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萬人譜) 서시
- 고 은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연작시 「만인보」 ‘서시’ 全文>
고은(高銀)
본명 : 고은태(高銀泰)
법명 : 일초(一超)
193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56년 불교신문 창간
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5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8년 고은 전집 발간
1989년 제3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89년 장시집 만인보 발간
1991년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수상
시집 : 피안감성(彼岸感性)(1960), 해변(海邊)의 운문집(韻文集)(1963), 신 언어
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
75), 제주도(1976), 입산(1977), 새벽 길(1978), 고은 시선집(1983),
조국의 별(1984), 지상의 너와 나(1985), 시여 날아가라(1987), 가야 할
사람(1987), 전원시편(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백두산(1987), 네
눈동자(1988), 대륙(1988),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1988), 그 날의 대행진
(1988), 만인보(1989), 독도(1995) 등 다수
소설집 : 피안앵(彼岸櫻)(1962), 어린 나그네(1974), 일식(日食)(1974), 밤 주
막(1977), 산산히 부서진 이름(1977), 떠도는 사람(1978),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1980), 어떤 소년(1984), 화엄경(1991)
<연작시 만인보 해설>
고은(63)씨는 연작시 <만인보(萬人譜)>를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제7호 특
별감방에서 구상했다. 그해 5월17일 자정을 기해 발효된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처와 동시
에 체포된 시인은 김재규가 사형 직전까지 머물렀던 방에 갇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운
명의 발자국 소리를 하릴없 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손바닥만한 창 하나 없이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그 무덤과 같은 방에서 그의 의식은 옛일의 회고와 추억을 탈출구로 삼
았다.
만일 살아서 나간다면 지나간 삶의 구비에서 마주친 이들을 시로써 되살리고 싶다는 간
절한 소망은 그로부터 6년 뒤에야 실현된다. 그 사이 시인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
로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 석방되며 결혼하고 자식을 본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화살' 제1연>
라고 선동했던 그가 80년 5월 광주를 통과하면서 <만인보>의 세계로 나아간 것은 하나
의 놀라움이었다.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
결이라는, <만인보>에 대한 설명에서 그의 70년대를 특징짓는 전투성과 이념성을 찾
기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인보>를 권력에의 투항이나 현실 순응으로 보는 시각 역시 맹목과
단견으로서 타기되어 마땅하다. 그보다는 싸움의 역사로부터 견딤의 역사로, 화살의 세
계관에서 장강(長江)의 세계관으로 변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이해가 될 터이다.
실제로 `서시'에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머슴 대길이'는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대하
는 시인의 관점에 조금치의 변화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취해서 소리 지르고 깨
부수는 것 말고는 권세도 명예도 누리지 못한 할아버지 고한길을 기리는 노래의 끝 연
은 이렇다. 이 세상 와서 생긴 이름 있으나마나/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
이/오로지 제사 때 지방에는 학생부군이면 된다/실컷 배웠으므로/실컷 배웠으므로.
그런가 하면 시인에게 가갸거겨를 배워준 친구네 집 머슴 대길이는 그가 속한 계급
과 무관하게―혹은 바로 그 계급으로 말미암아― 곧고 바른 인격의 담지자로 그려진다.
봄 산에 올라서도 마을 처녀에게 허튼 시선 한번 주지 않으며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남하고 사는 세상인데라고 말하는 그를 향해서는 주인도 동네 어
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대길이 아저씨/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자다 깨어
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라는 진술은 민중적 모범에 대한 시인의
귀의를 말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머슴 대길이로부터 시작한 <만인보>의 여정은 시인의 가족과 친척,
고향 사람들을 두루 훑은 다음 시인 자신의 편력을 따라서 이 땅 곳곳으로 벋어나가
도록 돼 있다.
지난 86년과 88, 89년 세 차례에 걸쳐 한번에 3권씩 모두 9권이 나온 <만인보>의
초반부는 시인의 유년시절 고향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이모저모를 소묘한다. 거기
에 그려진 것은 배고파서/하루이틀 꼬박 굶고/물배만 채워/다섯 식구/서로 얼굴
보고 앉았(`굶는 집')는 궁상과 허기의 삶이지만,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시인의
굳은 믿음으로 밝은 빛깔로 채색된다. 가령 대를 이은 소도둑으로 군산형무소 감방
에서 마주치게 된 어느 부자간의 대화를 들어 보라. 선득아 너 들어왔냐/예 2년 먹
고 나가려고 들어왔어라오/밥 먹을 때 오래오래 씹어먹어라/예(`소도둑').
그러나 이처럼 밝고 낙천적인 어조도 한국전쟁기의 끔찍한 나날을 서술할 때에는
별무소용이 되고 만다. 인민군 들어와/반강제로 여맹 간부 노릇 하며/찢어진 치마
입고 다니고/여맹 간부 노릇한 죄목으로/이 사내/ 저 사내/치안대한테 욕보고 나서/
혓바닥 깨물고 죽어버린 `임영자'나 동네 이사장 구장 이장 다 거치며 존경받다가
이복형제들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치안대에 잡혀와서는 그 치욕을 못 견뎌 우물에 빠
져 죽고 만 `김병천', 그리고 싸락눈 쌀쌀맞은 초겨울 아리따움에 공부도 잘해서
인공 때/여맹 간부였다가/수복 후/어찌어찌 몸 상해버리고//그 아리따움 일거에
망해버리고/죽음보다도 못하게시리/죽음보다도 못하게시리의 `조부희'의 경우는
그 악몽과도 같은 기억의 몇몇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보도연맹 가입자의 학살과 우익 및 지주의 처형, 다시 인공시절 부역자의 처단으
로 이어지는 살육의 악순환은 십대 후반의 소년의 정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다. 마을 주변의 참호와 방공호 속에서 공산군들에게 학살당하거나 생매장당한
시체를 파내는 일에 동원됐던 고은태(시인의 본명) 소년은 기어이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산과 들을 정처없이 쏘다니게 된다. `아아 50년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논리를 등지고 불치의 감탄사로써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시인은 그
의 산문집 <1950년대>에서 썼거니와, 자살 시도와 출가, 환속, 투쟁으로 이어지는
파란 과 갱신의 출발점이 바로 그의 50년대였다.
시인의 고향은 현재의 전북 군산시 미룡동. <만인보>에 미제방죽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은파유원지와 할미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은태 소년이 학살당한 이
들의 주검을 나흘 걸려 파내었던 할미산의 참호는 우거진 관목에 가리기는 했지만
예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문둥이만 혼자 살 뿐 인적 하나 없던 저수지 가에는 고층아
파트군이 숲을 이루게끔 되었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건너다 보
인다.
시인이 다녔던 미룡초등학교 자리에는 군산대학교가 들어서 있고, 군산중학교를 오
가는 길에 <한하운 시초>를 주움으로써 문둥이 시인이 될 꿈을 키웠던 한길은 지금은
왕복 4차선 도로로 바뀌었다. 시인의 생가는 없어졌지만, 팔순의 어머니는 생가 근처
에 홀로 살면서 노년을 즐기고 있다
.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겨버린 큰아들을 위해 손수 담근 인삼주를 내오신 어머니는
치다 보기도 아깐 내 아들이라며 황홀해하고, 시인 아들은 그 어머니를 보며 늙은
주제에도 싸가지가 있어 한마디 한다. 이어서는 권커니 잣커니 오가는 술과 노래….
미성년의 나이로 출분을 행했 던 시인은 한결 귀가 순해져서야 돌아와 어머니이신 고
향을 끌어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