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한산대첩. “왜군 한 놈도 살리지 맙시다”

사실 일본 내 수많은 장수와 무사들은 조선침략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 그만큼 태합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려우면서도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구키는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보이며 부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여기 태합 전하께 보낼 보고서가 있소. 내가 직접 쓴 이 보고서를 여러 개 옮겨 적어 배마다 하나씩 줄 것이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이오. 내가 직접 태합 전하에게 조선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이순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를 전달할 것이오. 그러나 만약 내가 죽는다면 여러분 중 누구라도 반드시 살아 돌아가 이 보고서를 전하시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보고서를 전달할 수 있다면 치욕스러운 이번 참패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오.”
구키의 결연한 의지에 왜군 장수 모두는 고개를 숙이며 복종을 다짐했다. 어떡하든 살아 돌아가는 것, 그것이 왜군이 일방적으로 조선 수군에 당하면서도 버티는 이유였다.
조선 수군은 오후 밀물 때가 되자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왜군 수군은 여전히 포구에 웅크린 채 방어에 급급했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졌다. 오전에 간신히 버텼던 대형 층루선들은 끝내 하나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머지 대형·중형·소형 선박들도 일방적으로 부서지고 불에 탔다. 온전한 형체를 갖춘, 성한 군선은 드물었다.
왜군들도 어느 시점부터는 배에서 빠져나와 뭍으로 올라갔다. 이들은 간간이 조총 등을 쏘며 저항할 뿐 싸우는 시늉만 했다. 포구를 등지고 방어전을 편 왜군의 세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급격하게 약해졌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전멸도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은 더 이상 조선 수군 편이 아니었다.
썰물 때가 되자 조선 수군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이 과정에서 조선 연합함대 장수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왜군들 상당수가 뭍에서 방어전을 펴는 만큼 상륙해서 한 놈도 살리지 말고 모조리 목을 벱시다.”
“썰물에서 좁은 포구로 판옥선이 다가갔다간 상륙하기도 쉽지 않소. 왜군들이 조총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할 경우 아군의 피해도 엄청날 것이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인데, 그렇게 무모한 싸움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소?”
상륙을 주장하는 장수는 원균을 중심으로 한 경상우수영 소속의 일부 장수였다. 반면 무모하게 상륙해서 아군도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계속 적들을 가둬놓고 공격하자는 주장이 대세였다. 이들 대부분은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장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