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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카페 게시글
●-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휴가 넷째 날-경주(하)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66 08.08.08 15:1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황룡사 옛터 (皇龍寺址)

 

 

 

 

황룡사가 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옛터를 찾고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 철거(?)된 나대지(裸垈地)라 얼마나 큰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안내판을 보니 25,000 평이란다. 회암사(檜巖寺) 옛터를 보면서 

야 크구나 느꼈는데 그 발굴현장이 이것 저것 다 합하여 1만 평 정도였다.

 

 

 

사진은 남문 터에서 바라 본 목탑지로 화면 전체 뿐 아니라

, 우, 그리고 카메라 뒤로도 절터였다. 크기가 다가 아니고

크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엄청나게 큰 절이었다.

 

 

사진은 1238년 몽고침입 때 절과 함께 불타버린 목탑-9층탑을

지탱하던 심초석이다. 크기 435 x300 cm 무게 약 30 톤이다.

황룡사의 높이는 80m 정도로 추정한다.

 

 

사진은 황룡사 9층탑 모형이다.

이걸 복원하자는 논의가 무성한데 글쎄다.
증거는 심초석 등 주춧돌뿐 인데 나머지를 상상만으로 어쩌자는 것인지?

탑 높이만 해도 당시 어떤 자를 썼는지 모르니 80m 인지 66m 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른 세부사항도 추정, 공상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으니 ‘짝퉁’을 세우게 되는 것 아닌지?

 

한편 만들어야 된다는 주장도 들어보면 그럴 듯 하다.

왜냐하면 황룡사 터란 결국 허허벌판으로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한계가 있으니 뭘 볼거리를 만들어 놓아야 관광객을 끌 수 있는 것 아니냐?

또 굳이 옛 탑 복원이라고 하지 말고 불교의 새로운 성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 는 것이다.

 

"황룡사 발굴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증, 고증'만 외쳐야 하는가,

왜 경주는 (관광) 가이드가 유적을 설명하느라 입에 거품을 물어야 하는가.

보여줄 게 없어서 그렇다. 황량한 경주 벌판에 돌 몇 개 놓인 곳에 사람들을

안내하고는  저것이 황룡사 목탑 자리며 얼마나 위대한 건축물이었는지를

설명하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다.  우리도 황룡사를 멋지게 복원해 보자."

 

이상은 경주 현지 어느 문화동우회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굳이 옛 목탑지가 아니라 근처에다 복원(?) 또는 새로 만들고(?)

함께 자료관도 세우되, 옛터 자체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분황사탑(芬皇寺塔)

 

분황사탑은 황룡사 옛터 바로 옆에 있다.

황룡사 터가 워낙 커서 거기 딸린 경비실 같다.

여기에 우리 때 교과서에 나오던 (요즘 교과서에도 있지 않을까?)

분황사 석탑(芬皇寺 石塔)이 있다.

 

 

 

원래 7층 내지 9층으로 추정하는데 일제 때 해체 보수하면서 3층으로 만들었다.

이름은 석탑인데 생기기는 벽돌을 쌓아 올린 것 같다.

바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었기 때문이다.

당시 문화의 중심부 당나라 장안 근처-황하 유역은 돌도 나무도 드물어

뭘 만들려면 흙으로 구운 벽돌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신라사람 눈에 그것이

또 근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문화란 베끼는 것부터 시작하여

어떤 식으로든 변형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러면 고유문화가 되는 것이다.

어쨌던 돌로 벽돌(전-塼)모양을 모방했다고 해서 모전(模塼) 석탑이다.

 

네 귀퉁이에 서 있는 사자가 참 잘 생겼다.

 

 

 

탑 감실 입구를 지키는 인왕상은 근육이 꿈틀거리는 듯 하다.

 

 

 

 

분황사 탑을 보다 보니 작년에 소개한 필자 고향 근처 봉감 석탑이 생각난다.

 

 

사진: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에 있는 봉감 모전오층석탑(模塼五層石塔)

이 탑도 국보(國寶)다. 그러나 같은 국보라도 솔직히 분황사 탑보다는 떨어진다.

그러나 작년 소개할 때도 썼지만 이런 훌륭한 탑이 고향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황룡사, 분황사 다음 괘릉을 다녀오니 점심 때가 되었다.

뭘 먹으면 좋을까?

수소문하니 대강 싸게 한 끼 때우기는 천마총 앞에 몰려있는 ‘쌈밥’ 집이고

품위 찾아 경주 양반집에서 내려오는 음식 맛 보려면 최부자 집안에서 하는

요석궁(瑤石宮)을 가라는 것이다. 돈 좀 쓰더라도 제대로 한 끼 먹기로 했다.

 

 

요석궁(瑤石宮)

 

왜 요석궁인가 했더니 최부자 마을을 신라시대 요석궁 터로 추정한단다.

무열왕(김춘추)의 딸 요석공주가 개천을 건너다 물에 빠진 원효대사를

맞아 들여 설총을 낳는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이미 원효는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랴? 하늘 받칠 기둥감을 내 찍으련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라는 성적 암시가 매우 짙은 멘트를 했다던가?

 

 

요석궁 외관

 

 

 

요석궁 정원

 

 

이런 뜰을 앞에 두고 깨끗하게 한지로 도배 한 널찍한 방에서

한 끼 먹는 사치를 한 번 쯤은 부려도 좋지 않을까?

 

 

 

 

상차림

 

 

 

떡갈비

 

 

희게 보이는 것은 인삼이다.

 

돔배기

 

 

돔배기란 경북지방 말로 상어고기다.

제사에 반드시 올릴 정도로 즐긴다.

 

 

도미구이

 

 

 

식혜(食醯)

 

 

 

즙장(汁醬)

경상도 사람들은 발음을 제대로 못해서 보통 집장이라고 한다.

 

 

 

즙장은 집집마다 다르나 최부자 집은 온갖 해초류를 넣는다고 한다.

 

요석궁 음식을 요즈음 요리계(界)를 석권(?)하는 전라도 정식과 비교하면-

필자에게 그럴 내공은 없지만 굳이 한다면-전통 양반집 음식답게 그렇게

맵거나 짜지 않다.

 

또 전라도는 4인 일상이라야 제대로 맛을 보고 또 손님을 받는데,

요석궁은 2인상, 3인상이 아예 따로 있다.

(혼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안 될 것이다)

2인상은 인당 가격은 같아도 3인상에 비해 가짓수가 빠진다.

전라도 음식점들도 이건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가격은 3만원, 5만원, 7만원, 10만원 (모두 일인당)이 있는데

밖에 걸린 플래카드에 점심상 2만원도 적혀 있어 물었더니 단체용이란다.

필자야 뭐 제일 하찔 3만원 짜리로 갔지만, 위(胃)가 1/3 밖에 없으니

그나마 다 먹을 수도 없었다. 좋은 음식 남겨야만 하는 것도 슬픈 일이다.

 

요석궁 전화: 054-772-3347, 경북 경주시 교동 59

 

이 요석궁은 마지막 최부자-최준 씨의 동생 네 집이고

그 옆에 진짜 최부자 집이 붙어 있다.

 

 

최부자집

 

집은 조선 후기 전형적 양반집 형태다.

 

바깥채

 

 

 

안채

 

 

 

뒤뜰과 사당

 

 

 

 

그 유명한 최부자 집 곳간

 

 

 

경주법주

 

 

최부자 집에 붙어 경주법주 만드는 곳이 있다.

 

 

월정교

 

최부자 집 옆을 흐르는 남천(南川)에 월정교 라는 다리가 있었다.

 

 

원효대사가 여기를 건너다 물에 빠져서 젖은 옷을 말리러 요석궁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건너편 둑 사진 왼쪽이 최부자 집이다.

이 다리를 다음과 같이 복원한다는데 사업규모가 무려 235억 원이다.

 

 

 

그림 대로면 근사하겠지만 여기도 황룡사 탑처럼 확실한 것은 남아 있는

돌멩이 밖에 없다. 새로운 볼거리에 대한 수요와 고증에 충실 하자

(충실을 고집하면 결국 못한다. 지금까지 모르던 디테일이 어디서 솟아나나?)

 

사이에 논쟁이 치열하다. 일단 착공은 했으나 문화재 청장이 바뀌어

브레이크를 거는-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모양이다.

 

 

경주박물관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모아 놓은 곳이 박물관이니 거기 가면 제일 좋은데 마침 월요일이다.

 

왜 대한민국 박물관들은 하나 같이 월요일에 놀까?

 

그러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박물관 바깥도 만만치 않다.

용산 중앙박물관도 사람들은 보통 내부만 신경 쓰지만

외부에 전시한 보물-주로 석탑 류가 수두룩하다.

 

바깥은 당연히 공짜다.

MB 새로운 정책 탓인지 요즈음 박물관 공짜니 이건 메리트가 못 된다.

박물관 무료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상징적 액수라도

거둬 너무 소란스럽게 몰려드는 것을 막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필자가 다녀 본 외국 박물관의 경우 대개 다만 얼마라도 받는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의 경우만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길쭉한 관음

 

 

경주 남쪽 낭산(狼山) 서쪽 기슭에 있던 관음보살이라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목 잘린 부처님들

 

 

분황사 발굴 때 우물에서 나왔다고 한다.

누가 이 부처님들 목을 잘랐을까?

조선조 유학자들이 목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우물에 던진 것은 아닌지?

 

요즈음 불교계에서 MB 정권에 약이 올라 조선조 5백 년도 견뎠는데

5년을 못 참으랴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고선사 석탑

 

 

박물관 뜰 한 쪽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탑이 있어

해설을 읽으니 감은사 석탑과 닮았다고 한다. 그렇지.

 

 

감은사 탑 !

필자가 처음 본 것은 71년도 인가 인데 그 때는 그저 그런 돌탑으로 보아 넘겼다.

그러다 유홍준이 화려하게 ‘구라’ 치는 바람에 갑자기 뜨게 되고,

그때 난 뭘 봤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문화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말빨’ 있는 친구들이 ‘썰’을 풀어 주어야 한다.

 

 

에밀레 종

 

박물관 밖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 곳은 성덕대왕 신종-에밀레 종이다.

 

 

 

 

필자도 요즈음 주제넘게 글 쓰지만 사실 문화재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종 저 종 보다가 에밀레 종 앞에 서니 바로 이것이야 소리가 나온다.

최고를 느끼려면 먼저 시시한 것을 두루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더 두툼해서도 안 되고 얇아서도 안되고

한 점 뺄 수도 없고 더 할 수도 없는 상태를 느끼지 않을까 한다.

 

 

 

에밀레 종 비천상

 

 

 

 

여기까지 오후 3시 반인데 태양이 작열하여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흘러 더 이상 돌아다니다가는 더위 먹을 것 같다.

그것은 똑똑한 일이 결코 아니니 아쉬움을 남긴 채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이상

 

점심 전 괘릉을 다녀왔지만 석물이 참 좋아서 사진을 여러 장 보여 주고

싶어 짤막한 멘트와 함께 따로 글 한 꼭지 만들어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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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8.09 08:36

    첫댓글 항상 휴가처럼 지내시면 좋겠다는 생각을해봅니다 직장에 얽매인시간이 아깝다는 그런 마음이~뫼셔갑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건강 잘 살피시며 더위에 조십하십시요 저도 너무더워 지치더군요,

  • 08.08.09 10:55

    보면 볼수록 우리 함오의 보물임을 새삼 느끼게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함오의 역사를 정리하여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시길....언젠가 형의 그 해박한 지식이 우리 모두에게 따사로이 비추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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