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하는 마음
조수현
육아 휴직해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단연 1등은 평일 낮 책모임이었는데 운 좋게 집 앞 독립서점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가드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7명의 회원이 월 2회 목요일 오전에 만나 특정 작가님의 그림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이야기 나누는 학습이다.
지난 목요일에 2회 차 모임을 했다. 윤지회 작가님의 생애를 탐구하고 그림책을 읽었다. 윤 작가님은 그림과 글을 모두 쓰는 분으로 독립된 그림책도 많고 삽화 작업도 활발하게 하신 분이다. 그런 작가님이 30대라는 젊은 나이. 아이가 두 돌 지났을 때 위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2년 9개월의 항암 치료 과정 중에도 꾸준히 그림책을 썼던 그분은 결국 <도토리랑 콩콩>을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강사님이 <도토리랑 콩콩>을 읽어주었다. 주인공 도토리를 비롯한 땅콩, 밤, 캐슈넛, 아몬드 등 다양한 견과류가 친구로 등장해서 서로 도와주는 이야기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친구랑 친하게 지내렴. 여느 그림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인데 작가님의 사연을 알고 보니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어린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날 엄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많은 당부 중에서 고르고 골라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유언을 그림책으로 남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작가님 아들 또래 아이를 키워서 더 그런 것이겠지. 얼마나 울었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 간판에 쓰인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도서관에 가서 작가님의 위암 투병기를 엮은 책 <사기병>을 빌렸다. 항암 치료의 고통, 환자가 경험하는 현실적 어려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책 마지막 부분에 작가님 어머니께서 독자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목 놓아 울었다. 울면서도 이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작 며칠 전에 알게 된, 돌아가신 지 4년이나 된 작가님인데….
사실 윤 작가님의 투병기를 읽으며 나의 오랜 블로그 이웃이었던 ‘작은 큰 통님’ 생각이 많이 났다. 작은 큰 통님은 글쓰기를 오래 해온 70대 어르신으로, 거품 없는 글쓰기라는 블로그를 오래 운영한 분이다. 어떻게 이웃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7-8년 전 우연히 읽은 글이 날카로우면서도 유머가 있어서 그때부터 새 글 알림이 뜨면 읽고 종종 블로그를 찾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대~40대까지가 주 교류 대상이었던 내게 큰 통님은 거의 유일하게 즐겨 찾는 70대 블로거였다.
수많은 온라인 이웃 중 한 명이던 내가 큰 통님과 안면을 틀 수 있던 계기는 그분이 공공근로 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다는 글에 축하 댓글을 쓰면서였다. 수상작을 읽고 소감을 적었는데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종종 서로의 글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꽤 친한 랜선 이웃이 되었다. 글의 마지막이 늘 교훈으로 끝나서 속상하다고 했던 내게 진지하게 써준 조언과 ‘애미’가 아니라 ‘에미’라고 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 큰 통님이 2020년 여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생면부지였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글을 읽으며 막 울었다. 이겨내라고 응원하는 글을 썼고 며칠간은 밤마다 그분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큰 통님도 윤지회 작가님처럼 블로그에 항암, 일상 이야기를 2~3줄로 꾸준히 썼다. 입맛이 없어서 며칠 동안 음식을 거의 못 들었다. 사모님이 잔소리를 너무 심하게 한다. 첫 손녀가 태어나서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등…….
건강이 회복되었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며 3년이 흘렀다. 작년 7월 초.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겨우 며칠 만에 버터링 쿠키 반쪽과 커피 반 잔을 음미했다는 글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챗 GPT를 이용해 글도 쓰고 최상의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올려놓아서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나 했다. 물론, 3줄이던 문장이 1줄로 줄어서 염려스럽긴 했지만, 이것이 바로 평소 그분이 강조한 거품 없는 글쓰기 아닌가?! 생각했다. 건강이 나빠졌다는 글에서 조차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 때문에 그분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를 작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작년 여름 더위는 지독했다. 하지만 교직에 불어 닥친 충격과 아픔은 그보다 더 했다. 폭염 속에서도 광장으로 나갔고, 고통 받는 동료 교사를 살폈고, 바뀐 보직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블로그에 글 쓸 시간도, 이웃 새 글 읽을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2023년을 겨우 마무리하고 2024년 선물 같은 육아 휴직을 맞이했다.
휴직 동안 독서 모임과 글쓰기를 하려고 마음먹었기에 시민대학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수강 신청부터 했다. 2월 중순 온라인 첫 모임 때 노트북 화면에 보인 수강생 모습을 보자 갑자기 잊고 있던 작은 큰 통님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꽤 오래 새 글이 안 올라온 것 같다. 이웃 목록을 검색해서 큰 통님 블로그에 들어갔다. 작년 7월 말 써놓은 글 이후 새 글이 없다. 대신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클릭하니 8월 말 누군가 쓴 글이 보인다.
“요즘 어떠신지요? 건강하신가요?”
바로 아래 9월 말. 큰 통님 이름으로 쓰인 답 글 “작은 큰 통님 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2023년 8월 10일에 영면에 드셨습니다. 종종 찾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이웃님 안부도 몰랐나. 아드님이 쓴 영면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구 눈물이 쏟아졌다.
이상하다. 가까운 누군가, 한때 친하게 지냈던 누군가의 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선뜻 연락하기 어렵다. 건강한 나의 전화가 반가울까? 괜히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닐까. 위로도 안 될 텐데. 내 건강이 죄스러워서 연락을 미뤘다. 그런데 윤 작가님은 <사기병>에서 답장 여부와 관계없이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이 고맙다고 했다. 뒤늦은 큰 통님의 부고를 접하며 그분의 투병기에 답 글 쓰는 것이 형식적으로 보일까 봐 미뤘던 지난날이 후회로 밀려왔다.
안부 묻기.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미루지 않기. 정기적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용건 없는 전화하기. 아픈 사람에게는 상대의 답장 여부와 관계없이 꾸준히 연락하며 소소한 일상 나누기. 나의 건강함을 미안해 말고 건강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주자고 다짐해 본다.
지난 2월 시민대학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수강 신청 이후 두 분을 추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첫 글을 쓰면서 윤지회 작가님과 블로그 이웃 작은 큰 통님의 명복을 다시 빌어본다. 하늘나라에서 평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