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TIMF) and Asian Composers League (ACL) proudly present the 28th Asian Contemporary Music Festival in Tongyeong city in the spring of 2009.
Tuesday, March 24, 2009 ~ Tuesday, March 31, 2009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
아시아의 클래식 음악의 메카로 성장한 통영국제음악제는 2000년과 2001년 '통영현대음악제'를 통한 준비과정을 거쳐 2002년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2002년 3월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 (초대 이사장: 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를 설립한 이후, 2002년과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고전 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국제 음악제로서 입지를 굳혀, 명실상부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는 조직 전체를 총괄하는 이사회, 재단 주관 행사의 프로그램구성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와 행사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지난 2003년 4월에는 재단 사업의 제반 여건을 조성하고 후원하는 목적의 후원회 (회장: 김원기 국회의장)가 창립되었다.
이렇듯 조직의 구성이 체계를 갖추고 여러 해의 국제음악제 경험이 더해져, 국제음악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2003년부터는 국내유일의 국제음악콩쿠르인 경남국제음악콩쿠르를 개최, 재단의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고, 2004년부터는 1년 중 단 회에 걸친 일주일 간의 음악제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년 중 다수의 음악제와 관련행사를 기획, 운영하는 선진형 음악제의 모습으로 시즌화를 단행하였다.이는 멀지 않은 장래에 통영에 들어설 통영음악당 건립 사업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며, 나아가 통영국제음악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국제적 음악 도시, 통영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는 음악제의 이름 아래 세계와 아시아 음악문화의 중심축이 되는 음악 축제를 확립하고, 동양의 작은 항구도시 통영을 세계의 음악문화를 품는 문화도시로 성장시켜 세계의 음악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2005년 7월 이홍구 제2대 이사장의 취임과 함께, 그 확고한 의지는 지금부터 서막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영국제음악제와 통영, 그리고 윤이상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여 섬, 바다, 뭍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 통영은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문화적 전통성과 잠재력을 가진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의 고향이며, 역시 통영출신의 소설가 박경리의 작품 속에서 그 정취가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이와 같은 문인들뿐 아니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 평생을 그리워한 고향 앞바다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통영이기도 하다.
통영민들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인 동시에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통영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현대음악의 거장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는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의 음악제로 거듭나, 동양의 작은 항구도시 통영을 세계 속의 음악도시로 발돋움시켰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한려수도를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성, 예술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통영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음악사적 배경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부에 펼쳐진 수려한 자연경관은 통영의 국제적인 음악도시로의 성장과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음악은 조국의 예술적, 철학적, 미학적 전통에서 태어났고, 고향은 나의 창작에 다시없이 귀중한, 정서적인 원천이 되었으며 조국의 불행한 운명과 질서의 파괴, 국가권력의 횡포에 자극을 받아 음악이 가져야 할 격조와 순도 한계 내에서 가능한 최대의 표현 언어를 구사하려고 했다.
'현존하는 현대 음악의 5대 거장'으로 불렸던 작곡가 윤 이상은 동양의 정신을 독특한 선율로 표현하여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그의 음악세계는 동양과 서양의 전통을 공존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 화합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함이었다.
그는 1917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첼로, 음악이론, 작곡법 등의 음악교육을 받고, 1948년부터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를 역임했다.
1950년 부인 이수자 여사와 결혼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하고(1956~1959년) 이어 서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계속 공부하였다.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한국의 국악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에 정착한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 대회의 개막축하 작품으로 오페라 '심청'을 작곡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1985년 서독 뒤뷩겐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1987년 독일의 바이체커 대통령으로부터 '대공로 훈장'을 수여 받았다.
우리 전통 국악의 음악세계와 서양 음의 세계를 전제로 한 그의 음악은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의 상호 동화과정이었으며, 현대 서양의 연주기법을 통한 아시아인의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창조적인 새로운 예술을 형성하였다.
또한 민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 화해의 세계를 추구한 그의 음악세계는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 '심청'과 관현악곡 '신라',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화염에 휩싸인 천사'를 비롯하여 그밖에 많은 실내악곡, 합창곡, 교향곡, 독주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