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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감사
제목 : 사마리아인의 감사
성경 : 눅 17:11~19
찬송 : 587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1119 낙양교회 추수 감사 주일
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미국 시카코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 (Warner Sallman: 1892–1968) 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는 "Head of Christ" 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상화 그림으로 솔맨은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있었는데 1917년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당신은 임파선 결핵입니다.” 라고 진단하고 “당신은 길어야 석 달 살 것입니다.” 라고 통지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솔맨의 마음은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그때 임신 중이었으므로, 솔맨은 아내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며 매일처럼 절망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 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봅시다. 3개월이나 되는 기간을 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솔맨은 아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더 이상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지 않고, 아내의 말대로 남은 3개월 동안 오직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아주 작은 일부터 감사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Head Of Christ"를 감사하면서 그렸는데 감사하는 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3개월이 지났는데도 몸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져서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해 보았더니, 임파선 결핵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그의 주치 의사인 '존 헨리'는 너무나 놀라며
“도대체 3개월 동안 무슨 약을 먹었기에 이렇게 깨끗이 나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솔맨'은 다른 약은 먹은 것이 없고 굳이 약이라고 한다면 아내가 주는 감사하는 약을 먹었다고 하니까, 주치의사는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것이 명약입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요,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 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 한 마을에 이르러 들어가게 될 때,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는 멀리 서서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눅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들은 나병 환자이기에 정상인과 격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여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가다가 그들은 몸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눅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열 명의 나병환자가 가는 도중에 모두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홉 명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한 명은 이방인으로 지칭되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모두 다 고침을 받았지만 이방인으로 지칭되는 사마리아인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예수님의 질문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들려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앤드류 마리아가 지은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천국에 도착하자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그를 맞이했습니다. 베드로는 천국을 두루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두 영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천사들이 함께 열심히 일하는 거대한 작업실에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접수부라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갖 청원들을 이곳에서 접수한다네.”
많은 천사들이 대단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지구도처 사람들이 보내온 두툼한 분량의 종이에 적힌 온갖 청원들을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방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포장 및 발송부라네. 사람들에게 보내 줄 은총과 복된 선물들이 이곳에서 포장되어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발송되는 거지.” 이곳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보낼 선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둘은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서로 가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곳은 단 한 명의 천사가 한가롭게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 “이곳은 확인부라네.” 그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이곳은 조용하고 일거리가 없습니까?” 이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서글픈 일이지. 이곳은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로 부탁한 선물들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접수하는 곳이지. 그런데 확인서를 보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그가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확인하는 건대요?’하고 묻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주 간단하다네.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도 확인하는 사람이 없다네.”하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 명 중 한 사람만 감사하러 온 것처럼 우리는 감사에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나병이 나은 후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도 생각났을 것이고 친구들도 떠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생각했고 감사드리러 달려온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감사를 ‘토다’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유카리스티아’라고 합니다. 감사의 근본적 의미는 히브리어 ‘호다’와 헬라어 ‘에소모로마이’인데, 그 어원에는 ‘인정하다’, ‘시인하다’, ‘고백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인간의 죄나 하나님의 성품과 하신 일에 대한 고백 또는 인정 및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고백이라는 말은 ‘죄에 대한 회개’, ‘구원을 호소하는 애원’ 그리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드려지는 기쁨의 표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지난 3년 코로나 팬더믹을 보내면서 평범한 일상이 일어나 큰 축복인가를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코로나 시절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인 삶에서 감사의 조건들을 찾고 발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의 조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눈도 키워야 됩니다. 아무리 감사할 일이 많아도 그 조건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감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감사의 조건들을 찾은 후에는 우리의 삶으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눅 17: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열 명의 나병 환자 중에 고침 받고 찾아온 사람은 유일하게 사마리아 사람 하나뿐이었습니다.
여기에 감사하러 돌아온 사람의 정체를 생각해 봅시다. 사마리아 사람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앗수르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앗수르 사람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시켜 살게 만들었습니다. 앗수르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혼인하게 되었고 여기서 혼혈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유대 사람들에게 굉장히 무시당하고 낮게 여김을 받았습니다. 거의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쪽에 살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하러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으려고 요단 동쪽으로 먼 길을 우회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12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그때도 역시 요단 동편으로 우회하여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마리아인과 상종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나환자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 즉 사마리아인만 예수님께 되돌아와 ‘발아래 엎드리어’ 제일 먼저 감사를 드렸습니다.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자복하는 경배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물론 나머지 아홉의 사람들도 마음으로는 감사를 드렸겠지만 정작 자신들을 낫게 해 중 치유 자이신 예수님께는 찾아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만한 마음, 남과 비교하기, 마음속 욕망 등이 감사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첫째, 감사와 불평도 습관이다. 기왕이면 감사를 습관화해야 한다.
둘째,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깨닫는 자가 많이 감사하는 법이다.
셋째, 기도하면 감사가 더 넘치게 된다. 기도는 원망을 감사로 만드는 거룩한 과정이다.
넷째, 감사는 내 인생을 역전시켜 준다. 불평하면 불행이 평생 따르고 원망하면 원 없이 망하게 된다. 감사는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는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를 삶으로 하십시오. 말로만 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삶으로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셋째, 감사는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나음을 받은 그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왔습니다.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비로소 사마리아인은 그의 행위로 인해 유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그의 행위로 인해 유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놀라운 축복도 받았습니다.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는 믿음으로 영혼 구원까지 덤으로 받았습니다. 그동안 나병환자가 되어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까? 소록도에 가보면 과거 나병환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인권이 유린되고 고통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장인 목사님이 그곳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고, 장모님은 간호사로 병원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 사는 나병환자들은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정상인이 지나가면 납작 엎드려 고개를 땅에 묻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과거 성경 시대에는 얼마나 나병환자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철저하게 격리 된 생활을 해야 했겠습니까? 웃시야 왕도 나병환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별궁에 갇혀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 나병환자인데 이제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 구원까지 받은 것입니다. 물론 다른 아홉 명도 나병에서는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까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 받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진정한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육체적인 질병을 벗어 버리는 동시에 영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됨으로 이전에는 꿈으로만 그려 왔던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휘테라는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주일 설교할 때마다 그 주에 있었던 일 중에서 꼭 한 가지씩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번은 그 지역에 큰 태풍이 몰아쳐 많은 피해를 입고 최악의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성도들은 오늘 아침만은 목사님이 감사할 조건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날 아침에도 여전히 감사기도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과 같은 최악의 재난이 항상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란 단어를 풀어보면 ‘감’은 감사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야 할 의무이며, ‘사’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리고 찬송하는 고귀한 행위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여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