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모얼랜드는 자신이 구상하였던 3단계 지상 작전의 작전개념에 따라 제1단계로 기울어져가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차후작전 수행을 위한 군수지원 기지의 구축과 방호에 전념하면서 위협을 주는 적 대부대에 대하여는 즉각 부대를 투입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1965년 6월 27일부터 3일간 미 173공정여단과 오스트레일리아군 1개 대대, 남베트남군 보병 1개 연대와 2개 공수대대로 사이공 북서쪽 비엔 호아(Bien Hoa) 비행장 인접지역에서 기습작전으로 연합작전을 수행하여 적의 비엔 호아 비행장 공격 기도를 사전에 무산시켰다.
1965년 8월 14일부터 24일간 추라이(Chu Lai) 비행장 경계를 하던 미 해병대는 16㎞ 남쪽 반퉁(Van Tung) 반도에 적 1개 연대를 발견하고 약 4,000여 명의 병력을 공중기동 및 해상으로 투입, 소탕작전을 전개하여(OP. Starlite, 스타라이트 작전) 700여 명의 베트콩을 사살하고 전사 50명, 부상 150명의 피해를 입었다.

스타라이트 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대

스타라이트 작전에서 체포된 베트콩들과 작전개념도
전술한 바와 같이 이아 드랑 계곡에 미 제1기병사단을 투입하여 파쇄공격을 하였고 1965년 말에는 사이공 20마일 북방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에 미 173공정여단을 투입하였다.
제1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웨스트모얼랜드는 1966년도에 들어서 제2단계로 공격의 주도권을 확보하여 적의 기지나 남베트남 내에 베트콩의 성역이라 일컬어지는, 지금까지 한번도 공격을 해보지 못한 본거지를 공격하여 적을 격멸하고, 마지막 단계로 지속적인 공격으로 적의 주력부대 및 게릴라를 소탕 내지는 국경선 밖으로 몰아내 견제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북폭도 결정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북베트남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침략을 중단시키는 ‘묘한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웨스트모얼랜드의 지상 작전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모얼랜드의 지상 작전 기본개념은 한마디로 ‘적을 분쇄’시키는 것이었다. 커다란 바윗덩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이 바위를 폭파시켜 조각을 내고 이 조각을 다시 자갈로 만들면 이 자갈을 각 개인이 망치를 이용하여 가루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의 사단급 부대나 남베트남 내 그들의 성역이라는 기지를 대부대 작전으로 공격, 이를 격파하고 분산된 적 부대를 다시 연대, 사단급 부대 작전으로 격파하면 적은 분대, 소대규모로 지리멸렬되어 소대, 중대, 대대의 소규모 부대가 지속적으로 이를 수색, 소탕함으로써 적을 분쇄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에 의하여 미군은 인구 밀집지역으로부터 원거리에 있는 적에 대하여 탐색 및 격파 작전을 주로 실시하였다. 즉 위력수색, 장거리 정찰대 또는 획득된 정보에 의해 적을 발견하여 우세한 화력과 기동력으로 적을 고착시켜 격멸하거나 구축함으로써 적의 균형을 와해시키고 인구 밀집지역으로 적의 복귀를 방지하면서 계속 적을 분쇄하는 작전을 실시하는 것이다.
미군과 우방 연합군의 탐색 및 격파작전에 병행하여 남베트남 정규군은 인구 밀집지역에서 적을 격멸하는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중요시설을 경계하고 지역을 확보하면서 지방 베트콩들을 제거하는 지역 확보 작전은 주로 남베트남 지방군과 민병대가 수행하는 것이다.
탐색 및 격파는 미 언론에 보도되는 가운데 미 지상군의 전략으로 선전이 되어 버렸으나 탐색 및 격파는 어디까지나 전술로서 남베트남에서 수행된 작전형태 중의 하나인 것이다.
첫댓글 여기서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대한 공격에 대한건 언급이 없군요, 아니면잠재적으로 내재가되어있는건가..
나중에 따로 언급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