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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산[遠美山] 둘레길
정의
경기도 부천시 원미산 일원에 걸쳐 있는 산길.
건립경위
원미산 둘레길은 부천시에서 기존에 있는 등산로를 최대한 활용해서 시민들에게 자연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고 건강과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만들기 위해 조성하였다.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등산로길에 시를 걸어놓거나 전망대를 만들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역할도 병행한다. 부천시 학생들에게 자연학습장으로 인기가 높은 부천시청소년수련관 근처에선 물웅덩이에 사는 생물들을 관찰하거나 망골 칠일약수터에서 발원하는 베르네천을 이해하게 된다.
변천
2010년 5월 25일 부천시에서 주관하여 기존의 원미산 등산로를 활용한 올레길과 둘레길의 조성했다.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후문인 소사주민센터 앞에서 시작해 원미산 능선을 따라 오르는 4㎞의 올레길이 생겨났고, 원미산 산자락을 돌아 도는 3㎞의 둘레길에는 ‘이야기가 있는 숲길’을 주제로 걷고 싶은 트레킹코스와 자연생태 학습의 두 가지 주제로 만들어졌다.
현황
원미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들꽃세상으로 이어진다. 이 원미산 둘레길엔 숲의 기능과 혜택을 학습하는 ‘산림생태 해설 길’, 우리 들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배움의 숲’, 한샘약수터에서 버려진 물을 이용해 작은 못을 만들고 수변식물을 식재한 ‘옹달샘 연못’ 등 4개소의 자연학습장이 마련됐다.
참고문헌
(http://blog.naver.com/qoaltnr1942/20112754148)
원미산삼림욕장[遠美山森林浴場]
정의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의 원미산에 있는 삼림욕장.
개설
원미산은 높이 167m로 멀미산·멀뫼·장대산·둔대산·벼락산·포대산 등으로도 불리는 부천시의 주산이다. 아까시나무 군집 29개, 상수리나무 군집 7개, 리기다소나무 군집 6개, 잣나무 군집 3개 등 총 45개의 식물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아카시아나무, 상수리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가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다. 나무가 울창한 산속을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지는데, 그 이유는 피톤치드라는 방향성 물질이 나무에서 발산되어 인체에 건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톤치드 효과는 1930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옛 레닌그라드대학교]의 토킨 박사가 식물이 상처를 입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위의 미생물을 죽이는 물질을 만드는 현상을 보고 발견하였다. 피톤은 ‘식물’, 치드는 ‘죽인다’는 뜻이다. 피톤치드는 미생물에는 유독하지만 인체에는 유익하다.
건립경위
원미산삼림욕장은 부천시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산에 삼림욕장을 조성하여 산불을 방지하고, 맑고 신선한 숲의 향기를 호흡하면서 도시인이 일상 생활의 피로를 푸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991년 12월 개장하였다.
구성
원미산삼림욕장의 면적은 500,000㎡이다. 플라타너스나무, 산벚나무, 아까시나무 등 낙엽 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다. 원미산삼림욕장은 곳곳에 휴식 공간과 운동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원미산삼림욕장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어귀를 지나면 잘 정비된 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키가 작은 플라타너스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오른쪽은 조경석 사이사이에 많은 회양목과 자산홍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서 200m 정도를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원미산삼림욕장의 출발점이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체력 단련을 위한 철봉과 매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등의 운동 시설이 설치된 ‘힘 기르는 숲’을 만난다. 힘 기르는 숲에서 올려다 보면 ‘만남의 광장’이 보이고, 왼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산벚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이어 ‘명상의 숲’에 다다른다. 산수약수 터 칠일약수 방향으로 가면 상수리나무 숲과 원미산삼림욕장 마지막 코스인 ‘흥겨운 마당’이 나온다. 여기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아래로 내려가면 원미공원과 부천시립원미도서관이 나오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힘 기르는 숲’과 ‘팔각정’을 만난다. 총길이는 약 4㎞이고, 전체를 도는 데 2시간 정도가 걸린다.
현황
원미산삼림욕장을 찾아가려면 전철인 경우 지하철 1호선 소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온 뒤 마을 버스 16-2번이나 시내 버스 95번을 타고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내리면 된다. 원미산 삼림욕장 인근에 원미공원과 부천시립중앙도서관이 있다.
참고문헌
부천시청(http://www.bucheon.go.kr)
원미구청(http://wonmigu.bucheon.go.kr)
원미산이여 [遠美山-]
정의
김효길이 경기도 부천에 있는 원미산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내용
하염없는 별빛의 감로수 짜내는 멀뫼
원미산의 운치는 부천 만민의 삶의 가락
한없이 선연한 일출은 근면을 부르네
부유하게 새날을 일깨운 원미산이여
시민의 충효사상으로 현충탑 세워 놓고
천년 지고 만년 살며 자손만대 번영하리
눈썹 같은 어여쁜 산 내마음 가다듬어
복사골 심볼 안정된 부(富)로 괴이시기를
장대봉에 은하수 다리 놓아 무지갯길 서네
주렁주렁 열매 맺는 복사골 감싸 안고
태양빛은 화살같이 불덩이 쪼개 놓고
둔대산 바람은 한여름 불볕 태워가네
부평 김포 부천벌 한 눈에 굽어보는 산
남에 성주산 북에 춘의산 신령한 춘덕산
방아 찧던 백토현산도 원미산 따라 한길로 간다
오고가는 경인전차에 사랑 실어서
황혼의 원미산은 금빛 찬란히 노을지는
내고향 부천에 단아하기 비길 곳 어디냐
의의와 평가
원미산은 성주산, 도당산 등과 함께 부천을 감싸주고 있는 고향의 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오르내리는 산인 원미산은 시인에게 있어 그저 단순한 하나의 산이 아닌 또 다른 부천을 축소해 놓은 상징이다. 부천 여기저기에 시선을 뺏길 바에야 원미산 한 곳에 집중하고 있는 시인의 부천 사랑이 느껴진다. 눈썹 같이 어여쁜 앙증맞은 산, 부천벌을 한눈에 굽어보는 산, 성주산·춘의산·춘덕산·백토현산 등 동서남북의 산을 한길로 줄 세우는 산인 원미산은 주렁주렁 열매 맺는 복사골을 감싸 안을 줄 아는 포근함 잊지 않는 부천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운치는 부천 시민의 삶의 가락이다. 원미산이 없다면 부천 시민들은 삶의 가락을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 과장처럼 느껴져도 싫지가 않다. 천년지고 만년 살며 자손만대 번영하겠다는데 그 누가 싫다고 부정하겠는가. 원미산은 부천시민의 뿌리이다.
참고문헌
구자룡, 『구자룡의 문학으로 만나는 복사골 부천』(산과들, 2004)
「원미산 나의 애인[遠美山 吾 愛人]
정의
1997년 유경환이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원미산의 아름다움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구성
5연 15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사람들은 내 시를 읽고
역곡 원미산 약수터엘 찾아온다
그러나 가슴 깊은 유방 없으며
비단 바람도 없고
맑은물도 거짓이라 불평한다
그들 눈엔 골짝의 굴곡 안보이며
그들 뺨엔 숨소리 안 닿으리
겨울에도 눈부신 영혼들의 숨소리
나무 사이 숨어서 말하는
별도…
작은 웅덩이에 산가슴 묻고
새벽마다 발씻고 눕는 알몸의 숲
밤하늘 어루만지는 손에
은빛가루 묻어나는 걸
알지 못하고 손을 뒤집는다
의의와 평가
시인에게는 시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어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시인에게는 보일 수도 있고 대부부의 사람들에게는 똑바로 보이는 것이 시인에게는 비뚤어지게 보일 수도 있다. 시인에게는 나무도 영혼이 될 수 있고 별도 전등이 될 수 있으며 산도 사람처럼 애인이 될 수 있다. 「원미산 나의 애인」이라는 시의 제목은 마치 진짜 애인 이름 세자를 부르듯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독자들은 시인의 시에 감명 받아 부천시 역곡동의 원미산 약수터를 찾아오지만 시인이 읊조렸던 ‘가슴깊은 유방’이나 ‘비단 바람 맑은 물’을 찾지 못해 시인이 거짓말을 했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골짝의 굴곡이며 숨소리도, 나무사이 숨어서 말하는 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밤하늘 어루만지는 손에 은빛가루 묻어나는 걸 알지 못하는 손이 오늘도 펜을 굴려가며 사랑하는 시 한 편을 힘겹게 탄생시킨다. 그 힘겨움을 모르고 어떻게 그 특별한 눈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참고문헌
유경환, 『원미동 시집』(문학아카데미, 1997)
『부천문단』13(복사골문학회, 2000)
구자룡, 『구자룡의 문학으로 만나는 복사골 부천』(산과들, 2004)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천의 문학[文學]
정의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개설
부천 문학은 수주 변영로를 효시로 김영달, 장종태, 최은휴 등을 거치면서 싹트기 시작했고, 1970년대 이석인, 구자룡, 유영자, 이재인, 김정오, 김연식, 이병기가 그 뒤를 이으면서 발전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창립, 부천문우회와 복사골 문학회 창립, 문학동인 등이 발간되면서 부천 문학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변천
1. 부천 문학의 효시
부천 문학의 근원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부천은 인천·부평의 일부로 자연 마을이 몇 군데 있었을 뿐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899년 일본인들에 의해 경인철도가 부설되어 소사역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역 부근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부천 문학의 효시를 편의상 현대 문학의 출발 시기로 본다면 변영로(卞榮魯)[1897~1961]를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다. 부천시청의 호적을 보면 변영로의 아버지 변정상이 1915년 1월 부천군 오정면 고강리 313번지에 이주해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변정상의 셋째 아들 변영로[아명 변영복]는 1897년에 태어나 1958년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51-2번지[자하문로23길 3]로 분가하기까지 무려 61년이나 부천에 머물렀던 것으로 되어 있으니 문서상으로는 부천에 퍽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변영로의 호는 수주(樹州)이다. 수주는 고려시대 부천의 이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961년 타계한 후에 부천으로 돌아와 묻혔으니 비로소 부천 시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호탕한 기품을 지닌 민족 시인 변영로는 절망적인 암흑 속 조국을 위해 대쪽 같은 절개와 지조를 지켰던 의지의 시인이었다. 고강동 묘소와 부천중앙공원에 변영로의 정신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서울과 부천 경계인 고강동에도 변영로의 동상이 있다.
부천을 사랑하던 시인이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소향(素鄕) 이상로(李相魯)[1916~1973]이다. 이상로는 경기도 부천(富川) 소사읍 궁리에서 태어났다. 궁리는 196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궁동이 되었지만 이상로는 분명히 부천 출신의 문인이다. 이상로는 문단에 등단하기 전 언론계에 종사할 때부터 호를 소향이라 했다. ‘소사가 고향’이라는 뜻으로 변영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을 무척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2. 부천 문학의 발전 및 전개
1960년 드디어 부천에도 문인들이 이주를 해 왔다. 변영로, 이상로 등은 부천과 깊은 인연이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김영달, 장종태, 최은휴 등은 부천으로 이주를 해와 부천 문학이 싹트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천 문단에서 조병화 등과 함께 동인지 『소택지대』를 주도하고 시집 『여정』을 출간한 김영달이 소사읍 심곡리로 이사를 왔다. 1963년에는 장종태가 부천북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교가도 새로 짓고 동시도 발표했다. 1967년에는 소사읍 구지리에 살면서 언론계에 종사하던 최은휴가 다방에서 시화전을 개최했다. 최은휴가 연 시화전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다. 복숭아밭에서 복숭아를 가꾸며 농사만 짓던 시골에서 시화전이라는 문학 행사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최은휴는 문학 활동을 여기서 끝내지 않고 그 이듬해 시집 『맹탕헛탕』을 출간하고 출판 기념회까지 열었다. 그 전까지는 부천 사람들이 외지에 나가 문학 활동을 했다면 김영달, 장종태, 최은휴 등은 부천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부천도 문학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부천에서 문인들이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 있을 무렵, 인천에 살던 이석인, 서울에서 정한모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구자룡, 소명여자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수필을 쓰던 유영자, 이재인, 김정오 등이 부천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소래의 김연식, 유한공업고등학교의 이병기가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천의 문학 동인지
문화 도시 부천에서 발행되는 문학 동인지가 무려 10종이나 되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계간지 『시와 동화』도 이곳 부천에서 발행된다. 부천에서 발행된 또는 발행되고 있는 문학 동인지(잡지)를 간략히 표로 정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문학 속에 나타난 부천
시인들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로 쓴다. 대체로 시인들이 출간한 시집을 보면 그 시인이 태어난 곳이 어디쯤인지 짐작이 간다. 적어도 고향을 노래한 시가 한 두 편 정도는 나오기 때문이다. 부천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변영로의 시, 「고향」
1915년 잡지 『청춘』 14호에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한 수주 변영로는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평생 많은 시를 발표한다. 그 가운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시가 몇 편 있다.
“여러 해 만에 그립던 고향을/찾았더니 사람도 낯설고/마을 옛 모습 씻은 듯하구나(「고향」의 일부분).”
2. 이상로의 시, 「분이」
소향 이상로는 관념적인 현실 추구와 거기에 곁들인 동양적인 서정과 이상적 미학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상로의 고향 생각은 1964년 서울에서 예술인들을 모아 동인지인 『문장가』를 발간할 무렵에도 소사읍 궁리를 잊은 적이 없었다. 이상로는 고향 소사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길마봉 언저리에 시울 진 놀빛이 아주 산 너머로 스러지는 것을 보자/분이는 누구도 모르게 없어지고 말았다/당아래 고갯길에 산 그림자 가리도록 오늘도 긴 하루를 시름짓던/분이는/눈물은 덧없어라…… /갓 낳은 것 묻은 자리, 상수리 이슬 받는 뒤 산골에서 다시 허리끈을 졸라매었다/삼 년째 신었대야 서슬도 닳지 않은/별표 고무신만이 나란히 놓여있는/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이/삽사리 짖지 않는 밤/마을은 메밀꽃으로/ 환하기만 하였다(「분이」 전문).”
3. 구자룡의 『복사골 우리동네』
구자룡은 지옥 같은 서울 생활을 등지고 1970년대 초 부천으로 삶의 둥지를 틀었다. 직장도 부천으로 옮겼다. 도시의 삭막함만 보다가 고향 같은 전원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구자룡도 역시 부천을 시로 썼다. 그동안 발행한 시집 20여 권을 펼쳐 보면, 구석구석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을 부천에서 치유하려는 의지가 역력함을 알 수 있다. 1985년에 출간한 연작 시집 『복사골 우리동네』는 시로 쓴 부천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오랜 시간 동안 부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하여 엮은 부천을 사랑하는 대서사 시집이다. “오늘을 사는/부천의 가슴은 후련합니다/소사인의 가슴은 화평합니다/어제는 눈이 내렸고/오늘은 모든 걸 다 잊고/복사골, 우리 동네/산 따라 길 찾아/괴나리봇짐 얼러 메어 봅니다/옛것 메이고 이지러졌어도/더듬더듬 찾아보렵니다/동국여지승람엔/ 우리 동네 이름도 많습니다/마한시대 우휴모탁국/고구려 때 주부토/신라시대 장제/ 고려시대 수주/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일제시대 부천군 계남면/해방직후 소사/지금은 부천시/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복사골 우리동네』전문).”
4.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 거둔 문학적 성과는 소시민들의 은밀한 욕구와 충동의 현장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점에 있다. 실제로 작품 배경이 된 부천시 원미동 64번지[부천로136번길 61-9] 23통과 작가가 살던 11통의 골목은 바로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원미동 시인』에 나오는 청년이 살던 2층 연립 주택도 ‘행복머리방’ 건너편에 있다. 그 당시 작가 양귀자가 살던 집은 ‘행복머리방’ 2층이고 그 골목에 ‘여주쌀집’이 있다. 23통 골목에 있는 ‘소망슈퍼’에서부터 11통 골목까지 불과 100m가 되지 않는 길이와 폭이 채 4m도 못 되는 공간에서 작가는 원미동을 그렸던 것이다.
“원미동 23통의 모양새를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흡사 장 터 객주집의 국자와 같은 꼴이었다. 국자의 손잡이 부분에 원미지물포, 행복사진관, 써니전자, 강남부동산, 우리정육점, 서울미용실 등이 한켠으로 촘촘히 박혀 있고 맞은 편에는 강노인이 푸성귀를 일궈먹는 밭과 무궁화연립 그리고 김반장의 형제슈퍼가 자리 잡고 있었다(『원미동 사람들』 일부분).”
원미동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이다. 옛날 소사읍 시절만 하더라도 조종리라고 불렀다. 조종리는 우리말로 ‘해 뜨는 언덕’인 ‘조마루’를 일본인들이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해방 후 기준으로 75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1973년 시로 승격하면서 원미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언미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후 인구가 늘어 1985년 원미1동과 2동으로 나누어졌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원미동이 무대이며 지금 부천시 구 원미구청 옆 동네이다.
부천의 문인들
1. 부천에서 살다간 문인들
부천 문학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천에 살면서 부천을 노래하다 떠난 이들이다. 목일신, 황명, 정득복, 김국태, 김정오, 김연식, 박건웅, 안정효, 이석인, 이재인, 양귀자, 펄 벅 등이 있다.
2. 부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
부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로는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원들인 이추림, 민경남, 김가배, 김기수, 김철기, 진현주, 김영철, 이서림, 김재숙, 차영숙, 황연옥, 홍옥희, 정명자, 조남숙, 박정자, 박영봉, 서원, 김미숙, 최은휴, 소진섭, 이정홍, 한돈희, 임현기, 김광묵 등이 있다. 복사골 문학회 회원들로는 강영백, 강예숙, 구자룡, 구정혜, 금미자, 김경애, 김도형, 김영달, 김성자, 김승동, 김원준, 김인수, 김정숙, 김효길, 동미경, 박수호, 박용우, 송영심, 신옥란, 송하용, 안금자, 염순자, 오영석, 유경환, 유부식, 유영자, 이건선, 이창원, 이천명, 이훈희, 장재룡, 장종태, 정창배, 조정숙, 최종만, 구효서, 김윤희, 신말수, 유덕희, 이명인, 이수태, 이현숙, 임남택, 장현호, 강정규, 최동심, 문제술, 고정임, 정임숙, 권영미, 김종성, 문영숙, 문현경, 박성순, 사광주, 심정자, 안명숙, 안효인, 오미옥, 유정미, 이선희, 이영희, 최정애, 황정순, 이우숙, 안성원, 이은재, 김봉군, 이병기, 최운선, 민충화 등이 있다. 부천여류문인회 회원들로는 진현주, 박정자, 김가배, 김재숙, 김철기, 송영심, 이서림, 조남숙, 차영숙, 황영옥, 고우련, 김혜자, 박미랑, 유미애, 이은순, 이서언, 정명자, 김미소 등이 있다. 부천시민문학회 회원들로는: 박일환, 김형식, 이은래 등이 있으며, 글벗문학회 회원들로는 김경옥, 이옥래, 김정숙, 이강언, 이현숙, 박자원, 김종숙, 정보숙, 허현아, 김은희, 김현주 등이 있다. 글방아간문학회 회원들로는 김형은, 강명옥, 임은경 등이 있으며, 부천노동자문학회 회원들로는 안기현, 문동만, 윤경상 등이 있다. 이외에 글사랑문학회 회원들로 김혜자, 이은순, 유미애, 박진숙, 고선희, 이화자 등이 잇으며, 부천좋은동화연구회 회원들인 임정자, 박귀영, 이진우, 송은주, 유현선, 윤종희, 정혜윤, 김순남, 이향림, 윤은경, 허난영 등의 많은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부천 문화의 재발견』(부천문화원, 1996)
구자룡, 『구자룡의 문학으로 만나는 복사골 부천』(산과들, 1997)
소진섭, 『부천의 민속과 문화』(부천문화원, 2000)
『부천시사』(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
『내 친구 부천』(부천시, 2007)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6-04-06 작성자 명사십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