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경은이를 다시 만난 것은 3일이 지나서였다.
당장 다음날도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의 행동이 너무 경솔하게 받아질까봐
꾹 참고 견디었다.
그러나 서울의 대학공기를 의식한 지방대학이 그 파급을 우려한 나머지
서둘러 방학에 들어가자 정인은 그것을 구실로 전화한 것이다.
그것을 기회로 그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똑같은 거리,똑 같은 장소,똑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항상 새로운 생기와
새로운 마음을 전달해 주고 있었다.
정인이가 약속 시간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와 있었다.
엷은 그린 색 투피스,보라색 샌들에 하얀 속스,윤기 띤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정인은 자신까지 시원하고 맑은 기분이 되어 다가갔다.
"일찍 왔어?"
"방금"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내 생각?"
"조금은...그런데 할 애기가 있어요"
그녀의 천진스런 얼굴이 갑자기 시무룩 해지면서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왜 그렇지? 내가 무슨 잘못한 것이라도 있어서?"
"아니예오.여기서 나가요.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져요"
그녀는 C대학 캠퍼스끼지 가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문식씨가 화났대요"
"왜? 연락 않는다고?"
"정은씨가 저한테 푹빠졌다고 흉보더래요...명희가 그랬어요"명희와 경은은 대학 같은과 친구사이였다.
"그게 어때서?경은이가 매혹적이라서...나는 무슨 큰 일인가 했지"
"농담 싫어"
그녀는 정색하며 정인이를 처다보고 있었다.그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정은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 대고 그녀를 응시했다.
"또 있어요"
"뭐가?"
"명희가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쉬 달은 쇠가 쉬 식는다나요"
경은은 자신의 속마음을 보인데 대한 약간의 쑥스러움속에서도 그에게 조그마한 위로를
구하고 싶어졌다.마음을 쥐어주는 정인이 믿음직스러우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더 할수록
금방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불안 또한 컸다.
"염려마"
"서울에 여자 친구 있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있을 것 같아서..."
정은은 물으면서도 없다는 대답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그런걸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약 여자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일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자꾸 머리를 때렸고,그럴 경우에는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친구들 많지!"정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내뱉었다.
"그럴 것 같애"그녀는 생긋 웃었지만 방금 자신이 생각했던 예감이 적중이나 하는 것같아 ,
어떤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푹 꺼져버리는듯한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녀의 얼굴에 어두음이 드리워졌다.
"염려 마.나 지금 장난이 아니야.곧 알게 될거야 나의 진심을..."
"염려할 필요 있나요?상관 없어요.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그녀는 토라져 있었다.
눈가의 엷은 이슬을 애써 웃음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경은이!"
"................."
정이은 말없이 서있는 그녀를 보자,불현듯 그녀의 실생활의 채취가 그리워졌다.
토라진 마음을 감싸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너의 집에 가고 싶어"
"부모님을요?"경은은 정색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가면 안돼?"
"우리 집에서 알면 기절할 거예요.집에서는 아이로 취급하고 있는데..."
"경은이 요리 솜씨를 보고 싶어서..동생들도 보고 싶고..."
"시골 집에 가자는 줄 알고 놀랬어요.요리 할 줄 몰라요.할머니가 다 해주시거든요"
그녀는 시골에서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가 광주에 조그만 집을 사줘서 동생과 함께 있으면서
할머니가 돌보고 있었다.
"요리 못하면 난 싫어하는 데"
"피~~상상이 지나치군요"
경은의 집은 S대학 뒤에 그리 멀지 않은 비탈진 곳에 있었다.
"집이 너무 초라해서..."
"아담한데,전망도 좋고"
정인은 그녀가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는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를 상상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아까의 언짢았던 감정도 말끔히 사라졌고 그녀의 동생들과 유쾌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정석이는 고1,애경이는 E대 ㅣ년이구요.저하구는 연년생인데 예쁘죠? 고대 다닌단다"
"누나 애인 생겼다"
"친구야.형이라고 불러.애경이는 좋은 학교도 다니고 미인이네"
"형! 잘부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