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2월에 접어들어 이제 겨울은 가고 새로운 계절 봄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요즘, 지난 수요일 머리에 재를 얹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다짐하며 시작한 사순 시기의 첫 주일을 맞는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곁에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간을 지내시며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시는 모습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의 말씀은 그 유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 복음의 공관복음의 병행 구절,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마태오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받은 유혹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유혹의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우선 사탄은 40일 동안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드시지 못한 예수님께 다가가 돌더러 빵이 되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보라고 유혹합니다. 하루도 아닌 40일을 굶어 지내신 예수님께 사탄의 이 유혹은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자극하는 유혹이었습니다. 한편 사탄은 배고픔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가 그곳에서 한 번 떨어져 보라고 유혹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사들이 떨어지는 예수님의 발을 떠 받들어 그 분을 보호해 줄 것이니 한 번 떨어져 보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이 유혹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곧 명성과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겨냥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에도 넘어가는 않는 예수님에게 사탄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내듭니다. 높은 산 위로 예수님을 데리고 간 사탄이 산 아래로 펼쳐진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세상을 보여주며 나에게 한 번만 머리 숙여 절을 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유혹하는 사탄의 모습은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욕구를 겨냥한 유혹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40일의 광야에서의 시간 동안 인간이 삶에서 겪게 되는 3가지 기본적 유혹, 곧 배고픔이라는 생물학적 욕구와 명성과 명예라는 사회적 욕구, 마지막으로 재물과 권력을 추구하는 욕구에 대한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 같이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실 우리에게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병자들의 병을 깨끗이 낫게 해 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을 자유롭게 해 주시며 심지어 죽은 이들마저도 다시 살려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메시아 예수님이 광야로 가서 유혹을 견뎌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유혹의 내용이란 것이 아주 그럴싸할 정도의 거대하고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중대한 문제가 아닌, 인간이 겪는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 욕구에 근거하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 구원자이자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왜,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광야, 그 허허벌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광활하고 삭막한 곳으로 나아가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유혹을 받으셔야만 했을까요? 유혹 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은 그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창세기의 말씀은 죄를 일삼는 인간에게 홍수의 벌을 내리신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다시는 그와 같은 파멸의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새 계약을 세우시고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는 무지개를 그 계약의 표징으로 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 9,12)
하느님의 이 같은 말씀은 온 천하가 구름으로 뒤덮여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려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 후, 구름이 사라지고 그 사이로 무지개가 드러나 주님의 분노의 홍수가 멎었던 그 때처럼 이제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무지개를 통해 하느님의 분노가 끝이 났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베드로 1서의 말씀은 구약의 하느님의 계약, 곧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약속이 신약에 이르러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이야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약의 완성은 모든 인간의 죄를 씻는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이루어짐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을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1베드 3,20-21)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오늘 제 1 독서가 전하는 노아의 홍수 사건과 연관하여 설명합니다. 곧 예수님의 그 죽음은 구약의 시대 노아의 홍수로 죄 많은 모든 이들을 쓸어버리고 노아와 그의 아들들만이 물로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그 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로 우리 모두가 구원받게 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와 제 2 독서의 이 같은 말씀은 오늘 복음의 말씀, 곧 유혹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해 줍니다. 누군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고통 중에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그와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면 그의 모든 말은 그저 위선이며 거짓일 뿐입니다. 고통에 진정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의 한 복판에 나의 온 존재를 던져 넣는 실천, 곧 나도 함께 하는 온전한 실천이 뒤따라야만 하며, 이로써 고통 중에 있는 그 형제의 고통이 나의 행동으로 나누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오직 그러할 때에만 고통은 반으로 나뉘게 되며 형제의 고통에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유혹 받으심은 나약한 본성과 죄로 기우는 본성으로 인해 언제나 죄의 유혹에 시달리는 우리의 고통에 예수님 역시 함께 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 곧 우리의 고통 한 복판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예수님의 사랑의 투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의 아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 그 고통에 함께 하는 것, 그와 똑같은 처지에서 그와 똑같은 아픔을 함께 겪는 것, 바로 그 사랑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으시고 그 유혹을 통해 우리가 겪는 고통을 함께 하며 아파하고 그를 통해 우리의 아픔을 감싸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죄 없으신 예수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 허허벌판의 생명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생명의 유지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버려진 땅, // 광야에서 40일의 시간을 보내며 겪으신 유혹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고 갈릴래아로 가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에 깊이 새겨 보십시오. “이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외치시는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고통을 함께 하시고 우리의 어깨에 짊어진 고통의 짐을 함께 지기 위해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사랑의 완전한 투신,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입술로만 // 값싼 위로와 동정의 말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닌, 자신의 온 존재를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한복판으로 던져 그 고통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나와 함께 그 고통의 짐을 나누어지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체험하는 시기, 그 시기가 바로 이 사순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사순 시기는 우리에게 은총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체험하는 은총의 시기인 이 사순 시기에, 여러분 모두가 오늘 본기도의 기도문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참된 회개의 삶으로 나아가시기를, 그리하여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빵만으로 사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입에서 오는 모든 말씀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