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선생님 회장 취임 60주년
청년부가 하라다 회장에게 듣는다 2부
제13회 어서 근본을 관철하는 민중불법의 학회 교학②
△대학부 대표에게 <어의구전>을 강의하는 이케다 선생님(1962년 8월 31일, 옛 세이쿄신문사). 훗날 이날이 ‘대학부의 날’이 되었다.
인간혁명으로 시작되는 사회의 변혁
<어의구전> 강의 수강생의 긍지
확실한 철학을 가슴에 품고 신시대를 건설
동분서주하는 속에서 생명을 깎아 후계를 육성하다
가바사와 男대학부장(이하 가바사와) -
‘혼미한 현대사상의 혁명은 이 위대한 사상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는 말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어의구전 강의’의 ‘머리말’에 쓰신 일부 구절입니다. 선생님은 1962년 8월부터 대학부 대표에게 <어의구전>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라다 회장(이하 하라다) -
그 경위와 시대 배경은 소설 ‘신·인간혁명’ 제6권 <젊은 독수리>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962년 7월 16일, 선생님이 대학부 대표와 간담하실 때 멤버가 꼭 어서강의를 해주십사 하고 간청했습니다. 선생님은 ‘좋다, 해보자!’ ‘함께 공부하자’고 흔쾌히 허락하시고 다음달 8월부터 강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로부터 6일 뒤에 개최된 ‘제5회 대학부총회’ 때 선생님은 강연 마지막에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나는 대학부 여러분에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과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 사상·철학을 견주어 어느 쪽이 위대한지 철저하게 구명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철학은 확실히 이것밖에 없다’고 확신한다면 그 신념으로 불법 대철리를 가슴에 품고, 민중의 편이 되어 불행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생애를 끝까지 살아주기 바랍니다.”
니시카타 남자부장(이하 니시카타) -
그 2년 전, 1960년 당시 일본은 안보투쟁의 와중이었습니다. 이른바 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수많은 학생이 시위에 참여하는 시절이었습니다.
하라다 -
당시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입학해서도 수업은 거의 없고 매일 같이 휴교되어 저도 데모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지향해야 하는 것은 인간혁명인가 사회혁명인가’ 하고 대학부 동지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인간혁명이 없으면 진정한 사회혁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고 느껴 ‘지금은 사회혁명이 우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1960년 6월 15일에 국회로 돌입한 데모에도 많은 학우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국회 남문으로 돌입하자 경찰들이 경찰봉을 들고 학생들을 덮쳤습니다. 엄청난 고함소리와 비명이었습니다. 밤늦게 귀가한 제 등에는 쓰러진 친구를 껴안았을 때 묻은 피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여대생 간바 미치코 씨가 목숨을 잃고 마는 참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인생을 목표로 분발하라’
니시카타 -
결국 미일안보조약은 발효되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안보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은 당시와는 격세지감이 있지 않을까요.
하라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운동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학생운동의 에너지가 과연 일본을,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으며 무엇이 남았을까요.
많은 학생의 생각은 순수했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 확고한 철학이 없는 운동, 민중에게서 동떨어진 운동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를 통감했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은 정신적인 공허함에 휩싸였습니다.
그 이듬해 저는 감사하게도 대학부 대표로서 처음으로 이케다 선생님과 간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인물에게는 모두 종교적 신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종교를 호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위대한 인생을 목표로 분발하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역시 인간에게는 확실한 철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 자신을 변혁하는 것 말고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확신하자 ‘제자로서 우선 자기 자신이 인간혁명하자’ ‘창가(創價)의 민중운동에 철저히 힘쓰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야시 女대학부장(이하 하야시) -
선생님이 대학부에 <어의구전>을 강의하신 이유는 대학부야말로 진정한 종교혁명과 사회변혁의 기수가 될 사명이 있기 때문이군요.
하라다 -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서냉전이 한창일 때 ‘앞으로 인류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점을 늘 통찰하신 끝에 선생님은 <어의구전> 강의를 결단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독수리> 장에서 <어의구전>을 고르신 이유에 관해 “<어의구전>은 모든 사상, 철학의 최고봉이며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생명관, 종교관, 우주관과 같은 원리가 남김없이 설해져 있다” “옥중에서 법화경의 극의(極意)를 오달한 도다는 <어의구전>을 토대로 법화경을 강의하여 불법을 생명의 법리로서 현대에 소생시켰다. 지금 신이치도 역시 이 <어의구전> 강의에서 대성인 불법의 대철리를, 신시대를 건설할 지도 원리로 제시하고자 했다” 하고 씌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대학부원에게 지금이야말로 깊은 사명을 자각하고 확실한 ‘인생의 나침반’을 가지기 바란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념과 실천은 일체여야 한다
오구시 여자부장 -
하라다 회장님은 1기생으로서 <어의구전> 강의를 들으셨습니다. 당시 상황과 특히 인상에 남는 지도가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하라다 -
강의는 대단히 엄했습니다. 강의를 통해 한 사람 한사람을 ‘학회의, 세계의 대지도자로 육성하겠다’는 선생님의 강한 심정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어서를 더듬더듬 배독하면 ‘읽는 자세가 너무나 안일하다’고 열화와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물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학문 연구는 그것으로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은 그러면 안 됩니다. 먼저 어서 한줄 한줄, 글자 하나하나를 ‘진실하다. 진실하다. 정말 그 말씀대로다’라는 깊은 마음으로 다시 말해 신심으로 배독하고, 신심으로 구도하고, 신심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어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배독해야 합니다. 대성인 말씀대로 꿋꿋이 살자고 마음속에 다짐하고, 입으로 소리 내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자기 몸으로 구체적으로 실천해 신독(身讀)해야 합니다” 하고 이념과 실천은 일체여야 한다는 행학(行學) 연마의 근본을 새겨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듣고 그저 강의만 들으려던 수동적 자세로 참석한 자신을 크게 반성했습니다. 이후 매번의 강의에 진검승부로 참석했습니다.
가바사와 -
대학부는 현재 온라인으로 어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저희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하라다 -
선생님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구제적인 예를 섞어 강의해주셔서, 매번 마음이 크게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와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라는 난해한 철리가 나왔을 때는 그 자리에 있던 저를 예로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라다 군은 지금처럼 강의를 듣기도 하고 전철을 타거나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해도 ‘하라다’라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거기에는 하라다 군을 하라다 군답게 하는 통합성 이른바 법(法)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변진여의 이입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하라다 군의 생명활동은 수연진여의 지가 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신선한 놀라움과 감명을 받은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선생님은 매번 강의 때마다 과자나 식사를 준비해 한 사람 한사람을 따뜻하게 감싸 안듯 격려하셨습니다.
강의 장소에 놓인 신발장 앞에서 밑창이 닳은 신발을 발견하고 나중에 그 학생에게 새로운 신발을 사주신 적도 있습니다. 다들 선생님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성장을 다짐해 분기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교토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육개초>를 강의한다. (1963년9월, 효고본부)
하야시 -
도쿄에서 실시한 <어의구전> 강의는 약 5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사이 1963년 9월부터는 간사이에서 교토대학교 학생들에게 <백육개초>를, 1964년 11월부터는 간사이 이남 대표들에게 <어의구전>을 그리고 그해 12월부터는 주부 벗에게 <제법실상초>를 강의하셨습니다.
하라다 -
대학부에 하시는 모든 어서강의는 니치렌불법의 궁극적인 철리를 생명에 새기는, 선생님이 손수 육성하는 인간교육의 자리였습니다.
<젊은 독수리>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신이치가 매우 다망한 이 시기에, 대학부에 대한 강의를 다른 행사보다 최우선으로 한 것은 광선유포의 장대한 미래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병약한 몸이면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매일매일 완전 연소해 온 신이치에게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내외를 동분서주하는 다망한 나날 속에 그야말로 생명을 깎는 심정으로 계속 강의해주셨다고 생각하니 선생님이 차대의 리더 육성에 얼마나 커다란 결의로 임해주셨는지, 감사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차대를 짊어질 사람들을 전혼을 담아 격려하고 함께 투쟁하고자 합니다. 저도 명예로운 대학부 특히 선생님에게서 훈도 받은 ‘이케다대학’ 출신자 중 한 사람으로서 새삼 굳게 다짐할 따름입니다.
하라다-2부13회 어서 근본을 관철하는 민중불법의 학회 교학②.hwp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