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막 9:1-29 / 예수 생명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마가복음 8장을 나누면서 인간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서 결론지었습니다. 창세기 3장 이후 인간의 천연적인 생명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마귀생명, 뱀의 생명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후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이 죽거나 병드니 혼의 생명도 병들고, 육신도 병들다가 반드시 죽게 되어있습니다.
혼의 생명은 지정의, 즉 생각·감정·의지인데 이것이 타락을 하게 되니 성질상 악성·독성·죄성을 가진 죄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감정은 항상 욕정을 좇는 정욕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의지는 자랑 덩어리입니다. “악성, 독성, 죄성, 그리고 정욕 덩어리는 알겠는데 자랑은 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자랑이 무슨 죄냐?” 이런 말입니다.
마태복음 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 나팔을 분다는 것은 다 남에게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도 하지 말고, 외식(남을 의식)하는 자가 되지도 말고, 나팔을 불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그뿐입니까?
마가복음 12: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높은 자리, 윗자리 다 자랑하고픈 욕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자랑하고픈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랑은 ‘잘’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잘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잘하려는 것은 혼의 생명, 즉 의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혼에서 출발할 때 이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려고 하십시오. 하늘은 땅에 복을 주고, 땅은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영적 존재인 것입니다. 이 은혜의 선순환 구조를 잊지 마십시오.
말라기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잘’해서 ‘자랑’하려고 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을 보십시오. 이름이 발뒤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의 발을 잡아서라도 1등을 해야 되겠다는 욕망이 가득한 1등덩어리, 자랑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사려하지 않나, 아버지 이삭이 유언할 때 털 많은 형 에서처럼 변장을 해서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마음의 소원대로 1등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지요? 멀리 밧단아람으로 쫓겨났습니다. 거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려 20년간 종살이했습니다. 그뿐입니까? 형 에서가 늘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어디를 가든지 도둑놈들이나 살인자들만 만나서 고생고생 하는 게 야곱의 인생이었습니다.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여태 130살을 살았지만 아직도 험악한 인생만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147세까지 살았다.) 이걸 한마디로 “사서 고생한다.”고 합니다. 1등만 하려는 욕심, 남을 등쳐먹어서라도 남을 짓밟아서라도 나만 1등만 하면 된다는 그 자랑의 욕심이 결국 말라기 말씀처럼 저주가 된 것입니다.
본질상 성질, 정욕, 자랑의 죄악 덩어리인 인간의 자아. 이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사탄이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음란, 거짓, 살인의 영의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그러니 환경과 조건만 된다면 짐승보다 못하고, 마귀도 깜짝 놀랄 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버렸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으니 아벨을 죽이지 않아도 아벨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을 죽여 놔야 속이 시원한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야곱의 열 아들들은 잘난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먹었으며, 바벨론의 지도자들은 기도의 능력자인 다니엘을 사자 굴에 집어넣었고, 성경을 그리 잘 안다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왕처럼 대우 받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간은 귀신보다 더 더럽고 추악하게 자신이 최고노릇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집어삼키는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결코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본질상 죄인이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한계 안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내어 놓으신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우리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 그 피는 생명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사망과 저주를 다 담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생명 가운데 살게 하신 주 예수님! 오직 주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뱀의 생명에서 새 생명 얻은 자, 천국백성이 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은 자 되었을 때에 우리는 영의 눈이 뜨여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인 귀가 열려질 것입니다.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제자들이 영의 세계에 눈을 뜨니 예수님의 본모습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대표자 모세, 예언자의 대표자 엘리야가 예표인 참 율법, 참 예언 즉 말씀의 본체되시며, 참 하나님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이제 9장 14절로 넘어가니 귀신 들어서 말 못하는 아이를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5절에 예수께서 그 아이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실 때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떠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죄가 영을 가리어서 영의 세계를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창조 때의 본류로 다시 되돌아가려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죄를 씻어야 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듯이 나도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것이요 이것이 영적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나 자신을 끝내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듯이 나도 이미 2천 년 전에 죽었음을 선포하십시오. 성경은 이미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십자가에서 나의 뱀의 생명이 죽고, 예수 생명 부활 생명으로 거듭나서 이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처럼 내가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준 이 계시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 못하는 이의 악한 영을 쫓아내는 사례를 통해서 보면 십자가와 부활 신앙의 적용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29절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데 왜 기도합니까? 할 수 있는 것은 하면 됩니다. 걸을 수 있으니 걷고 뛸 수 있으니 뛰는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통성기도 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목기도를 하던, 작정기도를 하던, 금식기도를 하던 여러 기도의 형식을 가지고 안 되는 것, 못하는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깊게 하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깨닫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것을 놓고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기도는 못하는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 못하는 귀신이 들린 아이가 찾아왔는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고치려고 이런 저런 기도의 형식을 동원해서 고쳐보려고 했는데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아이가 땅에 엎드려 입에 거품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간질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그 부모가 찾아와서 우리는 도대체 안 되는데 좀 도와달라고 주님께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왜 자꾸 하려고 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는 대신 귀신을 내 쫓으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외운다고 하는데... 2년 이상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았으니 나도 귀신을 쫓아내어야 한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귀신을 쫓아 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공했을까요? 그들은 귀신을 내쫓는데 필요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니 해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응답받은 다음에는 자기가 했다고 자기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십시오. 이것을 반드시 기도에 적용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으니 예수님이 기도한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주 예수님께서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생명으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주 예수님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가 예수님으로 살아서 예수님이 증거되는 우리의 기도와 영적 삶이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