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약 40여일 간
총 300여점이 쓰여졌다. 안중근의사를 취조한 검사, 감시한 군인 등이
줄을 지어 글을 안중근의사의 글을 받고자 줄을 지었다.
그들에게 안중근은 각각의 사명에 맞도록 글을 써 주었다.
[ 백인당중유태화 ]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폭 33.2cm, 길이 137.4cm. 보물 제569-1호 姜信鍾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선혈들의 口傳 글귀로 화락한 집안을 만들기 위하여는 '忍耐'가 긴요하다는 뜻이다.
[ 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 폭 34.9cm, 길이 147.7cm. 보물 제569-2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어 있다.
선현들의 "하루의 독서는 천년의 보배요 백년간 물질만 탐하는 것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다"란 글귀와 유사하다.
안의사는 어려서 배웠을 이같은 글월을 촌철살인의 경구로 재구성하였다.
[년년세세화상사세세년년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한다. 폭 41.3cm, 길이 109.6cm 보물 제569-3호,
민병도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세월이 가도 그냥 그대로 있건만
사람들은 세월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암울해가는 세태를 걱정하는 글귀이다.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 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폭 31cm, 길이 130.5cm. 보물 제 569-4호, 朴槿惠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가난하고 천한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글귀로 여겨진다. 論語에 "선비로써 道에 뜻을 두고 나쁜 옷 궂은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면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다"란 구절을 인용한 글귀이다.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
(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폭 36cm, 길이 138.5cm. 보물 제569-5호,
원 김선량 목사가 소장하던 것으로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명시라도 할 수 있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은 韓靑日 3국이 각기 독립은 유지하면서 서로 연대 발전하자는 '아시아연대주의'로 집약할 수 있다. 3국이 연대 발전하여야 西勢東漸의 위기를 극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과 논리인 것이다. 안의사는 이같은 동양평화론에 따라 이토의 총살을 '동양평화를 적힌다'라는 정의의 응징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안의사는 '이토총살'이 조국의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전지역 내에 들어온 '적장공격'이라고 주장하였다. 대한의군참모중장겸 독립특파대장이었던 안의사는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를 총살 응징했다고 명백히 천명한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사형집행을 몇일 앞두고 취조관의 한 사람인 경희경 경시가 <동양평화론>을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고 안의사에게 <동양평화론>의 결론만이라도 써 달라고 청하자 안의사가 서슴치 않고 써준 것이라 한다.
[견리사의견위수명 (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폭 30.6cm, 길이 140.8cm.
한지에 휘호되었다. 보문 제569-6호로 지정되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의로운 생애를 상징한 명언으로 평가된다. 논어 헌문(憲問)편에 "利를 보거던 의(義)를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見危授命),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久要不忘 平生之言)"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인용된 글이다.
[용공난용연포기재 (庸工難用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폭 33.4cm, 길이 137.4cm. 보물 제56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통감(通鑑)에 자사(子思)가 위왕에게 "열아름의 가래나무는(杞梓連抱) 썩은 부분이 있더라도
(而有數尺之朽) 훌륭한 목수는 버리지 않는다(良工不棄)"라는 말에서 인용되었다,
큰인물이 아니면 뛰어난 인재를 기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무원여난성대업 (人無遠慮難成大業)]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폭33.5cm, 길이 135.8cm. 보물 제569-8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論語 영공(靈公)편에 "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人無遠慮)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必有近憂)"고 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안의사의 경륜을 표현한 글이다. 안의사는 을사 5조약 후 중국 上海 등지를 유력하고 돌아와
장기적 안목으로 信川郡 淸溪洞에서 鎭南浦로 이사하고 사재를 기울여
'사흥 민흥 국흥(士興 民興 國興)'의 뜻을 합친 三興學校를 세워
구국영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천주교 계통의 敦義學校도 인수하여 敎育救國運動을 확장하였다.
이듬해 가을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등 3도 60여개교 5,000 여명의 학생이 참여한
학과 및 학술 연합운동회에서 돈의학교가 1등을 차지 할만큼 발전시켰다.
삼흥학교의 교과과정에는 목총과 나팔 북을 사용하면서 군사훈련도 받게하는 교련과목이 포함되었다.
구국교육운동에 투신한 안의사는 이들 학생이 훗날 조국독립의 전사가 되기를 기원하였을 것이다.
[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
(五老峰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폭 31.8cm, 길이 138.4cm. 보물 제569-9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장부의 기개가 충천하는 글귀로 안의사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이백의 五言絶句라고 전한다. 안의사는 자서전 <안응칠역사>에서 스스로 청소년 시절 가장 즐기던 것이
"첫째 친구와 의를 맺는 것이요, 둘째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요, 셋째 총을 들고 사냥하는 것이요,
넷째 준마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의리와 호방한 기개를 갖춘 尙武의 기상을 지녔다.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기울지 않음을 안다.
폭 30.6cm, 길이 133.6cm. 보물 제569-10호,
안의사의 자부가 鄭玉女가 소장하던 것을 안의사기념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論語에 나오는 글귀로 안의사의 옥중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희의 제주 유배시에 그린 <歲寒圖>에도 이 글귀가 인용되었다.
[사군천리이표촌성망안욕천행물부정 (思君千里以表寸誠望眼欲穿幸勿負情)]
임 생각 천리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 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폭 31.5cm, 길이 96.3cm. 보물 제569-11호, 吳滿基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의사의 우국충절의 절시이다.
조선조 정철의 가사 <思美人曲>에서 임금에 대한 간절한 충절을 한지아비를 사모하는 여인의 마음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충성을 표현한 것과 방불한 기법이나 그보다도 월등한 애국열정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폭31.7cm, 길이 135.4cm. 보물 제569-12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143일 동안 여순 옥중 생활을 한 안의사의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기상과 불굴의 호국애족의 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박학어문약지이례 (博學於文約之以禮)]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단속하라.
폭 33.3cm, 길이 137.9cm. 보물 제569-13호, 안의사기념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논어 顔淵 편에 "널리 공부하며 예법으로 몸을 단속하면(約之以禮) 빗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 아니냐"에서 나온 글귀이다. 박학과 예법을 강조한 안의사의 수신철학이 담긴 유묵으로 여겨진다. 안의사는 여순감옥에 투옥된지 3일만인 1909년 11월 6일에 訊問을 담당하는 검찰관에게 '이토죄악 15개' 조목과 함께 제시한 <대한국인 안응칠소회>에서 "무릇 文明이란 것은 동서양의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도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며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을 즐기면서 함께 태평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이 뜻을 부연하고 있다.
[제일강산 (第一江山)]
폭 96.6cm, 길이 38.6cm. 보물 제569-14호, 원 김선량 목사 소장으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금수강산 삼천리 한반도에 대한 사랑과 조국애가 반영된 유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