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이야기(14) - 이성재
- 금괴 보관소 이야기 -
기사입력 : 2008년 06월 03일
국제 금값이 온스 당 1,000불을 넘었다가 850여 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귀금속상의 속사정은 모르고 “금값이 올랐으니 돈 많이 남았을 거”라고 시기 비슷하게 말을 건넨다. 과연 금은방 하는 분들은 정말 돈을 많이 번 것일까? 평생 집 한 칸 있는 사람이 내 집값만 오른 것이 아니고 이웃집이나 또 다른 곳도 우리 집만큼 올랐는데 내 집값이 아무리 올랐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일 것인가? 결국 집 한 칸뿐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금값이 아무리 오르더라도 오른 값에 사줄 사람이 없고 팔지를 못 했으니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언이 폐지하고, 높은 금값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세상의 그 많은 금괴는 누가 얼마나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다이하드 3’은 주인공 부르스 윌리스가 뉴욕의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Gold Vault(황금보관금고)에서 15톤 트럭 10여대 분의 금괴를 탈취한 범인들과 혈투를 벌여 일망타진하는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에서처럼 미 연방준비은행이 금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 증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세계 각국은 자국의 중앙은행에 금괴를 보관하고 있지만 자국의 것이던 위탁받은 것이던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은 역시 미 연방은행과 영국 중앙은행, 그리고 스위스 은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지하 금고의 금괴 탈취 장면은 단연코 압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지하 금고는 실제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미 연방준비은행의 금고는 뉴욕의 맨하튼 리버티 가(街) 33번지 14층 건물의 지하 5층 24m 깊이에 있는데 이 금괴 보관소는 3중의 강철과 시멘트 방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122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철문 무게만 90톤에 이르고 비상사태가 발발하면 지하로 통하는 모든 철제문은 몇 초 내로 봉쇄된다고 한다. 더구나 최고의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 경비원들이 중무장한 채 24시간 철통 경계를 하고 있다.
금괴보관소 열쇠는 비밀 번호를 알고 있는 몇 사람이 모여 퍼즐 풀듯이 짜 맞춰야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금괴보관소에 보관된 금은 IMF(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금융기관이나 외국 중앙은행의 것이 거의 95%를 차지하고, 진짜 미국 정부 금괴는 켄터키 주 군부대 내에 있는 포트녹스(Fort Knox)기지, 필라델피아, 덴버, 뉴욕 웨스트포인트 등의 금괴 저장소에 보관하고 있다. 이들 금괴보관소에 보관된 금괴는 국제 GDB(Good Delivery Bar)규격인 12.5Kg짜리로 되어 있다. 이 금괴의 가치는 요즈음 국제 시세로 온 스당 850달러 일 때 약 34만 1천 달러가 되는데 뉴욕 연방 준비은행 지하 금고에만 약 60만개(약 2억 6천만 온스)가 있고 달러가치로는 약 2천억 달러가 된다고 한다.
세계 경제에서 달러, 유로화, 엔화에 이어 제4의 통화로 인정받는 금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에서 대외 결제수단이나 대외 준비자산, 외환관리 차원에서 가급적 금괴를 많이 보유하고자 하는 게 세계적 추세이다. 대강 예를 들면 미국이 8135.5톤(59.8%), 독일 3433톤(48.1%), 프랑스 3024톤(55.2%), 일본765.2톤(1.2%), 중국600톤(1.6%), 대만421.8톤(2.9%), 태국 83.6톤(2.5%)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겨우 14.3톤(외환보유고의0.1%)으로 이들 국가에 비하면 너무나 한심한 수준이다.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금을 국가의 자산으로 보고 많은 혜택을 주면서 국가나 국민들이 금 보유하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금이라면 사시(斜視)로 보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부인이 중국황금협회와 다이아몬드협회를 이끌며 주얼이 산업을 일으키고자 애를 쓰는데 우리나라 고위 관리들의 황금을 보는 시각이 너무나 차가운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14.3톤이나 되는 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10톤은 진작영국의 중앙은행에 보관시켰고 나머지 4톤은 2004년까지 한국은행 대구지점 지하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모두 GDB 형태로 바꾸어 영국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이 금들은 파생 금융상품거래자에게 대여해 주었는데 보관비용이나 대여 수수료 같은 것이 너무 비싸서 년 평균 1%정도 밖에 수익은 못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환율가치 변동이 심하고 달러가 약세 일 때 외환관리 차원에서 금을 좀 더 많이 보유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그리고 그 금괴를 금 장신구 업자에게 장기 저리로 대여하여 주었다면 주얼리 업계에는 엄청난 지원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너무나 아쉬운 감이 많다. 우리나라가 10년 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한 것을 외국에다 몽땅 투매한 것은 우리나라가 저지른 커다란 실수 중의 하나라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모두 이야기 하는 바이다. 금 모으기까지는 잘 했는데 과연 그렇게 생각 없이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는가 하는 것은 한번쯤 학술적으로 논증하고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 (사)한국귀금속보석감정원 회장 (태극 마크 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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