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 지음 긍정의 힘 Your Best Life Now두란노 / 2005년 5월 /12,000원
▣ 저자 조엘 오스틴 Joel Osteen
하도 잘 웃어서 ‘웃는 목사(the Smiling Preacher)'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이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고 활기차고 열정적인 그는 기독교계의 새로운 얼굴이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조엘의 아버지 존 오스틴 목사에 의해 1959년 휴스턴의 한 버려진 사료 가게에서 탄생했다. 이후 레이크우드 교회는 꾸준히 성장했으며, 존 오스틴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성도가 약 6,000명으로 늘었다. 다섯 형제 중 넷째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송 사역에 만족하며 살던 조엘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강단에 서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아버지 존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엘에게 주일설교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 직후 조엘은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조엘은 레이크우드 교회를 네 배로 키워 냈다.
한 리서치 기관에 따르면, 현재 매주 30,000명 이상이 찾아오는 레이크우드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다. 미국 전역에서 방송을 타는 조엘 목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미국 안방의 95%와 전 세계 150개국을 찾아가고 있다. 최근 닐슨 미디어 리서치(Nielsen Media Reseach)는 지역별 평균 시청률에 근거, 조엘 오스틴의 프로그램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방송‘으로 선정했다. 또한 레이크우드 교회는 갈수록 늘어나는 성도들로 인해 2005년 7월, 휴스턴 로케츠 프로 야구팀 홈구장이었던 16,000좌석의 휴스턴 컴팩 센터로 이사할 예정이다. 200만부가 넘게 팔린 『긍정의 힘』은 출간되자마자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 Short Summary
"미래는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졸업식과 신입사원 환영회, 결혼식장에서 자주 들리는 희망의 메시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열정적으로 인생을 쟁취하고 미래를 소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비결은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때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온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어떤 고난을 겪고 있든 상관없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채, 자신을 약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자존감이 약하다. 자신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와 조건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우면서 행복한 삶을 먼 미래로 미루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내 인생도 풀릴 거야.“ ”언젠가 일이 좀 한가해지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야.“ ”언젠가 건강을 회복할거야.“ ”언젠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될 거야.“ 그러나 ‘언젠가’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뿐이다.
이 책은 오늘을 온전히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간단하지만 심오한 일곱 단계가 펼쳐질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의 일곱 단계를 적용하면 전보다 더 큰 행복을 얻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 하루나 한 주가 아니라 평생 동안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열정이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 차례
1.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비전을 키우라 / 기대 수준을 높이라 / 하나님의 창고는 보화로 가득하다 / 과거의 장벽을 깨라 / 은혜 속에서 성장하라 / 은혜를 사모하라
2.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라 / 믿음대로 될지어다 / 성공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라 /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
3.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올바른 생각을 품으라 / 마음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라 /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 인생을 바꾸는 말 / 복을 말하라
4.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라 / 원망이 뿌리 내리지 않게 하라 / 하나님이 억울함을 풀어 주시리라 / 실망감을 물리치라
5.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먼저 마음으로 일어서라 /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 시험의 목적 / 잘 풀리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6. 베푸는 삶을 살라
베푸는 즐거움 / 하나님의 친절과 자비를 실천하라 / 연민의 마음을 열라 / 씨앗을 뿌리는 것이 우선이다 / 씨 뿌리기와 자라기
7.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닌 선택이다 / 뛰어난 사람, 진실한 사람 /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라
1부 -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비전을 키우라
언젠가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부부를 차에 태우고 섬 곳곳의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푸르른 야자수와 아름다운 화초가 가득한 집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는 문득 아내와 친구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저런 집을 꿈도 꿀 수 없겠지?” 순간 그의 마음에서 뭔가가 속삭였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넌 안돼. 너는 저렇게 멋진 곳에서 절대 살 수 없어.’ 깜짝 놀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아니, 왜지?’ ‘상상하지 않는 한, 마음으로 보지 않는 한, 그런 멋진 일은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않아.’ 그는 평범한 생각과 태도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원이나 우리의 재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살려면, 먼저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봐야 한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번창하는 모습을,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라. 마음에 품고 굳게 믿어야 꿈은 이루어진다.
원하는 모습을 그리라 :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원하는 삶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이미지를 자신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생각과 대화, 깊은 잠재의식, 행동을 비롯해서 자기 존재의 모든 부분에 이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건강, 풍요로움, 기쁨, 평화,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감 속에서 허우적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마음에 커다란 그릇을 마련한 사람에게만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 하나님은 우리 마음 밭에 끊임없이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계신다. 우리 맘속에서 낡아빠진 생각을 뽑아내고 끊임없이 창조적 생각의 씨앗을 뿌리신다. 단, 이 씨앗은 믿음의 토양 위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자라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뿌리를 내리려는 씨앗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다. 하나님은 엄청난 소망과 기대의 씨앗으로 우리를 채워 주신다. 이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엄청난 열매를 맺기만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사 43:1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 단, 조건이 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준비해 놓았느냐? 성장을 믿느냐?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줄 믿느냐? 뛰어난 리더와 훌륭한 부모가 되리라 확신하느냐?” 커다란 비전을 품으라는 말씀이다. 의심의 토양 위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당신은 씨앗이 뿌리를 내릴 줄 믿는가? 천사는 마리아에게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서 임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일을 이루신다.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도 괜찮다. 우리의 과거야 어쨌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능히 못할 일이 없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기대 수준을 높이라
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간다. 기대한 만큼 이룬다. 긍정적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이다. 패배와 실패, 삼류인생을 기대하면 잠재의식은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확장하려면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한다. 삶의 변화는 바로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기대한 만큼의 복을 주신다 :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영(0)에 가깝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는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이다. 늘 최악의 상황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항상 축 쳐진 어깨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 “하나님, 왜 저만 요 모양 요 꼴로 놔두시는 겁니까? 정말 불공평하십니다.” 이들의 미래는 기대한 그대로다. 마음의 거짓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 하나님은 커다란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소망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소망의 또 다른 이름은 ‘높은 기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기대는 기회의 문을 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난관을 뛰어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 : ‘믿음의 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해야 한다.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소망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서 힘을 얻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기대 없이 절망스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어?” “결혼? 꿈에서나 가능하겠지. 십 년 동안 데이트 한 번 못해 봤어.” “차라리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게 낫겠어. 빚과 청구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다른 길이 없잖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런 말은 입에 담지 말라. 마음에 기대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항상 승리와 풍요로움, 축복과 희망을 생각하라. 긍정적이고 순수하고 멋진 생각을 품으라. 당신은 마음으로 어떤 미래를 보는가? 지금보다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미래가 보이는가? 마음으로 본 복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다.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라 :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지혜를 얻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과 함께하면 오래지 않아 성공을 얻게 된다. 성공한 사람의 비전은 전염성이 강해서 우리 마음속으로 금세 파고든다. 승리의 분위기에 머물면 오래지 않아 승리의 이미지를 얻는다. 암탉과 함께 모이를 쪼고 있는 한, 독수리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는 없다. 당신에게 기대 수준을 높이라고, 복 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기대하라. 성장과 승진을 기대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정 속에서 매일 아침을 맞으라. 혹시 상황이 당신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주저앉지 말라. 올바른 방향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나아가라.
2부 -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라 :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사람이 정해놓은 변덕스럽고 거짓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따라 자아상을 개발하는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성공의 크기가, 아니 성공의 여부가 판가름 난다. 자아상은 일종의 자화상(self-portrait)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그린 그림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자아상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자신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건강한 자아상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다. 자기개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한다는 데 있다. 심리학적 증거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자아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마음에 품은 이미지 이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왜 하필 나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자아상이 약한 사람의 대화 속에는 늘 이런 생각이 따라다닌다. 반면 하나님과 같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자아상을 바꾸라 : 누구나 자아상을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이렇다. 먼저, 하나님의 의견에 동의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큰 영광과 용기가 있는 남녀로 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왕보다도 큰 자로 여기신다. 이런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변명 따위는 이제 그만하고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행하라.
모세는 히브리 백성 2백만 명 이상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해냈다. 그 후 히브리 백성은 광야를 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국경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들은 약속의 땅, 즉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유토피아’를 눈앞에 바라보며 장막을 쳤다. 문제는 그 유토피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힘든 싸움이 되리라 예상한 모세는 전투에 앞서 적을 알고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 6주 후에 정탐꾼들이 정보를 입수하여 돌아왔다. 일단 그들 모두의 입에서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우리가 듣던 대로 정말 훌륭한 땅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소식이 영 떨떠름했다. “하지만 그 땅에는 거인들이 있더군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보기에도”에 주목하자. 그들 앞에 놓인 적과 장애물에 비해 그들의 자아상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그들은 적이 몰려오기도 전에 스스로 무력하게 쓰러지는 불쌍한 메뚜기 떼와 똑같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완전히 달랐다. 분명히 정탐하고 온 땅은 똑같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치 다른 땅을 다녀온 것처럼 말했다. “모세, 우리는 충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보다 훨씬 크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어서 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가?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지극히 강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잠시나마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려 하신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약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라
하나님은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신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를 이렇게 보신다. 우리가 쓰러 넘어지는 순간이나 실수하는 순간은 보지 않으신다.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시고 우리가 잘한 일을 보신다.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실수한다.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한다. 이때는 하나님과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자책하며 죄책감 속에 빠져 있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감 있게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완성되어 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려면 어떤 실수를 하든지 자신의 내재 가치(intrinsic value)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의 내재 가치를 판단할 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얼마나 인기 있고 성공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오직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나 환경 때문에 우리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말라. 누군가에게 학대받고 이용당한 쓰디쓴 아픔이 있는가? 좋은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외톨이가 된 기분인가? 어렸을 적에 학대당한 후 죄책감과 수치 속에 살아왔는가? 과거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이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 같은가? 그래서 스스로 상심과 고통, 죄책감, 자기비하 속에 살아 마땅한 사람이라 여기는가? 모두 헛되고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일이 중요하다. 삶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기 위한 출발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잘 아신다 : 어릴 적에 큰 학대를 당한 스티브란 젊은이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티브의 부모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항상 그의 기를 꺾어 놓았다. 날이면 날마다 파괴적인 말이 스티브의 생각과 잠재의식을 파고들면서 자아성과 자기가치는 점점 파괴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문제의 원인은 부모가 딸을 원했던 것이었다. 스티브가 태어나자 부모는 딸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했고, 결국 그는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 속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그런 스티브에게 용기를 심어 주고 싶었다. “스티브, 다른 사람의 대우 때문에 자네의 자존감과 자기가치를 내던지지 말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네를 버려도 하나님만은 자네를 받아주신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말씀은 내가 좋아하는 시편 27편 10절이라네. 하나님은 자네를 절대 버리시지 않아. 언제나 자네를 영접해 주신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자네를 버려도 자네는 자신을 버려서는 안 돼.” 스티브는 내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그는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틈만 나면 우리를 깔아뭉개고 비난하며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과 함께 살거나 일하고 있어 가슴이 답답한가? 그런 허튼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라.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되새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잊지 말라.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가치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도다.”라고 기록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두고자 하신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무너진 꿈을 아름다운 꿈으로 바꿔주신다.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라 :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기분이 좋았는데 직장 동료가 새 차를 몰고 출근하는 것을 본 순간, 기분이 확 잡친다. ‘나도 새 차를 갖고 싶어. 이런 똥차를 몰고 다니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군.’ 갑자기 힘이 쭉 빠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자기 재능이나 능력, 교육 수준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 배우자를 남의 배우자와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런 비교는 우리의 기쁨을 앗아간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위한 특별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남에게 통하는 방법이 꼭 내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소명대로 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하지만 남을 모방하려는 노력은 좌절로 이어지기 쉬우며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심지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놓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경주를 하며 독특한 존재로 살아가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대로 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지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자신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긴다.
3부 -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올바른 생각을 품으라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세 번째 단계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생각에 관해 알아보자.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 사탄이 노리는 표적은 우리의 생각이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고 조정함으로써 우리의 인생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실제로 생각에 따라 행동과 태도와 자아상이 결정된다. 성경은 우리 마음을 경계하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 뿐 아니라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서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인생은 생각을 따라간다 : 대부분의 사람이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생각만큼은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다. 하나님도 우리의 생각을 간섭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원수인 사탄에게는 아예 그럴 능력이 없다. 어떤 생각을 품을지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누구나 잠시 낙심하고 좌절할 수는 있다. 인생은 험한 파도와 같아서 우리가 탄 배를 뒤집기도 한다. 때로 우리 모두는 넘어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넘어진 상태로 있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인생의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때로 우리는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환경 때문이야. 너는 내가 얼마나 험한 세월을 겪었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아니다. 우리를 넘어뜨린 것은 환경이 아니다. 바로 환경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파멸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생각을 선택할 줄 안다면 인생의 가장 큰 시련 앞에서도 오히려 기쁨과 평안과 승리감이 넘쳐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당신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문제만 바라보고 항상 부정적인 측면만 골똘하게 생각하는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신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우리는 마음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말아야 한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가지면 실제로 성공하기 어렵고, 몸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병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상황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은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신다. 실패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실패에 이르게 되고, 평범한 삶을 생각하면 그저 그런 삶이 펼쳐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시킬 때, 약속의 말씀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승리와 은혜, 믿음, 능력, 강함에 시선을 고정할 때,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현실로 이어지며, 반드시 성장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복을 낳게 마련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 이 세상에는 부정적인 면만 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에 시선을 고정하라.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 삶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을 따라간다고 한다. 기쁨과 평안, 승리, 풍요로움, 복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으면 그런 긍정적인 요소들과 우리 삶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한 마디로 우리 삶은 우리 생각을 따라간다. 우리의 생각이 오랫동안 특정한 패턴을 이루는 것은 강을 깊이 파서 물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만드는 것과 같다. 비관적인 생각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물길의 바닥을 점점 더 깊이 파고 있는 것이다. 물줄기는 점점 빠르고 거세지다가 조만간 모든 물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르게 된다. 다행히도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다. 그 방법은 한 번에 좋은 생각을 하나씩 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상황의 좋은 면을 볼 때마다 물줄기의 방향은 조금씩 바뀐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물줄기에서 물 한 방울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나갈 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거부하면서 꾸준히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 나가면 마침내 큰 변화가 일어난다. 복을 기대하고 생각을 다스리면서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할 때마다 부정적인 물줄기는 줄어들고 긍정적인 물줄기의 힘이 거세진다. 그리고 결국 부정적인 물줄기는 완전히 말라버리고 오직 믿음과 승리로 가득한 긍정적인 새 물줄기만 남게 된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하나님은 우리 삶을 바꿔 주신다. 우리의 생각에는 막대한 힘이 있다. 우리 삶은 평상시에 생각한 그대로 펼쳐진다. 우리 인생의 방향은 생각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예언이다 :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실패의 삶을 산다. “내겐 도무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 “나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나는 그럴 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어. 나는 할 수 없다고!” 심지어 자신에게 나쁜 이름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바보천치 같으니라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로 실패를 향하는 길을 닦고 있는 것이다. 말은 씨앗과 비슷하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져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그 내용과 똑같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진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패배와 실패를 말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려고 애써 봐야 아무 소용없다. 뿌린 그대로 수확할 뿐이다.
반면, 간절한 마음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말하면 우리는 그 말을 이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울을 보고 이렇게 말하라. “나는 소중한 존재야. 나는 사랑받고 있어. 하나님은 내 삶을 위해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어. 나는 어디를 가든지 은혜를 입을 거야.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복이 나를 따르고 있어. 나는 뭘 하든 번영하고 성공할 거야. 멋진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하면 오래지 않아 한층 더 큰 번영과 성공과 승리를 맛보게 된다. 말에는 정말 강한 힘이 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고 시련의 도가니 속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고통은 곧 끝나기도,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 :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수비만 잘하고 공격은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축구 경기에서 계속 수비만 하면 어떻게 점수를 내고 승리하겠는가? 공을 빼앗았으면 몰고 나가서 골대에 공을 넣어야 이긴다.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말을 삼가는 데서 그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보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말은 꿈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꿈을 꾸는 것이나 믿음의 눈으로 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인생을 향해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있다. 우리가 뭔가를 입으로 말하는 순간에 말의 내용이 생명을 얻는다. 이것은 영적 원리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데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면 되겠는가? 부지런히 성경을 찾아 특별히 우리 상황에 맞는 말씀을 찾아 적고 그것을 선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일을 이루셨고 지금도 역사하신다.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지혜와 성공, 번영, 건강을 얻고 싶다면 단순히 말씀을 묵상하고 믿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과감히 믿음의 말을 하고 자신과 가족의 승리를 선포하라.
4부 -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라
우리는 누구나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자신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의 안 좋은 과거는 오직 우리의 나쁜 태도와 어리석은 선택과 성급한 분노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앞으로 승리의 삶을 살고 싶다면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선택에 대한 변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쁜 습관이나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에 대해 과거의 상처를 구실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네 번째 단계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 :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제 어찌할 수 없지만 눈앞에 놓인 상황에 어떻게 맞설지는 선택할 수 있다. 비통함과 분노의 감정에 젖어 미래를 망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털어버리고,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야 한다. 아무리 괴로운 일을 겪었더라도 그 일을 삶의 중심에 두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떠나보내지 않는 한 하나님은 새로움을 주시지 않는다. 물론 슬픔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5년이고 10년이고 슬퍼만 할 수는 없다. 진심으로 낫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뒤를 보기보다는 앞을 보고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의 기억 시스템에는 크게 두 가지 파일이 있다. 첫 번째 파일에는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그 안에는 승리와 성공 등, 과거에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 주었던 것들이 있다. 두 번째 파일에는 정반대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그 안에는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온갖 부정적인 일과 상처, 고통이 들어 있다. 슬픔의 원인이 되는 실패와 패배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둘 중 어떤 파일을 열어볼지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매번 두 번째 파일을 열어 가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누군가에게 당했던 순간, 상처를 입고 크게 고통스러워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다. 자유를 얻고 싶다면,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두 번째 파일을 삭제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신 좋은 일만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일어나 걸으라 :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만성 고질병에 걸린 이 병자는 기적을 바라며 베데스다 연못 옆에 거적을 깔고 평생을 누워 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불쌍하게 누워 있는 그 병자를 보셨다. 누가 봐도 병색이 역력했으나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질문을 던지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신다. “낫고 싶으냐, 아니면 계속 누워서 푸념만 하고 싶으냐?” 예수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병자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혼자예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전 도무지 가망이 없어요.” 예수님의 대답은 특이했다. 우리 같았으면 “정말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하며 눈물을 글썽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병자를 보면서 하신 말씀의 속뜻은 이렇다. “정말 낫기를 원한다면, 삶이 제자리를 잡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이 혼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다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갈 길을 가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자 병이 기적같이 나았다.
오늘날에도 만성 고질병에 걸린 사람이 곳곳에 널려 있다. 차이라면 이들의 병은 육체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고질병이다. 과거의 분노에 사로잡혀 용서하기를 거부하고 현재의 나쁜 태도와 마음의 상처를 과거 탓으로 돌린다면 바로 이 병에 걸린 것이다. 이것은 그 병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참으로 낫고자 한다면, 정말 온전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라. 더는 자기연민에 빠져 누워 있지 말라. 매번 두 번째 파일을 열어 보는 짓거리도 그만두고, 실망스러웠던 사람이나 상황 탓도 더는 하지 말라.
원망이 뿌리 내리지 않게 하라
오늘을 온전히 살려면 용서가 우선이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떠나보내라. 원망이 뿌리를 내리게 놔두는 한 행복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가? 누군가에게 학대 또는 이용을 당했는가? 그 외에도 분노하고 원망을 품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마음과 영의 치료를 원한다면 그런 원망을 날려버려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해 봤자 우리만 손해다. 이미 지나간 일로 계속 분노를 품어봐야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과거를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과거는 용서하고 하나님이 갚아 주시리라 믿는 편이 현명한 처사다.
끼어 있는 분노를 제거하라 : 몇 년 전에 아프리카 오지의 작은 마을에서 끔찍한 병이 돌았다.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신음하고 구토하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병은 널리 퍼져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병의 소문이 전해지자 그 지역의 큰 도시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파견했고, 곧 물이 오염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을은 산 위의 수원(水原)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식수로 삼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 오염의 원인을 찾기로 했다. 잠수부들의 보고에 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커다란 어미돼지와 돼지 새끼들이 수원 입구에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돼지들은 사고로 익사한 후에 거기에 끼어 썩고 있었다. 그 바람에 원래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던 샘물이 돼지들의 썩은 사체를 통과하면서 오염되고 있었다. 잠수부들이 죽은 돼지들을 치우자마자 물은 다시 전처럼 맑고 깨끗해졌다.
우리 삶 속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음 상하는 일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지난 주 아니면 지난 달, 또는 10년 전에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하자.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용서하지 않고 남겨둔 앙심이 수정처럼 깨끗한 물을 더럽힌 돼지 시체들처럼 우리의 삶을 오염시키고 있다. 원망의 뿌리가 점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수정처럼 맑은 물줄기로 여겨야 한다. 분노를 품었던 대상을 용서하고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쫓아버릴 때, 원망의 불꽃이 꺼지고 우리 삶에 다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셨던 기쁨과 평화와 자유가 다시 찾아온다.
마음에 품은 독을 제거하라 : 수십 년 전에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몇몇 미국 기업들이 독성 폐기물을 땅속에 묻기로 했다. 이들은 화학 폐기물을 비롯하여 인간에게 치명적인 물질을 거대한 금속 용기에 담아 단단히 봉인한 다음에 깊은 곳에 묻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여러 용기가 새는 바람에 독성 폐기물이 지표로 흘러나와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식물이 죽고 수원이 오염되어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났다. 지금까지도 많은 도시와 마을이 독성 폐기물 매립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뭐가 문제였을까? 기업들이 매립한 물질은 독성이 너무 강했다. 그들은 폐기물을 묻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지, 폐기물의 독성이 그토록 강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결국 독성 물질은 흘러나왔고 처리하기가 전보다 훨씬 더 곤란해졌다. 애초에 제대로 처리했으면 그토록 끔찍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그 기업들과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것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줄 믿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라. 마음에 독을 품고도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 크고 강력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원망과 분노 같은 독성 요소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용서야말로 우리가 원망이라는 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를 당하게 한 상사를 용서해야 한다. 원망이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계속해서 우리 인생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5부 -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우리는 모든 일이 당장 이루어지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항상 성급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꿈을 위해 기도하면서 당장 이루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꿈을 이뤄 주실 때는 정해진 타이밍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조바심을 내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정해진 타이밍은 바뀌지 않는다. 모든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진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 다른 번역본에 보면 “일초도 늦지 않으리라”고 했다. 다음주가 될지, 내년 혹은 10년 뒤가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언제가 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믿는 믿음안에서 평안을 얻는다.
완벽한 때가 있다 : 다윗은 누구보다 큰 꿈을 품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양을 돌보는 목동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아마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다윗의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릴 줄 알았다. 그는 완벽한 때에 하나님이 자신의 꿈을 이뤄 주실 줄 믿고 이렇게 말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습니다”(시 31:15) 해석해 보면 이렇다. “하나님,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제 눈에는 아무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적당한 때에 이 상황을 바꿔 주실 줄 믿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들에서 불러내셔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방법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우리가 조급하게 억지로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우리를 세워주시고 꿈을 이뤄 주신다. 당장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우리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 둘째,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 하나님이 억지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가장 이상적인 계획에서 벗어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에 맡기라 : 하나님의 타이밍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등지고 혼자 일하는 것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매는 꼴이나 다름없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꼭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타이밍을 벗어나서는 아무리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도 끝없이 꼬이고 영원히 기쁨을 얻을 수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타이밍에 따르면 아무리 큰 고난의 한복판에 있어도 그분이 필요한 모든 은혜를 부어 주시니 기쁨이 충만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정한 때에 우리의 꿈을 이뤄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정한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나타난다.
시험의 목적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고난과 시련이 있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이 직접 시련을 만드시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을 통과하게 만드신다. 유혹과 시련이 찾아오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강해지고 성장하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은 그릇된 태도나 불순한 동기, 세상과의 타협 등, 우리에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밝혀 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금만 다른 눈으로 보면 시련은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한 과정이다.
주위 사람보다 우리를 먼저 바꾸신다 : 인생의 시련을 많이 겪다 보니 나는 하나님이 상황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데 더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님이 상황을 바꿔 주시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실 수 있고 또 자주 그렇게 하신다. 하지만 내 경우를 보면 어려운 상황은 대개 나의 가장 약한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나는 식당에 가면 메뉴판이 오기도 전에 주문을 끝낸다. 그만큼 참을성이 없다. 하지만 내 경험상, 조바심을 낼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진다. 내가 늦었다고 서두르라고 닦달하면 아내의 옷 입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반대로,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오히려 아내는 나보다 빨리 옷을 입고 아이들과 차에서 기다린다. 희한하게도 내가 조급해 할수록 꼭 무슨 일이 일어나 시간을 지체시킨다. 아내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옷 입는 아내를 통해 나를 단련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내 안의 문제를 깨우쳐 주시고 그것을 고치게 도와주신다.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움직이셔서 나를 성장시키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나를 빚어 가신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의 사람을 일종의 거울로 사용하신다. 우리는 그런 거울을 통해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할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주위 사람을 바꾸시기 전에 우리부터 바꾸신다.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 우리는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신다. 하나님은 옹기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다. 부드럽고 잘 구부러지는 진흙이 좋은 진흙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집만 앞세우는, 딱딱하고 거친 진흙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주무르고 두드려서 좋은 진흙으로 만드신다. 인생의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시련은 성장과 발전의 기회다. 우리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 대상이 우리를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해줄 도약대일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우리의 강인함과 활기, 생동감을 유지시키며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러니 포기하고 도망갈 이유가 전혀 없다. 징징대거나 불평할 필요도 없다. 시험은 우리의 믿음과 인격, 참을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아오를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우리를 짓누르는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은 십중팔구 시험의 순간이다. 이때 고집을 부리면 시험 기간만 길어질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거친 모서리를 깎아 둥근 자갈로 만들려고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뜻을 헤아리고 협력해야 한다.
6부 - 베푸는 삶을 살라
베푸는 즐거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다른 사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불쌍한 사람을 도울 시간도 없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가 유일한 관심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기주의는 오히려 우리를 비참한 삶으로 내몬다. 아무리 많은 이익을 챙겨도 결코 만족감은 얻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맛보고 싶은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잊으라. 남이 나를 위해 뭘 해줄까 계산하지 말고 내가 남을 위해 뭘 해줄까 고민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베푸는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베풀며 사는 법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진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받는 법이 아니라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베푸는 삶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여섯 번째 단계다.
우리는 베푸는 사람으로 지음받았다 : 얼마 전에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 극도로 실망하여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한때 남부럽지 않을 만큼 성공했지만 몇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업과 가족, 집, 평생 모은 돈을 몽땅 날린 상태였다. 나는 깊이 좌절한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애썼다. 그를 위해 기도한 후에 몇 가지 실질적인 조언을 전달했다. “당신 자신의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세요. 당신이 저지른 실수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으십시오. 행복한 삶을 정말 되찾고 싶다면 관심의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세요. 뿌린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남의 짐을 덜어 주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힘과 소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내 조언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물 중독자를 돕는 레이크우드 성도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몇 주 후에 그가 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목사님, 지난 두 주간 코카인 중독자를 돌보며 지냈습니다. 제 평생 그토록 기쁜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평생 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는 그 주에 누군가 찾아와 자신에게 일자리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차에서 생활하는 신세에서 벗어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는 사람에서 베푸는 사람으로 변한 지 몇 주 만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자신을 잊고 남을 돕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자기만족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기 위해 지음을 받았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하고 기쁨 충만한 삶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우리가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 주신다.
축복의 통로가 되라 : 자기중심적인 삶은 이제 그만! 우리에게는 줄 것이 너무도 많다.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복을 놓칠 뿐 아니라 남의 기쁨과 복까지 빼앗는 사람이다.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우리가 그 일을 소홀히 하면 남의 복을 빼앗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남의 흠과 잘못을 꼬집어 비판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더러 남을 세워주라고 하신다. 믿음과 승리의 말을 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신다. 그리고 복을 받기보다는 복의 통로가 되는 데 더 관심을 가지라. 하나님의 사랑과 복과 선하심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적극 모색하라. 남을 열심히 도우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머리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나누는 삶의 실천이 중요하다.
집이나 창고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쌓아 둔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유용하게 활용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 불필요한 물건을 다락방이나 지하실 혹은 차고에 쌓아둬서 무엇하겠는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복의 씨앗으로 사용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남에게 베푸는 모든 선은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베푸는 삶은 영적 원칙이다. 우리가 웃음을 주면 남도 웃음으로 응답한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남을 통해 도움을 받게 만드신다. 우리가 남에게 베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대로 갚아 주신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씨앗을 뿌리는 것이 우선이다
농부가 씨 뿌리기가 귀찮아 펑펑 놀았다면 과연 추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평생 기다려도 쌀 한 톨 얻지 못한다. 땅에 씨를 뿌려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다. 마찬가지로 복을 거두고 싶다면 복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행복을 거두고 싶다면 행복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내 문제만 해도 정신이 없어. 남에게 씨앗을 뿌릴 여유는 없단 말이야. 어떻게 해야 내가 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정말 어리석은 말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을 도와야 한다. 한 마디로 땅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우리가 남의 필요를 채워 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우리 삶에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면 밖으로 눈길을 돌려 다른 사람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
고통의 순간에 씨앗을 뿌리라 : 내가 꼬마였을 때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레이크우드 교회는 첫 번째 건축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한편,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스페인 교회도 똑같이 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다. 어느 주일 아침, 아버지는 건축 특별 헌금을 걷겠다고 광고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교회가 아닌 그 스페인 교회를 위한 건축 헌금이었다. 그 날 아침에 몇 천달러가 걷혔고, 곧바로 우리는 그 돈을 스페인 교회에 전달했다. 사실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스페인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씨 뿌리기의 원칙을 아셨다. 기근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씨앗을 뿌리는 것임을 아셨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한 모든 자금이 마련되었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지금까지 여러 채의 건물을 지었는데, 언제나 씨 뿌리기의 원칙을 고수했다.
궁핍한 때에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물론 이기주의의 유혹은 떨쳐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선한 사람조차도 다음과 같은 태도의 함정에 자주 빠진다. “그런 게 내게 무슨 이익이 있어? 어디 나를 좀 도와줄 사람 없나? 내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 줄 사람은 어디 있지? 누가 내 문제 좀 해결해줘!” 그러나 우리의 태도는 이와 정반대여야 한다. “오늘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을까? 어디 내가 도와줄 사람은 없을까? 누굴 격려해 줄까? 누구의 기운을 북돋아 줄까?” 나는 베푸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선한 일을 하고 복의 씨앗을 뿌릴 기회를 찾을 것이다. 왜냐고? 씨앗을 뿌리면 얼마나 큰 결실을 거두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커다란 열매를 맺기 위해 열심히 씨앗을 뿌릴 것이다.
7부 -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닌 선택이다
지금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일곱 번째 단계는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살기로 선택할 수도, 비뚤어진 태도를 가지고 불행하게 살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없다. 오늘을 온전히 살려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날려 버려야 한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걱정하지 말고 한 번에 하루씩 살아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고 목표를 세우며 예산과 계획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미래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현재를 즐길 수 없다.
오늘을 감사하라 : “우리 아이가 기저귀 신세에서만 벗어나면 행복할 텐데요”라고 말했던 부모들이 몇 년이 지나면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시간 여유가 좀 생기면 행복할 텐데요.” “아이들이 졸업하고 좀 한가해지면 제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요.” 행복할 이유만 찾는 사이에 인생은 유수처럼 흘러간다. 행복할 때를 기다리다간 끝이 없다. 오늘, 매일, 인생길의 각 부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잠시 우리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줄지는 몰라도 그런 행복은 마약처럼 점점 효과가 떨어지고 결국은 새로운 자극제를 찾게 만든다. 자칫하다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온한 상황이 찾아올 때까지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미루는 습관에 빠질 수 있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말란 법이라도 있는가? 평생 불행의 숲을 헤매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하나의 사건이나 성과, 아니 일련의 성공조차도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인가? 오늘을 감사하고 인생의 여행을 즐기자. 현재가 바로 최고의 순간이다. 20년쯤 지나 지금을 돌이켜보면 “정말 멋진 순간이었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자주 웃으라 : 과학자들은 모든 사람의 몸에 매주 암세포가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다행히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면역체계 덕분에 우리 몸에는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sells)'가 생성된다. 이 세포는 주로 비정상 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한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두려움과 걱정, 근심,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연 살해 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우리 몸을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반면 행복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 항상 웃고 사는 사람의 몸에는 정상인보다 많은 자연 살해 세포가 생성된다. 얼마나 멋진가!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의 면역 체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능을 극한까지 발휘한다.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는 자주 웃는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레이크우드 교회의 정문에 서 있는데 작은 남자아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왜 그렇게 많이 웃나요?” 그 아이의 얼굴과 말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내가 많이 웃는 것이 잘못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소신껏 대답했다. “음, 그건, 목사님은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넌 자주 웃지 않니?” “아이스크림 먹을 때만 웃어요.” 이 아이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인생이 달콤하고 아름다울 때만 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웃는 법을 배우라. 근심과 스트레스는 날려버려라. 긴장을 풀면 수명이 길어질 뿐 아니라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까지 채워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단순히 며칠간 기분이 좀 좋아지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장기적인 회복 역사를 추진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시고 우리에게 강하고 건전하고 유익한 관계를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때 언제나 몇 곱절 더 좋은 복을 부어 주신다.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더 크고 새로운 비전을 품자. 상황이 우리 쪽으로 변하기를 기대하자. 어둠의 권세에 과감히 맞서겠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자. 우리 인생의 목적은 평범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기대 수준을 높이자. 우리의 작은 사고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자. 명심하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무조건 신뢰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 아니 그 이상의 삶을 살게 된다. 오늘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을 기쁘게 누리기로 결심하자.
①비전을 키우라.
②건강한 자아상을 키우라.
③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라.
④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라.
⑤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으라.
⑥베푸는 삶을 살라.
⑦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이 단계를 꾸준히 밟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상상도 못할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최고의 오늘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