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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 : 성령강림주일
성서일과 ; 행2:1-21, 롬8:22-27, 요15:26-27,16:4-15
설교제목 ; 우리에게는 인내와 확신이 필요하다
지난 수요일에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가난을 일부러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좀 유별난 성격이라서 억지스럽게 가난을 좋아할 사람
이 있을는지 몰라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가난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안의 가장
(家長)이 능력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사업에 실
패해서 가난하게 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다
보니, 정작 그 자신은 어렵게 사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가난하게 사는 경우란 극히 드문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지, 이 세상사람
중에 가난이 좋아서 일부러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거의 확신
하건대, 지금 현재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민식 씨가 ‘주와 함께라면’이라는 복음성가에서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아’라고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작사자 김민식 씨
의 의도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걱
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그 다음 소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참된 부요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라고.
그리고 2절에서는 ‘주와 함께라면 병들어도 좋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참된 강건함이 내 맘에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김민식 씨의
생각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될 경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부요와
참된 강건함이 있기 때문에, 혹시 가난하게 되거나 병드는 일이 생기더라도 걱
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가난이 좋아서 가난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닐 것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된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
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
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물질적으로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어려운 사람도 도와가면서 인간답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에 품은 소망일뿐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 좌절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꼭 경제적인 면에서만 그런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
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꿈과 소망이 있는데, 그 소망을 이루고자 하나 역부족을
느낄 경우,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반드시 감
당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
을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그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도 내게 여유가 있을 때에나 나를 반갑게 대하
는 법이지, 가난하게 되어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줄 사람은 극히 드문 일입니
다. 아주 친한 친구라도 한두 번이지,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느낌이 들 때에
는 도움의 손길을 거두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천지사방을 둘러봐
도 도와줄 사람은 전혀 없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을 때, 그야
말로 절벽 앞에 선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로 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에 처하게 될 때에, 우리는 자신의 미약함과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홀로 자신의 힘
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
고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끔, 애시당초 인간을 그처럼 약간 부족하고 연약
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한 평생을 제대로 잘 마칠 수가 있는 것입
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
시다. 그러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구는 아마 오랜 전에
이미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
이 핵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경우에는
저들은 결코 핵을 사용할 수 없으리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신 것은 너무나도 잘하신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의 종말은 벌써 오래 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
다. 물론, 인류 역사상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수시로 등장하곤 했습니
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능
력을 제한하신 대신에, 우리에게 더 이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필요할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러니
까,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경우, 그러나 인간의 힘만
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인간을
도와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사우동에 있는 하나약국을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
국의 약사 중 한 분이 집사님이신데, 어느 날 그 집사님이 들려준 이야기라고
하면서 전해주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저와 비슷한 연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분도 눈이 잘 보
이지 않아서 항상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하나님께 기도
하기를 ‘제 눈을 밝게 해주시면 일 년에 열 번 이상 성경통독을 하겠습니다.’라
고 서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눈이 좋아져서 이제는 안경을 쓰지
않고도 성경을 잘 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간을 도와주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
나 지혜와 능력이 부족할 때,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들어주
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좋은 뜻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한 부
분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로마서 8장에서 말하기를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
와주신다(26)’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를 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실한 감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 27절의 말씀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말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주님의 뜻에 맞게끔 간구하시는 성령의 뜻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우
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애쓰는 모습과 노
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까요?
1.예수님(진리)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진리이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로 와서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이다(현대어성경, 요15:26)”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은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항
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
를 원하여 열심히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모든 사실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흑인 농학자로서 땅콩박사라고도 일컬어지는 ‘조오지 카아버’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가끔 들어서 알고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이분은 수백 종의 우수 농작물 종자를 개발하는데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
람입니다. 그래서 미국 상원에서는 그를 초청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치하하
기 위해서 조그마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박사님,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초인간적인 발명과 개발을 많이 할 수가 있었습니
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카아버 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높이 치켜들면서 “나의 모든
지혜는 여기에서 나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상원의원이 약간
비웃는 듯한 말투로 “아니, 박사님 땅콩기름 짜는 법도 그 책에서 배웠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카아버 박사는 대답하기를 “땅콩기름 짜는 법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이 세
계를 더욱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통하여 저에게 ‘나와 함
께 일하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카아버 박사는 ‘하나님이 함께 일하자고 하셨기 때문에 학문을 하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
니까? 성경을 통해서 들었다고, 카아버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학문
을 해도 하나님과 함께 연구했기 때문에, 그가 계속 연구하는 분야에 하나님께
서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임 받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는 우리에게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와 능력
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바로 알고자 힘쓰게 될 때, 성령의 도우심
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
씀 위에 바로 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받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할 경
우, 자칫 악령이 그 악한 마음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욕심으로 기도해도 기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악령이 던지는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단지 세
상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거나 기도할 때에는, 악한 마귀가 그
런 사람의 그런 악한 마음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
려주겠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과 거
의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일단 넘어
가게 되면, 그 후에는 계속 마귀의 종노릇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게 아니
다 싶었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쉽고도 편하게 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쉽게 믿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조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원칙대
로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편리하게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하는데 조금은 지장이 있더라도, 진리를 알고자 애쓰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것만 너희에게 전
해주실 것이며, 미래에 있을 일도 알려주실 것이다(요16:13)”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도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우
리가 어찌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예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오늘 진정으로 예수를 잘 믿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자 원한다면, 자기주장
을 버리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2.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성령 받은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발전소에 근무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 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
니다. “아빠, 성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지요?”
아버지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주마.”하고서는, 아들을 데리고 발
전실로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기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계란다. 전기로
불도 밝히고 방을 따뜻하게 해주는 난로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너도 잘 알
고 있겠지? 그러나 전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렇지만, 전기는 이
기계와 전깃줄에 항상 흐르고 있지.” 이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전기가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겠어요!”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당
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네가 전기를 보기 때문에 믿는 건 아니겠지? 전기가 일
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성령을 믿는 것도 바로 이와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예수
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할 때, 성령이 그런 사람과 함께 계시
다는 것을 믿게 되는 거란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악령
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우리의 행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아신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그 말과 행실을 보아서 하
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마귀에게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분명히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서, 우리는 사탄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 누구만을 가리
켜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이처럼 하나님의 마
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자주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지금의 시련과 고난을 잘 이
겨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자 원한다면, 우리는 결코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께
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권리를 받게 될 날
을 고대하고 있다(현대어성경, 롬8:23)’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고통과 고난에서 놓여나기 위해서 신음하며 그 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두 번 다시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될 새로운 몸을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확신과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의 말씀대로 살면 금방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금방 확신을
갖게 해주는 반면에, 하나님의 진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야 그 진가
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해결방법은 마약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금방 효과가 있어서 좋은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임수에 불과합
니다. 마약을 계속 사용하면, 몸도 망가지고 인생을 망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
다. 그러니,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육신이 편하면, 그 영혼은 점
점 병들어가게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쉽고 편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
다. 성령은 진실하신 분이라서, 진실하게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오십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힘만으로는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에
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
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모습이 진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가정교육에 매우 엄격하다고 합니다. 자녀가 곁길
로 갈 경우, 엄히 꾸중하면서 무서운 체벌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저 분이 정말 내 아버지가 맞을까?’하고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자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야, 네가 잘못할 때
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 너를 때릴 때마다, 아버지는 그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고 있단다.”하고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하
여 눈물 흘리고 있을 때에,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아들을 위로해주시는 어머니
처럼,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위로해주시는 것입니
다.
우리가 거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고 생각하는 그 고독한 순간에도, 내 영혼을 보듬어 안아주시는 성령님의 위로
의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성령의 위로함과
도우심을 받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할 경우, 하나님은 틀림없
이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심으로써 은혜가 되고 복이 되는 길로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
다. 아멘. 후원계좌 ;423070-52-033781(정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