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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가 되신 큰스님
지난 5월 17일에 동화사에서 조계종 대종사 품서식이 있었다. 우리에게 큰스님은 언제나 큰스님이시지만 세상과 종단이 알아주는 대종사가 되셔서 기뻤다. 특히 하얀 털이 달린 털이개 불자(拂子)를 들고 계시는 사진은 너무 멋있었다고 말씀드렸다.
“떨 불(拂)자 벌레 쫓는 거지요?”
“그렇지. 조실만이 그런 공간과 여유가 있으니까 자기가 청소하고 그래야 하는 거야. 대중들은 대중방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그런 걸 할 필요가 없고. 불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필요가 없는 것인데 벌레들 다치지 않게 사용한 것이 그만 그분이 가지고 있는 징표가 되어 버린 거지.”
하시면서 <무비대종사>라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 가사를 보여주셨다.
“대가사도 하나 더 있고 상패 같은 것도 있고 불자가 있고. 그런 걸 주더라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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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날씨가 뜨거워서 그렇게 더웠던 적이 없었던 듯했다. 시자가 아프셔서 혼자 오신 큰스님을 여러 분들이 도왔지만 잘 보필하지 못했다.
선원에 들어오실 때도 큰스님의 실내화는 잘 신겨드렸지만 벗어놓으신 신발을 깜빡 잊고 그냥 갈 뻔했다. 큰스님이 웃으면서 “신발을 잘 정리해야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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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갚을 일은 인삼 밖에 없습니다.”
금산에서 사시기 때문에 앞으로 큰스님께 인삼을 드릴 수 있다고 경원스님이 말씀하셨다. <불복장의 비밀>이라는 아주 두꺼운 연구서를 대중공양하셨으면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으셨다. 큰스님이 오히려 책이 나온 것을 기뻐하셨다.
“스님 그렇게 실력이 있으니까 인삼 안해도 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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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강원에서 지원스님과 같이 공부하시던 스님이 오늘 처음으로 공부하러 오셨다.
큰스님이 반가와 하시면서 함께 아시는 스님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스님들이 부처님 밥 먹고 불경을 공부 안하고 시나 외우고 해싸서, 부처님 밥 먹고 공부는 언제 하려고, 진짜 묻고 싶어.”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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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원욱스님이 오셨다. 예전에 법공양실을 낼 때 큰스님이 주셨다는 공양금을 도로 가져오셨다. 큰스님은 그 사실을 잊고 계셔서 원욱스님이 ‘띵겨먹을 걸’ 하셨다. 저승에 가면 그 빚이 ‘따블’ ‘따따블’이 된다고 하면서 두 분 스님이 웃으셨다.
“지금은 법공양실을 안할거니까요. 화엄경 하시느라고 많이 힘드실텐데.”
하고 원욱스님이 걱정하셨다.
“화엄성중이 도와서 잘 돌아가고 있어. 빚은 좀 있지만.”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서울에서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래?”
“네 멋있게 회향하셨다고요.”
큰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엄경 강설책을 열 부쯤 더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늘 화엄경 본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51권 점안식을 거행하겠다. 여래출현품 두 번째 권이 되겠다. 서문이 좀 길다.
서문
모든 부처님 마음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 자세히 보라.
부처님의 지혜 의지할 곳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이 의지할 곳 없음과 같도다.
중생들의 갖가지 즐거움과
그 밖의 모든 방편과 지혜가
모두 다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했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의지함이 없도다.
성문이나 독각이나
여러 부처님 모든 해탈이
모두 법계를 의지했지만
법계는 늘거나 주는 일 없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일체 지혜를 내지마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또한 다함도 없도다.
땅 속 깊이 흐르는 물을
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으나
생각도 없고 다함도 없어서
공덕의 힘이 시방에 두루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있어서
만약 부지런히 수행만 하면
지혜의 광명을 빨리 얻으리라.
용(龍)에게 네 개의 구슬이 있어
온갖 보배를 내지마는
깊고 비밀한 곳에 있어서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듯이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도 그와 같아서
온갖 지혜를 내지마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오직 대보살들만 보느니라.
바다에 네 개의 보배가 있어
온갖 물들을 빨아먹어서
바다의 물이 넘치지 않고
또한 늘거나 주는 일 아주 없듯이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물결 쉬고 법의 애착 제거해
넓고도 커서 그지없으며
부처님과 보살들을 능히 내느니라.
하방(下方)과 유정천(有頂天)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모두 허공을 의지했지만
허공은 분별이 없듯이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 대중의 모든 지혜가
모두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했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분별이 없도다.
설산에 있는 약나무 이름을
다하지 않는 뿌리(無盡根)라 하여
모든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를 내나니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종자 속에서 나고
보리를 이미 얻고 나서는
다시 보살의 행(行)을 내도다.
어떤 사람이 마른 풀을 손으로 잡아
세계가 타는 불[劫燒]에 넣으면
금강산도 오히려 활활 타는데
이 마른 풀이 타지 않을 리 없도다.
세 세상 겁(劫)과 모든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여러 중생들
저 마른 풀은 설사 타지 않는다 해도
부처님은 모르는 것이 없도다.
큰 바람 이름을 산괴(山塊)라 하여
대천세계를 능히 깨뜨리는데
만약 다른 바람이 막지 않으면
한량없는 세계를 다 파괴하리니
큰 지혜 바람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의 의혹을 소멸할제
훌륭하고 교묘한 바람 따로 있어서
여래의 지위에 머물게 하도다.
예컨대 여기에 크나큰 경전(經傳)이 있어
삼천세계와 그 분량이 같지마는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일체 티끌도 모두 그러해
어떤 총명한 사람이 있어
맑은 눈으로 분명히 보고
티끌 쪼개고 경전을 꺼내어
여러 중생을 모두 이익되게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있지만
허망한 생각에 얽힌 바 되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거든
여러 부처님이 크신 자비로
허망한 생각 없게 하려고
이와 같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도다.
2016년 12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벌써 51권을 받았는데 여래출현품 두 번째 권이다. 오늘 법공양 들어온 것 가운데에서 용학스님이 강설한 <대방광불화엄경 요해 특강 CD>가 있다.
여러분들이 늘 경험했듯이 나는 화엄경 안에 들어가서 한 구절 한 구절의 뜻과 의미 와 맛과 나름대로 내가 경험한 감동을 어떻게 하면 전해줄까 또 우리가 같이 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강의를 한다. 그래서 화엄경을 전체적으로 개관하는 것, 졸가리를 추려서 화엄경 전체를 잘 정리하고, 앞과 뒤의 상관관계라든지 보살이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한 의미 같은 것을 간추리고 개괄하는 것에는 많이 부족하다.
물론 나 혼자서는 그런 쪽으로 공부를 하지만, 여기서는 ‘화엄경 자체를 맛보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생략하고 넘어간다.
이 요해 특강 CD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 여러분들이 시간을 내서 유심히 들으실 필요가 있다. 화엄경 특강안에 전체 유통의 종류, 전체 구성, 1회설법 2회설법 3회설법 등등 해서 7처 9회 39품 이런 것을 졸가리를 딱 추려서 개론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아주 뛰어난 내용이다. 내가 여기서 강의하는 것에 대한 부족한 점을 이것으로써 보완을 해도 훌륭하다.
한마디로 이것을 화엄경의 전체적인 조감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엄경 부분부분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는 여기에서 우리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하니까 이렇게 조감도처럼 전체적으로 보는 내용이 아주 필요하고 중요하다.
또 이 안에는 대법회 안내라고 하는 인쇄물이 있다.
대구 능화사 혜강스님이 매주 급식봉사를 2천명 이상, 많을 때는 만 명까지도 한다. 리더의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 집에서 논 밭 팔아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자기는 돈 한푼 없으면서도 스님은 리더이기 때문에 자기와 인연된 사찰의 신도들이 몇 명이 됐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급식 봉사를 하고 복도 많이 지으면서 또 앞으로 화엄사상을 널리 펴려고 원력을 세우고 열심히 하는 것이다.
리더인 스님의 원력이 반듯하고 뛰어나면 그가 하는 대로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게 되어 있다. 나도 그 현장에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다. 용학스님이 이번에 가서 강의를 한 내용이 이렇게 CD에 담겼다. 인쇄물 하나라도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운허스님은 우리 교계의 경학에서 최고로 손꼽는 스님이다. 운허스님 탄허스님 관응스님 이렇게 꼽았지 않은가.
그런데 운허스님은 신문이 오면 광고까지 다 읽으셨다.
요즘 신문은 삼십 몇 페이지도 되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신문이 하루에 네 페이지였다.
그래도 그 광고 글자 하나까지 읽으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여기 들어있는 광고지도 내가 자세히 읽어보면서 구절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고 상당히 읽어볼만한 내용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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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까 설명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불복장의 비밀>이라고 하는 이 책이 우선 무게만 해도 얼마이고 두께만 해도 얼마인가. 이 스님은 일찍이 승속 합해서 대중 천 여 명 이상이 내가 맨 처음에 번역해서 낸 열 권의 화엄경책을 글자크기를 크게 확대 복사해서 천일동안 사경운동을 했다.
많은 대중에게 권해서 화엄경 사경을 그렇게나 많이 오래 했다.
사경 운동을 할 때는 여기저기서 너도 나도 책을 부쳐달라고 하였다.
그 뒤에 불복장에 대한 연구를 이렇게 해서 연구 책이 나왔다.
이 분야는 사람들이 크게 관심 갖지 않는 분야이다.
돈도 안되고 팔리지도 않을 책인데 만들면서 엄청 돈이 많이 들었겠다고 아까 내가 이 스님을 보고 이야기 했다. 이런 분야는 사람들이 크게 관심 갖지 않는 분야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정리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아주 중요한 사료다.
스님이 여기 와서 공부하시고 인연이 깊어서 150권을 가지고 와서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우리 150명 스님들이 다 낱낱이 이 책을 읽지는 않겠지만 그 가운데 몇 몇 사람만이라도 뒤에 큰 참고자료로 활용을 한다면 이 150권 대중공양을 올린 값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러 스님들은 이 책을 잘 모시고 가서 집에서 읽기도 하고 보관도 잘 하시고 뒷사람들에게 잘 물려주실 필요가 있다. 아주 소중한 책이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 화엄경 본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오늘은 305쪽(화엄경 제2권 민족사刊) 위에서 셋째줄부터 할 차례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
十廻向品 第二十五之八
10, 第八眞如相廻向
(15) 眞如의 體性淸淨에 譬喩함
譬如眞如가 體性淸淨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能以方便으로 集助道法하야 淨治一切諸菩薩行하며 譬如眞如가 體性明潔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令諸菩薩로 悉得三昧明潔之心하며 譬如眞如가 體性無垢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遠離諸垢하야 滿足一切諸淸淨意하며 譬如眞如가 無我我所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以無我我所淸淨之心으로 充滿十方諸佛國土하며 譬如眞如가 體性平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獲得平等一切智智하야 照了諸法하야 離諸癡翳하며 譬如眞如가 超諸數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與超數量一切智乘大力法藏으로 而同止住하야 興遍十方一切世界廣大法雲하며 譬如眞如가 平等安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發生一切諸菩薩行하야 平等住於一切智道하며 譬如眞如가 遍住一切諸衆生界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滿足無礙一切種智하야 於衆生界에 悉現在前하며 譬如眞如가 無有分別호대 普住一切音聲智中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具足一切諸言音智하야 能普示現種種言音하야 開示衆生하며 譬如眞如가 永離世間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普使衆生으로 永出世間하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體性)이 청정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방편으로써 도(道)를 돕는 법[助道法]을 모아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깨끗이 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밝고 깨끗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로 하여금 삼매의 밝고 깨끗한 마음을 얻게 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때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때를 여의고 일체 모든 청정한 뜻을 만족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나’와 ‘나의 것’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나’와 ‘나의 것’이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충만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평등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평등한 일체 지혜의 지혜를 얻어 모든 법을 비추어 알고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수량(數量)을 초월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수량을 초월한 일체 지혜의 법인 큰 힘을 가진 법장(法藏)과 더불어 함께 있으면서 시방의 모든 세계에 광대한 법의 구름을 널리 일으키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평등하게 머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모든 보살의 행(行)을 발생하여 일체 지혜의 길에 평등하게 머무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중생세계에 두루 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걸림이 없는 일체 종지를 만족하고 중생계의 앞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분별이 없되 일체 음성의 지혜 속에 널리 두루 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모든 말과 음성의 지혜를 구족하고 갖가지 말을 널리 나타내 보여서 중생들에게 열어 보이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세간을 아주 여의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에서 뛰어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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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眞如)의 체성청정(體性淸淨)에 비유(譬喩)함 : 증감이 없는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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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상회향의 큰 제목 밑에 진여와 선근 관계를 소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진여는 우리 불교의 생명이고, 우리의 모든 생명이다. 모든 생명의 생명이고 모든 사람의 생명이다. 그런데 조사어록이나 경전을 통해 진여를 이렇게 소상히 밝힌 대목이 없다. 이 화엄경에서 소상하게 다각도로 진여에 대해서 밝혔다. 그러면서 선행이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이고 선행이 갖는 위력과 공덕, 공능을 진여와 연관시켜서 잘 이야기 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이 지난 시간과 반복되기는 하지만 구절구절 아주 내용이 좋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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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유컨대 진여가
체성청정(體性淸淨)인달하야 : 체성이 청정해서, 진여의 체성은 청정할 수 밖에 없다.
진여에 번뇌가 묻었거나 때가 묻었거나 할 수는 없다. 체성이 청정하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능이방편(能以方便)으로 : 능히 방편으로써
집조도법(集助道法)하야 : 조도법을 모아서, 도를 돕는 법이 많다.
불교사전에는 37조도법을 비롯해서 조도법에 대해 많은 것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도를 돕는 법을 모아서
정치일체제보살행(淨治一切諸菩薩行)하며: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아주 청정하게 잘 다스린다. 선행만이 보살행을 보살행답게 하는 것이다.
간단하다. 다른 것이 없다. 보살행이 그렇게 심각하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선행을 하면 된다. 순수한 선행을 하는 것이 그대로 보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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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체성명결(體性明潔)인달하야 : 체성이 명결하듯이, 진여의 체성은 명결하다. 청정이나 명결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는데 여러 각도로 진여를 설명하고 선근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열하는 것이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영제보살(令諸菩薩)로: 모든 보살로 하여금
실득삼매명결지심(悉得三昧明潔之心)하며: 명결한 삼매에 들어갔을 때, 우리 마음에 티 한 점 없는 깨끗한 마음 그러한 것을 다 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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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무구(體性無垢)인달하야 : 체성이 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무구, 청정, 명결 다 유사한 뜻들이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진정한 선근은 때가 있을 수 없고 조건이 있을 수가 없다. 대가성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했다 하면 거기는 공짜가 없다. 보살의 경지에 이른 사람 외에는 공짜는 없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많이 경험하듯이 공짜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보살의 경지에 이른 사람 외에는 공짜가 없다.
예를 들어서 내가 책을 많이 보내는데 받았다고 연락 오는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다. 100명 중에 한 두 사람이 있을까 말까하니까 참 고맙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는 섭섭하다는 뜻이 아닌가? 받았다고 연락 온 사람이 고맙다고 하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연락 안온 사람에게는 아주 섭섭하다는 뜻이다. 중생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어떤 대가를 바란다. 그래서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원리제구(遠離諸垢)하야: 그런 때가 다 떠나서
만족일체제청정의(滿足一切諸淸淨意)하며: 일체 모든 청정한 뜻을 만족케 하며
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무아아소(無我我所)인달하야 : 나와 나의 것을 다 떠난다. 진여에 무슨 나와 나의 것이 있겠는가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이무아아소청정지심(以無我我所淸淨之心)으로 : 아와 아소가 없는 청정지심으로써
충만시방제불국토(充滿十方諸佛國土)하며 : 시방에 모든 불국토를 충만한다.
선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선행하자는 것이다.
진정한 불교는 선행하자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내 마음 편하게 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는 일단 선행일 수가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선행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선행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고 자기 몸 잘 가꾸고 자기 잘먹이고 자기 호의호식 시키는 것을 누가 세상에서 선행이라고 하는가. 이기주의일 뿐이다.
선행은 어쨌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선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
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체성평등(體性平等)인달하야 : 체성이 평등하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 하야
획득평등일체지지(獲得平等一切智智)하야 : 평등한 일체지혜와 지혜를 획득해서
조료제법(照了諸法)하야: 모든 법을 조요하야
이제치예(離諸癡翳)하며: 모든 어리석음을 멀리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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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초제수량(超諸數量)인달하야: 초제수량한다. 진여는 수량이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저 넓고 넓은 우주를 다 이끌어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진여의 양에는 미치지 못한다. 수량을 초월했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 하야
여초수량일체지승대력법장(與超數量一切智乘大力法藏)으로: 수량을 초월한 일체 지승과 대력법장으로 더불어
이동지주(而同止住)하야 : 함께 머물러서
흥변시방일체세계광대법운(興遍十方一切世界廣大法雲)하며: 시방 일체 세계에 광대한 법운을 크게 일으켜 두루하게 한다.
선행 잘 하면 시방세계에 그 영향력이 다 끼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 잘 아는 경주의 최씨 부자 이야기가 있다. 지금까지도 부자로서 선행을 한 일에 대한 모범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
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평등안주(平等安住)인달하야 : 평등하게 안주하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발생일체제보살행(發生一切諸菩薩行)하야 : 일체 모든 보살행을 발생해서
평등주어일체지도(平等住於一切智道)하며: 평등하게 일체 지도에 머문다.
우리가 이렇게 한 달에 한번씩 화엄경을 공부하고 각자 돌아가서 인연따라 익숙하게 공부하고 있다. 화엄경 번역도 쉽게 만나고 인쇄술이 발달해서 쉽게 접하고는 있다.
그러나 화엄경이 얼마나 귀중한가. 나는 어릴 때 노스님들에게 화엄경의 공덕이야기 인과이야기 영험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어쩌다가 한번씩 이야기 할 뿐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한다.
오늘은 신도님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는 스님을 따라왔으니 ‘화엄경이 얼마만치 중요한가. 얼마만치 큰 위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한마디 이야기 하겠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돈벌이를 나갔다. 한 5, 6년 동안 죽자고 애를 써서 알뜰히 돈을 모았는데 요즘 돈으로 치면 한 1억쯤을 벌었다. 그래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마침 고향에서 좀 먼 곳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 시장을 지나가면서도 자신은 돈을 짊어지고 가는 입장이니까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노스님이 궤짝 하나를 놔두고는 거기에 1억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궤짝 값이 1억인 것이 신기하게도 자기가 번 돈과 똑같았다.
5, 6년 동안 꼬깃꼬깃 모은 돈 액수가 그 사람 머리에는 늘 화두처럼 꽂혀 있었기 때문에 딱 1억이 적혀 있는 궤짝을 이 사람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스님 그 궤짝이 뭔데 도대체 1억이나 합니까?”하고 따져 물었다.
노스님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따지지 말고 묻지도 말라고 하였다.
1억 가치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궤짝을 1억에 판다고 하였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사람도 오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에라 모르겠다. 노스님이 거짓말을 하겠나 사기를 치겠나’ 하는 생각으로 1억을 주고 궤짝을 샀다.
그런데 스님은 이것은 아무데서나 열어봐도 안 되고 꼭 집에 가서 열어봐야 한다고 하면서 금방 궤짝을 내주지 않았다.
집에 가서 열어본다고 약속을 철저히 한 뒤에야 궤짝을 양도했다.
노스님에게 1억을 주고 궤짝을 사서는 집에 까지 들고 가려니까 열어보고 싶어서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더구나 궤짝 무게는 가뿐하니까 더욱 궁금하였다.
고개를 두 개 넘어야 집에 가게 되는데 고개 한 개를 잘 넘고 두 개를 딱 넘어 집이 보이는 곳에 너럭바위가 보이자 이 사람도 그 바위에 앉았다.
자기 집이 있는 마을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너럭바위는 사람들이 시장갔다 오다가 쉬기도 하고 나무하다가 쉬기도 하고 고개를 오가며 쉬고 식사도 하는 곳이다.
거기 떡 앉아 있으니까 궤짝 안이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스님은 꼭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지만 집에 가서 열어보나 집이 보이는 이 바위에서 열어보나 뭐가 다르겠나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집 다 왔는데 이제 열어봐도 괜찮겠지’ 하고 너럭바위에 떡 앉아서는 궤짝을 열어보았다.
열어보니 또 궤짝이 있고 그 궤짝을 열어 보니 또다시 궤짝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궤짝을 다 열고 보니 조그마한 족자가 하나 있었다.
도대체 이 족자 하나가 무슨 그림이고 무슨 글씨인 줄 모르지만 왜 1억이나 하느냐 궁금해서 사람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족자를 펼치니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일곱 글자가 써져 있었다. 이 사람이 어의가 없어서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겨우 세 번 읽고는 딱 기절해 버렸다. 그 때 비몽사몽간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절을 하면서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나는 저 밑에 동네에 과거에 아주 오래 전에 큰 부자였었는데 돈을 많이 모아서 전부 금으로 바꿔서 그 금을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어서 독에 넣어 이 너럭바위 밑에 넣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평생 모은 돈을 금으로 바꿔서 너럭바위 밑에다 넣어놨으니 죽어서도 그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 구렁이가 되었던 것이다.
구렁이가 되어서 재산을 지킨다고 하는 설화가 절마다 많다.
범어사에도 있고 법주사에도 있다.
법주사 여적동지 이야기가 유명한데, 여적암에 가면 옛날에 법주사에서 주지를 산 사람들이 전부 구렁이가 되어서 구멍 마다 구렁이 한 마리씩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또 자세하게 할 것이다.
그래 이 사람도 구렁이가 되어서 금을 지키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혼은 말짱한 구렁이가 ‘대방광불화엄경’을 세 번이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인도 환생한 것이다. 구렁이 몸을 벗어나게 되어 선몽을 해준 것이다.
‘나를 이렇게 제도해줬으니까 그 금은 당신이 가져가시라’고 이 너럭바위 어디에 가면 금항아리가 있으니까 가져가시라고 하게 된 것이다.
1억을 주고 산 대방광불화엄경 일곱 자가 순식간에 몇십억이 되었다.
화엄경의 공덕이 그렇게 크다.
우리가 자주 접하고 쉽게 접한다고 화엄경이 만만한 것이 아니고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사실 화엄경은 보통 경전이 아니다.
우리 스님들이 이런 것을 믿어야 된다.
그리고 이런 것을 자꾸 사람들에게 선전해야 된다.
대구에서 오신 스님도 강의를 할 때 ‘스님들은 이런 것을 철썩 같이 믿고 그것이 사실이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꼭 하시기 바란다.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경전의 이름이라는 것은 법에 불과한데 어떻게 수십억의 물질로 전환이 될 수 있느냐?
법과 물질은 서로 넘나들고 물질과 법은 항상 같이 돌아간다. 법 따로 물질 따로가 아니다. 절대 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라서 낱낱이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나도 너무나도 절실하게 경험한 바다.
내가 가끔 석가모니 부처님이 누구에게 라면 한 그릇 시주한 적이 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한다. 부처님은 밥 한그릇 시주한 적이 없다. 오직 법만 시주했다.
그러면서도 부처님은 ‘대시주자, 나는 법을 평생을 시주하고 살았다’ 라고 하셨다.
오늘날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는 전세계에서 음식이나 과일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조계사 대웅전에 가보니 생수 요구르트 이런 것까지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신기하다. 시류에 따라서 그런 것이다.
범어사 통도사 불국사 해인사가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가 다 되어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법을 보시했다.
법과 물질은 서로 넘나든다. 절대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정법이라면 당연히 물질을 이끌어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된다.
노스님이 궤짝에 ‘대방광불화엄경’을 넣어 놓은 것도, 부자로 있다가 금궤짝을 넣어놓고 구렁이가 되었던 그 사람을 제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 전통적인 불교를 하는 사람들은 잘 믿고 또 진지하게 신도들에게 이야기 해줄 줄 알아야 된다.
천방지축으로 살면 안된다. 기고만장해도 안된다.허장성세는 더욱 안 된다.
그 이야기는 내가 사석에서 좀 소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대 기고만장하거나 허장성세하거나 천방지축으로 살지 말고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불법을 우리가 하면서 살아야 된다.
불법을 조금 맛보면 사람이 아주 기고만장해진다. 그래서 천방지축이 된다.
누구라고 내가 이름은 안밝히지만 그림도 제멋대로 막 그려놓고 선화라고 한다.
불법 조금 맛보면 그냥 천방지축으로 살고 결국 허장성세가 되는 것이다.
불법이 사람을 많이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 많이 망치기도 한다.
우리는 아주 정통적으로 정상적으로 불법을 믿고 실천하고 남에게 전해야 한다.
*
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유컨대 진여가
변주일체제중생계(遍住一切諸衆生界)인달하야 : 일체 모든 중생계에 두루 머물 듯이 중생계에 진여가 두루 머문다. 진여가 없는 중생계는 없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만족무애일체종지(滿足無礙一切種智)하야: 걸림 없는 일체 종지를 만족해서
어중생계(於衆生界)에: 모든 중생계에
실현재전(悉現在前)하며 : 실현재전이니라. 다 앞에 나타나 있다.
선근이 왜 안나타나겠는가? 선행을 제대로 했는데 남이 안 알아준다? 그렇지 않다. 선근 회향을 제대로 하면 다 알게 되어 있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해 하지 아니하면 그것 또한 군자가 아닌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이것은 참 유교다운 소리다.
그 말이 그렇게 좋다고 한다. 보통 상식에서는 대단한 말이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공부하는 도반들끼리 제대로 만나서 그동안 공부한 것 그동안 문제 삼았던 것을 서로 토론하고 밤새 이야기 하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 세 구절이 공자의 전부이고 유교의 전부다.
근사한 말이다. 그러나 불교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선행을 제대로 한 사람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사 문제가 아니고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실현재전(悉現在前)이다. 모든 중생계에 다 나타나게 되어 있다.
실현재전인데 ‘알아준다, 안알아준다’ 뭐라 할 것이 없다.
그 이야기를 한 번 비교해 보기 바란다.
내가 좋은 일 했다. 내가 공부 많이 했다. 그건 저절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안 알아 준다고 서운해 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말이 아주 천양지차다.
*
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무유분별(無有分別)호대 : 분별이 없되
보주일체음성지중(普住一切音聲智中)인달하야 : 일체 음성지중에 널리 머물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구족일체제언음지(具足一切諸言音智)하야 : 일체 모든 말의 지혜를 구족해서
능보시현종종언음(能普示現種種言音)하야 : 능히 가지가지 말을 시현해서
개시중생(開示衆生)하며 : 중생들을 개시한다. 선근회향은 말도 된다.
내가 아는 어떤 영도에 있는 보살님이 미얀마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태국도 자주 드나든다. 그렇게 드나들면서 어디 가서 대중공양하고 어떤 스님 초청하고 어떻게 했다고 늘 나에게 와서 자랑을 한다. 나라이야기 하고 영도에 있는 보살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아주 무식한 줄로 아는데 거기가서 그나라 사람들과 말이 어떻게 통하느냐고 내가 물었다. 나는 어디 가도 말이 제일 약점이니까 두려운 것이다.
“말이 안통하면 말을 그래 배워서 서로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되냐?” 하니까
나보고 하는 말이 “아 돈있으면 됐지. 말을 뭐하러 배워요?” 하였다.
‘말을 왜 배우느냐 골치아프게, 영어고 일어고 중국어고 미얀마어고 태국어고 배울 필요가 없다’ 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통역하는 사람 열 명이고 스무명이고 데리고 다닐 수 있는데 뭐할라고 말을 배우느냐. 돈이 있으면 됐지 말을 왜 배워’
여기 나오는 구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그런 뜻이다.
선근회향은 언음지혜에 구족해서 종종언음을 널리 시현해서 중생에게 개시한다.
매칭이 되는가? 나는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
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영리세간(永離世間)인달하야 : 영원히 세간을 떠났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보사중생(普使衆生)으로 :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영출세간(永出世間)하니라: 세간을 영원히 벗어나게 한다. ‘세간’하면 말하자면 ‘번뇌 무명 악행 이런 것들로 뒤덮여 있는 것’을 여기서는 세간 이라고 표현한다. 선근은 그런 세속적인 악행들을 널리 벗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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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무비스님 부디 건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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