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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의 다리가 된” 탕돈걀뽀의 생애
http://www.youtube.com/watch?v=kdD52DAaFRs&feature=related
‘쇼뙨’이라는 불교행사에 연극공연이란 요소를 끌어 들어 티베트 연극의 또 다른 지평을 연 제5대 달라이라마보다 앞서서 그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연극을 더욱 빛나게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연극의 신’으로 불리는 승려 탕돈걀뽀(1385~1464)이다. 그를 빼고는 티베트의 연극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설역 연극사에서 그가 차지한 위치는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우뚝하다.
가혹한 기후조건과 척박한 토양에서 살면서도 선천적으로 놀이를 좋아하는 이 민족의 특성상 춤과 노래와 연기 그리고 가면극이 하나로 합쳐진 연극이란 장르는 일찍부터 자생적으로 발생해 점차로 발전되어 내려왔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기록상으로도 7세기, 투뵈 제국 제38대 임금 치송데쩬 시기 건립된 쌈애 대사원의 준공 경축행사 때 춤과 굿과 가면무 등이 공연되었을 정도로 티베트 연극의 연원은 아주 오래되었다.
이런 사실은 사서들의 기록이나 벽화로 남아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지만, 중요한 것은 단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티베트 민중의 가슴속에 얼마나 생생히 살아 있느냐는 것이다. 연극은 그들의 놀이문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이어서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문화보다도 비중이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탕돈걀뽀 이전에도 간단한 형식의 전통적인 연극은 이미 민초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을 불교적으로 각색하여 더욱 완성도를 높여 일반화시킨 작업은 바로 그가 이루었기에 ‘티베트 연극의 神’으로 추앙받아 소상(塑像)으로, 벽화로, 또는 탱화로 그려져서 부처님과 나란히 공양대접을 받을 정도로 그는 민중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그럼 이 범상치 않은 인물의 일생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짧은 사족을 붙여야겠다. 이 흥미로운 인물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줄곧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bled water)>라는 것.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궁금해질 텐데, 바로 영국 출신의 유명한 남성듀엣 사이먼과 가펑클이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유명한 이 노래의 메시지가 바로 티베트의‘연극의 신’ 탕돈걀뽀의 생애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노랫말이 티베트의 어떤 전설과 거의 같다는 것.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l
당신이 의기소침해 하거나 당신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일 때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의 곁에 있으리라.
고난이 몰아쳐 찾는 친구도 없을 때 거센 물을 건너는 다리처럼 나를 바치리라.
낯선 곳에서 향수에 젖을 때나 고통의 밤이 오면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처럼 나를 희생하리라.
땅거미 지고 고통의 밤이 오면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처럼
나를 희생하리라.
은빛 소녀여! 노를 저어요. 계속 저어요.
곧 밝은 빛이 비치리라.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리다. 자! 저 빛을 봐요.
벗이 필요하다면 난 곧장 노 저어 가리다.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처럼
그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바로 화신교(化身橋)라 하겠다.
화신교(化身橋)! 인간의 몸을 눕혀야만 건널 수 있는 다리!
전설에서나 존재하는, 이 풍진 세상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 맑은 영혼의 다리이자 대승보살의 다리. 이 노래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당신이 의기소침할 때나, 당신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일 때”는 요새말로 스트레스 받거나 슬플 때이니 이는 “인생자체가 고해(苦海)”라는 비유라 할 수 있고“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 곁에 있으리라”는 대승보살의 자비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난이 몰아쳐 찾는 친구도 없을 때”는 고해 속에서 일엽편주를 타고 있는 우리 인생살이를 비유한 것이고“다리 되어 나를 눕히리”라는 구절은 바로 나 자신이 다리가 되어 남을 건너게 하리라는 대승보살의 의무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나를 눕히리”라는 부분은 바로 대승의 핵심철학이며 또한 티베트 전설 속의 ‘화신교(化身橋)’를 직접 의미하고 있어서 의미심장함을 더하고 있다. 그 전설이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느 골짜기에 있는 암자에 스승과 어린 제자 수행자가 살았는데 하루는 큰 비가 내려 암자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나 급히 피난을 가야 했다. 그러나 험한 계곡을 건너기 전에는 안전한 곳이 없었기에 다리가 꼭 필요했지만 외나무다리는 이미 떠내려가고 없었다. 위험은 시시각각 닥쳐오는데 별 대책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스승이 제자만이라도 살릴 결심을 하고 계곡 사이에 솟아 있는 바위 위로 자기가 잠시 엎드려 있을 터이니 그때 자기를 밟고 건너 뛰어가라고 했지만, 제자가 선뜻 그 제안을 승낙할 리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마침내 둘은 눈물로 이별을 하고 스승이 임시 다리가 되어 누워 있는 사이 제자는 스승을 밟고 건너갈 수 있었다. 제자가 저쪽 편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다보니 스승은 이미 거센 물결에 떠내려가고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아난 제자는 죄책감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스승의 깊은 뜻인 것을. 제자는 마음을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가 며칠 뒤 물이 빠지자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암자를 다시 세우고 수행을 열심히 하여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백발의 다리도사’라고 알려진 탕돈걀뽀는 상빠-까귀파의 고승이다. 그는 법명보다는‘자상빠 족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자쌍빠’란 ‘철교활불(鐵橋活佛)’을, ‘족뚜’는 요가수행자를 뜻한다. 그러니까 그의 이름은 “철교를 놓은 밀교고승”을 의미한다. 티베트에서는 지금도 연극이 공연되는 뒤편 무대 막으로 거는 대형 걸개용 탕카에 그려진 그의 초상화는 대개 하얀 수염을 한 신선 같은 노인으로 나타난다.
그는 이미 전설적 인물로 승화되어 그의 전기는 대부분 과장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친 뱃속에서 60년을 살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 이미 백발이었다고 하는 식으로, 이는 그가 120세 까지 살았다는 전설에서 기인하지만, 실제로도 젊을 때부터 눈썹, 수염, 머리털이 모두 하얀색이었다고 한다.
티베트 연극에서 쓰는 가면에는 파란색(남면 극파)과 백색(백면 극파)의 두 가지가 있는데, 백색 가면은 탕돈걀뽀의 얼굴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그의 연보를 정리해보면 80세까지 산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당시 평균수명보다 두세 배 오래 산 것이어서 전설화는 이미 그의 생존 시부터 시작되었던 듯하다.
네팔과 서부 티베트로의 갈림길인 라쩨 인근의 충․리오치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벌써 양을 잘 몰고 다녔기에 유능한 목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어른이 되어 한때 일 년 동안 군인이 되었다가 후에는 부친을 따라 장삿길에 나섰지만 성품이 착한 그는 지방귀족의 모함에 빠진 동료를 구하느라 장사밑천을 몽땅 날리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부친의 구박이 자심하자 보다 못한 모친이 권해서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창딩 사원이란 곳으로 가서 니마쌍게라는 스승 아래서 불법을 비롯한 의술, 공예 등 다방면의 학문을 열심히 닦았는데, 당시는 이렇게 승단보다는 한 스승의 문하에서 수행하는 것이 ‘상빠파’를 비롯한 밀교종파의 특성이었다. 이렇게 출가사문으로서의 기초를 익힌 그는 당시 전통대로 스승을 떠나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이른바 만행(萬行)을 하게 되며, 이 시기에 그는 피나는 수행을 하여 마침내 ‘한 소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오(大悟) 때의 일화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그가 어느 날 선정삼매에 빠져 있는데 문득 하늘에서 4명의 천녀들이 내려와 그의 주위를 돌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광대무변한 초원, 큰 언덕에서,
한 밀교 수행자가 공성(空性)을 깨달았네.
마치 위대한 왕이 언덕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대는 ‘탕돈겔뽀’란 이름을 얻었네.
이 게송은 그의 이름의 운자(韻字)풀이로써, 큰 언덕은 ‘탕’자, 공성은 ‘동’자, 위대한 왕은‘걀뽀’가 되어 “큰 언덕 위에서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인물”이란 뜻으로, 후에 그의 법명을 암시한 것이다. 이후로도 그의 광야를 헤매는 두타행(頭陀行)은 계속되었는데, 험준한 산악지방이 많은 설역의 특성상 그도 당연히 다리가 없는 깊은 계곡을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야만 했다.
그런 불편을 겪을 때나, 어떤 때는 무리하게 시냇물을 건너다가 사람이 떠내려가는 참사를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하면서 그의 가슴속에는 하나의 원력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일생을 다리를 세우는 일에 바치기로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이 사업에 평생을 매달려 대승보살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그렇게 하여 평생 총 120여 개의 나무다리를, 58개의 큰 쇠사슬다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중 20여 개는 존재가 확인되었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도 3개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지 금전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고금을 통해 마찬가지였던지 다리를 놓아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는 이 다리도사님도 무한정 들어가는 돈을 소규모의 개인적 보시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지 한 가지 방법을 구상해냈다. 그 인연의 출발은 바로 산남지방의 고도(古都) 총게의 어느 장터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 탕돈걀뽀가 장터를 거닐고 있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모인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헤치고 들여다보니 놀이마당이 벌어진 가운데 아름다운 여자들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있었는데, 한판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열광하며 푼돈을 수북이 던지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탕돈걀뽀는 간밤의 꿈이 문득 생각났다. 민족의 수호신이며 자비의 화신인 쪼마 여신이 오색 무지개 빛깔의 선녀 옷을 입고 나타나 춤을 추는 꿈이었다. 이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저녁 때 그녀들의 숙소를 찾아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녀들의 출신내력을 묻고는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원래 유랑극단의 피를 이은, 한 가족인 7자매였는데, 가난이 죄가 되어 부모들과 같이 밥벌이를 나선 참이었다. 그러나 백발의 유명한 라마승이 중생을 위해 함께 좋은 일을 하자는 말에 크게 발심하여 즉석에서 유랑극단의 고문역으로 그를 맞아들였다.
원래 다재다능한 탕돈걀뽀는 이 유랑극단의 특성을 잘 응용하여 옛날부터 내려오던 단순한 연극이나 가면극의 대본을 좀 더 불교적으로 채색하고 또한 줄거리도 흥미롭게 보강하고 복장도 오색 무지개 빛깔의 ‘라모-선녀’ 옷을 입혀서 선녀처럼 아름답게 꾸몄다.
말하자면 재래식 놀이를 한 차원 높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는 산남지방에 산재한 귀족들의 장원들과 크고 작은 사원들, 그리고 전국의 장터를 찾아다니며 공연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이었다.
12세기 중엽, 당시 티베트의 정세는 원나라의 무력을 등에 업고 2백년간 설역을 지배하던 싸갸파의 뒤를 이어 씨족종단인 팍모둑파가 내탕지방을 본거지로 하여 전국으로 세력을 펼쳐나가던 시기였기에 고대 투뵈왕조의 도읍지였던 총게나 신흥도시 내탕이 속해 있는 얄룽짱뽀강 남쪽 강기슭으로 펼쳐진 산남지방은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또한 세력 있는 귀족들도 대거 모여 있어서 그들 대장원의 곡간에는 재물이 넘쳐났다. 이런 시대적 배경도 탕돈걀뽀라는 인물의 탄생을 돕고 있었다. 다리를 놓는 일은 누구에게나 시급한 사회간접자본이기에 파크모주 종단은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불교적으로 새로 각색된 감동적인 연극 스토리에 취한 관객들은 앞 다투어 보시금을 내놓았다. 더구나 아름다운 여자가 대거 출연하는, 새로운 대형극단의 떠들썩한 분위기 탓에 그 효과는 더욱 클 수밖에 없어서 막대한 자금력을 필요로 하는 다리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다리에 ‘답교(踏橋)놀이’라는 일종의 개통식도 함께 곁들여서 시주금을 낸 귀족들과 원근 주민들이 모여들어 또 한 번 놀이마당 한판이 질펀하게 벌어졌다. 나팔, 징, 꽹과리, 북 등을 앞세워 다리를 밟는 이 의식은 우리의 그것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하여간 이렇게 이 다리도사의 유명세는 날로 더해져 전국 각지에서 초청공연 요청이 쇄도해 극단 자체로서도 새로워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사원에서 공연되던 벙어리 가면극인 ‘참’춤은 벽사(辟邪)적 의미에 치우쳐 장엄하기는 하지만 놀이로서의 대중성이 모자랐고 또한 전통적인‘라마마니’라는 구연설화체 공연은 불교적인 소재란 단순성 그리고 입과 귀로만 전달되는 한계성이 있어 역시 놀이문화로서의 중심축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에 탕돈걀뽀가 새롭게 다듬은 춤, 민요, 기악연주, 구연설화, 가면극, 무술, 기예, 그리고 연극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적 놀이마당은 상․하류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왔던 단순한 연극은 탕돈걀뽀라는 인물에 의해 양 날개를 달게 되어 설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고 또한 자신은 후에 연극의 신으로 또는 대장장이 신으로 추앙받아 신의 반열에 들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첫댓글 _()()()_
누가 댓글로 이 노래나 올려주시기를.....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보아야지 제격이니 말입니다.
사이먼과 카펑클의 노래로만 알았는데 놀랍네요,수리님 감사 감사요_()_
감동적인 이야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