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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좋은 글(책, 영상) 스크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숙명전환의 선물` (下) -조성윤,김미정-
^^멜^^도르라 추천 0 조회 783 13.03.26 17:1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김미정님에게도 학창시절 우연히 접한 창가학회는 매우 이상하고 무서운 사이비종교로 받아 들여졌던가 보았다. <창가학회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던 건 통일교였다고 ㅎㅎㅎ.>

30대 무렵, 나 역시 다니던 직장 현장직 반장의 아내로부터 처음 접한 ‘남묘호렌게쿄’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실제로 목격하였는데 죽은 사람에게다 ‘남묘호렌게쿄’라는 염불을 외면 사안(死顔)에 화색이 돌았다나 어쨌다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창가학회는 다만 유치하고 요상스런 사이비 종교였던 것이다.

 

통일교 역시 내게 그러하였는데, 40대 무렵의 어느 날 시내 지인의 사무실에서 낯 선 방문객을 맞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상당한 미인에다가 품격와 우아함을 갖춘 의상을 갖추어 입고 교양미 가득한 중년의 두 여인은 일본인이었다.

통일교 신도였던 것이다.

'원리강론'인가 하는 소책자를 건네주면서, 그들의 서툰 한국어와 더욱 엉터리인 나의 일본어로 나눈 대화는 구약성경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무렵 기독교(무교회주의)에 나름 빠져있었던 터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니 피가름이니 하는 내용은 귓등으로 흘렸으나 그토록 열성적으로 전도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나는 놀라웠다.

무엇이 저 교양있는 여성들(더구나 일본인, 당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 엔지니어들에게는 까마득한 선진국으로 무엇 하나라도 배우기 위하여 굽신거리며 일본을 드나들었다)을 저토록 헌신하도록 만드는지.

 

으흠, 일단 종교는 무엇을 가지고 낯 선 사람의 성정(性情)에 작용하여 그 신앙을 영혼에 스며들게 하는 걸까.

우선은 어떤 정서적(情緖的) 감성을 자극함에 의해서일 것이다. <찬송가의 은은한 화음이나 성스러운 수녀님의 자태나 절집의 그윽한 향내..>

그 두 여인의 인상때문에 통일교는 창가학회만큼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는 통일교보다는 창가학회가 몇배나 더 요상스럽고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30대 때 내게 접수된 창가학회.

그때 창가학회가 교양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어프로치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조교수 부부의 책처럼.

 

어쨌거나 일본 땅에 상륙하여 50만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는 통일교도 놀랍지만, 한국 땅에 150만 신도를 만들어 낸 창가학회의 한국침투는 더욱 놀랍지 아니한가. <반일(反日)의 나라에 왜색(倭色) 쪽발이의식 깃든 나라로부터.>

그리고 창가학회의 우리나라 포교는 일본인 본토박이 신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죄 재일한국인 창가학회 회원들의 자발적인 열성에 의한 것이었다니.

창가학회는 무엇을 가지고 이국 땅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외롭고 고단한 조센징들에게 어필하여 그들을 매혹케 하였던 것일까.

 

창가학회(創價學會).

그 이름의 취지(趣旨)는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배움의 모임’이라는 말 뜻 그대로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신불(神道와 佛敎)의 나라다. <한국 도회의 십자가 숲은 일본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일본 기독교인의 고품질(?)은 한국 크리스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창가학회 역시 불교의 일파이지만 오소독스한 불교와는 많이 다르다.

법당을 마련하여 불상을 모셔 놓지고 않고 부처를 숭앙하지도 않는다.

창가학회의 뿌리는 일련정종(日蓮宗正)이다.

일련정종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이라는 13세기 일본 승려의 가르침으로 창시된 종교다.

니치렌은 불경 팔만대장경 전부를 존숭(尊崇)하는게 아니라 그 중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현실을 외면한 채 내세(來世)만을 꿈꾸는 신앙을 비판하였다.

불교의 못된 가르침이 민중이 현실의 혼란과 괴로움을 정해진 숙명으로 여기는 것은 불교의 못된 가르침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기득권자와 지배층을 위한 종파, 현실을 외면하고 죽은 뒤의 구원을 강조하는 종파를 모두 비판하고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말법의 시대에 구원의 빛을 제시할 상행보살이 등장해서 새로운 진리를 전파할 것이라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새 시대의 상행보살이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서양 기독교 메시아 출현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신이 상행보살이자 동시에 민중 하나하나가 모두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이 다르다>

자기 속의 부처를 불러내면 현세가 바로 극락.

상상컨대 니치렌 대성인은 주장자를 내리치며 ‘만유불성(萬有佛性)이노니 너희 속의 부처를 이루어 현실의 행복을 누리라.’고 설파하였을 것 같다.

 

근세에 들어.

1930년대, 일련정종의 신도였던 교육학자 ‘마기구치 쓰네사부로’에 의하여 ‘창가교육학회’가 설립되었다.

그는 ‘창가교육학회를 일련정종의 '재가신도(在家信徒)단체'로 만들었다.

그는 근대교육학과 전통신앙을 결합하여 교육혁신을 일으키고자한 개혁자로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1948년(종전후) 그의 제자 ‘도다 조세이’ (2대 회장)에 의하여 '창가교육학회'는 ‘창가학회’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도다는 법화경을 읽다가 새삼 ‘생명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도다의 창가학회 출범 당시 3000세대의 신도가 1957년 도다 사망시에는 75만 세대로 신도가 증가하였다.

그 후, 도다의 제자였던 이케다(현 3대 회장)에 의하여 1960, 70년대 더욱 조직적인 절복(折伏:창가학회의 포교를 말하는데 주로 하층민이나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였다)운동에 의하여 지금은 천만명이 훨씬 넘는 거대한 종교단체로 성장하였다.

 

이 사회가 행복해 지려면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현실 속에서 적극적인 생명실천활동을 위하여>는 도다회장의 주창으로 1964년에는 공명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공명당은 보수적인 색채와 진보적인 색채를 동시에 가진 정강정책(政綱政策)을 주창하여 자민당과 연대하여 일본 제3당이 되기도 하였다. <군국주의 반대, 반공, 핵금지선언, 평화, 교욱, 복지등...>

 

1975년 창가학회는 SGI <Soka Gakkai International-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일본어 발음 ‘소카 가카이(Soka Gakka)’의 영문 이니셜 ‘SG’에 ‘International’의 ‘I’를 붙여서 SGI 라고 한다.>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광선유포(세계를 향한 포교활동)하여, 1990년대 초에 이르러 148개국에 창가학회를 조직하여 해외 회원수가 17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때 일본에서도 창가학회는 최대 최악의 사교집단으로 매도된 바 있었다. <한 때는 드라큘라 컬트 교단이라고 손가락질..>

그것은 논리적 비판이 아니라 거의 일방적 저주와 비난이었고, 지금도 폄훼의 눈초리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는 핍박 속에서 더욱 번성하는겐가, 그런 비판 속에 수십년 동안 그 수많은 신도를 확보할수 있었는지..>

 

창가학회의 기본적 의례는 근행과 창제이다.

근행은 매일 아침저녁 불단에 모셔 놓은 본존(본존이라 불리는 만다라의 부적-복사본)를 향해 법화경의 일정부분을 읽고, '남묘호렌게쿄'를 '음송'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물 관세음보살’은 내 귀에 익은 우리 할머니의 염불신앙<경전을 몰라도 참선과 염불만 반복하여도 깨달음을 얻는다는>이었는데 창가학회도 염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다.

염불이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의 진리에 귀의하겠다는 뜻)라는 주문(呪文)인데 이 주문을 제목(題目)이라 하고 이것을 음송하는 것을 창제(唱題)라고 한다. <일곱글자인데 여섯음절로 발음하는게 이상하다. 순 일본식 발음은 아닌가보다..>

 

주문의 효험에 대하여는 전에 ‘칼 융’이 서문을 쓴 ‘티벳사자의 서’라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임종인의 귀에다 어떤 주문을 들려주면 죽은 자의 의식이 작용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된다는...>

하나의 신념에 기반한 주문은 몸 속의 생명 에너지가 소리의 파장으로 활성화 된다고 한다.

‘남묘호렌게쿄’라는 주문은 분노와 긴장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사라지게 하고 긍정적인 마음과 행복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절복(포교) 한다.

"일단 믿어보라.본존을 앞에 두고 남묘호렌게쿄를 봉창하라.이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이 전개될 것이다. 이 낫고 가난을 벗어나고 가정의 불화를 해소하면서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창제를 시작하면 점점 믿음이 커질 것이다."


창가학회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현세적 행복이다.

 

모임의 장소도 십자가를 걸어놓은 예배당이나 불상을 모셔놓은 법당이 아니라 그냥 회관(會館)이다. <우리 동네는 ‘한국SGI 영도희망문화회관’이라는 이름의 웅장한 석조 회관이 있다)

모임의 이름도 무슨 ‘예배모임’이나 ‘미사’같은 것이 아니라 ‘행복좌담회’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창가학회에는 승려나 목사나 신부와 같은 성직자가 없다는 점이다.<그래서 이름이 學會인가>

조직의 상하가 없이 모두 평등한 위치에서 회원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의하여 운용된다. <민족이나 빈부나 계급에 따른 모임이라던가 하는 것이 없다>

얼마나 매혹적인가 자발적 결사체, 사제없는 신앙공동체라니. <내가 존경하는 우치무라 간조의 홋카이도 학창시절 그 순정한 신앙공동체가 생각난다>

 

건축헌금 감사헌금 십일조.. 눈 감으라 해놓고 신발 뚱쳐 가더라는..언제나 시끄러운 교회나 절집의 재정문제.

창가학회에서는 재무라 불리는 헌금을 1년에 한번만 한다고 한다. <없을 때는 1만원도 했다가 여유있는 해에는 10만원도 했다가.. 직책이나 직위의 하이라키가 없으니 경비의 유출도 크지 않을듯..>

 

아웃사이더 종교 창가학회는 아웃사이더 재일한국인을 매혹시킬만한 요소가 듬뿍 담겨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고 외로운 재일한국인에게는 하나의 종교적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 <교우들과의 동류의식으로 그들의 소외의식은 해소되었고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회관 내부에서 충분하게 만족되었다.>

대부분 가난과 신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는데, 현실적으로 그들은 그 달콤한 변화를 맛보았다. <신념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인하여 인생관이 바뀌었고 그것이 현실 속에서 효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창가학회는 삶에 사명이 있다는 것으로 기쁨을 느끼고 자신을 성장시킬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서도 나름 만족케 하였다. <매일 근행을 하기 때문에 따로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본존 앞에 부모 사진을 모셔놓고 물과 밥 두 개를 올려놓고 절을 하는등 조상숭배의식도 여일하게 지킬수 있었던 것>

창가학회는 마음 안이 따뜻해 지는 건강한 종교라고 그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그들은 근행과 창제 뿐 아니라 조직활동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직적인 힘이 아니라 자발적 적극적 절복으로 재일한국인의 신도수는 늘어났다. <한국으로 까지 진출하여>

 

조성윤교수에게 재일한국인 연구와 일본 신종교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연구는 민족이라는 측면과 종교라는 측면에서 궁구되었다.

 

생각건대 조교수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듯 하다.

조교수는 재일한국인의 내일에 대하여 얘기하는데,  앞으로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재일한국인은 존속할수 없을 것이라고, 필경은 민족적 색채는 사라지고 일본화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조성윤교수가 후기에서 인용한 문장이 있다.

그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사람이 사회학자의 글쓰기에 관하여 한 말이라고 하는데, 바로 <"프레드 드 뮈세의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에 주목하라">는 문장이다.

내 주제로서는 이 문장의 오의(奧意)를 헤아리기는 난망하다.

허지만 연이어 쓰인 다음의 글에서나마 대충 어림할 뿐이다.

 

<애국주의..오만하고 호전적인..단일한 법..단일한 언어..단일한 세계관..단일한 역사..단일한 미래를 가진 민족국가..민족정신..민족전통......민족주의로서는 사회학연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하기 난망..그러한 점에서 사회학자의 글쓰기는 한중일 국가적 경계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삶의 터전으로 보고..나아가 아시아인을 근대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로 보아 이들이 서로 어떻게 교류하고 얽히는지 세밀하에 분석하면서 사회학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이것이 바우만이 우리에게 지적하는 바.. 일본종교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이라는 용어에 이미 바우만이 지적한 민족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그러나 필자는 국가와 민족에 갇힌 이 용어를 사용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종교와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동아시아 종교문화학회

5년전인가, 조성윤교수가 발기인이 되어 한중일 유명대학의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 종교문화학회>라는 국제학회를 출범시켰다. <부산의 모 대학에서 열렸었는데 나는 그 때 조성윤교수와 김미정님을 처음 상면하여 광안리에서 술잔을 나누었다.>

 

조교수도 지적한 바 작금 지정학적으로 얽혀있는 한중일(韓中日), 세나라는 바야흐로 민족적 색채(쇼비니즘)가 짙어지고 있다.

제3의 길을 모색하는 학자의 노력을 나는 주목한다.

 

이만 쓰련다. 내 횡설수설은.

 

<분명하게 말하지만 내 글에서 두 분의 책의 내용을 유추하여서는 절대 안된다. 논지도 무엇도 없는 어줍잖은 느낌의 아전인수적 지껄임이다. 조교수 논거의 반의 반의 반도 드러내지 못하였을뿐 더러, 김미정님의 감성 또한 반의 반의 반걸음에도 미치지 못한 글이다. 두 분께 해량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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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3.26 17:11

    첫댓글 두 번에 걸쳐 독후감 올려 주셔서...다시 올립니다. 이것은 하편입니다

  • 13.03.27 14:52

    두권의 책 가운데 한권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전에 읽고 있고, 한권은 거실에서 놓아 읽고 있습니다.
    책을 내기까지 기울인 정성과 노력이 참 돋보였습니다. 저도 다 읽으면 독후감 올릴께요.

  • 13.03.27 19:40

    그 독자님들
    저자 김미정 멜이 마라톤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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