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X열차
고속열차인가 본데 한번 타 봤으면 했다. 빨리 달리는 기차에 KTX와 SRT가 있어서, GTX와 함께 이 또한 고속열차가 아닐까 생각이다. 어디 어디 철로는 적자여서 걷어내고 또 철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속도로망이 좋아져서 기찻길은 잘 안되는가보다 여겨졌다. 아쉬운 생각이다. 안전하게 많은 화물을 한꺼번에 수송하거나 수많은 여객을 실어 나르는 게 안성맞춤으로 좋아 보였는데 왜 그럴까.
그러다가 엉뚱한 낭보가 들렸다. 기찻길이 많이 생겼단다. 어찌 하나둘이어야지 단번에 여기저기 막 개통할까 놀랍다. 우리나라 대동맥인 경부선이 복선이었는데 중앙선도 전철 복선으로 되었다는 말이다. 부전역에서 청량리역까지 부산역에서 서울역으로 남북 긴 철도가 이쪽저쪽으로 오르내리게 됐다.
무엇보다 고향 가는 길이 수월하게 됐다. 꾸불꾸불 덜그렁덜그렁 역마다 서면서 세월없이 요란하게 가던 중앙선이었다. 산골짝을 지나고 들판을 가로질러 구불텅구불텅 간다. 아침에 나서 집을 찾아들면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봉화에서 부산까지는 어찌 그리 멀고 먼지 폭신한 자리가 배겨서 이리저리 비비적대야 한다.
배도 고파서 지나는 판매원에게 과자와 빵을 사 먹기도 한다. 영주역에서 탈 때는 홈 가운데쯤 파는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을 들이키고 기다렸다. 아직도 맵싸한 그 맛이 그리워 사 먹으면 그때 맛이 안 난다. 위로는 검은 연기를 푹푹 뿜고 기관차 좌우로는 고단한가 하얀 김을 푸 내뱉으며 스멀스멀 홈으로 들어오는 기차다.
열차가 한참 동안 머물러 있을 때는 왜 이리 못가나 했는데. 다가오는 차를 역에서 교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쪽 상하행선으로 쌩쌩 달리는가 하면 칙칙폭폭 그런 거 없이 전기로 재빠르게 내닫는다. 반나절 안에 갈 수 있다. 버스로 가보니 대구까지 수많은 고개 고개를 넘어간다. 멀기도 멀어라. 다시 바꿔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도 끝이 없다.
해운대와 송정 사이 바닷가 벼랑길을 갈 때는 산에서 돌 굴러 내려올까 걱정이고 비 올 때는 산사태로 위험하다. 그런 철길이 숱하다. 그 길을 모두 철거하고 마을 가운데로 난 것을 가장자리로 옮기거나 고가로 만들었다. 소리소문없이 시답잖게 하더니 어언 끝내고 이리 번듯하게 단장해 새로워졌다니 참 대견한 일이다.
풍광 좋은 동해안을 지나노라면 바닷가로 검은 교각이 드문드문 보였다. 일제가 철로를 놓다가 그만둔 것이다. 올 초부터 그곳으로 ITX가 다닌다. 부전에서 강릉까지 간다니 이게 언제 이뤄졌나. 도로는 흙바닥을 고르면 되지만 침목과 자갈, 철로를 까는 게 얼마나 힘드나. 거기다 다리 놓고 터널을 뚫는 일이 쉽나. 그 먼 강릉까지 아름다운 동녘 바닷가로 꿈의 관광열차가 다닌다.
해운대 벼랑길이 간 곳 없다. 언젠가 보니 없어지고 놀이터로 변했다. 아내 고향 건천 마을 가운데로 중앙선이 지났는데 철로를 걷어치워서 빈 땅이 드러나 있었다. 그건 또 어디로 갔을까. 나 모르는 사이에 휙휙 변했다. 아옹다옹 시내 역들이 시원하고 널찍한 변두리로 바뀐 것 같다. 경주에서 갈라지는 듯 포항으로 해서 울진, 삼척, 강릉으로 올라가는 동해선이다.
1월 1일부터 며칠간 선보이며 시험 삼아 다닌다니 아들에게 표를 구해보라 일렀다. 타고 정초에 강릉을 가보자 했는데 웬걸 어느새 매진되고 없다. 아귀 보살로 달려들어 한발 늦었다. 쉬었다가 한 달 뒤에 시간을 정한 노선이 생겼다. 자주 만나는 당구 친구들과 가보자 했다. 당일 갔다 오자면 멀리는 못 가고 포항까지로 했다.
예닐곱이 부전역에서 만나 갔다. 오전 표는 한 달 전에 동났다. 오후 차를 타고 가면서 차내에서 김밥을 우적우적 먹었다. 우수인 오늘은 봄 날씨가 아니라 영하의 차가운 한겨울이다. 벌벌 떨며 오르니 차내는 아주 따스하고 산뜻하다. 포근한 게 쾌적하다. 정말 멋진 객실이었다. 그런데 빨리 갈 줄 알았던 ITX는 어기적어기적 예전 완행열차처럼 느리게만 간다.
해운대와 기장, 울산, 경주를 거쳐 포항에 닿았다. 2시간 걸렸다. 출발하면서 자리가 맞냐는 손님이 있었다. 우린 잘못 앉아서 다시 옮겨야 했다. 회장 딸이 인터넷으로 예약해줬다. 어찌 집에서 표를 구하나. 휴대전화에 적힌 잔글씨를 보고 ‘올 때와 갈 때’를 바꾸어 앉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졌다. 맞는 자리라고 우기며 눈을 치켜떴다가 잘못된 걸 알고 허탈하게 웃어넘겼다. 늙어서 이 모양이라고 다시 미안하다니 젊은 부부가 되레 겸연쩍어한다.
죽도 시장으로 가 이른 저녁을 시켰다. 전국 5대 시장에 든다며 얼마나 큰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죽죽 이어졌다. 멀리 갈 것 없다 가까운 횟집에 들어가 물회와 홍게를 시켜 먹었다. 너무 많이 먹을까 밥을 넣지 않고 나물과 잡어회를 골라 들었다. 칼칼한 매운탕을 곁들여 맛나게 넘겼다. 홍게가 나와 어찌 먹을 줄 몰라 망설였다.
다리 좌우를 자르고 쪽 빨아 먹는단다. 해보니 된다. 앞에 앉은 대봉은 안 된다며 미적거리기에 힘껏 빨아보라 했다. 그래도 안 되자 한쪽을 끊고 다른 쪽을 분질러서 당기라 했더니 쏙쏙 잘 빠져나온다.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며 다들 엉거주춤 걸어 다녀야 했다. 띵띵 소화도 시킬 겸 날 저무는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배를 꺼지게 하다가 당구장으로 들어갔다.
불은 켜졌는데 주인은 보이지 않고 간 곳 없이 텅 비어있었다. 알아서 한참 치는데 부부가 올라왔다. 남편은 팔다리가 불편해서 아내가 도와줘야 했다. 몇 시간 머물다 나오면서 장애우 부부에게 잘 있으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가다 잠시 뒤돌아보니 고마웠던가 계속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손님이 많이 찾아오길 빌었다.
밤늦은 시간 4호차에 오를 때는 똑바로 제자리에 앉았다. 누가 그 자리 맞냐고 찾아오지 않았다. 부산에 내리니 자정이다. 지하철과 버스도 끝나서 택시로 집집이 돌며 들어갔다. 모처럼 다녀 보니, 타고 내린 역사와 차량이 모두 번쩍번쩍했다. 지난날 꾀죄죄하던 건 이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첫댓글 부산가는 ktx가 그렇게 많은데도,매번 예매하기가 힘듭니다.ㅠ 당장 내일일을 알지 못하는 요즘세상인데, 거의 한달은 남겨놓고 예매를 해야 그나마 좌석을 구할수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 왜이리 이동을 많이 하는거냐"고 혼자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젊을때는 한가해지면 여행을 자주 하고 싶었는데,막상 제 앞에 시간이 숫 하게 주어져도,그리 못할걸 잘 압니다.
마음 먹으신 대로,이곳저곳 여유롭게 다니시는 걸 보니.....대단하시단 생각입니다.
여행 자주 다니시고,새로운환경을 자주 접하셔야,가장 두려워하는 치매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워질수 있답니다.
저도 그리 할겁니다.나중에......
기차가 고속버스와 숱한 관광버스에 뒤로 밀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올래 초부터 전국 철도망이 시원스레 참 잘 구비됐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그리 준비했다니 고맙고 놀랍습니다.
철도 여행이 쉬워져 좋습니다.
많이 다니시고 부산에 오시면 연락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