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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피부병 진단
이 장은 문둥병과 그 진단을 다루고 있다. 본 장은 인체에 관련되는 문둥병을 다루는 부분(1-46)과 의복의 문둥병을 취급하는 부분 (47-59)으로 되어 있다. 고대 세계에서 문둥병은 모든 질병 중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불치성과 전염성 그리고 끔찍스러운 결과 동은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병은 죄의 심판으로, 또는 하나님의 손으로 유대인 중에 알려졌다. 뿌리깊은 치명적인 병으로 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병에 걸린 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병이 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식 사고이다. 성경에는 의학적이거나 윤리적 측면보다는 불치성, 전염성, 격리성 및 치명성 등으로 죄의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죄의 속성 즉 전염성, 파괴성, 분리성 등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질병을 통해 죄의 악함과 죄를 용서하고 치유하시는 구세주에 대한 대망을 절감하게 된다. 인류의 구세주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속절없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시고 영적 및 육적 치유와 구원의 사역을 베푸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이 장에서 질병의 근본 치유나 회복의 방법은 다루지 않고 오직 절망적 기다림의 메시아 대망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절망적 필요에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죄를 치유해 주시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장에서는 나병 또는 한센씨 병(Hansen' s clisease)이라고 불려지는 문둥병뿐 아니라(13:1-46), 일반적 피부병까지도 다루고 있다. 옷, 가죽, 가옥의 벽에 곰팡이를 이 병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러한 것들은 일반적 악성 피부병으로 볼 수 있다(47-59).
문둥병에 대한 현대적 해석
여기서 다루고 있는 문둥병은 오늘날 현대적 의미의 문둥병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문둥병은 인체에만 해당되지만, 성경의 문둥병은 각종 피부 질환과 의복, 가죽, 가구 및 가옥에 발생하는 곰팡이로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의 차라트의 번역 문제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칠십인 역에는 이 단어를 lepra로 번역했다. 문둥병은 이 말이 아니고 elephas 또는 elephantiasis 이다. 신약 시대에도 역시lepra를 사용하며, elephas나 elephantiasis를 사용하지 않는다.
진짜 문둥병은 아마도 그대 근동에서는 그리스 시대 이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추측되기는 알렉산더의 군대가 인도로부터 돌아올 때 가져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단어 lepra를 다마스쿠스의 아랍 의사인 요한이 문둥병으로 언급한 AD 9세기까지 혼돈되지 않고 사용되 있다. 그 후로부터 그의 과오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lepra를 문둥병으로 혼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성경의 차라트가 lepra로 번역되기 때문에 문둥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문둥병의 명칭은 lepra가 아닌 elephas/ elephantiasis 였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5세기 BC)도 lepra를 복합적 피부질병으로 사용했다. 그의 설명은 건선이나 균상종(fungal infection)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들도 대부분 히포크라테스와 일치했다. 이 장에서의 강조점은 의식적인 불결의 문제이다.
1-2: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 피부에 문둥병같이 되거든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 자손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문둥병은 “때려 치다” 라는 의미에서 유래했고, 칠십인역 (LXX) 에는 나병으로 번역했다.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사고 방식을 보여 준다. 고대근동에서 문둥병은 고대 이집트에서 유행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이러한 질병과 접촉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질병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15:26).
일단 이 병에 감염되면, 그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이는 이 병이 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종교 의식적으로 부정한 것임을 보여준다. 병에 걸린 자를 숨기려는 일반적 심리에 반해서 성경은 의무적으로 이러한 자를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나와야 함을 언급한다. 제사장은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단지 부정한 자가 성소나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이러한 자를 격리하는 것이다. 이 런 뜻에서 고대 세계에서 제사장이 질병 특히 나병과 피부병의 검역을 담당하는 위생적 측면이 있다. 이 병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결성, 파괴성, 전염성 및 격리된 삶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문둥병 진단
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 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제사장의 검진에서 두 가지를 살핀다. 환처의 털 색이 변한 지 여부와 우묵하게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보통 머리 색깔이 검거나 갈색인데 비하여 흰색으로 변색된 것과 대부분의 질병에서 환처가 부어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는 들어가는 것이다.
표피 아래 내피에 상처가 난 것으로 문둥병의 외형적 조건이다. 문둥병으로 판명되면 그는 진 밖으로 쫓겨났다. 이 병의 특정은 어느 부위에 발생하면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번지는 것이다.
진단의 신중성
4-6: 4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칠일동안 금고할 것이며 5 칠일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의 보기에 그 환처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칠일 동안을 금고할 것이며 6 칠일만에 제사장이 또 진찰할지니 그 환처가 엷어졌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피부병이라 제사장이 그를 정하다 할 것이요 그는 옷을 빨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그러나 정결한 여부를 위하여 제사장에게 보인 후에 병이 피부에 퍼지면 제사장에게 다시 보일 것이요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 것이라 이는 문둥벙임이니라
여기서는 환처의 증세가 결정적이지 않으면 제사장이 병을 진단함에 있어 대단히 신중히 행함을 볼 수 있다. 칠일 동안 격리 수용하고, 진단하여 전과 다름없으면 다시 칠일 동안 격리 수용되어 이렇게 두 번에 걸쳐 각 칠일간 세심히 관찰함을 보여준다. 제사장의 판단은 관련된 개인이나 가족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신변에 관해 판단할 때에는 인내와 신중한 자세를 겸비해야 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환처가 우묵하지 않거나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사람을 정하다 선고한다. 그러면 그는 성소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할 수 있다. 그는 정한 자로 선언되고 옷을 빨았으며 정결한 자로 인정되었다.
난육에 의한 진단
9- 17: 9 사람에게 문둥병이 들었거든 그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10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피부에 흰 점이 돋고 털이 희어지고 거기 난육이 생겼으면 11 이는 그의 피부의 오랜 문둥병이라 제사장이 부정하다 진단할 것이요 그가 이미 부정하였은즉 금고하지는 않을 것이며 12 제사장의 보기에 문둥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하였으되 그 환자의 머리부터 발까지 퍼졌거든 13 그가 진찰할 것이요 문둥병이 과연 그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14 아무 때든지 그에게 난육이 발생하면 그는 부정한즉 15 제사장이 난육을 보고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지니 그 난육은 부정한 것인즉 이는 문둥병이며 16 그 난육이 변하여 다시 희어지면 제사장에게로 갈 것이요 17 제사장은 그를 진찰하여서 그 환처가 희어졌으면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그는 정하니라
난육이란 인체의 파괴적 현상으로 피부가 터져 겉으로 생살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난육이 발생하면 문둥병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이 난육이 말라서 다시 흰 돌기로 변하고 온 몸에 번졌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문둥병자가 아니라 정한 자로 판명된다. 이것은 어려운 구절로 몇 해석이 있는데, 백반(vitiligo) 등의 병으로 제안되는 바 감염의 위험이 없는 경우이다. 병독이 피부 밖으로 나타나(회복되어) 신체 활동이 정상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피부 표면 밑에 더 이상의 상처가 없는것으로 여겨진다.
종기 상처에 의한 진단
18- 23: 18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가 나았고 19 그 종처에 흰 점이 돋거나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생겼으면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20 그는 진찰하여 피부보다 얕고 그 털이 희면 그를 부젓하다 진단할지니 이는 종기로 된 문둥병의 환처임이니라 21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거기 흰 털이 없고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제사장은 그를 칠일 동안 금고할 것이며 22 그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지니 이는 그 환처임이니라 23 그러나 그 색점이 여전하고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이는 종기 흔적이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진단할지니라
피부의 종기 부위가 다른 부분보다 얄고 그곳의 털이 희면 그는 제사장에 의해 문둥병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흰 털이 없고 환부가 번지지 않았으면 그것은 종기 흔적으로 정하다고 판명된다. 이 경우에도 칠일 동안 격리하고 또 주의 관찰하는 이것은 오래 전의 상처 흔적(Harrison) 오돌토돌한 농포에의한 건선(Hulse) 또는 염증에 의해 소실된 피부(Keil & Delitz) 등으로 해석되곤 했다.
화상 상처에 의한 진단
24- 28: 24 피부를 불에 데었는데 그 덴 곳에 불그스름하고 희거나 순전히 흰 색점이 생기면 25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색점의 털이 희고 그 자리가 피부보다 우묵하면 이는 화상에서 발한 문둥병인즉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 다 할 것은 문둥병의 환처가 됨이니라 26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에 흰 털이 없으며 그 자리가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그는 그를 칠일동안 금고할 것이며 27 칠일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만일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그는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 것은 문둥병의 환처임이니라 28 만일 색점이 여전하여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화상으로 부은 것이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할 것은 이는 화상의 흔적임이니라
화상의 경우에도 약해진 피부로 인해 문둥병의 발생 요인이 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화상의 색점의 털이 희고 환처가 우묵하면 문둥병이다. 그러나 흰 털이 없고 환처가 피부보다 얄지 않으면 칠일 동안 격리하고 다시 진찰했다. 그런 뒤에도 변화가 없으면 정하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자세한 규정을 둔 것은 제사장의 오진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환처가 우묵하지 않고 머리만 빠진 것은 문둥병이 아니라 단지 악성 피부병에 가까운 말씀이다. 1주일 관찰 후에도 색깔의 변화가 없고, 환처의 내피에 이상이 없으면 화상의 흔적으로 정하다고 선언되었고 문둥병의 혐의에서 벗어났다.
옴에 의한 진단
29- 37: 29 남자나 여자의 머리에나 수염에 환처가 있으면 30 제사장은 진찰할찌니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고 그 자리에 누르고 가는 털이 있으면 그는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이는 옴이라 머리에나 수염에 발한 문둥병임이니라 31 만일 제사장의 보기에 그 옴의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없으면 제사장은 그 옴 환자를 칠일 동 안 금고할 것이며 32 칠일만에 제사장은 그 환처를 진찰할지니 그 옴이 퍼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누른 털이 없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거든 33 그는 모발을 밀되 환처는 밀지 말 것이요 제사장은 옴 환자를 또칠일 동안 금고할 것이며 34 칠일만에 제사장은 그 옴을 또 진찰할지니 그 옴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면 그는 그를 정하다 진단할 것이요 그는 그 옷을 빨지니 정하려니와 35 깨끗한 후에라도 옴이 크게 피부에 퍼지면 36 제사장은 그를 진찰할찌니 과연 옴이 피부에 퍼졌으면 누른 털을찾을 것 없이 그는 부정하니라 37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옴이 여전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났으면 그 옴은 나았고 그 사람은 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진단할지니라
여기서는 일종의 옴과 같은 발병으로 머리나 수염에 발생한 것으로 환처가 주위 피부보다 우묵하고 그곳의 털이 노랗게 가늘어 졌으면 문둥병으로 판명했다. 여기의 옴은 머리나 턱의 털이 빠지는 악성 피부병의 일종인 백선병인것 같다(Harrison). 옴이 피부에 퍼지지 않고 종처의 색점도 앓어지면 단순한 화상으로 여겼다. 문둥병의 확산성과 침투성을 기준으로 판단되었다.
색점에 의한 진단
38- 46: 38 남자나 여자의 피부에 색점 곧 흰 색점이 있으면 39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피부의 색점이 부유스름하면 이는 피부에 발한 어루러기라 그는 정하니라 40 누구든지 그 머리털이 빠지면 그는 대머리니 정하고 41 앞머리가 빠져도 그는 이마 대머리니 정하니라 42 그러나 대머리나 이마 대머리에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있으면 이는 문둥병이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발함이라 43 제사장은 그를 진찰할지니 그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돋은 색점이 희고 불그스름하여 피부에 발한 문둥병과 같으면 44 이는 문둥 환자라 부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확실히 진단할 것은 그 환처가 그 머리에 있음이니라
문둥병자때 대한 규례
45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 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
여기서 문둥병과 어루러기를 구분하고 있다. 어루러기란 피부에 돋아난 흰색 반점으로 해가 없는 것으로 문둥병이 아니다. 이것은 유전적이거나 전염성이 없다(Gesenius). 백반으로 보기도 하고(Snaith, Hulse), 구진(papules) 이라는 견해도 있다(Harrison).
대머리 증세와 머리의 문둥병에 관해서는 주의가 요한다. 대머리는 뒷머리 부분의 대머리를 말하고 (Strong), 이마 대머리는 앞머리 부분의 대머리를 뜻하는데, 이곳의 환처가 있어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있으면 문둥병으로 선언되었다.
문둥병 환자의 규례가 제시되어 있다. 이 사람은 애도하는 자와 같이 옷을 입어야 했다. 죽음의 숨결이 그 위에 있었다.
그는 낡고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혜쳐 극도의 슬픔과 애도의 표시를 해야만 했다(욥 1:20; 2:12; 마 26:65). 이는 마음을 찧고, 머리를 풀어헤치는 것처럼 슬픔과 극도의 혼돈의 상징이다. 문둥병자가 되는 것은 격리된 생활, 공동체에서 분리된 생활을 해야했다. 그는 어떤 경우라도 인가가 있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살아 있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자비에 의지했다. 마치 “살아 있는 죽은 자" (living dead)요 시체로 인정되었다(민 12:12). 이것은 죽은 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애도의 표이다. 그는 윗입술을 가리웠다. 이도 동일한 애도와부끄러움의 표로서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의 표시였다(겔 24:17,22: 미 3:7).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쳤다. 이것으로 문둥병자는 자신의 더 러움에 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면, 그 나무 그늘 밑에 있는 사람도 역시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율법은 의식적 불결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이렇게 조치했다. 이렇게 고난 당하는 자는 그가 정결하다고 선언될 때까지 일생 동안 진 밖에서 격리되어 살았다.
의복에 핀 문둥병
47-58: 47 만일 의복에 문둥병 색점이 발하여 털옷에나 베옷에나 48 베나 털의 날에나 씨에나 혹 가죽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있되 49 그 의복에나 가죽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병색이 푸르거나 붉으면 이는 문둥병의 색점이라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50 제사장은 그 색점을 살피고 그것을 칠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51 칠일만에 그 색점을 살필지니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가죽에나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졌으면 이는 악성 문둥병이라그것이 부정하니 52 그는 그 색점 있는 의복이나 털이나 베의 날이나 씨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을 불사를지니 이는 악성 문둥병인즉 그것을 불사를지니라 53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54 제사장은 명하여 그 색점 있는 것을 빨게하고 또 칠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55 그 빤 곳을 볼지니 그 색점의 빛이 변치 아니하고 그 색점이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부정하니 너는 그것을 불사르라 이는 거죽에 있든지 속에 있든지 악성 문둥병이니라 56 빤 후에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이 엷으면 그 의복에서나 가죽에서나 그 날에서나 씨에서나 그 색점을 찢어 버릴 것이요 57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색점이 여전히 보이면 복발하는 것이니 너는 그 색점있는 것을 불사를지니라 58 네가 빤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그 색점이 벗어졌으면 그것을 다시 빨아야 정하리라
여기서는 털옷이나 베옷 또는 가죽 등의 의복에 발생한 문둥병에 관한 규례들이다. 의복에 푸르거나 붉은 색점이 생기면, 백성들은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했다. 제사장은 색점을 판별하여 세탁 또는 절취하여 사용 가능한 것과 소각할 것을 구분했다. 이곳의 색점은 옷이나, 도기, 가재 도구에 번식하는 푸르거나 붉은 색을 띤 곰팡이 (mold, mildew) 혹은 균류(fungus}를 말한다. 붉은 점이나 색점이 칠일 동안 있은 후 다시 살폈다. 만약 색점이 퍼졌으면 악성 문둥병으로 판정되어 옷을 불태웠다. 색점이 칠일 이후에도 퍼지지 않았으면 그 옷을 빨았다. 뺀 후에도 그 색점이 변치 아니하면 문둥병으로 취급하고 태웠다. 뺀 후에 그 색점이 짧어졌으면 그 부분을 절취해 버리고 남은 부분은 그대로 사용하였다. 뺀 후에 색이 약간 흐려졌으면 다시 빨아 정하게 되었다.
의복에 생긴 색점의 확산 및 오염은 죄의 전염성과 오염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색점을 빨고, 제거하고 또는 불태운 것은 위생적 의미도 있지만, 죄의 필연적 결과인 죽음을 나타낸다. 이렇게도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정결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상에서 문둥병이라는 용어가 인간의 피부 질환뿐만 아니라 현상적으로 피복이나 가옥 등의 색점에도 적용되었다. 사람, 피복, 그리고 집의 문둥병에 대한 문학적이고 예방적 구조가 비슷하다. 철일간의 검역 기간이 이 세 경우에 다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진단을 위한 중요한 기준은 부위의 색깔이다. 제사장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했다. 언약공동체의 건전한 삶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정한 것으로 선언된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피부병이 오래 지속된 것이든지 또는 적어도 1-2주일이 된 것이었다(4ff, 26ff, 33ff, 50ft). 피부보다 더 깊이 들어갔던지(3,20,23,30), 물로 씻을 수 없는 것이었다(55). 인체 의 일부분에 감염된 것이다. 만약 온 몸에 퍼졌으면 부정하지 않았다(12-13). 의복의 경우에는 감염된 부분만 찢어냈다(56).
중요한 점은 거룩성이란 건전성(wholeness)과 순결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짐승도 완전한 것을 제물로 드렸고, 제사장도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다. 사람은 행위에 있어서도 건전성과 충실성을 나타내어야 했다. 피부에 색점 등의 가시적 비건전성이 보이면, 그는 언약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다. 중상이 일시적이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 2주 이상 지속될 시에는 일생동안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위험에 직면했다. 여기서 개인의 복리보다는 성막의 거룩성과 민족의 순결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서 개인이나 가족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개인적 불편이 공동체의 영적 복리에 위험을 주지 못했다.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 가운데 불결한 것을 제거하는 여하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구속사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인 문둥병은 불치성과 전염성 그리고 끔찍스러운 결과 등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죄의 심판으로, 또는 하나님의 손으로 알려졌다. 뿌리깊은 치명적인 병으로 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병에 걸린 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병이 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식 사고이다.
성경에는 이 병을 의학적이거나 윤리적 측면보다는 불치성, 전염성, 격리성 및 치명성 등으로 인해 죄의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죄의 속성 즉 전염성 파괴성 분리성 등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이 병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고 있다. 그저 고난 당하는 죄인의 슬픔과 고뇌를 보여준다. 질병의 근본 치유나 회복의 방법을 다루지 않고서, 이 병 앞에 무력하고 도울 자가 없는 인간의 처참한 상태에서 도움의 손길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죄의 악함과 죄성을 깨닫고, 죄를 용서하고 . 치유하시는 구세주에 대한 대망을 절감하고 있다. 절망적 기다림의 메시아 대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생명의 주님께서 이 불치의 병을 치료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의 구세주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속절없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시고 영적 및 육적 치유와 구원의 사역을 베푸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이러한 인간의 절망적 필요에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죄를 치유해 주시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약에서는 이 병에 접촉된 자는 부정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고난 당하는 영혼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만지시므로 그들의 부정을 그분께서 젊어지시고 대신 생명과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다(마 8:3; 막 1:42; 눅 5:12-13).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분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 다(벧전 2:24). 주님의 우리들의 병과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대신 젊어지셨다(마 8:17). 얼마나 놀라운 구세주이신가!
교훈과적용
1.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살아야 했다.
2. 하나님 앞에 개인적 이익보다는 공동체적 안녕을 우선시함을 볼 수 있다. 개인의 유익보다는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모본을 볼 수 있다.
3. 사람은 하나님 앞에 건전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오늘날의 경우에는 직분에 맞게 정상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
4. 문둥병으로 판명되고 선고된 자의 비참함에서 우리는 죄라는 것을 문둥병처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죽은 자로서 자신을 간주했던 것처럼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로 여겨야 하고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5. 문둥병자의 속절없음과 무력함은 메시아이신 주님의 구원을 대망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가족과 언약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사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둥병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피해야 함을 나타내 준다.
6. 문둥병 환자의 절망적 상태에서 구원과 치유를 기다리며 죽어가고 있었지만, 신약에서 구세주 예수님은 문둥병 환자와 각종 병든 자들을 접하시고 그들의 부정을 자신이 친히 담당하시고 죄를 정렬케 하시며 질병의 치료와 죄 용서를 베풀어 주신 모습을 보게 된다.
성결법에 의하면, 부정한 자와 접한 자는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으로서 우리의 부정을 정결하게 해주시는 분이심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