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서민들 역시 명절 나기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만 하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매 끼니를 걱정하고 매일 밤 잠자리를 걱정한다. 이들에게 다가오는 명절은 그리움이이면서 힘겨움이기도 하다. 명절이 돌올 때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신이 처한 가난한 상황에 몸서리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싶지 않아요"서울 종로 돈의동에는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소 우리 주변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할 우리의 이웃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들을 만나고자 돈의동 쪽방촌으로 향했다.
돈의동 쪽방촌은 종로3가역에서 불과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높은 빌딩들과 유흥가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에서 말이다. 유흥주점들 뒤편으로 형성된 쪽방촌은 종로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가 모습을 드러낸다. 쪽방촌은 예상외로 정감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전깃줄, 창틀 할 것 없이 빨래가 널려있는 모습은 3~40년 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연상케 한다.
쪽방촌을 찾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들추어 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어김없이 주민들이 나타나 경계를 한다. 카메라를 들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사진 촬영을 막는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적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면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내 이들이 사람의 정과 관심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쉽게 돌려버렸던 주민도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가면 조금씩 마음의 경계를 풀었다.
이날 만난 김모(40)씨도 처음엔 대화조차 꺼려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담배 한 대씩 나눠피며 서로의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자 어느새 경계심이 누그러들었다. 대화를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그의 집에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김씨의 방은 두 평 남짓한 크기의 쪽방이었다. 방에는 TV와 침구류, 간단한 취사도구, 압력밥솥과 밥상, 간단한 옷가지가 전부였다. 한 명이 생활한다고 하기에도 많지 않은 짐이었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 탓에 방을 가득 채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은 공간은 기껏해야 한사람 정도가 누울만 해 보였다. 둘이 앉아 커피를 마셨지만 손만 뻗으면 서로의 얼굴에 손이 닿을 만큼 붙어 앉아야만 했다.
그는 학창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고 한다. 특별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한 쪽 다리마저 성치 못하게 되자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 했던 탓에 막노동과 재활용품 수집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몇 푼의 생활보조금과 장사로 벌었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5년 전, 월세 24만 원의 쪽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번 추석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어렵게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김씨는 "매년 명절이 돌아올 때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눈물이 난다"며 "자식의 못난 모습에 가슴 아파할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번 추석에는 혼자 김치찌개라도 끓여 조용히 소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돈의동 쪽방촌 방 내부 모습ⓒ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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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요?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이죠"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오후, 쪽방촌에서 명절의 분위기를 느끼긴 힘들었다. 명절 고향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술로 아쉬움을 달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발품을 판 이후에야 추석에 고향을 찾는다는 최모(65)씨를 만날 수 있었다. 허리가 불편해 잘 움직이지 못하는 최씨는 쪽방촌에서도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폐품을 모은다. 허리가 불편한 탓에 많은 양을 모으지 못하지만, 버려진 가전제품들을 수리한 뒤 싼 가격에 되팔면서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간다.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했다. 젊은 시절에는 부지런히 공사현장을 찾아다니며 돈벌이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마흔이 돼서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 그의 불운이 시작됐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허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움직이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허리에 힘을 주진 못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됐고, 모아둔 돈까지 떨어지면서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생계난에 부딪치게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힘든 생활을 참지 못하고 결혼 5년 만에 집을 나갔다. 젊은 시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에 딱히 몸을 의탁할 곳도 없었던 그는 거리를 전전하며 삶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집 나간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어 자신의 몸만 돌보면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그런 그가 10년 전 지금의 쪽방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폐품도 그때부터 모았다고 했다.
그는 3년 전부터 명절에 고향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향 갈 채비를 마친 그는 환한 미소로 "고향에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몇 안되는 친척들이 있을 뿐이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삶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경제적으로 힘든 탓에 명절 몇 달 전부터 돈을 아끼고 아껴서 채비를 마련한다"며 "명절에 고향은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