을 하고 있는 날개를 달고 있는 푸토는 오늘날에 박물관의 티서츠나, 마그컵, 마우수패드를 아름답게 장식하는데 그려진다. 이 그림에서는 관람자의 시선을 뻬앗지 않은 자리에 그려져서 감상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는 않는다. 화면을 삼각구도로 만드는, 양쪽으로 갈라진 커튼 사이에 애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정돈되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모의 발 아래의 구름은 연기가 나오는 무대처럼 부풀어져서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 들인다. 그림이 가장자리에 불안하게 서 있는 시스투스 성인은 손으로 그림 밖의 관람객을 가르킨다. 그는 겸손히 삼중관을 벗고 있다. 이 그림은 처음에 피아첸차에 있는 성 시스투스 수도원에 걸려 있었다. 이후에 작센의 아우구스투스 3세에 기증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 그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패전국으로 피폐해진 독일에서 모스코바로 옮겼다. 10년 후에는 드레스덴으로 다시 옮겼다. 이제 라파엘이 그린 여인상을 보자. 그는 인체를 그리는데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감각을 통하여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었다. 조화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파엘의 타고난 감각으로 만들어 내었다. 라파엘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서 우아하고, 고상하고,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여인상을 그렸다. 이러한 분위가가 반영된 것이 라파엘의 성모상이고, 또 라파엘의 성모상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르네상스는 동정녀를 천국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었다. 일찍이 여기 지상에서 루카 델라 로비아는 또다시 하늘의 길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그 길이 라파엘로의 성모가 택한 길이다. 구름 뒤에 떠 있는 시스티나의 성모는 단테가 칭송했던 언사처럼 '자비와 수줍음, 온정과 배려로 충만하다." "동정녀-어머니요, 당신 아들의 딸이요. 어떤 피조물보다 고상하고 겸손한, 오직 그대만이 그것을 지은이가 부여한 인간의 천성을 그토록 고귀하게 했다오. 그대는 남쪽에서 애덕의 불꽃이요, 저 아래에 연옥에서 진정한 열망의 샘이오." 천국의 여왕인 시스티나의 성모는 그리스 여신처럼 눈부시다. 그녀는 <오레스테스> 삼부작의 에필로그에서 나타날 듯하고, "제우스의 친구인 영원한 처녀"라는 아테나의 말을 입에 올릴 듯도 하다. 한편 이 성모상은 라파엘로의 연인 마르게리타를 묘사했는 지 모른다. 사랑했지만 표면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던 연인, 라포르나리아, 제빵사의 딸 말이다. 가려주고 숨겨주던 그 살을 태우면 어쩌면 이 여인이 나올지 모르겠다. 파우스트 이야기는 곧 괴테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내부의 악마와 사람 사이, 육욕과 정신 사이에 갇힌 인간의 드라마이다. 뿐만 아니라 괴테의 눈을 따라 시스티나의 성모를 응시하면서 우리는 '영광의 성모'가 마르게리타라는 죄인을 발로 딛고, 무릎을 꿇고서 환희에 떠는 파우스트 박사는 천사의 고지를 들으면서 승천하는 모습을 본다. 즉 "악한은 구원받았다. 우리는 정신세계의 귀중한 일원인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이 사람의 죄를 벗겨준다. 만약 하늘에서 사랑의 신이 이런 투쟁에 가담한다면, 천상의 합창이 환영의 찬가로 그를 맞으리라." 수수께끼는 풀렸고, 사랑에 끌린 영혼은 빛 속에서 환영받는다. 이 모든 일은 상징일 뿐 불완전한 것이 여기에서 성취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 여기에서 실현된다.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하늘나라로 끌어올린다. 성모와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은 그리스도교 미술 초기 수 백년 동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431년에 교황이 칙령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로 정하고 난 뒤부터 서서히 그려졌다. 중세에 이르러 마리아 숭배 열기가 뜨거워지자 성모자상을 그린 종교화가 많이 나왔다. 라파엘의 그림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와 미텔란젤로의 양식을 자기화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색조를 더 강화하고, 입체적인 양감을 더하고, 구도는 우아한 삼각형으로 했다. 삼각 구도는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양식을 본 땄지만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순전히 라파엘이 찾아낸 양식이다. 1506년의 말에는 레오나르드 다 빈치외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나면서, 피렌체 사람들은 라파엘에게 그림을 준문했다. 라파엘이 그린 우아하고 격조 높은 그림은 젊은 화가들이 모방했다. 이후로 라파엘의 성모상은 종교화의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졌다. 후대의 화가들이 수없이 모방하여 그렸고, 현대도 모방화가 널리 팔리고 있다. 괴테는 시스티나의 성모를 형언하기 시로 노래했다. 여성들의 여왕인 어머니의 으뜸가는 이미지. 그의 마술의 붓이 그녀에게 생명을 주었다. 그녀 앞에서 전율하는 사내는 체면도 잃고 무릎을 꿇는다. 말없이 넋을 잃은 여인은 황홀경 속에 있네." 라파엘로 산치오는 서른 일곱의 나이,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는 생의 기로에서 생의 복판에서 마음을 채워 준 여인, 마르게리타와의 소중한 인연을 화폭에 담았는지 모른다. 라파엘로에게 자신이 그린 성녀는 마르게리타인지 모른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 연민의 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 제빵집 딸이 었던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쩜 그에게서 성모 마리아는 곧, 마르게리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이제 마르게리타는 라파엘로 산치오 라는 이름, 시스티나의 성모라는 그림 속에서 가장 온유하고 순결한 여인으로 되살아나고 미술사에 시스티나의 성모라는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드리우고 신성의 편에서 영원히 되살아나고 있다. 아, 누가 그림 앞에서 우리 눈앞의 신성한 경이와 그 것을 보고 있는 우리 눈의 놀람을 환하게 엮었는가? 시스타나의 성모는 우리의 마음 속에 성스러운 반갯불을 쳤으며 하늘의 별빛처럼 거역할 수 없는 외경과 성스러움으로 다가서고 있다.
'20.11.8 씨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