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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에 무성한 누릅나무.
촌놈이라 서울에서는 거주한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리 지도책을 보아도 산이라고 그린 등고선이 고놈이 고놈같아 인왕산과 무학산을 구분하기란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격이라 서울에서 몇 년을 살다온 知人에게 諮問을 구하여 겨우 靑瓦臺 뒷산이 무슨산이며 북한산이 어떤산인지 人壽峯이 무엇하는 놈인지 대충 짐작이나마 할수가 있었다... 却說하고 인왕산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무악산 건너편에 우뚝 솟은 산이 안산(鞍山)이란다. 안현(鞍峴)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길마재라고 한단다. 그리 높지 않은 그 산에는 예전에 오래된 느릅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그 나무에는 한 노비의 悲願이 서려 있었다.
[뜻을 둔 사람이 이름에 현혹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이익에 현혹되는 것과 같다. 비록 지향하는 바가 같지 않지만 애타게 반드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한가지이다. 다만 이익은 탐한다고 반드시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이름 또한 사모한다고 하여 다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 뜻을 지녔으되 전할 수 없고 재주가 있지만 쓸 데가 없으면, 어부나 나무꾼이 되고 백정이 되고 문지기나 순라군이 되어, 마침내 풀과 나무처럼 시들어 떨어지고 구름과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어찌 남의 노예가 된 자처럼 더욱 슬퍼할 만한 일이 있겠는가? 불행히도 그 사이에 한 번 떨어지면 비록 절륜한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 무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위청(衛靑)은 대장군이 되었고 이선(李善)은 그 어린 주인을 보호하여 낭장(郎將)에 임명되고 마삼보(馬三寶)는 편장이 되었는데1) 천고의 역사를 두루 헤아림에 이와 같은 이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살면서 매를 맞고 욕을 먹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자밀(子密)이 주인을 배신하여 불의후(不義侯)가 되고 주이(朱异)의 노비가 개부의동(開府儀同)의 벼슬에 임명된 것 또한 말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2) 재주를 아껴준 예로는 소영사(蕭潁士)의 노비가 있어 백수가 되도록 멧돌을 돌렸지만,3) 이 어찌 그 이름을 말할 만하겠는가?
근세에 어떤 집에 노비 아무개가 있어 나이가 겨우 열네댓 살인데 개연히 이름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었다. 하루는 그 주인을 따라 길마재[안현(鞍峴)] 마루에 올라 도성을 내려다보니 손바닥 안처럼 훤하였다. 문득 탄식하여 “땅에 빼곡한 민가가 거의 5만 가구가 되는데 내가 한 곳도 차지하지 못하고서 이에 노비가 되었구나.”라 하였다.
또 산 북쪽에 겨우 한 자 남짓한 느릅나무가 바위 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데 흙이 그 뿌리를 덮지 못하고 그 위에 벼랑의 바위가 가지를 누르고 있어 비와 이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 탄식하여 “너도 또한 나무 중에 노비로구나. 어찌하여 태어나서 제대로 자랄 수 있는 땅을 얻지 못하였는가?” 하고 마침내 산 앞쪽 평평한 곳으로 옮겨 심고 그 뿌리를 깊게 묻고 그 흙을 언덕처럼 높게 쌓아주며 물을 듬뿍 주었다. 그리고 축원하여 “너는 이제 제대로 된 땅을 얻게 되었구나. 네 본성을 따라 나날이 무성하게 자라나 울창하게 우리나라 도성 억만 사람이 바라볼 수 있게 되거라. 내가 너에게 의탁하여 내 이름을 전하리라.” 하였다. 산마루에 봉화를 맡은 병졸에게 “베지 마시오. 구름을 찌를 듯 높게 자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하였다.
이로부터 틈틈이 맡은 일을 하는 여가에 바삐 서쪽으로 달려가서 흙이 혹 거칠어졌는지 벌레가 혹 먹었는지, 동동거리면서 마음과 손길을 부지런히 하였다. 한 달이면 두세 번 찾아갔는데 늙어서도 해이하지 않았다. 봉수대의 병졸이 또한 그 정성에 감동하여 매일 그 나무를 위해 살피고 아꼈다. 거기에 비와 이슬이 넉넉히 적셔주고 뿌리의 흙이 매우 두둑해졌으니, 어찌 천지 또한 감동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얼마 후에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는데 그에 따라 점점 키도 자라고, 또 그에 따라 그늘이 번성하게 되었다. 도성 10리 밖에서도 정정한 일산 같은 모습이 바라다 보였다.
그 일을 알고 있는 자가 혀를 쯧쯧 차고 나무를 가리키면서 탄식하였다. “이는 아무개 노비가 직접 심은 것이다. 노비가 죽은 지 100여 년이 되었는데 나무가 이제 높이가 백 척이 되고 굵기가 열 아름이 되었으며 드넓은 그늘을 지어 하늘에 구름이 드리운 듯하다. 도성을 빙 두른 산 중에서 수목이 눈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천만 그루이다. 그러나 우뚝 홀로 서 있어 울창한 모습이 볼 만한 것 중에 이 나무처럼 가장 멀리서도 이렇게 높고 큰 것은 없다. 사람은 죽고 세월이 오래 지나니, 나무가 있다는 것만 알고 이 노비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내가 어릴 적 그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잊어버렸다. 지금 세상에 아직 그 이름을 들어 기억하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를 기억하는 이가 있으면 나를 위하여 알려주게나.”
그는 정말 뜻이 있는 자다. 다만 이 노비는 아쉽게도 이름을 이룬 것이 없다. 이처럼 나무 하나에 구구한 이름을 의탁하려고 아등바등하였으니, 그 마음이 괴롭고 그 뜻이 슬프다 하겠다. 그러나 나처럼 들어 본 사람도 오히려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나는 이 나무를 보면서 노비가 이름을 좋아한 사실을 탄식하고, 다시 이른바 이름이라는 것이 인멸될 것을 슬퍼하였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어찌 이 나무를 보고 흥감이 이는 자가 없겠는가? 몽해(夢海) 이이길(李而吉)이 이 노비를 알고 있었지만, 그 또한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한다.
志士之徇名。猶衆人之徇於利。雖趍向不同。所以惓惓而必欲求之一也。但利未必貪而盡得也。名亦未必慕而盡傳也。噫。有志而不能傳。有才而不能措。或漁樵焉屠販焉。抱關而擊柝焉。竟不免草木之零落雲煙之消散者。固何限。又豈有若爲人奴者之尤可悲也。不幸一廁於其間。雖有超羣絶倫之才。亦不能出乎其類也。衛靑至大將軍。李善以保其幼主。拜爲郞。馬三寶爲偏將。歷數千古。如是者復幾人哉。其生得無笞罵足矣。至於子密之不義侯。朱异奴之開府儀同。又不足道矣。愛才有蕭穎士之奴。而白首摧磨焉。是豈可語夫名也。近世有一某家奴。年纔十四五。能慨然有慕於名。一日隨其主。登鞍峴之顚。俯瞰都城。歷歷如指掌。輒嘆曰。撲地閭閻。殆五萬家。而不能占一區。乃爲之奴也。又見山之陰。黃楡樹纔盈尺。生於石窟中。土不能覆其根。上有崖石壓其枝。雨露之所不及也。又嘆曰。汝亦木而奴歟。何所生之不得其地也。遂移植於山之前平衍處。深其根阜其土。沃之水。祝曰。汝今得其所矣。遂汝之性。日滋而長。蔚然爲我國都億萬人之望也。吾欲托于汝而傳吾名也。顧謂山頭烽臺之卒曰。無剪伐。會見其拂雲也。自是輒乘服事之暇隙。芒芒然西走。恐土之或鬆也。虫之或蠧也。憧憧乎心手之俱勤焉。月必再三。老而不懈也。烽臺之卒。亦感其誠。日爲之護惜也。雨露之若偏滋焉。培養之若偏厚焉。豈天地亦有所感而然歟。幾何而圍。幾何而抱。隨而漸高。又隨而蔭之繁也。自都城望之十里外。能亭亭如盖也。知其事者。嘖嘖然指而嘆曰。是某奴之手植也。奴之死已百餘年。樹今高百尺而大十圍。百畝之蔭。儼若垂天之雲。凡環都城而山。樹木之入望者。以千萬數。巍然特立。欝然可觀。未有如此樹最遠而高且大者也。人亡而歲遠。但知有樹。不知有此奴矣。余少時曾聞知其名也。今忘之矣。未知今世。猶有能聞而記之者乎。苟其記也。幸爲我告之也。彼固有志者也。惟其奴也。苦無所成名也。若是其勤勤於一樹。欲以托區區之名。其心苦矣。其情戚矣。然而若余聞者。尙未能記。而况不之聞者乎。余於是樹。旣嘆奴之能好名也。更悲其所謂名者。又將泯然也。世之人。亦豈無覽此而興喟者乎。夢海李子而吉。知有此奴。而其名亦不能記也
[지사지순명, 유중인지순어리, 수이향부동, 소이권권이필욕구지일야. 단이미필탐이진득야. 명역미필모이진전야. 희. 유지이불능전. 유재이불능조. 혹어초언도반언. 포관이격석언. 경불면초목지영락운연지소산자. 고하한. 차기유약위인노자. 불행일측어기간. 수유초군절륜지재. 역불능출호기류야. 위청지대장군. 이선이보기유조. 배위랑. 마삼보위편장. 역수천고. 여시자부기인재. 기생득태매족의. 지어여밀불의후. 주기노지개부의동. 차부족도의. 애재유소영사지노. 이백수최마언. 시기가언부명야. 근세유모가일노. 년재십사오. 능개연유모어명. 일일수기주. 등안형지전. 부감도성. 역역여지장. 첨탄왈. 복지여염. 태오만가. 이불능점일구. 내위지노야. 차견산지음. 황유수재영척. 생어석굴중. 토불능복기근. 상유애석압기지. 우로지소불급야. 차탄왈. 여역목이노여. 하소생지부득기지야. 수이식어산지전평연처. 심기근고기상. 옥지수. 축왈. 여금득기소의. 수여지성. 일자이장. 울연위아국도억만인지망야.오욕택우여이전오명야.고위산두봉대지졸왈. 무전벌. 회견기불운야.자시첨승복사지가격망망연서주. 공사지혹송야. 충지혹두[蠹:좀두의속자]야. 통통호심수지구근언. 월필재
산. 노이불해야. 봉대지졸. 역감기성. 일위지호석야. 우로지약편자언. 배양지약편후언. 기천지역유소감이연여. 기하이위. 기하이포. 수이점고. 차수이음지번야. 자도성지십리외. 능정정여개야. 지기사자. 책책연지이탄왈. 시모노지수식야. 노지사이백여년. 수금고백척이대십위. 백묘지음. 엄약수천지운. 범환도성이산. 수목지입망자. 이천만수. 위연특립. 울연가관. 미유여차수최원이고차대자야. 인망이세원. 단지유수. 불지유차노의. 여소시증문지기명야. 금망지의.
미지금세. 유문이기지자호. 구지기야. 행위아고지야. 피고유지자야. 유기노야.
고무소성명야. 약시기근근어일수. 욕이탁구구지명. 약심고의. 기정척의.
연이약여문자. 상미능기. 이항불지문자호. 여어시수. 개탄노지능호명야. 경비기소위명자. 차장민연야. 세지인. 역기무람차이흥위자호. 몽해이자이길. 지유차노. 이기명역불능기야.]-卞鍾運-안현의느릅나무이야기[鞍峴黃楡樹記]-歗齋集)
[#. 한나라의 위청과 당나라의 이선, 마삼보는 모두 노비 출신으로 전공을 세워 각기 대장군과 낭장, 편장이 되었다.
##. 노비인 한의 자밀은 역모를 꾀한 그 주인을 죽여 의리로는 옳지 못하지만 그 공이 크다 하여 불의후에 봉해졌고, 양(梁)의 주이의 한 노비가 투항하여 의동의 벼슬을 받은 후 다른 노비들을 선동하여 모두 투항하게 하였다.
###. 소영사는 당나라의 명사로 사람들이 그의 글자를 하나 얻으면 영광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그의 노비에 대한 고사는 찾지 못하였다.]
19세기 변종운(卞鍾運, 1790-1866)이라는 문인이 있었다. 자가 붕칠(朋七), 호가 소재(歗齋)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으로, 조선후기 대표적인 역관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시로 일시를 울려 이유원(李裕元), 윤정현(尹定鉉), 남공철(南公轍) 등 당대 명가들의 지우(知遇)를 입었다.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자급을 받았으며, 문집 《소재집(歗齋集)》을 남겼다. 그러니 출세를 한 사람이라 하겠다.
그러나 변종운은 칼집에서 칼을 빼보지 못한 인물이다. 중인으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여 마음에 울분이 많았다. <끝이로구나(而已矣)>라 제목을 단 시에서 “평생의 뜻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몇 가닥 백발만 남았으니 끝이로구나.”라 한 대로 사대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세의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을 개탄하였다. 사대부에게 멸시를 받는 자신의 처지를 확충하여 자신보다 불쌍한 노비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었다.
한 노비가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갖추었기에, 길마재 꼭대기에서 도성을 내려다보고 자신이 소유한 땅과 집이 없고 게다가 자유롭지 못한 노비의 신세임을 한탄하였다. 그리고 길마재 아래쪽 바위틈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느릅나무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흙은 뿌리를 채 덮지 못하고 그 위에 바위가 있어 햇볕이나 우로(雨露)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나무 중에 노비구나.”라 탄식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옮겨 심고 물을 듬뿍 주어 잘 자랄 수 있게 하였다. 자신의 분신으로 삼은 것이 그 나무가 성장하여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하였다. 그리고 후대에 그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자신임을 알려, 사나이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취를 남기고자 하였다. 그러한 비원이 서린 느릅나무였다.
그 노비의 정성에 봉수군도 감동하고 하늘조차 감동하여 그 나무는 크게 성장하였지만, 정작 노비가 죽은 후 제 이름은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였다. 변종운은 이를 참으로 아쉬워하였거니와, 변종운처럼 그 노비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있어 그 이름을 찾고자 하였던 모양이다. 아마도 변종운 같은 중인이었으리라. 변종운 역시 그 이름이 사라진 것을 애석하게 여겨 벗인 몽해(夢海) 이일수(李一遂)에게 물었으나 그 역시 이름을 잊었다. 이일수 역시 잡과 출신의 중인이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으리라. 안산은 봉수대가 있던 그 정상 일부만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주택가로 바뀌었다. 느릅나무를 심은 노비는 이름을 남기지 못하였고 그 나무도 어느 시기인가 사라졌다. 그래도 느릅나무가 자라던 그 시절 함께 안산을 푸르게 하던 나무의 후손들이 제법 남아 있다. 봉수대 곁에 느릅나무를 심어 세상에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의 위안으로 삼으면 어떠하겠는가? 그 앞 서대문 교도소의 원혼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첫댓글 이익과 명성은 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걸어간 뒤에 오는 것이겠지만.............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욕심이므로, 적당히 게을리 사는 것이..........
그렇다고 해이와 나태로는 살수없는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대로 한템포 늦추어 슬로우템포와 느긋한마음, 여유로운태도를 가지면 좋으련만 세사에 시달리다 보면 성인아닌 범인인 이상 본의아니게 서두르고 허둥대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