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8. 주일예배설교
갈라디아서 6장 8절
무엇을 거두었는가?
■ 한동안 배추가 금추가 되어 식당에서 배추김치를 보기가 어려웠는데 요즘 다시 볼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지난여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사에 대해 염려가 컸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쌀, 과일, 무와 배추를 제법 수확할 수 있게 됐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많이 와도 문제, 안 와도 문제이지만, 여하튼 결실의 계절이 왔습니다.
이런 결실의 시간에는 반성의 감성이 생깁니다. 특히 나뭇잎 색의 변화, 뒹구는 낙엽 등이 이런 반성의 감성을 더하고 부추깁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심지어 “나는 무엇인가?”를 반성하게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반성의 감성에 영성을 더해 질문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거두셨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이 질문을 더욱 도발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썩을 것을 거두셨습니까, 영생을 거두셨습니까?”
■ 밭이나 논에 씨앗을 심을 때, 누구나 기대하는 것은 실한 결실입니다. 기대 이상으로 더 풍성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여하튼 심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풍성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결실이 좋지 않거나 없다면 그 실망감은 클 것입니다. 아마 많은 비용을 들였다면 그 실망감이나 허탈감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잘못 심은 경우입니다. 또는 잘못된 것을 심은 경우입니다. 씨앗마다 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따르지 않았을 땐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A와 B를 헷갈려서 A를 심어 놓고 B를 기다린다면, 이는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대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나타납니다. 바른 씨앗을 선정할 뿐만 아니라 바른 방법으로 심어야 기대한 결과가 나타나듯, 바른 삶을 선정하고, 바른 태도로 그 삶을 살아야 기대한 인생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경험상 기대한 것 이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이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진리입니다. 본문의 앞 절인 7절의 말씀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바른 씨앗은 무엇이고, 바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본문에 의하면, 신앙인에게 바른 씨앗은 ‘성령을 위한’ 씨앗입니다. 이는 ‘영생’의 열매를 내놓는 씨앗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자기 육체를 위한’ 씨앗이 아닌 것이 바른 씨앗입니다. 썩지 않고 멸망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내놓는 씨앗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위한’ 씨앗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것의 예를 가까이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인내)과 자비(친절)와 양선(선함, 선행)과 충성(신실, 진실)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소위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성령을 위한 씨앗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이 심어야 할 바른 삶의 씨앗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른 씨앗을 심는다 해도 심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아홉 개의 씨앗은 누가 봐도 너무나 훌륭한 씨앗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틀리면 기대하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특히 8절의 앞부분을 주목하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주목해야 할 것은 “자기의 육체”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심는 씨앗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 이해해 볼까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인내)과 자비(친절)와 양선(선함, 선행)과 충성(신실, 진실)과 온유와 절제”라는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자신을 위해 심는다면 이것은 썩을 것이 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씨앗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심으면 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시죠? 본문이 속해 있는 갈라디아서 6장 2절과 5절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이 두 절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는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결된 말씀일 뿐입니다. 서로가 상대의 짐을 져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자기 몫의 짐이 있지만, 그리고 함께 짊어질 짐도 있지만, 서로가 상대의 짐을 짊어져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선이 서로가 상대의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내짐은 물론이고, 공동의 짐도 짊어져야 하지만, 상대의 짐을 져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닙니다. ‘너’를 위해, ‘남’을 위해 사는 삶이고, ‘너’를 위해, ‘남’을 위해 심는 씨앗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씨앗”인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타자의 삶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타자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타자가 아니면 하나님을 뵐 수도, 내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적 욕망(selfish desires)을 경계하고 금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전적으로 이타적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정하시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일, 매순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새번역)
우리에게 매일, 매순간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십자가만 자랑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죽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일체의 욕망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일체의 욕망 교육으로부터 죽는 것입니다. 이 죽는 것이 이기적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너’와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매순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사실 타자를 위해 산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욕망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 못지않게 힘든 이유가 더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보다 큰 이유는 “낙심”입니다.
우리는 ‘너’를 위한 선을 베풀다 “낙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선을 베풀다 “뭐, 저런 인간이 있어?”라고 할 정도의 실망이 오면, 선을 행하는 일에 낙심이 생깁니다. 바로 이것을 극복하라는 격려가 7절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말라. 때가 이르면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함께 낙심이라고 하는 것이 이타적 삶을 사는데 난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매순간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 외에는 성령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영생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실 씨앗의 기본이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원리입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살리는 것입니다.
■ 보통 한 해의 결산을 12월 말에 합니다. 그러나 깊은 가을을 만나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나는 무엇인가?” 이 중에 “나는 무엇을 거두었는가?”가 가장 큰 반성일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거두고 계십니까? 자기의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계십니까,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고 계십니까? 부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인내)과 자비(친절)와 양선(선함, 선행)과 충성(신실, 진실)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매순간 죽는 삶도 견뎌내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