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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천(김영철) 설록도
사이즈 : 80cm X 60cm
한국의 혼, 화폭에 담는 화단의 중진
장자의 이론에는 그림은 눈으로 보고 귀로 둗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로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자연의 현상은 물리적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오 정신으로 깨치고 심상으로 취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정신주의 예술이라는 의미다. 내가 아는 독일의 칼 레오나르드 버거 박사는 미의 지상주의를 주창하여 미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요, 평론가다. 서양화가로서 그가 서울전을 가졌을때 전시평문을 위탁받은 필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 기억이 난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의 염원과 기도는 진선미다. 그러나 그 진도 선도 미가 결여되면 진이나 선이 아니다. 이른바 모든 자연현상과 사물이 아름다움이 빠져버리면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론을 편적이 있다.
이때에 칼박사는 필자의 평문을 보고 자신의 논문의 주제가 바로 미의 지상주의 였다고 필자의 글을 공감한적이 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곧 바로 그와 친숙해 졌다. 또한 필자는 예술의 본질은 첫째는 아름답고, 둘째는 감동과 공감이 있고, 쳇째는 영원해야 한다는 지론을 전개한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명화다'라고 .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2만년(추산)이 지났는데도 불변의 명화다. 그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관찰과 시각을 통하여 인지되는 피사체는 영원히 아름답고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창작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명화는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양식에서 고전이나 현대에 차별성을 두는 것은 예술의 본질적인 컨셉을 떠난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명화는 90%이상이 고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천 김영철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퍽 의미가 깊고, 우리미술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국적불명의 무괴적한 현대미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는 귀감이자, 경종이요, 자극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화력 40년의 경륜을 쌓아 오면서 일관되기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발현하기 위한 한국성 회복 운동에 심혈을 쏟아 왔으며 내노라 하는 중진들 그 누구도 그의 예술양식을 쫓거나 흉내낼 수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의 흐름은 국적이 분명한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공존하고 접목할 수 있는 예술양식을 요구하고 있다. 아천의 예술은 그러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한국미술이 세계에 진출하는 것은 문화예술 정책이나 국력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며 여건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 척박한 토양에서는 기름진 수확을 기대할 수 없듯이 상실된 정서와 빈약한 정신주의 속에서는 휼륭한 작품을 기대할 수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아천의 예술은 풍부한 정신주의와 상상력,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그의 작품은 청윤한 문기와 격조 높은 훙중일기가 농축되어 있다. 그 작품속에는 동양회화의 진수요, 생명력인 풍자와 해학, 여유와 풍요로움과 기지가 숨어 있으며 남북족 화풍을 터득한 아카데믹한 극사실주의가 있는가 하면 문기와 시정이 넘치는 추사의 '유천희해'사상동 있다. 이른바 양식이나 형식과 규제를 초월하여 무엇이나 가능한 재능과 기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천 김영철의 예술은 조형양식과 소재의 다양성이다. 그가 그릴 수 없는 소재는 무엇이며, 기법과 방법론에서 그가 표현할 수 없는건 무엇인가. 골필용법과 갈필법, 파묵법, 발묵법등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인물화, 초상화, 문인산수 등 문기가 넘치는 화제들이 충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소부재, 자유분방한 필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천 예술의 실체다. 그리고자 하는 충동만 일면 구김이나 거침없이 자유의 미학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천 예술의 장점이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국전을 통하여 화단에 등단을 했으며 다양한 예술양식을 섭렵한 보기 드문 중진이다. 그와 선후배로서, 혹은 동년배로서 같은 작업경륜을 가진 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재능과 역량면에서 그만한 화가가 드물다. 작가로서의 재능과 능력의 차이는 엄존한다는 뜻이다. 물론 작품활동의 행적이나 주위의 여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공필적 요소의 극사실 화풍을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익혔고, 사의와 형상의 정신적인 예술, 즉 남종화풍의 문기있는 기법을 월전 장우성 화백에게 사승을 했다. 어쨌든 정상의 거목들에게 그림을 익혔다는 것은 행운아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그릇이 적었다듣지 정신력이 미흡하거나 결여되어 있었다면 오늘의 아천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삼 남북중 화법을 따지는 것은 웃으광수러운 일이지만 그의 예술행위가 명실상부한 조화와 균형등 거의 완벽을 이룬것은 스승들의 영향력 때문이리라. 이른바 단일 소재만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미술인 가운데 상당수의 작가들이 이 수렁에서 해\ㅔ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천의 문인산수(文人山水)
지극히 절제된 선과 면으로 형상화된 아천의 문인산수는 최소한의 축약된 언어와 기법으로 완성하고 있다. 정갈스럽고 모노톤한 단색조로 조형화한 그의 산수경은 칙칙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말끔히 떨쳐버린 기하학적인 화면분할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누나야 강변살자'를 연상케하는 그의 작품은 어릴적 고향 강변의 향수와 서정을 물씬 불러 일으키고 있다. 소동파의 '화중유시' 시중유화를 떠울리게 하는 그의 문인산수경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그림처럼 싱그럽다. 강변의 초가집 풍경은 소나무와 수양버들, 뒷산의 절벽과 앞산의 모래사장과 강물 등은 화면 속에 전설과 설화가 녹아 있다. 또한 그가 즐겨 다루는 학과 사슴은 소재주의적인 묘사에 충실하는가 하면 때론 강력한 파묵과 파필법등 현대감각을 수용하는 뛰어난 기법도 구사 하고 있다. 돛단풍선의 출어나 귀향을 하는 모습의 점경들은 어릴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강태공망의 옛고사가 물씬 떠오을낟. 문기 있는 풍자화 흥부내외의 박을 타는 모습이나 백자 항아리에 기댄 반가사유상, 작품 '고완','선면화'속에 문인화의 모든 소재를 자유자재롭게 담는 아천의 기량은 가히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공자의 회사후소나 노장의 심재, 좌망에 나오는 고답적인 세련미를 보여주는 아천의 작품세계는 숭고한 정신력이 뛰어난 기량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합일 하여 만드렁내는 종합예술이다. 시심과 시상을 충동만 일면 화폭에 옮길 줄 아는 그런 역량있는 화가라고 볼 수 있다.
아천의 인물과 영정
그의 대표적인 작품소재 가운데 영정과 인물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인물화는 적당주의나 닮은꼴, 타협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디테일한 점과 선의 공필적 정밀성을 필요로 한다. 으는 오랜적공과 반복적인 훈련이 아니면 완성도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물화는 회화의 기본으로 삼는다. 아천의 인물화가 왜곡과 비정형한 현대감각으로 변주함으로써 예술성과 작품성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도 그가 평소 완성해 낸 초상화와 영정등을 제작한 저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야들야들한 화선지 위헤 제먹대로 휘여지는 모필로 먹의 농담을 활용하여 인물상을 완성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작품 파묵으로 완성한 <어부> <귀로> <흥보가> <선> <미인도> <흥> <탄금>등은 신명과 리듬 해악과 풍자가 살아 숨쉬고 있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그 만큼 이른바 서양화가 말하는 데생과 드로잉, 크로키등을 많이 해 왔다. 비록 동양화의 화구와 매재가 지필묵이라 하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완성에 접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그가 완성한 영정과 초상화만도 추사 김정희 선생 영정, 의병대장 고경명장군 영정, 정지장군 영정, 정재완박사 초상화, 허소치옹의 영정, 세종대왕 영정, 왕인박사 영정등을 완성했으며 또한 김천일장군 영정, 천태종 상월대종사의 영정 등을 제작했다. 또한 그가 그린 대작으로는 서울 경찰청 <서록도-1500호>벽화가 있다.
아천의 문인화
문인화는 선비나 문인 묵객들이 여묵으로 여가를 즐겼던 것으로 비미술인의 묵희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문인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문인화는 대학의 커리큘럼으로 미협산하의 독립분과로 설치되면서 공모전 개최 등 활성화 되어가고 있으며 문인화의 위상은 날로 달라져 가고 있다. 특히 문인화는 현대화와 함께 그 개념 마저 달라졌다. 그러나 문인화 덕목에 몇가지 불변의 불문율이 있다. 문인화는 사의와 형상등 추상성이 강한 정신의 예술이라는 것이 그 첫째요, 맑고 청윤한 고답적인 예술행위가 전개되어야 하는것이 그 둘째요, 셋째는 개칠이나 덧칠, 집적등은 금기사항이며 단필과 일회성의 작업으로 끝나는 것이 문인화 작업의 본력이다. 그래서 문인화는 회화작업의 상층구조에 있으며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요원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렇듯 기초훈련부터 완벽한 프로세스를 거친 중진이 바로 아천 김영철이며, 북종의 원색적인 극사실 회화와 남종의 문기있는 담채화를 자유자재로 구사 할 줄 아는 화가요 문인화가가 아천 김영철이다. 대쪽처럼 올곧은 그의 성격처럼 그는 이령비령의 작품은 절대로 세상에 내놓지를 않는다. 성급할 수록 우회를 하라는 격언처럼 사려가 깊은 진솔한 화가다. 문인화의 진수와 문인화가의 참모습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세상, 아천 김영철의 행적에서 화가이 자기모습을 확인하는 지평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결론 화가는 하나의 패턴이나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된다. 또한 사투리적이고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독선이나 편견이어서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자면 극명한 자기의 뿌리를 지키면서 세계적인 미술양식과 접목되고 공존하고, 공감하는 예술양식이어야 한다. 한국미술의 경우 격과 품위를 겸전한 미의 질서가 작품 속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한국적인 특수한 사정일지 모르지만 어쨋들 인격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훌륭한 예술품은 탄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지금도 예술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상술한 공자가 갈파한 '회사후소'도 이러한 정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쑬 양식과 정신주의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천의 예술이 아닌가 싶다.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선별등에서 예리한 관찰안 등 좀처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의파다. 그의 작품 세계가 별로 흠잡을 댸가 없는 것도 깔끔하고 췌육이 없는 순도 높은 작가의 성품과 신선감 때문이다. 이제 육순을 한 해 앞둔 그가 20번째의 중간결산의 의미가 크다. 다양한 실험정신 속에 살아 온 작가의 회화 세계가 앞으론 어덯게 변모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아천 김영철은 1942년 충남 온양에서 출생했다. 국전사상 최연소자로 특선4회, 입선5회를 기록하여 화단에 등단한 엘리트다. 그동안 국내외 초대전 등 의욕적인 작품활동을 해 왔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문인화 부문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여타 공모전의 심사도 맡아왔다. 큭히 문인산수, 사군자, 문인화, 화조화, 영모, 초충도, 십장생, 많은 영정과 초상화를 남겼다.
-김남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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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아천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췌육이 없는 순도높은 작가의 성품과 일치합니다.
내가 무식함을 알겠습니다.
누가 감히 비유의 말을 담을 것인가 ? 아천 선생님의 작품 앞에 서면 그 청아하고 꾸밈없는 정신면에
압도 되어 할말을 잊고 만다 한국 화단의 큰별 그의 스승인 이당, 월전 선생님의 면모를 빼닮은듯
영원히 한국 화단의 정맥을 이어 주시길 염원 드리면서~~~, 글월 잘 읽었습니다.
아천 선생님의 작품중 瑞鹿圖를 한점 소장하고 있습니다. 1975년도에 아천 선생님의 형 김영국 장노님을 통하여 소장히게 되었습니다.
김영국 장노님과는80년대에 해여지고 나서 지금까지 소재를모르고 연락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천 선생님을 통하여 형 김영국 장노님의 근황을 알고자 합니다. 부산 보수감리교회 010-3954-6406 김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