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경전 이야기]
♡ 두 아내 때문에 실명한 남자
옛날 어떤 사람에게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런데 한 부인을 가까이하면 다른 한 부인이 화를 내기 때문 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사람은 두 아내 중간에 몸을 누이고 자기로 약속하였다.
마침 큰 비가 내렸다. 집이 새어 물과 흙이 한꺼번에 내려와 그의 눈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일어나 피하지 못하고 마침내 실명하고 말았다.
☞ 세상의 범부들도 그와 같다.
삿된 벗을 가까이하여 법이 아니 것을 익히고 번뇌의 업을 짓다가,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져 항상 생사에 살면서 지혜의 눈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남편이 두 아내 때문에 두 눈을 잃는 것과 같 다.
《백유경(百喩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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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짧은 우화 속에 '무엇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지혜의 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1. 이야기의 요지
두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남편은 어느 쪽도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고 두 아내 사이에 누워 있었습니 다. 그런데 비가 새어 눈에 흙과 물이 떨어졌음에도 약속을 지킨다는 생각에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두 눈 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아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리석은 집착과 잘못된 선택 때문에 스스로 화를 입 었다는 것입니다. 즉, '지켜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지키려다가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이 이 우화의 핵심입니다.
2. 불교적 관점
《백유경》은 이 이야기를 삿된 벗과 삿된 법에 대한 비유로 풀어냅니다.
사람이 잘못된 벗을 가까이하면 그 벗의 생각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닮아갑니다. 처음에는 작은 말과 행동 으로 시작하지만, 삿된 벗 → 삿된 생각 → 삿된 행동 → 번뇌와 악업 → 지혜의 상실이라는 흐름으로 이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단순히 무엇을 하지 말라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고 무엇을 배우며 어떤 생각을 가까이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3. '두 눈을 잃었다’는 의미
이 대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눈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눈을 잃었다는 뜻을 넘어 '지혜의 눈'을 잃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눈이 있으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분별하고,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살피며, 설사 잘못된 길에 들 어섰을 때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와 삿된 견해에 오래 물들면 잘못된 것을 옳다고 여기고, 해로운 것을 이로운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바로 얼마 전 말씀 나누었던 "잘못된 습관을 바른 법이라고 믿는 것"과도 통하는 가르침입니다.
4. 이 우화의 핵심적 교훈
저는 이 우화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약속이나 관계에 매이는 것보다 옳고 그름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 남자는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기가 옛 고사인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주인공 미생(尾生)을 닮았습니다.
미생이 약속을 지키려 다리 밑에서 끝까지 기다리다가 물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오늘 《백유경》의 남편도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한 채 고지식하게 약속에 매여 결국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두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신의 그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없는 고집 은 선한 뜻마저 화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삿된 벗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삿된 법에 물들어 삿된 업을 짓다가 지혜의 눈을 잃고 마는 까닭에 어리석음은 참으로 불행으로 이끄는 데는 으뜸인 것 같습니다.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법에 비추어 보고, 인과에 비추어 보고, 마음에 비추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실로 착한 벗을 만나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해야 미혹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해 봅니다.
불교의 수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를 오래 해왔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 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늘 살피는 "법에 비추어 보고, 인과에 비추어 보고, 마음에 비추어 보라."는 이 세 가지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오늘의 수행으로 옮긴다면
사람을 대할 때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과 가까이할수록 내 마음은 맑아지는가, 흐려지는가?" "이 생각을 따라갈수록 탐 · 진 · 치는 줄어드는가, 늘어나는가?" "이 행동의 결과는 나와 남에게 이로운가?"
이렇게 살핀다면 좋은 벗은 가까이하고 삿된 벗과 삿된 생각은 멀리하는 지혜가 생깁니다.
결국 이 우화의 '두 아내'는 밖에 있는 특정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지혜를 가로 막는 집착 · 번뇌 · 잘못된 습관과 견해로도 볼 수 있습니다.
🌿 좋은 벗과 함께하면 지혜가 증장하고,
바른 법을 받들면 어리석음 없애나니
언제나 법, 인과, 마음을 늘 살피며 살아가세.
삿된 벗은 멀리멀리 선지식은 가까이
멀리하고 가까이함 바로 알아차린다면
무명이 사라진 연후 지혜의 눈 열린다네.
오늘 이야기는 좋은 벗과 바른 법을 가까이하면 지혜의 눈이 밝아지고, 삿된 벗과 번뇌를 가까이하면 지혜 의 눈이 어두워짐을 시사한다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마주했을 때, 법(法)에 비추어 보고, 인과(因果)에 비추어 보고, 마음(心)에 비추어 보 는 이 세 가지가 오늘의 우화를 보면서 우리가 행할 바의 훌륭한 수행 지침이 됩니다.
법에 비추어 바른 것인가 살피고, 인과에 비추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살피며, 마음에 비추어 탐 · 진 · 치 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살피는 것, 그 바탕에는 "지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어리석음, 곧 무명(無明)을 단순한 지식 부족으로 보지 않고, 바른 것을 바르게 보지 못 하는 근본적인 미혹(迷惑)으로 봅니다. 무명이 사라져야 비로소 인과를 바로 보고, 선악을 바로 보고, 자기 마음의 움직임도 바로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인연은 지혜를 밝히는 등불이고, 지혜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걷어내는 등불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좋은 벗과 함께하고 바른 법을 받들면서 맑고 향기로운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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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