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크로아티아 (Croatia)
크로아티아 공화국(크로아티아共和國, 크로아티아어:Republika Hrvatska 레푸블리카 흐르바트스카), 줄여서 크로아티아(크로아티아어: Hrvatska 흐르바트스카, 문화어:흐르바쯔까)는 남동유럽에 속한 나라로 발칸 반도의판노니아 평원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를 흐르바츠카라고 지칭합니다.수도는 자그레브이다. 동쪽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 북쪽으로는 슬로베니아·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인이 지금의 크로아티아 땅에 온 것은 7세기 초의 일이다. 이들은 두 공국을 세웠다. 첫 임금인토미슬라프 왕이 서기 925년에 즉위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왕국은 200여년 가까이 주권을 지켰으며,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와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임금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102년에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왕국과 연합을 맺습니다. 1526년에 크로아티아 의회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선출했습니다. 1918년에 이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독립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편입되었습니다. 1991년 6월 25일에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해 주권 국가가 되었습니다.
중앙 광장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유엔, 유럽 평의회, 북대서양 조약기구,세계 무역 기구, 유럽 연합의 가입국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지중해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며 2013년 7월 1일 유럽 연합에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국제 통화 기금에서는 이 나라를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며,세계 은행에서는 고소득 경제 수준으로 봅니다.
2006년도 크로아티아 선교 같이 갔던 선교팀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이그레브 광장 동상에서
서기 1000년경부터 아드리아 해 연안을 통제해온 베네치아 공화국에 저항하기 위해 주변의 슬로베니아·달마티아와 함께 1102년 헝가리 왕을 군주로 받아들였습니다. 헝가리는 1683년부터 1791년까지 크로아티아 등을 재장악하며 합스부르크 제국 내 슬라브족을 영접하기 위한 항구를 경계지역에 건립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 기념탑
크로아티아는 1867년부터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18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괴뢰 정권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들어서기도 했다. 전후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2]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848년 당시 통치자 반 젤라치크(Ban Jelacic) 동상입니다. 2차대전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공화국광장이라고 명하고 반 조셉 젤라치크 동상을 제거하였습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해서 사회주의를 벗어나 이후로 이름을 되찾고 오스트리아 조각가 Anton Dominik Fernkern 의해 만들어진 Ban Jelacic 동상주위로 카페가 즐비한 광장으로 종종 큰 축제가 열리는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로, 서쪽에는 지중해의 일부인 아드리아 해가, 북서쪽에는 이스트리아 반도가 있습니다. 서해안에는 여러 섬이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반제라치크 광장(Ban Jelacic Square)입니다.
이 가게는 Croatia(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가장 맛있다는 엘라도(아이스크림)집입니다. 이곳에서 한국분을 만났는데 두 아들과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럽을 관광시켜주려고 왔다가 크로아티아까지 왔다고 합니다. 2006년도는 한국과 수교도 안 맺을 때입니다. 최근에는 "꽃보다 누나"라는 TV 프로그램으로 크로아티아가 알려졌지만..
크로아티아 수도 자이그레브 시 중심부에 있는 기념동상
이곳은 의원 내각제이며 151석의 단원제이다. 주요정당은 사회민주당, 크로아티아사회진보당, 크로아티아민주연합, 크로아티아농민연합 등입니다. 1994년 3월 미국의 중재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국가연합을 형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1992년 8월 독립 후 첫 대통령선거와 하원의원 선거를 실시, 프라뇨 투지만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2002년 메시치 대통령이 취임했으며,2015년 2월 15일에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으며, 현재 총리는 조란 밀라노비치가 내각을 이끌고 있습니다.그리고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실질적으로 모든 권한과 행정은 총리가 대신 합니다.
유명한 Ban Jelacic 동상입니다.
달마티아 지역을 중심으로 아드리아해 연안에 관광 명소가 많아 대표적 외화가득원은 관광이었으나, 내전으로 관광수입이 격감하다가 괄목할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00여만명이 넘는 유럽인 휴양객들이 아드리아해 연안을 찾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소기업들이 많은 실업자들을 흡수했고 제약회사 플리바는 중동부유럽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외환 보유고도 늘었습니다. 주요 지하자원은 원유와 천연가스로 이들 지하자원과 스플리트 수력발전소(22만kW)의 동력을 기초로 제강·정유·조선·철도차량·기계설비·정유·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이 발달해 있고 식품가공·제지·섬유·목재·전기·전자·의약품 공업 등의 경공업도 발달하고 있습니다. 토지이용에 있어서 농경지는 27.6%로 주로 옥수수·밀·보리 등과 과수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산림은 전국토의 35.6%로 젖소 등의 목축이 행하여집니다.
자그레브에서 사역하는 개신교 목사님 부부입니다. 종교는 대부분이 가톨릭교이다(87.8%). 나머지는 세르비아 정교회가 4.4%, 이슬람교가 1.3%, 개신교와 기타가 0.3% 등이다
이나라는 주된 무역상대국은 독일·이탈리아·러시아 등이며 주요 수출품은 의류·자동차·수송기계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전기기계 등입니다. 리예카와 스플리트는 이 나라 굴지의 무역항이고 자그레브로 연결되는 철도가 놓여있습니다.
경제적 이점으로는 안정된 경제성장, IMF보호하의 정부지출 축소, 구제 프로그램 시작을 들 수 있고, 약점으로는 2001년부터 시작한 민영화와 노동조합의 저항, 전쟁으로 인한 피해 약 500억 달러, 높은 실업률(20%)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민은 크로아티아인이 90.4%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밖에 세르비아인이 4.5%, 보스니아인이 0.5%, 기타 민족(우크라이나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헝가리인, 롬인, 루신인 등) 순입니다.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이후 크로아티아인의 비율은 높아진 반면 세르비아인의 비율은 낮아졌는데, 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보스니아 전쟁을 피해 다수 유입하고 크로아티아에 거주했던 세르비아인들이 세르비아와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박선교사님과 아들입니다. 박선교사님은 미국 동부에서 계시다가 이곳에 오셔서 선교를 하시는데 크로아티어를 잘 하십니다. 김문국이도 같이 선교를 갔습니다.
자그레브에서 떨어진 집시마을 근방의 호텔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중입니다.
이날 이곳에서 결혼식하는 풍경을 보았는데 친지 가족들이 저녁식사부터 새벽까지 퍼마시면서 즐기는것을 보았습니다.
크로아티아어가 공용어이며 폭넓게 사용(96%)되고 있다. 그 밖에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이 일부 쓰인다.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호텔 식당에서 피자를 굽고 있습니다. 피자가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이곳 집시마을의 할머니와 같이 ..
1920년에 세르비아를 포함하여 건국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1102년에 크로아티아는 슬로베니아, 달마티아와 함께 헝가리의 왕을 자신들의 군주로 받아들였습니다. 헝가리는 1683년부터 1791년까지 크로아티아를 재장악하며 합스부르크 제국 내 슬라브족을 영접하기 위한 항구를 경계지역에 건립하였습니다.
오슈리에 마을의 집시 청년들
자그레브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입니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북서쪽, 사바 강 변에 위치해 있고, 메드베드니차 산의 남쪽에 위치해있습니다.
도시의 인구는 약 68만 명이며, 수도권의 인구는 111만 명 가량입니다. 옆에 건물 안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니 눈에 띄는 휘장이 있습니다.
교회 집사님과
교회안에서 밖을 향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 날 집시마을 주민들과 같이...
이곳에서 한의치료와 치과를 검진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하는데 비가 옵니다.
전 크로아티아 대우지사장님께서 우산을 들고 받쳐주고 계십니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이그레이브에서 5시간 떨어진 집시마을 어린이들...여름성경학교를 하여서인지 기도하는 성경학교 어린이들
열심히 기도하는 마을 청년들
비가 오는데 마을 어린이들이 성경공부에 참석하여 또릿또릿한 눈망울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분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집시여인...
검안의 Dr.국이 어린이들과 풍선으로 모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Dr. Lee 가 영어로 설교하고 현지 목사가 통역을 합니다.
선교를 마치고 이태리로 가는 기차역을 타기전에 크로아티아 태권도 국가 대표코치 부부께서 선교팀 소식을 듣고 김밥을 싸서 기차역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기차에서 김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오른쪽 부부가 크로아티아 태권도국가 대표코치 부부입니다.
"김밥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차역에서 기차가 들어오는데 고린도에서 오는 기차랑 데살로니아에서 오는 기차가 있어..새로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역이름이라...ㅎㅎ
열차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름 나왔습니다.
데살로니가, 고린도...등등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기차를 타고 이태리로 가는 도중 이민국직원이 여권을 보자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그냥 여권만 보는데..집시들에게는 매우 까다롭게 굽니다.
기차타고 가는 도중 뉴욕의 치과의사가 화장실에서 지갑을 놓고 자리에 와서 1시간 쯤 지나서 지갑이 없어진것을 보고 다시 화장실에 가보니 그대로 지갑이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이태리에서 베낭을 앞으로 매고 지하철을 탓는데 소매치기가 배낭을 뺏으려고 하다가 저항을 하니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그 칸에 타서 미국 관광객에게 소매치기하려다가 관광객이 완강히 저지하자 다시 유유히 걸어가는것을 보았습니다.
이태리는 소매치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첫댓글 중앙광장이 드부르부니크에 플라차 거리같은데.... 슬로베니아에 블래드호수와 성.... 발칸반도 여러나라 마나님이랑 꼭 가보세요~~
드부르부니크는 어느 나라?
@이 풍원 크로아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