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귀한 향골에 로또 대박에 비견 될 만큼의 엄청난 눈이 쏟아졌다.
이런 눈은 객이 가동주졸 시절 때 한번 보았었고 결혼 초 마눌이 큰딸을
가졌을 때 또 한번 내렸었다.
그그저께 밤 아내와 둘이서 일해공원을 발목이 시려라 걸어 보았다.
아무도 없는 빈 공원을 욕심껏 걷다 돌아 오니 문득 호생관 최북의 대표작,
"풍설야귀인도"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참 많이 왔읍니다.
풍설야귀인도는 당나라 시인 문방 유장경의 "봉설숙부용산"에서 화제를 얻어
칠칠이(최북)이가 손가락과 손톱을 이용한 지두화란 기법으로 시원하게 쏟아내린
작품인데 흔히 조선의 빈센트 반 고흐, 최칠칠이의 대표작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작이다.
말아 나온 김에 오늘은 최칠칠이의 일생을 하번 더듬어 보자.
눈이 이리도 많이 왔으니....
두 개의 눈.
흰 떡을 이고 있는 소나무.(난테눔 떡 디게 좋아 합니다.)
조선의 유명 화가 중, 유난히 술과 인연이 많은 화가 세분을 들라면 단연
달마도의 연담 김명국과 호취도의 오원 장승업,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호생관 최북이 으뜸 닮은꼴들이다.
그리고 김명국의 "설중귀려도"와 최북의 "풍설야귀인도"는 그 분위기가
닮아도 너무 닮아 과연 두 분이 "주신"의 경지에 올랐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면 지나친 억탁일까..
화제를 무어라 쓸까..?
연담 김명국 선생과 오원 장승업 선생의 얘기는 다음에 쓰기로 하고 먼저
신광하가 묘사한 최칠칠이의 모습을 보자.
"한양에서 그림 파는 최북,
오막살이 신세에 네벽 모두 텅비었네.
유리안경에 네무필통 옆에두고
하루종일 문 닫고 산수와 그리네.
아침에 한폭 팔아 끼니 때우고
저녁에 한폭 팔아 밥상을 차리네."
칠칠의의 살림살이가 그대로 손에 잡히는듯 생생히 다가온다.
버섯 형제의 셜경 나들이.
너비아니 안주에 쐬주 한잔 했으면...
최칠칠이는 키가 오척에 불과했고 성격이 괴팍,강팍하여 누구나 함부로
덧들이지 못하였으며 돈과 권력에 기생하는 인간들을 마치 버러지 보듯
경멸하여 당시의 양반들도 상당히 그를 까다롭게 여겼다 한다.
한번은 칠칠이 사는 동네에 땅마지기나 가지고 온갓 패악질이 대단했던
수전노가 거드럼을 피우면서 춘화도(오늘날의 야동)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독야청천..
그러나 칠칠이가 이런 인간 말종의 부탁을 들어 줄리가 없다.
단박에 거절하고 나가라고 소리치니 무시를 당한 이 수전노가 얼굴이
고춧껍데기처럼 벌겋게 달아 오르더니 하예들을 호통쳐 무릿매를 놓으라고
발광을 떨었다.
그러자 범강장달같은 하인놈들이 소매를 본때있게 걷어 부치고는 마악 내정돌입을
하려는데 칠칠이 옆에 있는 송곳을 집어 들어 제 눈을 스스로 찌르고 기광을
부리니 말종패들이 낯짝이 무두질한 겄처럼 하얗게 되어 도망을 갔다.
홍백의 조화.
이로써 칠칠이는 눈을,고흐는 귀를 스스로 찌르고 잘라 대단한 기인의 족적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또 한번은 어느 명망있는 대감이 칠칠이를 보쟈 하였는데 술생각이 간절한 그는
대감의 해장술(?)을 거들까 하여 꼭두새벽에 대감댁을 찾아 갔겄다.
칠칠이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집사가 칠칠이의 이름을 부르기 머해서 어디에
살고 있는 최직장(종7품) 찾아 왔노라고 대감께 연통을 했다.
조어산수도에 나오는 버들과 비슷함다.
보기 좋읍니다.
그러자 최북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이놈아, 기왕 헛벼슬 공치사를 할양이면 정승이면 정승이지 말라 비틀어진
직장이 무어냐 말이다."
그리곤 뱁새눈을 뜨고 떨뜨럼하게 서 있는 집사의 뺨을 모양있게 한대 다스리고는
돌아서 뒤도 안 보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금강산 구경을 가서는 구룡연 폭포에서 천하의 칠칠이 죽을 자리가 여기
노라고 엄숙히 선언하고는 폼나게 다이빙을 했어나 마수에 그치고 말았다.
종각.
또 그는 하루에 대여섯되의 술을 마셔 "주광화사" 즉 술에 미친 화가라 불렸으며
그림을 팔려고 주유천하했다.
그리고 칠칠이 우리 합천에 와서 놀다가 해인사 홍류동 계곡을 그렸는데 화제에
이렇게 썼다.
"세상사람 다투는 소리 내 귀에 들릴 까봐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막았다네."
그의 인생관이 엿 보이는 대목이다.
솔가지에 쌓인 눈.(이런 책 제목이 실제 있었음)
노송.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폭 팔아 크게 취해 밤길 걷다 성모퉁에 쓰러져 누웠다."
그의 죽음을 신광하는 이렇게 묘사 했는데 아마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짐작이
객만은 아니리라.
비록 남들이 환쟁이라 부르며 천시했으나 기실 자신은 자기의 눈을 스스로 찌를
정도로 당시의 기득권에 격렬히 저항한 최북은 분명 우리가 아는 희대의 천재임이
틀림이 없다.
함벽루.
담장 위의 눈 목도리,,ㅎㅎ.
눈보라에 밀린 나무들이 휘어져 있고 허리를 깊이 수구린 나그네가 동자를
거느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초인사를 개어 올리는 견공은 눈까지
그려 놓아 평생을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 온 자신의 환형을 떠 올리게 하는
수작 "풍설야귀인도"를 보노라면 묘하게도 가슴 북받치는 슬픔이 밀려온다.
어쩌면 최칠칠의 회한 한가닥이 길이 남아 객의 가슴 한켠에 뿌리를 내린지도
모를 일이다.
눈 덮인 황강.
덕유산 너머 무주(최북이 태어 난곳.)
2012년 세모에 난테 진맹익 청정.
첫댓글 난테청정님!
대단하십니다
사진 실력과 글 어느 작가 뒤지지 않네요'
최칠칠님의 일대기를 짧은 시간에 깊이 느낄수있는것 같아
감사드려요 광기 어린 화가 자기 눈을 ...
무어라 쓸까? = 순백의 수줍은 미소~
겔러리 비싼 곳을 다녀온 수준 높은곳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청정 난테님 매력의 푹 빠져봅니다
눈속을 옆지기님과 걷다 아름다운 풍경 감사드려요
덕분에 행복합니다 늘 좋은일로 웃음 가득하소서...
새해에도 기쁨과 건강 소원합니다 빵긋~^^
솔아님,,
해맞이 1박2일을 다녀 오느라 인사가 늦읍니다.
과찬에 많이 쑥스럽스니다.
계사년 더욱 행복 건승 하소서..
일모창산원(日暮蒼山遠) 날이 저물어 푸르른 산은 먼데
천한백옥빈(天寒白屋貧) 차가운 하늘 밑 시골집이 쓸쓸하네
시문문견폐(紫門聞犬吠)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
--당나라시인 유장경의 시에서 "화제"를 따왔다네요--
ㅋㅋ,,,
한자 변환이 어렵고 귀찮아 그냥 한글로 쓰는데 이렿게 한자로 써 놓으니
더 폼이 납니다.
올 한해에도 대장님의 열정 기대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난테님!
좋은글!~
멋있는 사진(프로작가)답게
감상 잘하고 갑니다.
눈이 귀한 향골(합천)에도...
임진년 한해동안 수고하셧습니다.
종군기자님,,,,
계사년에도 새해 복 마니 받으시고
무르익는 기자님의 경지를 자주 구경코져 합니다.
더욱 건승 즐산 하소서,,
대단들 하세요... 박수입니다
난테님~~
조금 어려워서 한번보고 ... 다시한번 보느라.. 댓글이 늦었어요
마나슬루님 대단들 하셔...
푸른솔아님. 초심산대장닌. 종군기자님. 난테님 넘 멋져요...ㅎㅎㅎ
ㅎㅎ,,,
그냥 그러려니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