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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10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 은혜목회정보
1. 들어가는 말
지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서는 거대한 홍수로 수천명이 죽고 1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의 물에 잠기는 순간 구조헬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습니다. 그중 참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얘기가 있습니다. 홍수를 피해 나무 위에 대피해 있던 26세된 여인이 그 나무 위에서 해산의 진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다른 사람들을 구출하던 구조대가 이 여인이 나무 위에서 해산하려는 것을 보고 급히 연락을 취하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 의료진을 태우고 이 곳에 다시 왔습니다. 나무에 돌아왔을 때 이 여인은 이미 아이를 출산한 뒤였습니다. 그것도 나무 위에서 말입니다. 급하게 헬기로 산모와 아이를 병원까지 후송했습니다. 이 구조대의 도움으로 산모와 아이는 모두 무사했고 다행히 건강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구조대가 이 여인을 못 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또 이 여인을 봤더라도 즉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와 산모는 죽었을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홍수에 밀려 떠내려 갔거나, 해산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불편한 환경 때문에 둘 다 죽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조하는데는 시간이 생명입니다. 조금만 늦으면 몇 사람이 죽게됩니다. 다른 것은 미루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것은 미루면 안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하고 어떤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을 보고서도 구조대원이 재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죽었을 것입니다.
2. 시대적 상황
본문의 시대적인 상황은 6:24절부터 진행됩니다. 아람이라는 나라의 왕 벤하닷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북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쳐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마리아 성을 오랫동안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버티던 이스라엘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중에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삶아 먹었으나 그래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6:25-29절까지를 보시면 당시의 상태가 나와 있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은912그람) 나가고, 합분태 4/1값에 은 다섯 세겔(=은57그람)이 나갔습니다. 나귀는 부정한 짐승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귀를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자 나귀머리 하나 사는데도 엄청난 값이 나가게 됩니다. 합분태란 여물지 않은 콩을 말한 것으로 영양가 없는 것의 대표적인 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맛도 없는 콩 4/1이 은 57그람이나 나갈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28-29절을 보시면 엄마들이 너무 배가 고프니까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자식을 삶아서 잡아먹고 내일은 네 자식을 잡아먹자. 그리고는 먼저 잡아먹고 다음날 다른 자식을 잡아먹으려 하는데 엄마가 자식을 내놓지 않아서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너무 배가 고파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합니다만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도 너무 배가 고파 사람을 잡아먹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얘기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은 이 얘기를 듣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종을 죽여 화풀이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했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아주 싼값에 이 곡식들이 팔리리라는 것입니다. 성안에는 곡식 한 톨 없는데 엘리사가 이 얘기를 하자 이스라엘의 내무부 장관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말합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3. 문둥병자들
이런 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침 사마리아 성문 앞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문둥병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굶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성안에 들어가도 거기는 기근이 심하니 죽고, 여기 앉아있어도 죽고, 어차피 죽을 것이면 아람 군대에게 가서 항복하고 살려달라고 해보자. 살려주면 우리가 사는 것이고, 죽이면 어차피 죽을 것이니 죽자--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가서 부딪쳐보자. 밑져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나? 라는 생각으로 적진을 향해 갔습니다. 이렇게 아람 진을 향해 출발한 시간은 황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아람 진을 향해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아람군인들이 있는 곳에 병거소리 말소리 큰 군대가 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군인들은 서로 바라보며 두려움 가운데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연합군을 돈주고 산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큰 소리가 들리는 것 보니 엄청난 군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는 황혼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다급하게 도망가느라고 장막, 말, 나귀, 먹을 것 모두 다 놓고 정신없이 도망갔습니다.
이렇게 도망가고 난 후 문둥이들이 이 군인들이 진치고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가서 배부르도록 먹고 마시고 은 금 좋은 옷을 가지고 가 숨겼습니다. 또 다른 장막에 들어가보니 그 곳도 비어있습니다. 가서 좋은 것은 가져가 숨겼습니다.
한 참을 이렇게 하다가 생각해보니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문둥이 지만 지금 이스라엘 성중에는 이 사실도 모르고 많은 동족이 이 성밖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이 소식을 알리지 않고 우리끼리만 잘먹고 잘 지낸다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네는 문둥이밖에 될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그래,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가서는 이 소식을 알려서 성중에 있던 굶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와서 아람군대가 버리고 간 곡식들을 먹고 굶주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만약 하루 더 기다리면 성중에는 그만큼 더 죽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둥병자들이 한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1)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사마리아 성중에는 아람 군대가 물러간 줄 모르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말 한마디에 여러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이 믿던 안 믿던 알리기는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서 굶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굶고 있는 것은 자존심때문이기 때문에 문둥병자들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는 줘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문둥병자들은 평생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먼저 알았는데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 한 가지입니다. 불고지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은 것은 불고지죄에 해당됩니다. 배부를 수 있는데 굶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굶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성한 식탁을 맛보라고!
영적인 일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님이 싫어서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안 믿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알려줄 책임은 있습니다. 죄인에게 구원자가 있다는 사실, 일생만 아니라 영생이 있다는 사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이유를 발견한다는 사실, 평안과 용서의 은혜를 누린다는 사실, 더 이상 죄책감과 공허함으로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만 이런 특권을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영적인 굶주림에 방치해버린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 우리가 아침까지 기다리면 화가 우리에게 미치리로다
--지금 성중에는 시급을 요하는 굶주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 시간 아니 몇 분이 중요합니다. 아마 그 중에 몇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조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미루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119 구조대에는 주야가 따로 없습니다. 24시간 대기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한 시가 급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 문둥병자들이 내일 전하자 하고 하루 더 기다린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일 전하지 하고 기다렸다면 문둥병자들의 표현처럼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교통사고나 대형사고들의 경우 응급조치를 취하고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면 대부분은 살 수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주는 총동원 전도주일로 정하고 전도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가 다음에 하지하며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전할 수 있는데도 전하지 않았고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서울에서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매일처럼 정해진 구간에서 전도를 합니다. 이번에도 버스를 타고 전도를 하는데 하루는 한강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이렇게 전도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죽고 싶은 생각을 해보신 적 있습니까? 더 이상 못살겠다 생각하고 이 한강에 뛰어들어서 죽으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멋지게 죽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조금 갔더니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돌아보니 3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목사님 저에게 잠깐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시간을 내서 만났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그 사람은 인생에 대한 회의 와 좌절로 인해 죽기로 작정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강을 지나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가 서면 내려서 한강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기로 작정하고 그 버스를 탔는데 바로 그 버스에 목사님이 오셔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죽음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죽기 전에 저 목사님을 만나보고 죽어야겠다" 생각하고 목사님이 내리는 순간 따라 내린 것입니다. 만약 목사님이 그 날 피곤하다고 아니면 "다음에 하지" 하고 전도하러 안 나갔다면 그 사람은 죽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침묵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방랑자들에게 하나님이 있다고 새로운 삶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4. 문둥병자를 쓰신 하나님
이 본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이 문둥병자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문둥병자가 자기들을 구원하는데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평소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사용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이들은 앉아있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밖에 나와 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굶고만 있었습니다. 나오면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 성안에 있어도 굶어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는 움직였습니다. 이래 죽으나 가서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가서 한번 부딪쳐보기 라도 하자하고 움직였습니다. 도전했습니다. 죽을 폭 잡고 가봤더니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다 도망가고 텅 비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 앉아서 "전도할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하는 사람을 쓰십니까? 아닙니다. 어디 누구든지 가서 전해보겠다 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을 쓰십니다.
앉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했으면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찾는 것과 막힌 문을 두드리는 것까지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찾고 두드리는 중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기껏해야 몇 번 욕먹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 앉아있지 마십시오. 닥치는 대로 전하고 예수님에 대해 얘기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데 무슨 탁월한 사람 쓰시는 게 아닙니다.
문둥병자 같은 사람을 쓰십니다. 전도자체가 하나님보시기는 미련한 방법이요,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해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의식에 빠지지 마십시오. 문둥병자처럼 단순하게 나가십시오. 생각이 많고 계산이 많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5. 기막힌 타이밍
하나님은 타이밍의 전문가입니다. 하나님은 조급하지도 않으시고 늦지도 않으십니다. 시간의 창조자시요, 시간의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도 "때가 차매" 보내셨지 때도 안되었는데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면 기막힌 타이밍으로 우리 삶을 간섭하시고 도우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문둥병자들이 죽기를 작정하고 사마리아 성문을 떠난 때는 언제입니까?
"..황혼에 일어나서......." 황혼이 질 무렵입니다.
다음 7절을 보십시오. 아람군대가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정신없이 도망가기 시작한 때는 언제입니까?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역시 황혼입니다.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입니까?
똑같은 시간에 한쪽은 출발하고 한 쪽은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은 누가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믿음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도 일하시기 시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문 앞에서 문둥병자 네 명이 황혼에 아람 진을 향해 출발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아람 군대로 하여금 큰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 정신없이 도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나가면 하나님도 하늘에서 보시고 계시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 만나게 하시고, 가야할 길을 앞서 가시면서 다 일하고 계십니다. 지난 총동원 주일 때입니다.
누구를 전도할까 생각하다가 집사람 친구를 전도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이 친구는 몇 년째 집사람이 전도하려 했지만 계속 거부하여서 거의 포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좋은 친구요 귀한 친구였습니다. 몇 일간 기도하고 전화번호를 물어서 직장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몇 분 통화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의외로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언젠가 교회를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가야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너무 싱거웠습니다. 한바탕 논쟁이라도 벌어지리라고 준비하고 전했는데 너무나 반응이 쉽게 나왔습니다.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전화했을 때 저보다 앞서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도해보면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합니다. 평소에 잘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우연히 잘도 만납니다. 시내에 나가면 거기서 만나고 모임에 가면 거기서 만나고 시장에 가면 거기서 만납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전도하라고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분명한 것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앞서가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지금 당장 안 나와도 어차피 우리 손안에 있습니다. 언젠가 손들고 나올 것입니다.
6. 수치를 당하는 군대장관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 했을 때 내무부장관쯤 되는 사람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창문을 낸즉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결과 어떻게되었습니까? 문둥이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람 진을 향해 물밀 듯이 나갈 때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믿음 없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보기는 하지만 그 복을 누리지 못할 뿐 아이라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어떻게 밟혀죽습니까? 이런 비참한 죽음도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오늘날도 수치를 당합니다.
하나님이 한다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고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전도하는 것, 영혼 구원하는 것,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부흥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고로 이 일에 믿음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의 복을 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응답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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