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 기사전송 2010-04-20 08:17
TV로 야구를 보는 건 야구장에서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참 편안한 자세로 야구 자체를 즐길 수 있죠.
또 한가지 있습니다. 선수들의 변화를 눈여겨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야구장에선 멀찍이 떨어져 있느라 알기 힘들었던 것을 숨구멍까지 쫓는 카메라 워크 덕에 조금씩 눈치챌 수 있게 되죠.
며칠 전 TV로 야구를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 선수의 변화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SK 간판 타자인 박재홍 입니다. 당초 포토로그는 제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지만 이번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제 사진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듯 해서요.
우선 첫번째 사진을 보시죠.
박재홍이 지난 8일 문학 KIA전 때 타격하는 모습입니다. 앙 다문 입과 특유의 파워가 넘치는 스윙이 느껴지시죠.
다음은 지난 17일 문학 삼성전 때의 박재홍입니다.
마치 같은 날 찍은 사진처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혹 이 두가지 사진에서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을 자세히 보시면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망이 잡는 그립 위치가 이전보다 위로 올라와 있습니다. ‘천하의’ 박재홍이 방망이를 짧게 틀어쥐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올리진 않았다구요? 저 몇 cm는 박재홍이 야구 인생 28년동안 지켜온 자존심의 길이 입니다. 기술적으로도 큰 차이를 내는 차이이기도 합니다.
박재홍은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선수 입니다. 그럴만도 하죠. 치고 달리고 던지는 데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는 선수이니까요. 신인 시절 30(홈런)-30(도루)를 해냈죠. 역사상 그처럼 멀리 치고 빨리 달린 선수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파워 배팅은 그의 자존심입니다. 중학교 시절 혼자 철공소를 찾아가 1kg이 넘는 철제 링을 주문해 타격 훈련을 했다죠. 그 링은 지금도 박재홍의 타격에 일등 도우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박재홍은 그렇게 스윙의 힘을 키웠고 언제든 한방을 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상대에게 심어주었습니다.
파워 히터의 자존심은 바로 길게 늘어 쥔 방망이 입니다. 홈런으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타이론 우즈는 아예 왼손바닥으로 배트 밑둥을 감아 쥐고 타격을 했었죠.
역대 홈런왕 중 방망이를 짧게 쥔 선수는 박경완(SK)이 유일할 겁니다.
그런 박재홍이 방망이를 짧게 쥐기로 한 것입니다. 박재홍도 우리 나이로 서른 여덟살이 됐습니다. 20대 한창나이때와는 뭔가 달라져도 달라져 있겠죠. 박재홍의 변신은 더 나은 오늘을 위해 어제의 영광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박재홍 스스로 내린 것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도 박재홍에게 방망이를 짧게 쥐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SK는 매일 같이 특타를 합니다. 처음엔 그들을 비웃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저러다 일찍 널부러질 거라고들 했죠. 또 일정 기술이 오른 프로 선수들에게 지나친 훈련은 독이 된다고도 손가락질 했습니다.
실제 그런 느낌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야구가 잘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박재홍의 변신을 지켜보며 SK 지옥 훈련의 또 다른 단면을 보게 됐습니다. 수도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것 처럼 몸이 부서질 것 같은 훈련 속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문득 박재홍이 한 말이 생각 났습니다. 2008년 여름, SK는 비로 3연전이 취소되자 매일 1,000개의 타격 훈련을 했습니다. 캠프도 아닌 시즌 한 가운데에서 말이죠.
그때 물었습니다. “1,000번이나 치면 확실히 도움이 되나요.” 박재홍은 엷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뭔가 나아지는 건 솔직히 모르겠어요. 근데 방망이를 쉼없이 돌리면서 뭔가 생각을 하게 돼요. 그때 내가 이렇게 쳤으면 되지 않았을까. 다음엔 이렇게 쳐보는 건 어떨까 하구요. 그러면서 뭔가 내것이 생기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SK 특타 광경을 지켜보면 김성근 감독이 별반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다 아주 기본적인 지적만 하곤 합니다. 그러다 한마디를 던집니다. “한시간 쳤으니까 됐다고 만족하지 말고 그 한시간 동안 뭘 느꼈는지 생각하라.” 간단하지만 참 무서운 말이죠.
어찌됐건 박재홍은 변신 이후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침묵하던 홈런포도 터졌고 약점이던 몸쪽 공을 밀어쳐 우중간을 가르는 시원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시즌이 끝나면 박재홍은 더 큰 자존심을 찾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기 : 방망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한번 기사로 소개한 적도 있는 에피소드인데요. 혹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또 한번 소개해 봅니다.
지난 2007년 어느날, SK 박재상이 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 그의 아버지가 박재상을 부르더니 묻습니다. “너 (김)재현이 형 보다 잘 치냐”
놀란 박재상은 “무슨 소리세요. 재현이형은 우리나라 최고 타자인데요. 그 배트 스피드를 어떻게 따라가요.”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아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합니다. “그럼 네가 뭔데 방망이를 그렇게 길게 잡고 치냐. 재현이형 짧게 잡고 치는 거 안 보이냐”
박재상은 그 이후 그립 위치가 조금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이제 SK에 없어선 안될 타자로 성장했습니다.
첫댓글 오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확성은 확실히 짧게 잡고 치는게 좋은듯 하다고 생각하고... 홈런까지는 아니지만 장타도 얼마든지 만들수있다고....
그래도 홈런 한방 칠라믄 길게 잡고 근력키우는게 낫다 ㅋ
몸에 맞는(발란스) 배트를 짧게 잡고 치는게 좋지 않을까?
우선 게임이나 나오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