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4. 후반기부흥성회 4일
본문 ▶ 사무엘하 6:11
제목 ▶ 다시 찾은 법궤
오늘은 부흥회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함께 기도하고 축도하고 함께 마치겠습니다.
이번 부흥회가 ‘구름기둥 불기둥’입니다.
민수기 14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낮과 밤으로 다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는 변하여도 그분은 변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거친 광야를 그들이 걸어왔지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런 임재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첫날 무엇을 말했지요?
하나님의 생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자 다시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성령의 바람이 항상 부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날은 무엇을 말했지요?
여리고성과 아이성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날 다윗의 기름부음에 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의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오늘은 결론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법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허락도 없이 가지고 간 겁니다.
이 법궤를 가지고 오자 땅이 진동을 합니다.
블레셋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신을 데리고 왔는가 보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게 됩니다.
엘리제사장은 그 소식을 듣고 의자에 떨어져 죽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블레셋은 법궤를 다곤 신전에 갔다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다곤 신상을 다 부숴놓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법궤를 길르앗 여아림의 집에 옮겨 놓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20년 동안 그 집에 있게 됩니다.
사울왕은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법궤를 방치합니다.
후에 다윗이 왕이 되어서 다윗성에 그 법궤를 가지고 오기원했습니다.
처음에 법궤를 잘못 이동하여 새수레에 싣고 오다고 소가 오벧에돔의 집 마당 앞에서 뛰다가 웃사가 그것을 붙잡다 하나님의 침을 당하고 죽고 맙니다.
그래서 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두게 됩니다.
왜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가지고 왔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셨지만, 왜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에게는 법궤를 이용할 마음만 있지 섬길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징인 법궤.
법궤 안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을 보십니까? 속모양을 보십니까?
하나님은 속을 보십니다.
어제 말했잖아요? 어느 분이 72만원짜리 넥타이를 메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메고 있으니 비싸보이는데...
제가 그 넥타이를 멘다면 7만 2천원처럼 보일 것같은 겁니다.
제가 금도금이 된 건강목걸이 하고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거 금이 아니죠?’라는 겁니다.
저는 금을 하고 다닐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나 봐요.
우리들은 금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매번 말할 겁니다.
‘이거 진짜 금이야.’
말을 해도 안믿어 주는 인생이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보십니다.
사람은 겉사람에 속습니다.
어느 분이 저에게 돈을 좀 빌려달라고 전화가 온 겁니다.
‘목사님, 미안한데 돈을 쪼~금~만 빌려 주십시오.’라고 하길래
저는 50만원~ 100만원 정도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마 정도에요?’라고 물었지요.
‘1500만원 정도입니다.’
제가 깜짝 놀랐어요.
쪼금이 아니잖아요.
엄청 큰 돈이잖아요.
그분이 제가 돈이 많아 보였는지 그런 큰 금액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는 100만원 이하인줄 알았습니다. 너무 금액이 크네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아니, 그 정도도 없으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제가 얼마나 부자처럼 보였는지 그 정도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네, 그 정도가 없네요.’라고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가지고 나갑니다.
그 법궤만 있으면 승리할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만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가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법궤가 있어도 전쟁에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법궤 안에 3가지가 있습니다.
이 3가지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1.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가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여러분, 은혜를 놔버리면 큰일입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재능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잖아요.
그걸 너무 잘 알잖아요.
이런 만나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담아 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앉히신 은혜,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게 붙잡아 주신 은혜,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놓지 마세요.
여러분의 눈가에 상처의 눈물, 아픔의 눈물이 사라지더라도 은혜의 눈물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도 없고, 은혜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2. 아론의 싹난 지팡이
당시 모세의 지도력에 이스라엘이 의문을 가지고 반기를 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를 놓았을 때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해요? ‘순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오래 목회하면서 볼 때 가장 열매가 없는 성도는 ‘지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성도’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제가 부흥회에 오라고 말씀했잖아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형편이 안되고, 몸이 아프거나, 믿음이 안되서 못오는 분이 있어요.
두 번째 경우는 환경도 되고 형편도 됩니다. 그런데도 ‘꼭 가야해? 아니 꼭 부흥회 참석해야 천국가?’라고 말하며 안오는 분이 있어요.
이것은 적극적 불순종입니다.
자기 멋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떤 지시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하자고 하면 말씀을 봅니다.
설교 시간에 눈을 떠야 합니까? 감아야 합니까?
설교시간에는 내내 눈을 감고 있다가 기도하자고 하면 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자기 멋대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열매가 없어요.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소용없어요.
홉니와 비느하스가 자기 멋대로 법궤를 가지고 나갑니다.
자기 멋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법궤만 가지고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할 꺼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술족이라고 있더라고요.
이게 혼자 술을 마시는 족이라는 뜻이랍니다.
여러분, 신앙에서 혼족으로 살면 안되요.
혼자 신앙생활하면 안되요.
공동체 신앙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덕의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사 음식을 놓고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제사 음식을 먹어서 초신자가 시험을 든다면 안먹겠다는 겁니다.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신앙인 겁니다.
두 번째의 족은 ‘복수족’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도와 달라고 했을때 안 도와주면 마음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 안 왔다 이거지? 네가 목장장이 되면 내가 도와주나 봐라.’
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수족입니다.
제가 운전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보복운전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운전하다 큰사고가 납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워져야 하는데 복수의 마음이 팽배하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개인의 신앙은 괜찮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어요.
그런데 이 사람을 공동체에 딱 갔다 놓으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어요.
순종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엄마가 뭔데?’라고 말을 합니다.
뭐기는 ‘엄마’잖아 너를 낳은 사람이야.
하나님이 엄마에게 지도력을 주시고, 감독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엄마가 뭔데라니...
하나님께서 대신 엄마를 세우셔서 지도력을 주시고 감독하게 하신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대사를 각 나라마다 보냅니다.
대사관이 있는 땅은 보낸 나라의 땅이 되는 겁니다.
중국 땅에 한국대사관이 있어요. 대사관 그 땅은 한국국토인 겁니다.
왜요? 한국에서 대리자로 보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님을 아들, 딸에게 대리자로 보낸 겁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대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적하는 것입니다.
3. 십계명 돌판
말씀을 벗어나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벗어나서 역사하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말씀 밖에서 요구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영권은 바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내신 뒤에 ‘이런 류는 기도외에는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말씀 밖에서 기대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니 식언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말씀의 법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법을 벗어나서 역사해달라고 바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지만 없었다면
혹시 우리는 말씀을 벗어난 적은 없나?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공부할 마음이 있으면 좋겠지요.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부모가 바라는 마음은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순종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말씀대로 다 못삽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아내려는 의지가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위에 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영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한 달, 두 달... 일 년...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