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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 이병렬
<전체 줄거리>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알암은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로 여타의 취미생활을 갖지 못하다가, 최근에 학원까지 다닐 정도로 주산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알암은 유괴를 당한다. 그 와중에 알암의 엄마는 온갖 노력을 다하며 자식의 무사귀가를 염원하고, 이웃인 김 집사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어 하나님이 자식을 무사히 되돌려주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유괴 80여일 만에 알암은 재개발 건물의 지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다름 아닌 주산 학원의 원장으로 밝혀졌고, 그 또한 자신의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사형수가 된다.
아들이 참혹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 그녀는 신앙심을 버리고 범인에 대한 원한과 저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녀는 아이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김 집사의 설득에 다시 하나님을 믿고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기에 이른다.
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자식의 살해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그러나 그녀가 어렵게 살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면화를 간 것과는 달리 유괴 살해범인 주산학원 원장은 수감 생활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평온한 자세로 그녀를 마주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또 다른 고통과 함께 아주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를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고통 속에 힘겹게 살아가던 중, 살해범이 사형집행을 앞두고 남긴 유언, 즉 자신은 너무도 평온하며, 다만 유족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라는 말을 라디오를 통해 들은 후 약을 먹고 자살하고 만다.
<구성>
◆ 발단 : 자식인 알암의 유괴와 살해
◆ 전개 : 자식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알암 엄마
◆ 위기 : 살해범에 대한 알암 엄마의 용서
◆ 절정 :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살해범과 그로 인한 알암 엄마의 절망
◆ 결말 : 살해범의 사형집행 후 알암 엄마의 자살
<등장인물>
◆ 나 : 알암의 아버지. 작품 속의 서술자로서 자식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알암의 어머니)가 겪고 있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자살까지를 관찰하여 서술함.
◆ 알암 : 유괴 후 살해를 당한, ‘나’의 자식.
◆ 아내 : 주인공. ‘나’의 아내이자 ‘알암’의 어머니. 자식을 잃은 후 살해범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
◆ 주산학원 원장 : 알암의 유괴 · 살해범. 사형 판정 후 교도소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어 본인 마음의 평안을 찾지만, 이로 인해 ‘알암’의 어머니가 자살하는 계기를 만드는 인물.
◆ 김 집사 : 이웃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알암의 어머니(‘나’의 아내)를 위해 진심으로 신앙을 권함.
<한 눈에 보기>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1980년대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의 문제
▷ 인간의 윤리적 가치와 종교적 판단
◆ 특징 : 영화 <밀양>의 원작
<생각잡기>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는 1985년 6월 계간 <외국문학> 여름호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1988년에 단행본과 2002년에 <이청준 문학전집>의 한 권이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가 이청준이 그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삶과 현실은 다양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줄>, <매잡이>, <과녁>, <줄광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 장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 <빈 방>, <황홀한 실종>, <퇴원>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정신적인 상처가 개인의 정신적 · 생리적 이상 현상을 일으킨 삶, <서편제>, <남도 사람들>, <선학동 나그네> 등 남도의 ‘소리’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계,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떠도는 말들>,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배와 해방>, <다시 태어나는 말>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의 상실 및 추구의 세계, 그리고 <개백정>, <뺑소니 사고> 등에서 볼 수 있는 폭력적인 현실의 체험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벌레이야기>의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이 소설이 그 비극적 결함을 주인공에게 귀책(歸責)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가, 아니면 초월적 신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를 두고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가가 중심이 되는 해석이다.
전자의 해석은 주인공은 처음부터 잘못된 동기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 했으며 따라서 그런 이유로 갖게 된 신앙 또한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절을 찾아가서 한 것은 아이를 찾게 해달라는 오직 그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다. 기독교 신앙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자식을 무사히 찾게 해 달라는 일념에서였다. 그리고 아이가 참혹한 피살체로 발견되자 그녀는 교회에 등을 돌려버린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불쌍하게 희생된 자식, 알암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신앙이었다. 그러니까 이 또한 기독교에서 볼 때 참 신앙이 아니었다. 이 말에 따르자면 요컨대, 이 소설의 주제는 ‘잘못된 신앙과 거기서 온 파멸’이 된다.
후자의 해석은 이 소설이 무신론적 실재주의사상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무신론을 가장 솔직 · 대담하게 공표한 극단적인 사상가는 니체다. 그에게 기독교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 신을 찾고 그에 의지하려는 역리(逆理)의 세계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니체의 그와 같은 주장을 읽을 수 있다. 그와 같은 무신론사상은 이 소설의 서술자, 주인공의 남편의 어조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부분 ‘알암은 유순했으며, 조용했고, 조심스럽기만 했으며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면서 하얗게 자라가고 있는 아이였다.’와 ‘그 어린 것에게 무슨 죄가 있다구’에서 이 소설은 기독교의 원죄 사상을 부정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다른 해석으로는, 비록 하나님이 용서했다 하더라도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너는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혹은 ‘나는 의미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겠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의 주체가 되겠다, 그것만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하는 주장이다. 주인공은 결국 자살을 통해 이러한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세계의 무의미에 항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살은 세계의 의미 없음을 부정하는 부정적 세계의 행위이다. 그것은 각자를 제 자신으로 되돌아오게 호출하는 최후의 권위이며 그녀로 하여금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한 최고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자살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알암의 유과와 죽음, 그리고 살해범에 대한 그녀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를 대비시켜 그녀의 절망과 고통을 보여줌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자살이었다는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한 인간의 의지와 그것의 결과가 전혀 엉뚱할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제목이 ‘벌레 이야기’일까. 다음과 같은 알암 어머니의 말이 답을 해 준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용서하느냐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를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이것은 하느님이 사랑도 용서도 다 해 버린다면, 나는 원수를 저주할 수도, 그에게 복수를 할 수도 없고 더욱 용서할 권리마저 빼앗겨버린다면 그럼 ‘나는 무엇이란 말이냐’ 결국 나는 벌레만도 못한, 누구를 용서할 수도 없는 인간이 아니냐는 항변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벌레 이야기>란 이 소설 제목에서의 ‘벌레’란 말도 그렇게 붙여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참고 사항
“졸작 <벌레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28일 새벽(한국시각) 영화배우 전도연 씨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밀양>(연출 이창동 감독)의 원작 소설인 <벌레이야기>의 저자 이청준씨가 ‘작가 서문’(2007)에서 밝힌 말이다.
영화 제작에 맞춰 최근 단행본이 새로 발간됐지만, 원래 <벌레이야기>는 지난 1985년 계간 <외국문학> 여름호(제5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1988년에 단행본으로, 2002년에는 <이청준 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같은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전체 20여 쪽에 불과한 이 소설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은 이 감독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살을 입혀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소설에는 <밀양>의 ‘밀’자도 안 나올 정도로, 영화의 구성과 등장인물은 소설과 매우 다르다.
그렇다면 이청준 씨가 소재로 삼은 ‘실제 사건’은 무엇일까.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작품을 쓰기 얼마 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결국 붙잡히고, 재판을 거쳐 사형수로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고통은 굳이 이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범인이 형 집행 전 마지막 남긴 말이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요지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고, 그것은 내게 그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이었다.”
(작가 서문·2007년)
소설에서는 유괴살해범이 형장에서 눈과 신장을 기증하고 떠난다는 언급도 나온다.
이쯤 되면 198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윤상군 유괴살해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였던 주영형씨는 1980년 11월 학교 제자인 윤상군(당시 14세·중학교 1학년)을 납치 · 살해했으며, 사건 발생 1년 여 만인 1981년 11월 검거됐다. 이후 1982년 11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됐으며, 1983년 7월9일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집행 당시 조선일보(1983년 7월10일자)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4명에 새 삶 주고…“제자살해 속죄” / 주영형, 눈 · 콩팥 기증>를 실었다. 기사는 “지난 (1983년) 4월3일 구치소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주(朱)는 ‘교육자로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신앙의 길로 인도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과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등의 말을 남기고 교수대에 올랐다. 사형수로서는 놀라울 만큼 평온한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는 다음 날인 7월11일자 사회면 상자기사로 <‘마지막 참회’ / 윤상군 살해 주영형 사형집행… 눈 · 콩팥 기증>을 실었다. 부제는 <실명 위기의 대학생 등 4명 이식수술 / 뒤늦게 안 가족들 “그의 영혼 위해 기도”>였다.
이 기사도 말미에 “정작 사형이 집행되는 날은 평온한 몸가짐을 보였다는 것이다. 주(朱)는 그동안 구치소에서 기독교에 귀의, 지난 4월3일 구치소교회에서 세례를 받기도 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실제 사건’에서 이청준씨는 소설 창작의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의 이 소설 독후감이 흥미롭다. 이 감독은 영화평론가 허문영 씨와의 <씨네21>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문회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외국문학>이란 계간지에서 이청준 선생의 <벌레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즉각적인 느낌은 ‘이게 광주 이야기구나’란 것이었다.
청문회에서는 광주학살의 원인과 가해자를 따지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제 화해하자는 공론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벌레이야기>에는 광주에 관한 내용이 암시조차 없는데도 나는 광주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 소설이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피해자가 용서하기 전에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라고. 그리고 가해자가 참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 그리고 그것을 누가 알 것이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청준 소설의 큰 미덕인데, 그 이야기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것을 느꼈다. 어찌 보면 되게 관념적인 이야기인데 그게 늘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었겠지. 그러다가 ‘오아시스’를 끝낸 뒤 밀양이라는 공간의 느낌과 그 이름이 이루는 아이러니한 대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게 나도 모르게 ‘벌레이야기’와 결합된 것 같다.”
이 감독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이 소설을 읽고 ‘광주’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구원과 용서’, ‘신과 인간’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다양한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주제의식의 ‘보편성’은 20여년이라는 시간적 격차, 한국과 서양(칸)이라는 공간적 격차를 뛰어넘는 울림을 낳고 있다.
이수강 기자, 영화 <밀양>의 단초는 80년 ‘이윤상 유괴사건’(미디어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