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 익히 알려져 있듯이, 발해는 현재의 러시아 연해주 및 중국 흑룡강성과 길림성, 북한 북부지방에 걸치는 광범위한 지역에 존속했던 국가이다. 때문에 이러한 발해의 유적은 현대의 국가 개념에 의하여 분리된 중국, 러시아, 북한 이 세 나라의 역사관과 민족 정책, 또는 당면한 정치 과제에 따라 개별적으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저마다 고유의 논점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에 이르러 활성화되기 시작한 발해사 연구는 수십 년 전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하긴 했지만, 여전히 고고학적 자료의 축적이 아쉬운 상황이다. 발해 역사 및 영토의 지리적 특성상 중요 고분의 대부분은 중국 동북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주도에 의하여 다수의 발해 매장유적이 발굴 조사되고 있어 앞으로 자료 증대를 기대할만 하다. 러시아에도 알려진 발해고분군이 몇 군데 있는데 특히 연해주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다만 기후적 조건과 지리적 환경이 열악하여 확인된 유적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자료의 축적이 상당히 더딘 편이다. 북한은 특수한 정치 체제로 인하여 세 국가 중 자료의 외부 공개 및 제공에 있어 가장 폐쇄적이며, 그나마 공개된 자료에 대한 분석과 검증도 쉽지 않아 정확한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북한 학자의 발해고분 논문에 근거하여 나름의 검증을 시도하고자 한다.
북한에 있는 발해고분군(으로 추정되는) 유적 중 평리 고분군, 궁심 고분군, 부거리 고분군이 규모가 가장 크다. 평리 고분군은 함경남도 북청군 평리 벌판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 구역이 사방 1km 정도 되며 고분의 수는 600여기에 달한다. 그 중에는 고구려고분도 섞여 있는데 발해고분으로 인정되는 고분은 주로 고분 구역의 서북쪽에 분포되어 있다.궁심 고분군은 함경북도 회령군 궁심구역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황제총'이라는 산봉우리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데 고분의 수는 대략 300여기 정도이다. 부거 고분군은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 소재지에 있다. 부거 고분군의 고분 수는 약 500기에 달하지만, 그 중 발굴·조사된 고분은 50여기뿐이다. 이들 고분군 외에도 다른 규모가 작은 발해고분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대부분 함경북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사 및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 보고된 북한논문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발해고분군이라 주장하는 이들 대형 고분군들에 대한 정보는 매우 단편적이며 허술하게 기재되어 있다. 유적의 도면이나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유구나 부장품의 사진과 도면도 상당히 누락되어 있다. 때문에 유적의 성격이나 편년을 규정짓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유물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의 발해고분군에 대한 논문은 대부분 부거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거리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고분군에 대한 보고서가 2011년 동북아역사재단의 노력으로 다시 재출판 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2008 ~ 2010년 사이에 조사된 부거리 일대의 발해유적 발굴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부거리 일대에 분포한 고분군은 다래골 고분군, 연차골 고분군, 합전 고분군, 옥생동 고분군, 토성 고분군, 독동 고분군이 있으며, 이들은 옥생동 고분군을 제외하고 거의 다 서로 인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크고 작은 고분군에서 100여기가 넘는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다. 그 결과물로 발표된 ‘부거리 일대의 발해유적’이라는 보고서는 연변대학교 발해사연구소와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협력하여 제작한 것이다. 보고서의 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북한 및 연변대학교의 학자들은 발굴한 유적이 발해시대의 유적이라고 판단하였다.또한 보고서에 언급된 내용에 따르면, 부거리 일대에는 고구려유적도 많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시기적으로 나중에 조성된 발해유적이 고구려의 전통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부거리 일대에서 발굴된 고분군이 발해유적이라면 다른 대표적인 발해고분과 유사한 점이 많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부거리 고분군의 묘제는 구조상 대체로 2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규모가 큰 석실봉토분과 그보다 좀 더 작은 석곽(또는 석관)봉토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거리 고분군의 도면을 살펴보면 남포시 온천군 용호리(舊地名: 평안남도 강서군 보림리)에 위치한 고구려고분군과 상당히 비슷하다. 때문에 부거리 일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면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부거리 일대에서 발굴된 매장유적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곳으로 연차골 고분군을 들 수 있는데, 이 고분군은 부거리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3Km 떨어진 연차골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은 골짜기와 동쪽 능선에 분포되어 있으며, 골짜기에 있는 16기의 무덤들을 제 1지구로 구획하고 동쪽 능선의 무덤 10여기를 제 2지구로 구획한다. 이러한 연차골 고분군의 성격을 드러내는 유물 중 가장 고구려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마구(馬具)류이다. 제 1지구 1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앞자리 중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교적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눈여겨 봐야할 유물은 말의 재갈이다. 중국의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 집안시 고구려 만보정 78호 분에서 유사한 형태의 재갈이 확인되는데, 학자들은 그 재갈의 연대를 5세기로 추정한다. 또한 연차골 1호분과 연차골 15호분에서 같은 형태의 고들개 교차 금구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들 역시 중국 길림성 집안시 칠성산 1196호분에서 나온 고들개 교차 금구와 흡사하다. 이 같은 형태의 고들개 교차 금구는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太王鄕) 우산촌에 있는 우산하(禹山下) 1041호분에서도 확인된다. 칠성산 1196호분의 연대는 3 ~ 5세기 초반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우산하 1041호분은 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유물은 비단 고구려고분만이 아닌, 신라시대 의 유명한 고분인 금령총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금령총의 연대 또한 일반적으로 5세기로 편년된다. 그 외에 연차골 고분군에서 확인된 마구로 행엽을 꼽을 수 있는데, 행엽 역시 고구려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제 1지구 1호분과 15호분에서 출토된 이 같은 형태의 행엽은 보통 4 ~ 6세기로 편년된다. 북한 평성시 지경동 고구려고분군 1호 무덤에서 출토된 비슷한 행엽이 6세기의 것으로 인정되며, 중국 길림성 돈화시에 위치한 집사공로묘 (集錫公路墓) 109호분에서 확인된 비슷한 행엽은 4 ~ 5세기로 편년된다. 또한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 시대 황남리 109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사한 행엽은 4 ~ 5세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밖에도 연차골 고분군 제 1지구 1호분, 2호분, 15호분에서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비슷한 말등자가 확인되는데, 이러한 말등자는 일반적으로 4 - 6세기의 것으로 편년된다. 마구류 외의 유물을 살펴보면, 다래골 고분군의 3호분과 9호분, 연차골 고분군의 9호분, 11호분, 12호분, 15호분에서 출토된 귀가 달린 단지, 그릇 뚜껑들이 고구려 토기와 비슷하다. 또한 연차골 고분군 15호분에서는 고구려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쇠화살촉이 확인된다. 이처럼 연차골 고분군의 부장품은 다수의 고구려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부장품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특히 마구류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많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발해고분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 또한 묘제의 형태에 있어서도 다른 발해고분과 비교하였을 때 유사점 보다는 차이점이 더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거리 일대의 연차골 고분군은 발해유적이라기 보다는 고구려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고분의 구조 및 부장품의 성격으로 미루어 판단할 때 연차골 고분군의 조성 연대는 4 – 6세기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더욱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