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의 공통점은 적선을 한다는 겁니다. 번만큼 세금을 내면서 정정당당하게 기업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부나 봉사,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이 사회적 책임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필수적인 사항인가요?”
필자가 강연을 갔다가 한 기업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이나 기업가들은 적선이나 사회 기부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 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기업인들은 아직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동체가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들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자면 아무리 일해도 먹고 살기가 힘든 현실에서는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면 공동체는 훨씬 인간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인도가 그렇다. 인도는 아직도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아직도 가난에 허덕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나라에서 각자 벌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사회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너무도 비인간적인 현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도는 가난한 사회지만 비인간적인 현실을 개선하려고 적선에 앞장서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인간에 대한 구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인도의 정보기술(IT) 3총사 가운데 하나인 인포시스의 나라야나 무르티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매우 적극적이다. 1996년 설립된 인포시스재단은 전국 공립학교에 1만 개가 넘는 도서관을 세워 컴퓨터와 책 등을 기부했다. 3총사 가운데 다른 하나인 위프로의 아짐 프렘지 회장도 매년 자비 500만 달러로 200만 명의 어린 이들을 돕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도 기업은 타타그룹이다. 인도가 자랑하는 민족 기업인 타타그룹은 ‘사회로부터 얻은 것은 사회로’를 사시(社是)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 이윤의 60%는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실천한다. 반면 타타와 그룹 서열 1위를 다투고 있는 릴라이언스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해 비난을 산다. 이 회사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은 뭄바이에 27층(높이 173m로 실제론 60층 크기)짜리 초호화 저택을 짓기로 해 구설수에 오르기고 했다.
이윤의 60%를 사회 환원하는 타타그룹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세트지 나사르완지 타타(1839~1904)는 간디만큼 유명한 인물로 통한다. ‘인도 정치에 간디가 있다면 경제에는 타타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인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타타그룹은 철강, 자동차, 통신, 차, 비료에 이르기까지 96개 자회사와 30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인도 최대 재벌 그룹이다. 매출은 2006∼07 회계연도에 288억 달러로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3.3%를 차지했다. 최근 5년간 39개 국내외 대기업을 인수했는데 영국 자동차 업체 재규어와 랜드로버도 인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타타그룹이 존경받고 있는 것은 바로 사회 환원을 실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8개 재단을 통해 학술, 예술, 의학 등 전 방위 분야를 지원한다. 잠세트지가 1892년에 설립한 잠세트지 타타 장학재단은 당시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존재였다.
타타그룹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연상시킨다. 발렌베리그룹이 1856년에 설립돼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재단을 통해 제도화해 오고 있다면 타타그룹은 이보다 12년 후인 1868년에 설립돼 8개의 재단을 통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타타그룹은 잠세트지 타타가 1868년 시드머니(종자돈) 단돈 2만1000루피(50만 원)로 섬유무역회사를 차린 데서 시작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좋아했던 문학 청년 잠세트지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집안 출신으로 인도 산업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타타는 생전에 “지역 사회는 기업의 존재 이유 바로 그 자체”라며 지역 사회 공헌을 강조했다. 1898년엔 영국을 이겨보겠다며 인도과학원 설립을 위해 재산의 절반을 기부했다.
타타그룹은 특히 올해 250만 원짜리 경차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250만 원짜리 경차 프로젝트는 인도의 열악한 교통을 개선할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타타그룹은 2004년에 타타모터스가 대우상용차를 인수하기도 했다.
타타그룹은 복지 수준이 세계 최고다. 공장을 지을 때 최우선으로 노동자의 복지부터 챙겼다. 창업자 잠세트지는 인도 최초로 공장에 자동습도조절장치와 자동소화장치를 설치했다. 1886년에는 연금 기금을 설립했고 1895년부터는 노동자 상해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1911년 설립한 타타제철은 이듬해인 1912년부터 8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1915년부터 무료 의료 지원을 실시했다. 1917년엔 직원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고 1920년부터 유급 휴가를 실시했을 정도다. 1928년에는 출산 수당을 지급했고 1934년에 이익 분배 보너스제를, 1937년에 퇴직 위로금제를 실시했다.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산업 선진국에서 실시되기 이전에 타타가 처음으로 도입해 실시한 것들이다. 당시 서구에서는 노동자를 잔인하게 대하는 시절이었다.
타타그룹은 이후 지주회사로 타타선즈를 두고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계열사에는 인도 최대 IT 서비스 업체인 TCS를 비롯해 타타스틸, 타타자동차, 타타 차(茶)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뭄바이의 ‘인도의 문’ 바로 옆에 있는 타지마할 호텔은 아름다운 호텔로 유명한데 이 역시 잠세트지 타타가 세운 것이다. 첫 투숙한 지 28년 만인 1980년에 타지마할 호텔에 머물렀던 배우 그레고리 펙은 “타지마할은 보석 박힌 왕관처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필자가 지난해 이때쯤 뭄바이를 방문했을 때 타지마할 호텔을 보고 경탄했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
타타가 4대 걸쳐 ‘국민기업’ 일궈타타가의 그룹 내 지분은 타타선즈의 가족 지분 3%를 통해 운영된다. 타타 가족이 설립한 타타트러스트와 타타선즈 등 자선기금이 65.98%를 보유하고 있다. 모회사 지분 3분의 2를 자선단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타타선즈는 이익금 중 약 60%를 자선기금으로 사용한다. 매년 1억 달러가량이 사회에 환원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타타그룹의 4대 회장은 창업주의 종손자인 라탄 나발 타타(1937년생) 회장으로 그 역시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사회 사업에 열심이다. 미국 코넬대서 구조건축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2년에 타타스틸에 인턴 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파르시(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도)로, 독신인 그는 뭄바이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며 비서 없이 운전사만 데리고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
타타가는 자손이 귀한 편이었다. 잠세트지 타타(창업자)는 아들이 없었고 그 뒤를 이은 자한기르 타타도 아들이 없었다. 3대회장인 나발 호르무스지 타타에 이어 장남인 라탄 나발 타타는 독신이다. 라탄 나발은 후계자로 전문경영인을 지명할 것이라고 한다.
타타그룹이 어쩌면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하고 있지만 인도에서 비판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사회 환원을 제도적으로 실천하면서 전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 기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 시대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상이나 행동을 취할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용기라고 부른다. 잠세트지 타타가 보여준 용기와 통찰력이 바로 이에 속한다.” 잠세트지 타타와 동시대를 산 인도의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말이다.
잠세트지 타타는 영국의 인도 지배가 막 시작된 시기에 사업가로 나서 인도의 토착 기업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사회를 위해 고스란히 내놓음으로써 민족 기업의 전통을 세웠다. 그의 정신과 전통은 대대로 이어져 4대에 걸쳐 내려오면서 가난한 인도인들에게 크나큰 위안을 제공하고 있다. 타타가와 타타그룹의 사회 환원 행위는 어쩌면 경제적인 위안보다 정신적인 위안이 더 클 것이다.
잠세트지 타타의 창업가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힘입어 인도는 중세에서 20세기로 발을 내디디면서 근대화를 이뤘다. 나아가 타타그룹은 21세기를 인도의 시대로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타가 있는 인도가 문득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