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명문종가-조용헌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
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경주 최 부잣집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
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경남 거창 정온종택
때를 기다린다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
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남원 몽심재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대구 문씨
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내 뜻에 맞게 산다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
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
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
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
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
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강릉 선교장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수 봉소당,구례 운조루,논산 윤증(공군박희동준장)
◆명문가의 15가지 원칙◆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재물과 사람과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은 이 원칙을 370년 간 지켜왔다. 조지훈도 삼불차 집안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라났기 때문에 〈지조론〉을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유달리 혹독한 근대화 시기를 거친 우리지만, 그 숱한 변절과 기만을 단순히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내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이 집안의 지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경주 최 부잣집/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만석 이상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최 부잣집에 내려오는 400년 전통의 가훈이다. 부불삼대(富不三代)라지만, 최 부잣집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으로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진 명부(名富)의 대명사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와 덕망을 이어온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이다. 3대도 어렵다는 명부의 길을 12대 동안 이어온 최 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은 무엇일까.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고택 뒤 700평 대숲에서 들려오는 대나무 이파리 소리와 온갖 새들의 합창. 그리고 대숲에서 자라 맛이 일품인 죽로차. 한국의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계산풍류'의 현장이 바로 기세훈 고택이다.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를 꼽는 '기(奇) 고(高) 박(朴)'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 집안이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 집안들이 배출한 인물들 때문이다. 광주 지역에서 기씨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한 계기는 고봉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인물 때문이다. 300년 역사를 지닌 고택에서 배어 나오는 전통과 풍류의 정취, 그리고 죽으면 화장해서 가족 납골당에 들어갈 거라는 명문가 종손의 결단.
☆경남 거창 정온종택/때를 기다린다
;'금색 원숭이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뜻의 금원산을 배경으로 한 동계고택은 그 강강한 기세가 무림 고수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바로 이 집에서 조선 후기 최대의 반란 사건 주도자인 정희량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우연한 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의 연관관계를 파고들어가보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뜻을 크게 품었던 탓에 충신과 역신 사이를 오가야 했던 정씨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만나게 된다.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풍수적 기운이 짱짱한 화강암 지반의 서울 종로구 일대. 특히 안국동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 명당 터이다. 그중에서도 '안국동 8번지' 윤보선 고택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명택이다. 한국 정치의 산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택을 처음으로 낱낱이 밝혔다. 윤보선 전 대통령 집안은 대통령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 활약한 이 집안 윤씨들이 한국인명사전에 무려 50여 명이나 들어가 있다. 또 이 집안에는 공덕을 쌓아야 명당을 얻는다는 옛말이 절대 틀린 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도 전한다.
☆남원 몽심재/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몽심재가 남원 인근 지역에서 회자된 이유는 과객 대접을 잘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유명했던 몽심재는 조선 후기 지리산 로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스캠프였다. 또 몽심재는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튼해 풍수상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는 조건을 갖췄다. 이 때문인지 몽심재의 죽산 박씨 가운데서 원불교 교무가 40여 명이나 나왔고, 이중 여자 교무의 수가 압도적이어서 "호음실에서는 사위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 집안은 특히 수백 년 간 힘없는 사람들을 남달리 배려하고 돕는 가풍을 이어왔다.
☆대구의 남평 문씨 세거지/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독서를 많이 하면 나쁜 팔자를 좋은 팔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믿음이었다. 특히 유가에서 독서를 중시했다. 대구 인흥리에 세거하는 남평 문씨 집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집안으로 꼽힌다. 남평 문씨들의 문중문고인 '인수문고'는 8천500책(2만 권 분량)을 수장, 민간으로서는 고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예로부터 전국의 문인과 달사들이 찾아와 책을 열람하고, 학문을 논한 문화공간이었다. 경술국치 무렵에 남평 문씨들이 인수문고의 기반이 된 만권당을 설립한 배경은 무엇이고, 왜 특히 역사책을 중시했을까?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내 뜻에 맞게 산다
;1만 평의 집터에 50만 평에 달하는 장원(莊園)을 가진 윤선도 고택. 이곳에서는 호방함과 소요유(逍遙遊)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이곳을 '녹색의 장원'이라 부른다.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유교적 만다라'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고산고택은 천문과 지리에 해박한 옛 사람들의 지혜도 전해준다. 그만큼 격이 느껴지는 집이고, 그 격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터에서 느껴지는 호방함에서 나온다. 남도(전라남도)가 예향(藝鄕)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된 배경에 자리한 윤선도 고택. 호남 예술정신의 요람이었던 이곳의 페트런(patron, 후원자) 정신.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충청도 아산의 예안 이씨 문정공파 종가에서 만난 '정신의 귀족' 이득선 씨. 이득선 씨가 체득한 내공이 바로 '3년시묘(三年侍墓)'이다. 일생 동안 한학자로 살았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다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년 동안 생활하며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염을 간직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3년 시묘를 직접 실천한 인물, 현대에 살면서 '중세적 삶'을 경험해본 인물. 저자는 아마도 남북한을 통틀어 근래에 3년 시묘를 글자 그대로 실천한 사람은 이득선 씨가 유일할 것이라고 경외의 염을 보낸다.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진도의 양천 허씨들은 빗자락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 이 대단한 소문의 근원지인 운림산방. 내리 5대째 유명 화가를 배출한 이 산방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당대 발복(當代發福)으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발복의 가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근세 100년 동안 전통과 민속이 총체적으로 단절되고 해체되는 경험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 나라에서 선대가 했던 일을 손자대에 계승하는 경우는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양천 허씨들은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5대째 계속 화가를 배출했다. 1대 소치, 2대 미산, 3대 남농, 4대 임전, 5대 허진. 5대째 예술가를 배출한 집안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아도 그리 흔치 않은 것 사례이다.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의성 김씨 종택은 권력의 부조리를 정면에서 고발하는 기백과 목숨을 내건 의리로 인해 조선시대에 금부도사가 세 번이나 체포영장을 들고 오는 수난을 겪었다. 또 비범한 인물들을 배출한 내앞종택의 산실(産室)은 이문열의 소설 소재로 등장할 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안동 지역 인근에서 회자되는 '유가(儒家)에는 3년마다 금부도사가 드나들어야 되고, 갯밭에는 3년마다 강물이 드나들어야 된다'는 속담은, 자신의 신념과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 금부도사의 체포영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알았던 조선 선비들의 정신이 잘 나타난 말이다.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19세기 동양 삼국을 풍미한 조선 제일의 명필 추사 김정희. 추사가 살던 고택은 무기(武氣) 서린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솜이불처럼 포근한 야트막한 둔덕이 에워싸고 있다. 주변 사방에 살기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산세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가장 선호하던 산세다. 바로 이런 곳에서 문기(文氣)가 무르녹은 문자의 향기〔文字香〕와 서권의 기〔書卷氣〕가 발산한다. 이 집은 또 산 자가 죽은 자가 동거하는 구조이다. 이렇게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다는 한국적 사생관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추사고택이다.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명나라 때 대문장가인 주지번과 국경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표옹 송영구. 그의 고택은 내룡(來龍), 안산(案山), 득수(得水) 삼박자가 훌륭한 풍수 명당이자 고밀도 기에너지를 갖춘 '마당바위'로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명문가를 손꼽을 때 가장 중요한 자격 기준은 그 집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하다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호남대로의 중심지인 전주의 어느 건물 현판에 감춰진 표옹 집안의 드라마는 무엇일까?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다 순국한 학봉 김성일 집안. 이 집안의 애국정신은 그 직계 후손들과 정신적 자식인 제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전해진다. 학봉의 퇴계학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제자이자, 학봉의 11대 종손인 김흥락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해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명이나 배출했고, 학봉의 직계 후손들 중에서도 11명이 훈장을 받았다. 학봉은 서애 유성룡과 함께 퇴계의 양대 제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안동 일대의 명문가는 거의 퇴계와 서애, 학봉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서애가 복잡한 현실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데 주력한 경세가로서의 측면이 강했다면, 학봉은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의리가로서의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이 의리가를 지켜온 학봉의 후손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다.
☆강릉 선교장/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선교장. 민간 주택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고택이다. 한국의 선풍(仙風)과 풍수사상이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배어 있는 선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자는 옷도 대충 입고, 먹는 것도 되는 대로 먹을 순 있지만, 사는 집만큼은 푸른 소나무 숲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소나무 숲과 연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선교장은 한국인이 가장 선망하는 집이기도 하다.
▷왜 명문가인가?
전국의 명문가 15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각 명문가의 역사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가 출간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왜 '새삼스럽게' 명문가 이야기인가?
이 책의 저자인 조용헌 교수는 "새 천년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란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지난 세월, 살아남느라 먹고사느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이제는 이야기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삶의 질'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삶의 질은 경제력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경제력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고민하고,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고, 품위 있고, 질 높은 삶인가?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으며, 살고 있을까?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을 위해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 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다. 여기서 저자가 생각하는 명문가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상류층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
이제 한국 사회에도 상류사회 또는 상류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상류사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아울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저자는 이제 한국 사회도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에 이 책이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화가 진정한 상류문화인가? 어떻게 살아야 명문가가 될 수 있는가? 명문가를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그 집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라고 말한다. 돈이 많다고, 벼슬이 높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진선미(眞善美)에 부합하는 삶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이 명문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