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산
어느 산자락을 올라야 소리없이 다가오는 봄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창녕의 관룡산을 찾기로 했다. 화왕산 억세평전의 유명세에 눌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아 조금은 생소함이 있는 산이지만 한번이라도 산을 올라본 사람이면 앙증맞도록 아름다운 산세에 매혹되어 다시 찾고 싶어지는 그런 산이다. 오래전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산을 찾았다가 단번에 반해버렸던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고 싶어 파계사로 산행을 하려는 아내를 달래고 얼러 아침부터 서둘렀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관룡사>
오늘 산행의 길동무는 큰 00씨 부부와 작은 00씨 모두 5섯명이었다. 며칠전부터 이어지는 따뜻한 날씨 덕분에 금호강변에는 개나리가 노오랗게 움을 틔워 설레임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핸들을 잡은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믿을 때는 몽땅 믿어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인데도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오늘도 네비를 믿지 못해 결국 창녕에서 내려 뱅글뱅글 돌며 옥계계곡을 찾아야 했다. 계곡이 깊어서인지 입구부터 그림 같은 별장과 팬션들이 이어졌다. 한눈을 팔며 옥계저수지를 돌아오르자 계곡의 끝자락에 병풍을 두른 듯한 관룡산이 멋진 모습으로 반겼다.
<관룡사의 대웅전 / 보물 제212 호>
밤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아님 주말이어서인지 등산객은 가뭄에 콩 나듯이 보였다. 관룡사 입구에 차를 세우고 작은 석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 관룡사는 천년고찰답게 아늑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병풍을 두른 듯한 산자락과 어우러지는 산사의 모습이 더없이 예뻤다.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관룡산이라 했다는 관룡산에는 관룡사, 청룡암, 구룡산, 용선대 등 모두 용과 관련된 사찰과 지명들이다.
<티없이 맑은 감로수>
우리나라 사찰 치고 원효와 의상대사의 명성과 발자취 없는 사찰이 없듯이 관룡사 또한 원효대사가 그의 제자 송파와 100일 기도를 마치던 날 화왕산의 월영삼지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해서 관룡산이라 하고 그 뒷산을 구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통도사의 말사인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세워져 번성했으나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약사전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여느 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으나 관룡사는 보물을 넷이나 간직하고 있는 불도량이 깊은 절이다.
<봄을 알려주는 생강나무 / 향기가 쥑인다>
<천길 난간에 기대어선 청룡암>
오늘 산행은 절의 뒷편으로 해서 병풍바위를 올랐다가 왼편의 산자락을 따라 용선대로 돌아오기로 했다. 솔향기 물씬 풍겨오는 산행의 들머리 숲길은 편안함이 있었다. 짝짓기 철이어서인지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히 크고 소란스러웠다. 대숲을 지나면서부터 길은 가파르게 올려쳤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은 설레임과 생명의 꿈틀댐이 있어서 좋다. 남지에서 왔다는 마음씨 곱고 예의바른 아가씨와 길동무가 되었다.
<잠시 쉬어가며>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가 정자 좋은 곳에 앉아 숲의 맑은 공기에 한껏 취해 본다. 누군가가 쉬어갔을 이곳에 내가 앉아 가뿐 숨을 고른다. 내가 떠나고 나면 다시 이곳에 또 누군가가 앉아 나처럼 이렇게 쉬어 가겠지? 보내고 맞음을 되풀이 하면서도 펑퍼짐한 바위는 말이 없다. 여기서 한참을 더 올려치자 절벽 아래로 그림같은 청룡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의 약수 한사발로 목을 축이고 사립문을 들어서자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린 생강나무 향기가 코끝에 묻어난다. 암자 입구의 큰 고사목이 삶과 죽음의 의미로 서 있다.
<청룡암에서 내려다본 속세>
왼편의 병풍바위와 어우러지는 소나무들이 환상적이다. 삐죽삐죽한 산봉우리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옥계리 저수지의 전경이 아름답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돈이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산신각의 처마 끝으로 올려다보이는 암봉들이 황홀함으로 다가선다. 요사채 뒤쪽 암벽에는 아담한 마애불이 모셔져 있었다. 이곳에 서서 어깨를 들썩이다보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키가 훤칠한 스님이 알려준다.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더니 스님도 사람이었나보다.
<마애불 / 가부좌를 틀고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청룡암과 아름다운 구룡산>
일행이 저만치 가버린 뒤에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놓았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더욱 가파르게 올려쳤다. 로프를 잡고 숨을 헐떡이며 땀에 흠뻑 젖어서야 병풍바위 삼거리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거친 숨과 이마의 땀을 한꺼번에 씻어가는 봄바람이 살가왔다. 산에 오른 사람만이 산의 멋을 안다. 내려다보이는 조망들이 너무 멋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올망졸망한 산자락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디에서와 어디에서 끝을 놓는지를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곧 고운 꽃망울을 터뜨리게될 보랏빛 참꽃 망울이 예쁘다. 어느 틈에 봄이 벌써 이 산마루에도 와있었다.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길인데 한 눈 팔면 꽥이다>
한참을 쉬며 넋을 놓고 구룡산과 주변을 돌아보다가 암릉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정상으로 여유있는 발걸음을 놓았다. 깎아지른 암릉 지대였으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았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지나 육산으로 이루어진 관룡산의 정상은 그 흔한 팻말 하나 없는 밋밋한 헬기장이었다. 멀리 화왕산의 정상과 마른 억새 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화왕산까지는 왕복 6킬로 가까운 만만치 않은 거리였기에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세상살이도 때로는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있나보다.
<암봉을 올라 뒤돌아본 구룡산>
쉬어가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아 용선대 길로 한참을 내려서다가 정자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 근심 걱정을 다 놓고 산자락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안함의 여유가 있어 좋았다. 일상의 빨리빨리가 아닌 고요와 느긋함의 낭만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봄의 햇살을 받아 나무들은 움을 틔우고 한껏 움추렸던 산빛도 바쁘게 푸르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산세와 느낌이 너무 좋았다. 능선을 따라 서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가 예쁜 분재였다.
<정자가 너무 좋아서 ㅋ>
<바라보이는 곳이 화왕산의 억새평전이다>
정겨움이 있고 정원같이 느껴지는 길에 마음을 빼앗기며 조금 더 내려서자 멋진 용선대였다.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그리움이 많아서인지 보름달이 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말없는 세월을 지켜오며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텐데 잔잔한 미소로 나를 맞는다. 간절히 빌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요즘은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젊은 부부가 무슨 간절함이 있어서인지 떠날 줄을 모르고 옷이 흠뻑 젖도록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섰다.
3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산행을 4시간에 걸쳐서 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여유를 즐긴 산행이라 산을 내려서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관룡산은 절 뒤로 서 있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모두 승천을 앞둔 용의 모습이었다.
<용선대와 석가여래좌불>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애인이 없는 사람은 꼭 가 보시길....>
돌아오는 길은 나들이 기분을 멋진 드라이브로 마무리하기 위해 청도로 향했다. 창녕 시내를 지나 화왕산을 바라보며 새롭게 단장된 비티고개에서 차 한 잔으로 밀려오는 졸음을 쫓았다. 경남과 경북이 이 비티고개를 사이에 두고 달리하고 있었다. 감의 고장 청도에 이르자 감말랭이는 없고 길거리에 철 이른 노란 참외가 입맛을 유혹했다. 팔조령 터널을 지나 신천으로 이어지는 둔치에는 하루 햇살에 활짝 핀 개나리가 반겨주었다. 아장아장 오는 봄을 맞으려고 찾은 창녕의 관룡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정겨움이 있어 진달래 곱게 피는 4월이면 꼭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2008. 3. 22.도까비>
첫댓글 산 정상 바위정자에 앉아있는 자네의 모습이 보기에 좋구먼 ~~~ 봄바람 타고 남쪽에서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 맞으려 나도 한번 산행을 해야겠구먼 ~~~
봄바람과 함께 오는 소식같으네
신천을 따라 노오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네. 경대교와 도청 앞의 벚꽃도 꽃망울을 막 떠뜨리고 있고........생동하는 봄이네. 꿈과 희망을 마음껏 가져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