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문: 광덕 큰스님 영상법문 , 사회: 혜안, 인례: 현수, 헌향: 자명행 , 헌다: 연오행, 명조, 발원문: 송파 10구 명등 연서, 촬영 및 방송: 방송담당 대원3구, 안내팀, 음악: 마하보디 합창단, 지휘자, 반주자, 취재: 미디어팀 , 법회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보광당 좌석 배치: 청정팀, 법회 후 뒷정리: 송파 13, 16구, 노원구 대원 4구 법회), 법회보 제작 : 법회보 제작팀,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데스크 안내: 법당 안내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교육팀, 떡 및 생수 보시 : 대원 3, 4, 보현 1, 3구법회.
보현행자의 서원 : 예경분
봄소식 전하는 꽃들은 정말 곱게도 피었습니다. 인연 따라왔다가 다시 인연이 다하면 그 또한 마다하지 아니하고, 서럽다 하지도 않으며 툭툭 떨어져지고 말 것이지만.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성주괴멸(成住壞滅)인 것을 우리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화사한 꽃들에게 살며시 물어봅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인지를......
법회를 위해, 이른 시간에 나오셔서 각각의 자리를 지키며 봉사하시는 보살님들의 일요법회 아침 풍경입니다.
천수경을 끝내고 인례 거사님의 타종에 이어 부처님 전에 헌향 헌다를 올립니다.
오늘도 일요 법회에 참석하여 법문 듣고자 보광당 가득하게 불광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금주의 법문 : 광덕대선사 불광법회. 불광사 초대법주
금주의 법어 : 기도가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구조
오늘은 기도에 관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쓰려고 합니다. 넘겨보시면 페이지가 적어 몇 자 적어놓았습니다만, 몇 차례 계속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 정진, 그리고 제가 부처님께 기도하는 여러 방법을 말을 합니다만, 어떠한 원이 있고 어떠한 소원이 있다하더라도 다 원이 있고 소망이 있어서 기도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최대의 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저도 제 스승님에게 배운 발원법입니다만, 네 원이 무엇이냐 하면 ‘불보살의 원을 이루게 해드리게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원이다.’
제각기 원(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 가는 일에서부터, 혹은 사업에 관한 일로부터, 다들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라든가,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서라든가, 건강을 위해서든가 여러 가지 원(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원(願)을 가지고 있어서 정진하고 독경하고 염불하지만, 독경 염불할 때에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오직 독경만 하라. 반야심경을 외울 때는 반야심경만 외우고, 금강경을 외울 때는 금강경만을 외우고, 마하반야바밀을 염할 때는 마하반야바라밀만을 염하라. 거기 중간에 ‘부처님, 저를 돌보아주십시오.’ ‘부처님 자비하셔서 저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저의 아픈 자리를 만져주십시오,’ ‘아무개는 그렇게 해서 병이 나았답니다.’ ‘아무개는 열쇠고리를 받아서 부자가 되었답니다.’ ‘저도 열쇠꾸러미를 주십시오.‘ 어떤 불교를 모르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하면서 기도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망상(妄想)입니다.
원(願)은 다 가지고 있어도 기도하는 동안은 전적으로 염불하는 그것뿐이야, 반야바라밀을 염할 때는 염(念)하는 그것뿐이야, 염하고 염해서 염하는 것도 없는 곳까지 가는 것이야. 저는 그 나머지는 부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부처님께 맡겨버리고 내가 부처님의 순수한 그 자리까지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방법의 중요한 것은, 진리는 원래로 충만한데 부처님의 은혜,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은 이미 이 땅에 가득하게 우리 모두에게 완전하게 이미 주셨건만, 우리가 망념 된 마음으로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릇된 생각으로서 구름을 삼아 그것을 가로막아서 망심 때문에 못 봐서 그렇지, 그 망심을 제거해버리면 부처님의 밝은 은혜가 확 내 가슴에서 솟아난다.
태양을 없다고 하지 마라. 구름이 벗겨지면 바로 햇빛은 쏟아진다. 부처님의 진리의 은혜는 지금 태양처럼 우리에게 가득 부어주고 계신 것을 망심, 망념, 어두운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심지어 구하는 생각, 그런 생각 때문에 구름이 되어서 그것을 못 받는 것이다. 그 생각 버리고 일심으로 염해라. 염하고 염해서 염한 생각마저도 끊어질 정도로 염(念)하라. 이것이 ‘기도하고 정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을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출가해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부지런히 정진을 하였고, 당시 될 수 있으면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말을 안 하면 말 안다고 하니, 그때는 스님들이 ‘묵언패‘를 찼습니다. ‘묵언(黙言)’이라고 한문으로 써서 걸이를 해서 목에 걸면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지 않습니다. 누가 모르고 말을 걸면 ‘묵언패’를 들어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를 했고, 또 어떤 절에서는 묵언한다고 기둥에 써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말을 걸어요. 그러면 기둥에 써놓은 묵언표 앞에 가서 서 있기도 했는데. 석 달 후에 그 사람들이 그것은 가라는 뜻이었다는 불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묵언을 해 가면서 잠을 안 자 가면서 그렇게 정진하다가 아침 예불 끝에는 금강경을 꼭 읽었습니다. 금강경을 읽고 나니까 누가 찾아왔어요. 아는 사람이 아니고 손으로 만져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졸지 않고 금강경을 읽었는데 어떤 분이 나타나셨어요. 삼베 모시옷을 입었대요. 제겐 누구라는 느낌이 와요. ‘신수봉행‘ 읽고,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러라. 어떤 것이 무위법이냐? 함이 없는 법이 무엇이냐?”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령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32分에 나오는 그 대목을 읽자마자 딱 와서 물어요. “어떤 것이 무위법이냐? 별안간에 와서 물으니 제가 말 한마디 못하고 머뭇댔어요. 그러니까 가면서 ”치구심이 떨어져야한다.“ 치구심(매달려서 뭐가 되어야지, 무엇을 얻어야지, 무엇을 성취해야지 그 생각) 그 생각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모시던 큰스님께 말씀 드렸더니, ’최상의 법문’을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구하는 것 없이 정진할 때는 오직 일심으로 ‘반야바라밀’ 아니면 ‘관세음보살’ 아니면 ‘지장보살’ 일심으로 외울 것뿐이지 다른 생각 갖지 말아야 한다. 다른 것은 망념이라. 부처님의 대자비를 믿고 부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맡겨버리는 것이 기도방식이다.
기도 성취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기도 성취한다.’를 말씀드리기 위하여,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구조를 알아두자.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 하시고 크신 원을 세우셔서 크신 위신력으로 완전히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 누구에게든지 은혜를 이미 주셨느니라. 오늘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배반하고 원망하고, 부처님을 버렸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진리는 완전히 이미 주어져 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알지 못했고, 그 다음은 믿지 않고, 그리고 망심으로 가려져있어서 믿으려고 하나 믿어지지 않고, 딴 생각이 자꾸 나고 그래서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내 생명에 부어졌건만 내가 현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는,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이미 주어진 완전한 진리가 나의 생활, 나의 몸, 나의 마음에 완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광의 수행은 ‘기도‘라고 하기도 하고 ’정진‘이라고 표현합니다만 불광의 수행은 일반적으로 ‘기도’입니다. 불교는 깨닫는 것인데 웬 기도냐고 하겠으나 불광은 모두가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는 기도는, 부처님께서 우리가 원하기 전에 완전한 것을 이루게 해주시려고 완전한 것을 이미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오직 정진해서 부처님이 주신 밝은 햇살, 은혜의 햇살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살다보면 부처님의 위신력, 부처님의 은혜, 그것이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우가 있다.
몇 천리를 오는 사람을 내 쫒아버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게 ‘네가 장하다. 네가 마땅히 이루리라‘고 나타나 보여서 말씀해주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아무 말 없이 형상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부처님 형상도 있고 다른 존상도 보일 때도 있고, 혹은 하늘 땅 천지 가득한 꽃이라든가, 아침 해가 솟아올라 온몸을 비추고 온천지를 비추는 것을 본다든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공부의 경계나 기도의 경계를 차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만 부처님의 그 위신력(은혜)를 주시는 방법은 무엇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명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 기쁨을 주시고 성취를 주시는 경우가 많다.
기도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고 현실적으로 얻어지는 것만이 부처님의 은혜가 아니라, 부처님의 은혜는, 보이지 않고 모르는 가운데에도 주어지는 ‘명훈가피’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깨닫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쓰기를 원하는 것이다.
불교는 자기의 힘으로 하는 자력신앙이고 타 종교는 권능자가 있어서 그분이 주는 타력신앙이라 자기의 힘으로 하는 불교가 월등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자력’이 아니다. 이루어지는 것은 ‘자력’ ‘타력’을 초월한 ‘불력(佛力)’이다. 우리는 부처님 진리로 있는 부처님 위신력 뿐이며,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불력(佛力)’이다. 가로막고 있던 것을 떼어버리고 눈 감고 있던 것을 뜨면 보이고, 나타나는 것뿐이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부처님의 은혜는 우리를 감싸시고 도우시고, 우리를 키우신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소망이 모두 다 이루어지느냐?
부처님은 반드시 우리의 성장, 향상을 기원하신다. 성불하고 지혜가 밝아지고 혜안이 맑아지고 그리고 마음이 기뻐지고, 능력이 개발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자기가 향상되고 이웃이 향상되는 것이 부처님이 근본적 바라시는 바이다. 내가, 다른 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진리에 부합되고 향상되는 것 이여야 하며, 그것이 성취되는 것이 여야 하고 나와 남이, 또한 한 사회가 모두 함께 이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사회나, 남과 이웃이 해롭고 나만 잘되어지라 한다면 기도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진리의 힘으로서 진리의 완전을 누리고, 진리의 행복을 이루고 진리의 권능을 가지고 써라. 그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원이여야 된다. 이 원은 부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이루어지게 되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부처님의 법문가운데에는 우리들이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으나,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의심하지 말라. 또, 눈에 나타나는 현훈가피보다는 눈에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항상 부처님의 위신력이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를 감싸시고 도우신다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고 결코 의심하지 말고 부처님의 위신력이 나타나는 방식이 불가사의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꼭 마음에 익혀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불교에 있어 기도한다는 것은 법성 진리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법성 진리는 일체 존재의 근원이며, 일체 진리의 근원이므로 법성 진리의 발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바른 믿음 바른 기도에 의해서 사태는 반드시 바뀌고 기도는 성취된다.
우리가 관심 기우려야 하는 것은 바른 믿음, 바른 기도입니다. 비뚤어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삿되어지고 또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믿음이 없고 올바른 이해도 없이 지식만 가지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삿된 지견이 늘어나서 믿음은 커지지 않는다고 한다.
믿음과 올바른 이해가 함께해야 호랑이가 날개 돋친 것처럼 모두를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무엇이 바른 믿음, 바른 기도 방식인가를 생각하시고 제가 더 강조하는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은 이미 다 완전히 우리에게 주어져있다는 점과, 우리들의 소망이 진리에 부응하는 소망이어야 하고, 이웃과 함께 도움을 주는 소망이어야 하고, 자기가 항상 하는 소망하여야 한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선 오늘 혜담 스님께 큰스님의 영상법문을 들으시고 관련해서 질의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질의를 하실 분은 대원 3구 2법등 일운입니다.
1. 어떠한 연유로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었는지.
2. 불교에서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3. 양자역학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하신지 덧붙여 뇌 과학에 대한 관심은 없으신지?
[혜담 스님 답변]
각화사에도 열흘 전부터 진달래가 활짝 피어서 새로운 봄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불광 법회에는 봄이 안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들이 중학교로부터 시작해서 대학 나올 때까지 물리시간에 배운 것으로는 원자와 전자가 있고 원자 주변을 전자가 뱅글뱅글 돈다는 그런 이론이 근 400년 동안 과학계를 지배했었으나 그런데 1922년도 과학자 '닐스보어'가 '양자구조'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부터 양자물리학에 대해 연구가 많이 되고, 지금까지 나왔던 '원자 주변을 전자가 돌고 있다'는 고전 물리학에 나온 뉴턴물리학은 잘못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나온 것이 '양자역학"입니다.
'양자'가 무엇이냐. 지금 제가 이 사상과 공사상을 접목시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큰스님의 법문에서 나온 것처럼 나를 둘러싼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시방세계에 가득한 부처님 위신력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의 주변에는 전자구름처럼 전체가 끝없이 덮여있는 것이다. 그 덮여있는 것이 예를 들어 원자의 크기를 농구공만하다면 이 전자는 32Km 정도나 떨어져 있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고 그 사이는 비어있는 것입니다. 그 텅 비어있는 그것이 ‘양자’인데 그 ‘양자’에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공(空)에 대해서 산스크리트어로는 ‘쑤냐’, 라즈니쉬 같은 분은 ‘Nothing', 한자로는 ’無’ '虛空’이라고 쓰는데 거기에 꽉 차있는 것이 양자구름(quantum field)인데 거기엔 모든 것이 다 있는 그 속에서 그것을 내어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람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식이 닿았을 때 그것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기도를 할 때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함에 의해서 내가 봤던 그것이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느낌입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꿈속에서, 아니면 현실에서든, 비몽사몽간에 그것이 느껴졌을 때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법칙인데, 언 듯 보면 이상하다 할지 모르지만 지금 큰스님께서는 꿈속에서 당신이 6.25때 병적증명서가 지워진 것을 보았는데 실제로 병무청에 갔더니 병적이 면제되어 군에 안 가신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말해서 예지몽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인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히 생각하고 있으면 느낌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원리'입니다.
그것을 양자역학에서는 양자구름인 ‘양자장(quantum field)‘속에는 이 삼라만상에 다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득 차게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것이 인간의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말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란 말에 나오는데, 고양이를 어떤 상자 속에 넣어놓고 상자 속에 있는 공기를 빼 버리고 어느 정도의 독가스를 넣었을 때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오직 사람이 그것을 보았을 때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이 없으면 삼라만상은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자물리학이 밝혀낸 과학적인 진리입니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한 것이 400년 전인데, 그때부터 시작해서 뉴턴물리학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 인간은, 전부가 사고방식이 '물질 최고설'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물질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정신(의식)이란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22년도 ‘닐스보어‘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음에 의해서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양자물리학이 맞는 것이라고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우주를 감싸는 ’에트라‘라는 것이 있었는데 과학자들이 조사해보니 그것은 없고, 그저 텅 빈 공간이 있고 거기를 ’양자장(quantum field)‘이라고 했습니다. 거기를 인간이 봐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물질화되는 것이지 인간이 없으면 물질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도리‘입니다. 평이하게 설명 드리자면, 현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이 ’쑤냐‘입니다. 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부증불감‘ 모든 것이 ’영원하고 청정하고 원만구족하다‘는 것입니다.
‘공(空)의 도리’가 바로 ‘양자장’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공(空), 영원하고 청정하고 원만구족한 그 성품을 내 것으로 해서 내가 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현실화 시켜야하는 것이 ‘의식’입니다. 의식이 그렇게 진행되어 느낌 왔을 때, 이것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형제분들께 소개해 드린 ‘그렉 브레이든’의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 가운데서 처음 나온 예가 아메리칸인디언들이 기우제에 대해 살아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언론에선 비꼬아서 ’인디언 기우제’라고 해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낼 때 항상 원을 세우기를, 마음에서 온 대지를 적시는 비가 오는 그것이 느껴졌을 때 실제로 비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디언의 기우제‘입니다.’
그리고 다시 예로 든 것이 티벳 스님들의 기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합니다. 저는 큰스님의 법문을 접하기 전에는 한 번도 누구에게서 기도를 어떻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나이가 들면 강원을 나오거나 혹은 나오지 않아도 그대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냥 ‘관세음보살’ 부르고 목탁치고 하루 네 번 하라는 말만 들었지 어떻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큰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기도를 이렇게 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것의 근본은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에서처럼 느낌이 왔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양자물리학과 너무나 닮아있는 것입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양자장에는 한량없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이 다른동물들도 되느냐. 그것은 아니고 오직 인간만이 의식을 가질 때 그것이 지구상에서 현실이 된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이론입니다.
제가 사서 나눠드린 ‘디바인 메트릭스’책에서 양자물리학과 공사상이 흡사하여 너무 좋아서 책을 여러 스님들께도 드렸으나 아무도 가타부타 말이 없어요. 그리고 ‘유튜브‘에서는 양자물리학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바보다. 그렇게까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공과 접목시킬 때는 과연 이것이 맞구나 하지만 과연 스님들 가운데 공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저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야심경을 아침, 저녁마다 외우면서도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을 공상과학 같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장‘ 속에는 한량없는 공덕이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이 인간의 의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말이 되냐고 부정적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어떻게 ‘양자물리학의 도리’, 즉 ‘인간의 마음이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알았을까? 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양자물리학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스님들도 이 책을 우편으로 10명 이상에게 보내드렸습니다. 그래도 그 책에 대한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저는 양자물리학이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사상을 현대 과학적으로 알리고, 증명한 것이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제가 과학자도 아니고 양자물리학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양자물리학에 대해 감명 깊게 책으로는 ‘디바인 매트리스’와 ‘블랙’이라는 책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양자물리학의 시대이고, 고전물리학인 뉴턴 물리학에 대해 많이 비판하면서 잊으라는 책입니다. 이런 책들을 많이 보면서, 그래, 현대 사회는 양자물리학의 시대고 여기에서는 우리들의 의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은 물질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물질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들을 완전히 버리게 하는, 인간은 마음이다. 정신이다. 하는 여기에 다가서는 그런 입장이 바로 ‘양자물리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동조를 하고 있고 이것을 불교의 핵심사상인 공사상을 현대로 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교수인 어느 스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머리도 좋고 젊어서 박사도 되었으니 양자물리학과 공사상에 대해 책을 썼으면 좋겠다. 다만 너무 늦으면 내가 죽으면 안 되니 내가 죽기 전에 쓰면 좋겠다.’라고 써서 보냈으나 답변이 없습니다. 공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쓰기 힘듭니다. 공과 양자물리학이 닮아있다는 것을 알아야 그 책을 쓸 수가 있는데 공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접목할 수가 없어서 어려운 문제라 아직도 스님들이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저는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동안에는 양자물리학과 공사상을 접목시켜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기도에 대해서도 이것과 접목을 시켜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 입니다.
● 두반째 질의는, 송파 19구 선학 관음심입니다.
‘바른 믿음, 바른 기도하라’라는 법문을 듣고 의문점에 대해 두 가지 여쭙니다. 지금껏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굳건히 믿고 지녀왔습니다. 제 분상으로 깨달음이란 얕게는 ‘이해’한다. 크게는 ‘상을 여읜 상태’에서 보살행을 하기 위함이다. 라고 알고 믿고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광덕 큰 스님께서는 불안의 시각으로 일체를 들어 비유하고 법문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광의 수행은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큰스님의 법문 가운데 불광의 수행은 ‘기도’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기도’라고 강요하신 뜻이 따로 있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혜담 스님 답변]
저는 2008년 6월에 뇌출혈 왔습니다. 왜 뇌출혈이 왔냐하면, 그때 각화사를 다 지어놓고 2000년부터 시작해서 화두공부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화두를 깨쳐서 견성성불 할 것인지 밤낮으로 했는데 그때 벽암록을 읽고 있었고 벽암록 34칙을 보면 어떤 스님이 유랑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화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용을 쓴 까닭인지 저녁에 자면서 보니 뭐가 이상해서 동대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해있었습니다.
그 때가 6월 15일인데 열흘 있으니 장마가 져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제가 뇌출혈이 되었다는 게 이해가 안됐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뭐가 잘못되어 뇌출혈이 되었을까? 그래서 한 달 후에 퇴원해서 각화사로 와서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지성스님이 불광 연구원장을 하면서 호법법문을 보살님들과 거사님들과 힘을 합쳐서 전부 녹취를 했습니다. 저는 그 녹취 한 것을 전부 프린트해서 한 30번은 읽었습니다.
아, 그래. 수행이라는 것이 기도에 기초하는구나. 큰스님께서 원래 화두를 깨려는 것이 무엇이냐? ‘내 생명이 바라밀이라는 것을 깨치는 것’이 화두 타파한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야말로 화두를 깨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명이 바라밀’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30번 읽고 나서 널리 알려줄 말이라는 생각을 해서 저는 3권으로 된 ’무한 창조를 발휘하는 길’을 그때 50부인가 100부를 만들어서 우리 형제들에게 돌렸는데, 그런 뒤에 또 쓴 책이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입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뇌출혈이 일어난 뒤에 각화사에 있는데 누군가가 이 ’시크릿‘이라는 책을 하나 줘서 읽어보니 제가 받은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193쇄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이 내용이 큰스님 법문과 똑 같았습니다. 오늘 영상에서 들은 그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큰스님 말씀을 엮어서 내게 된 책이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라는 이 책입니다. 제가 낸 책 중에 가장 많이 3~4쇄를 찍은 책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그 때 지성스님과 더불어서 같이 녹취를 한 보살님, 거사님들의 이름은 번거로워서 모두 뺐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노력하신 형제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도라는 자체가 깨달음을 이어가게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은 성불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부자 되는 것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출세하는 것을 원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원하기 위해서는 큰스님이 말씀하신 것은 ‘집착하는 것 자체를 없애고 그냥 일심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주십시오.’ 하면 진리는 ‘너는 가난한 것을 원하는 구나’ 알아듣습니다. ‘건강을 주십시오.’하면 ‘너는 병이 나는 것을 원하는 구나’하고 진리는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우리들이 기도하는 방법자체가 바로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바른 수행이다. 그래서 ‘기도와 수행’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고 우리들이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는 것이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불교는 수행하는 하는 종교인데 왜 기도냐 하는데, 기도 자체가 수행입니다. 그래서 제가 뇌출혈이 되어 한 달 입원 후에 얻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물론 인연이 있어 그랬겠지만, 그로인해 큰스님의 기도 방법에 대한 이 책을 엮어서 형제들에게 나누어 드릴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후유증이 많이 있었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 뇌출혈로 한 달 입원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이 기도가 바른 기도이고, 한국 스님들 가운데 대부분이 기도는 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광덕 대선사만이 바른 기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잘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찬탄곡 : 님의 숨결(광덕 큰스님 작시, 환산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우리님 눈부시고 다정해라 햇살처럼 달빛처럼
그림자 볼 수 없고 목소리 없는 때에도
청산에 아련하고 두 눈에 역력해라
아~ 우리님 내 생명 타오르는 태양이여, 태양이여
우리님 너그럽고 유연해라 바다처럼 강물처럼
나 외로워 몸부림치고 나 기뻐 춤출 때에도
언제나 함께 있고 희망이고 용기 여라
아~ 우리님 내 생명 출렁이는 바다여, 바다여
발원문 낭독 : 송파 10구 명등 연서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법회 후, 보광당에서 법등모임 하는 구 법회가 차츰차츰 늘어나는 이 모습은, 불광 법회가 정상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하는 힘입니다.
토요일, 쉼없이 법당을 청결하게 청소하시고 법회를 위한 좌석 배치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청정 봉사팀의 모습입니다.
일요 법회가 끝나고 대웅전에서는 금강경 독송을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거사님, 보살님들의 모습
꽃샘 바람에 쌀쌀한 날씨에도 화광사, 조계사, 동명사, 봉은사에서 1인 시위 동참하시고 계신 불광 거사님, 보살님들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마음님께서 많은 법문내용을 빠짐없이 정리해주신 공덕으로 오늘도 복습 잘 했습니다.
이 생애 광덕 대선사님을 만나
그 가르침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언제나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현대 양자물리학과 공사상을 접목시켜
법문해주시는 혜담스님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
마음님 긴 법문 상세히 올려주신 공덕에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내 소원이 될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_()()()_
사진 찍어서 불광을 생생하게 소개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