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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풍전등화(風前燈火)
1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뜻으로, 사물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슷한 말] 풍등1.
•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
2 .사물이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99) 발본색원(拔本塞源)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아 버린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폐단을 없애 버리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구년조(九年條) 중, 주왕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유래된 고사(故事)이다.
"나에게 백부(伯父)가 계신 것은 마치 옷에 갓이 있는 것과 같다.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어야 하듯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어버리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拔本塞源], 오로지 지혜로움을 버린다면 비록 오랑캐들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我在伯父 猶衣服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戎狄其何有餘一人..
이와는 다른 出典으로, 명나라 때의 철학자 왕양명(王陽明)의 '발본색원론 (拔本塞源論)' 이 있다.
왕양명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을 여기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그가 평소 제창하던 "하늘의 이치를 지니고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과 취지가 같다. 즉, 사사로운 탐욕 은 근본부터 뽑아버리고 그 근원을 틀어막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신적인 고사가 지금 세상에서는 범죄나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 버린다는 데에 만 사용되고 있으니 이는 통탄할 일인가, 아니면 언어의 사회성에 대한 금석지감이라 할 일인가?
[유] 剪草除根(전초제근) : 풀을 베고 뿌리를 캐내다. 즉 미리 폐단의 근본을 없애 버리다. 削株堀根(삭주굴근) :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냄. 즉 미리 화근(禍根)을 뽑아 버리다.
[출전] '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
(302) 빙산일각(氷山一角) 삼수갑산(三水甲山)
氷 山 一 角얼음빙 뫼산 한일 모서리각: 외부로 나타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음三 水 甲 山석삼 물수 첫째갑 뫼산: 어떤 결심을 단단히 하는 문맥에서, 무릎쓰거나 각오해야할 최악의 상황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303) 속수무책(束手無策)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함을 이르는 말.
(304) 백팔번뇌(百八煩惱) <佛經>
백팔번뇌는 중생이 가지고 있는 온갖 번뇌를 108가지로 열거한
것을 말한다. 원래 108이란 많다는 뜻으로 쓰여 졌던 숫자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심화와 함께 108번뇌의 산출법이 뚜렷하게
생겨나게 되었다. 그 세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두 가지
설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첫째는 눈. 귀. 코. 혀. 몸 .뜻의
육근(六根)과 이 육근의 대상이 되는
색깔. 소리. 냄새. 맛. 감각 .법(法)의 육진(六塵)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에 대한 산출법이다. 육근이
육진을 접촉할 때 각각 좋고(好) 나쁘고 (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平等) 세 가지 인식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의
십팔 번뇌 가 된다. 또 이 호(好). 오(惡). 평등(平等)에
의거하여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樂愛),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苦愛),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고. 낙. 사수의 삼수(三受)를 육식(六識)에 곱하면
역시 십팔번뇌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36종의 번뇌에 전생.
금생. 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숫자를 얻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두번째의 산출 법은 어떻게
수행을 해서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 하는 수행 실천의
문제를 잘 풀이해 주고 있다. 이것은 사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 번뇌를 근거로 하는 산출법이다. 곧 견혹(見惑)인
88사(使), 번뇌와 수혹 (修惑)인 10혹(惑), 번뇌에다 10전(纏)의
번뇌를 더하여 얻는 백팔번뇌설이다. 견혹이란
사고. 지식. 인식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 여기서의
견(見)은 지혜에 의해 얻어진 지식적인 내용을 뜻하며, 혹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혜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 올바른
지혜를 >罐럽 번뇌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곧 없어지는
번뇌이며 보기만 바로 보면 곧 해탈된다는 뜻을 가진 번뇌이다.
수혹은 정서적. 의지적. 충동적 번뇌로서 그 번뇌의 성질이나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곧 바뀌어 지지 않는 번뇌이다. 돈이나
명예나 이성에 대한 탐욕이 바람직하지 못한 줄도 알고 있고,
시기. 질투가 나쁜 줄 알면서도 그러한 심리작용이나 습관이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견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수혹은 정신의 이면에 뿌리를
내리고 인간의 생을 이끌어가는 번뇌로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견혹의 88가지와 수혹의 10가지 번뇌에
탐심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의 근본 번뇌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뇌를 더하여 백팔번뇌가 되는 것이다.
제목 : 겁(劫)
범어 kalpa의 번역, 겁파(劫波).갈랍파라 음역하기도 한다.
의역하면 긴 시간(長時)이라는 뜻이다. 연.월.일이나 시간의
단위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자료에 나타난
겁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대지도론> 권5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개자겁(芥子劫)와 반석겁 (磐石劫)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방 40리의 성안에 개자(芥子)를 가득 채우고 백 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개자가 다 없어져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
둘레가 사방 40리나 되는 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
<구사론> 권12에서는 성(成).주(住).괴(壞). 공(空)의 4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염부주에 사는 사람의 수명이 무량한 때를
지나 주겁(住劫)의 처음에 이르고, 수명이 점차 줄어들어 10세가
될 때까지의 기간을 처음의 일주중겁(一住中劫)이라 한다. 이
뒤의 18겁은 모두 증감이 있다. 즉 10세에서 늘어나 8만 세가
되고 다시 8만 세에서 줄어 10세가 되는데 이를
제2주중겁(二住中劫)이라 한다. 이후의 17주중겁도 마찬가지다.
제20주중 겁은 10세부터 늘어 8만 세가 된다. 일체의 겁은 증감의
상하한선이 10세부터 8만 세가 끝이다. 보살이 발심한 뒤에
부처가 될 때까지의 수행기간을 삼아승지(헤아릴 수 없이 큰 수를
의미함)의 백대겁(百大劫)이라 한다.
제목 : 기(機)/근기(根機)
근기란 말은 일반적으로 기(機)로 줄여서 사용한다. 기란 연(緣;
간접조건. 환경. 상황)을 만나서 발동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교화될 수 있는 소질과 능력
또는 가르침의 대상을 말한다. 법(法)이나 교(敎)와 함께
기법(機法).기교(機敎)라고 하기도 한다. <법화현의> 권6상에는
기의 의미에 대해 다음의 3가지를 말한다. 1) 미(微) :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발동하는 미세한 선(善)을 내재 하고 있는 것 2)
관(關) : 부처님이 중생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하는 교화 3)
의(宜) : 부처님의 교화에 잘 들어 맞는 것. 기는 반드시
무엇인가의 근성(根性 ; 근본이 되는 성질이나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근(機根) 혹은 근기(根機)라 하며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1) 소질과 능력의 고하에 따른 상.중.
하근기 2) 악근기와 선근기 3) 돈(頓)근기와 점(漸)근기
4)과거세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내재하게 되는 명기(冥機)와
현세의 삼업으로 힘써 선을 실천하는 현기(顯機) 5) 부처님의
교화를 받기 위해 성자가 교화의 대상이 되는 권기(權機)와 실제로
교화를 받아야 할 상대인 실기(實機) 등이 있다. 부처님이 근기에
따라 설법하는 것을 수기설법(隨機設法)이라 하며 가르침에 근기가
적합한 것을 두기(逗機)라 한다. 기가 가르침을 감수(感受)하는
기감(機感)과 부처님이 기에 응하는 불응(佛鷹)을 합하여
감응이라 하고, 기와 응을 병칭해서 기응이라 한다. 부처님이
시대와 근기에 따라 적절하게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당기익물(當機益物)이라 한다. 선종에서 사용하는 기(機)란 말은
지도자인 스승의 마음 씀씀이란 의미다. 즉 기는 언어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그것이 밖에서 움직여서 지도를 받는
학인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스승의 기와 학인의
마음이 꼭 들어맞는 것을 투기(投機)라 한다.
제목 : 마(魔)
범어 mara의 음역인 마라(魔羅)의 축약어다.
살자(殺者). 탈명(奪命). 능탈명자(能奪命者).장애라고
번역하며 악마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흔히 마구니라 한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고 착한 일을 방해하는 사악한 귀신이다.
옛날에는 마(磨)라 썼는데 양무제 때부터 마(磨)란 글자로
바뀌었다. <보요경> 권6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했을 때 마왕 파순(波旬, mara papiya)이 세
명의 딸을 보내어 여러 가지로 부처님을 유혹했다고 한다. 마왕은
욕계의 제6 타화자재천의 높은 곳에 살면서 올바른 가르침을
파괴시키는 신이라 하여 천자마(天子魔)라 한다. 또 마의 의미를
내관적(內觀的)으로 해석할 때는 중생을 괴롭히는 일체의 번뇌를
마라고 부른다. 따라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장애를
내마(內魔), 외부의 세계에서 기인하는 장애를 외마(外魔)라 한다.
<대지도론> 권5에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제외한 일체를 마라고
간주했다.<유가사지론> 권29에는 죽는다는 작용의 대상인
오온을 오음마(五陰魔.五蘊魔.五衆魔.陰界入魔), 미래의
왕생을 알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번뇌를 번뇌마, 죽음을
사마, 죽음을 초월하는 수행을 방해하는 천자마(天子魔. 天魔)
등의 4마를 기술하고 있다. 또 4마에서 죄마(罪魔)를 더하여
5마라 하고, 혹은 4마에 상. 낙 .아. 정을 몰라서 생기는 무상.
고. 무아. 부정의 4가지 전도를 더해 8마라고도 한다.
<화엄대소초> 권29에는 온(蘊).번뇌 .업 .마음. 죽음.
하늘 .선근. 삼매. 선지식. 보리법지의 10마를 주장한다.
<의림장> 권6에는 번뇌장으로 이승(二乘)을 방해하면 분단마,
소지장으로 보살승을 방해하면 변이마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마하지관> 권8에는 참선 중에 일어나는
마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마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삼귀의와
오계를 실천하며 마를 다스리는 주문을 외우거나 염불을 한다.
밀교에서는 일정한 지역에 한하여 마장(魔障)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결계법(結界法)을 닦는 의례가 있다.
제목 : 무기(無記)
범어 avyakrta의 번역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므로
선 .악으로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숙과(異熟果,
vipakaphala ; 선악의 과보)를 기록하지 않으므로 무기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유루법에만 타당한 해석일 뿐 일반적인
학설은 아니다. 무기적인 법을 무기법이라 하고 선이나 악의 법을
유기법(有記法)이라 한다. 무기는 유부(有覆)와 무부(無覆)로
분류 된다. 유부무기는 무기이므로 이숙과를 끌어들이진 않지만
성도(聖道)를 방해하고 마음을 가져 부정(악)하게 한다. 예컨대
상이계(上二界)의 번뇌나 욕계의 번뇌에도 신견(身見)이나
변견(邊見)같은 것은 여기에 해당하며, 불선(不善 , 악)과 함께
오염성(汚染性)이 있는 것이다. 또한 무부무기는
정(緣)무리라고도 하며 순수한 무기임을 뜻한다. 성도를
방해하거나 마음을 가져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욕계의 무부무기심을 넷으로 구분하여 사무기라 한다. 즉 ①
이숙무기는 이숙생심(異熟生心).보생심(報生心)을 말한다.
전세의 업인(業因)으로 초래된 과보로서의 마음을 가리킨다. ②
위의무기 : 위의심(威儀心).위의심로(威儀心路) 를 말하며,
행.주.좌.와의 위의나 동작을 일으키고 혹은 이것을 연(緣)으로
삼는 마음을 가리킨다. 3) 공교무기 : 공교심.
공교처심(工巧處心)을 말하며, 몸과 말의 공교(공작.회화.
시가)를 말하고 혹은 그것을 연으로 삼는 마음을 말한다. 4) 통과
무기 : 변화무기라고도 하며 능변화심(能變化心). 변화심.
통과심(通果心)을 말한다. 정(定)의 결과 얻어지는 신통자재한
작용을 일으키는 마음을 말한다. 상술한 무기에다
자성무기(산하대지. 색성향미촉법)와 승의무기(허공과 비택멸의
두 가지 무위법)등을 더하고 유부무기를 합하여 7무기라한다.
유식계통에선 모든 무기법을 능변무기(심 .심소).소변무기(색법과
종자). 분위무기(불상응행법).승의무기의 넷으로 나누어
14무기의 경우처럼 가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
(305)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번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같이 몹시 위급한 상태로 태풍전야(颱風前夜)와 맥이 통하는 말이다.
(306) 원교근공(遠交近攻)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 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민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 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 (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 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307) 곡소비환(哭笑悲歡)
곡하고, 웃고, 슬퍼하고, 환호하는 인생의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308) 동병상린 (同病相憐)
같은 병의 환자끼리 서로 가엽게 여기며 위로함을 뜻하는 말로,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들 끼리 서로 위로하고 동정하며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초(楚)나라의 오자서(吳子胥)는 아버지와 형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돌아가시자 오(吳)나라에 망명해 왔다. 피리(被離)의 추천에 의해 오나라의 실권자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초나라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백비(伯嚭)가 망명 차 오자서에게 몸을 의탁하러 왔다. 오자서는 그를 동정하여 합려왕에게 천거해서 대부(大夫) 벼슬을 시켰다. 피리(被離)가 물었다“당신은 어째서 백비(伯嚭)를 한 번 보고 그토록 믿는 것이요.”“그건 나와 같은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요. 옛 노래가 있지 않소.‘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은 서로 구원한다(同憂相求). 육친을 사랑하고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사람 죽이기를 보통으로 아는 잔인한 상이오. 절대 마음을 주지 마시오,”
오자서는 피리(被離)의 충고를 무시하고 벡비(伯嚭)를 태재(太宰)까지 올렸다. 그러나 백비는 자신이 더 크기위해 적국인 월(越)나라의 뇌물에 팔려 자기를 이끌어준 큰 은공을 원수로 갚았다. 『오월춘추(吳越春秋)』
(309)소탐대실(小貪大失)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계략을 짰다. 혜왕은 욕심이 많은 촉 후(蜀侯)를 이용해 지혜로 촉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 촉 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을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 후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다.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 후는 눈이 어두워져 백성들을 징발하여 보석의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혜왕은 보석의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다. 촉 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 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촉 후의 소탐대실이 나라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310)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 물 대기란 뜻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311) 결초보은(結草報恩)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애첩이 한 명 있었다. 위무자가 어느 날 병이 나 자리에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과(顆)를 불러 "내가 죽거든 저 여인을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도록 하라"고 유언을 했다.그 후 병이 위독해지자 이번에는 "내가 죽거든 저 여인은 순절시켜라"라고 유언했다.이윽고 위무자는 죽었다. 그러자 아들 과는 "오히려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르자"며 그 여인을 다른 데로 출가시켜 주었다. 얼마 후에 진(晉)나라와 진(秦)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과도 출전했다. 싸움이 한창일 때 어떤 노인이 적의 두회(杜回)라는 힘센 장수가 공격해 오는 것을 풀을 엮어 막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두회는 그 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이것을 본 과는 즉시 달려가서 두회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그 후 어느 날 밤, 과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는데 그는 분명 그 때 풀을 엮던 노인이었다. 노인이 과에게 말했다."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의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소.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
결초함환(結草啣環)
함환(啣環)은 한나라 때의 양보(楊寶)의 이야기다. 양보는 일곱 살 때에 화음산(華陰山) 북쪽에서 부상당한 꾀꼬리 한 마리를 집으로 가져와 치료하여 날려 준 적이 있었다.그 후 양보가 성장하여 꿈을 꾸었다. 꿈길에서 나타난 꾀꼬리는 자신을 서왕모(西王母)의 사자라고 밝혔다. 그 꾀꼬리는 입에 하얀 구슬 네 개를 물고 있었다(口啣白環四枚). 그 구슬을 양보에게 바치며 말했다. "앞으로 당신의 자손들은 모두가 여기 있는 흰 구슬처럼 귀하게 될 것입니다."과연 그 후에 양보의 아들들. 즉 진(震), 손자인 병(秉), 증손자 사(賜), 그리고 현손 표(彪) 등은 영달을 누렸다. 위의 두 고사는 은혜를 갚는다는 말로 더 없이 적합한 말 들이다.
[출전]《春秋左氏傳》
(312) 오월동주(吳越同舟)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와 처지에 함께 놓임.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오(吳)의 합려(闔閭)와 월(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이에 대해 손무(孫武)의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 (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 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출전] '孫子兵法' 九地篇
(313) 교각살우(矯角殺牛)
교각살우(矯角殺牛)-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서, 작은 일에 정신을 쓰다가 큰 일을 망침.
(314) 칠거지악(七去之惡)
여자가 가져서는 안 되는 일곱 가지 악
옛날 모든 제도나 관습은 여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들 수 있다. 일명 '칠출(七出)' 또는 '칠거(七去)'라고도 하는데 지금 말로 하면 합리적인 이혼사유가 되는 셈이다.
이런 좋지 않은 제도는 놀랍게도 2천5백여년전 공자(孔子)의 입에서 나왔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면 부도(婦道)를 밝힌 본명해편(本命解篇)이 있다.
칠거지악(七去之惡)도 그 중 하나다. 즉 시부모를 잘 섬기지 않는 것(不順父母), 무자식(無子), 부정(不貞), 질투(嫉妬), 못된 병(惡疾), 수다(多言), 훔치는 것(竊盜) 등.
하지만 아내를 함부로 내쫓지 못하는 이른바 '삼불거(三不去)'도 있다. 첫째 돌아갈 친정이 없을 때. 둘째 아내 가 부모의 삼년상(三年喪)을 치렀을 때. 셋째 집 안을 일으켰을 때 등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아무리 남성 상위 시대였지만 가족제도의 기본이 되는 부부관계는 여전히 중시되었다는 점이다.
(315)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냐는 뜻으로,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매사에 처신을 잘 하라는 분부의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316)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論語>
공자의 가르침이다. 군자는 큰 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숨어서 일을 도모한다거나 부끄러운 알을 행하지 않고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의미다.
(315) 인즉영 불인즉 욕(仁則榮 不仁則 辱) <孟子>
마음이 착한사람에게는 영화로운 일이 찾아오고 마음이 악산 사람에게는 욕된 일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316)난득호도( 難得糊塗 )
[ 어수룩한 척하기는 어렵다는 뜻. 난세에 자신을 지켜주는 중국인의 처세술. ] <중국 청나라 시대> ‘난득호도(難得糊塗)!’ 바보(糊塗)인 척하기는 정말 어렵다(難)는 말이다. 이것은 청나라 문학가 중 8대 괴인으로 알려진 정판교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화를 당할 것이기에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그저 바보인 척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정판교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그 당시 중국 지식인들은 모두 그의 난득호도경을 처세의 대지혜로 삼았다.그로부터 300년이 흐른 지금, 이 ‘난득호도’는 중국인에게 있어 일부 지식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중국의 적지 않은 집에서 이 글귀를 발견할 수 있고 심지어 서울 황학동에 견줄 수 있는 북경의 판지아위엔 고물(古物) 거리에서는 이 글귀를 이용한 물건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왜 자신의 똑똑함을 감추려 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이자 상대방을 안심시켜 좀 더 강한 공격을 하기 위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면 상대방이 나를 시기하거나 경계할 것이고, 결국 나에게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것은 외세로부터 중국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었다.1770년대부터 중국인 가슴속에 묻어왔던 고도의 처세술, 난득호도.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아낌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이런 면에서는 분명 고수(高手)가 아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깊은 속내와 지혜는 아는 것을 모조리 드러내놓는 총명함보다 분명 차원 높은 처세술에 속한다. 그들의 이런 처세는 바로 정판교의 난득호도에서 비롯된 지혜이다. 지혜로우나 어수룩한 척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툰 척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척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하고,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하는 지혜가 바로 난득호도이다.
인(爲人) 사람의 덕내지외우 內智外憂 속으로는 지혜로우며 겉으로는 어리숙하다.내교외졸 內巧外拙 속으로는 빼어나지만 겉으로는 서투르다.불비첨명 不飛籤鳴 날지 않고 제비처럼 울지 않는다.위곡구전 委曲求全 뜻을 굽혀 전체를 얻는다.대유약강 大柔若剛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과 같다.대진약퇴 大進若退 크게 나아감은 물러섬과 같다.거안사위 居安思危 편안할때 위기를 생각하라.무위이위 無爲而爲 행함이 없이 행하라.
판사(辦事) 책략심장약허 深藏若虛 깊이 묻어두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라.용모약우 容貌若愚 용모를 어리숙하게 하라.능인즉안 能忍則安 인내할 수 있으면 편안하다.순수추주 順水推舟 물길을 따라 배를 저어라.욕금고종 欲擒故縱 잡기 위해 놓아주라.함구자중 緘口自重 입을 다물고 스스로 무겁게 하라.장기우신 臟器于身 능력을 몸에 쌓아 두어라.탁음행양 托陰行陽 음에 의지하여 양을 행하라.
처세(處世)화기치상 和氣致祥 온화한 기운이 상서로움을 불러온다.흘휴시복 吃虧是福 손해 보는 것이 바로 복이다.이덕보원 以德報怨 덕으로 원수를 갚으라.자득기락 自得其樂 스스로 즐거움을 얻으라.계급용인 戒急用忍 급한 것을 경계하고 인내를 활용하라.
사교(社交)설착이 주착난 設着易 做着難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시야몽롱 비야몽롱 是也朦朧 非也朦朧 옳아도 어수룩하고 옳지 않아도 어수룩하라.합부득 분야부득> 合不得 分也不得 합해도 도움이 안 되고 나누어도 도움이 안 된다.
爲糊塗求得 어리숙한 척하여 득을 취하다. 중국인의 상철학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317)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老子>
위성은 본성(本性)을 의미한다
하늘이 명령하는 것, 이를 일컬어서 인간의 본성이라 한다.
(318) 무위자연(無爲自然) <老子>
노자의 가르침으로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따르며 사는 것이 순리요 하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룻소가 인간들을 향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을 발한 것과 맥이 통한다.
(319)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가 없는 것이 도리어 크게 쓰여진다는 말
초(楚)의 은사(隱士) 광접여(狂接輿)가 공자(孔子)에 대해 평(評)하면서,
"산 속의 나무는 유용(有用)하기에 벌채(伐採)되어 자신의 원수가 되고, 기름은 밝은 빛을 내기에 태워져 자신을 태우며, 육계(肉桂)는 사료가 되고 옻은 도료(塗料)가 되기에 베어진다.
유용(有用)의 용(用)만 알고, 무용(無用)의 용(用)은 알려고 하지 않으니 서글픈 일이다고 하였다."
[출전] 莊子 人間世篇
(320) 백년하청(百年河淸)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사물(事物)이 이루어 지기 어려움의 비유. ② 확실하지 않은(믿을 수 없는) 일을 언제까지나 기다림(기대함)의 비유.
춘추 시대 중반인 주(周)나라 영왕(靈王) 7년(B.C. 565), 정(鄭)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초(楚)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친 것이 화가 되어 초나라의 영윤 (令尹) 자양(子襄)도 정나라를 공격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나라에서는 경대부 여섯 명이 대책을 숙의하는 회의를 열게 되었다. 회의는 진(晉)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는 측[主戰論 : 자공(子孔), 자교(子 ), 자전 (子展)]과 초나라와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和親論 : 자사(子駟), 자국(子國), 자이(子耳)]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 때 대부인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주(周)나라의 시(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황하의 물이 맑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사람 수명으로는 맞지 않다. 여러 가지를 놓고 점을 치면 그 물에 얽힌 듯 갈피를 못 잡는다. (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非云詢多 職競作羅)』
그러니 우선 초나라와 강화를 해서 백성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그 다음에 진나라를 따르는 것 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은 황하의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즉, "황하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晉나라의 구원병이 올 것이 어긋난다는 비유로 쓴 말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처하는 괴로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321) 분서갱유(焚書坑儒)
'분서갱유'란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땅에 묻어 죽인다는 뜻이다. BC 221년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는 법가(法家)인 이사(李斯)를 발탁하여, 종래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하는 등 철저하게 법가사상에 기반을 둔 각종 통일정책을 시행했다.</FONT></STRONG> 그러나 이 같은 법가 일색의 정치에 대해 유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은 이에 반대하고 공공연하게 자기 학파의 학설을 주장했다. 이에 시황제는 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여 진(秦)의 기록, 박사관(博士官)의 장서, 의약·복서(卜筮)·농업 서적 이외의 책은 모두 몰수하여 불태워버렸다. 또 이것을 위반하는 자, 유교경전을 읽고 의논하는 자, 정치를 비난하는 자 등은 모두 극형에 처한다고 정했다. 이것이 바로 '분서'사건이다. '갱유'는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의 신선사상에 열중한 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을 구하던 시황제가 그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서를 시행한 다음해에 방사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잡아들여, 금령(禁令)을 범하고 요언(妖言)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웅덩이를 파고 460여 명을 생매장시켜버린 사건이다. 분서가 철저하게 법가주의에 근거하여 학문의 자유를 탄압한 것과는 달리, 갱유는 방사들의 터무니없는 언동에 대한 시황제의 분노가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유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분서와 동일한 학문·사상의 압제 효과를 가져왔다. 이 분서갱유에 의해서 춘추전국시대 이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고, 많은 고서·고기록이 없어져 중국문화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322) 새옹지마(塞翁之馬)
[출전]《淮南子》〈人生訓〉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길흉화복의 덧없음의 비유.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323) 빈자일등(貧者一燈)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가난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부처님에게 바친 등불 하나가 부귀한 사람들이 바친 만개의 등불보다 공덕이 크다는 것으로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참다운 마음과 정성이 소중하다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
"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한 양이야"
하면서 기름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난타의 등불은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324) 어부지리(漁父之利)
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 조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 만큼, 소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동의어] 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兎之爭)
[출전]《戰國策》
(325) 양두구육(羊頭狗肉)
[원말] 현양두 매구육(懸羊頭賣拘肉)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 곧 ① 거짓 간판을 내검. ②좋은 물건을 내걸고 나쁜 물건을 함. ③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의 비유. ④ 겉으로는 훌륭하나 속은 전혀 다른 속임수의 비유.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때의 일이다. 영공의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孀: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오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의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출전]《晏子春秋(안자춘추)》
(326) 청출어람 청어람(靑於藍 靑於藍)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스승보다 제자가 더 훌륭하게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로 筍子(순자)가 쓴 '靑出於藍而 碧於藍(청출어람이 벽어람)이요, 氷出於水而 寒於水(빙출어수이 한어수)'라는 글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를 직역하자면,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라는 뜻이다.
(327) 표사류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재물보다도 명예가 소중함을 비유한 것이다. (虎死留皮 人死留名)
당나라가 멸망한 뒤, 오대(五代)가 교체하던 시기의 양나라에 왕언장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우직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싸울 때마다 항상 쇠창을 들었으므로 와철창이라고 불렸다.
산서(山西)에 위치한 진나라가 국호를 다시 당으로 고치고 양나라로 공격해 들어왔다.
이 때 왕언장은 출전하였다가 크게 패하여 파면되었다. 그 후 당나라 군사가 다시 침입하였으때, 또 다시 기용되었지만 포로가 되고 말았다. 당나라 임금이 왕언장의 용맹성을 아까워하여 귀순할 것을 종용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할수 없소."
결국 사형을 당했다. 왕언장은 평소 속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이러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왕언장은 비록 학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 나라의 장수로서 지켜야 할 명예만은 소중히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당나라 임금의 제의를 주저 없이 거절하고 죽음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출전] 오대사(五代史) 왕언장전(王彦章傳)
(328)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로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부분의 원문은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 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패배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29) 거자필반(去者必返) <佛經>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지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부처님께서 베사리성의 큰 숲에 계실 때,부처님께서 열반을예고하시자 아란존자가 슬퍼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란존자에게 말씀하셨다.'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제인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으레 그런것이거늘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랴.'아난은 계속하여 눈물 흘리면서 말씀드렸다.'하늘에서나 인간에서 가장 높으시고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머지 않아 열반에 드신다니, 제가 어찌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으리이까. 이 세상의 눈을 잃게 되고, 중생은 자비하신 어버이를 잃나이다.''아난아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비록 내가 한 겁 동안이나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본바탕(性相)이 그런 것이니라.'
대반열반경 권상;<1-192하>
(330) 삼일수심 천재보(三一修心 天裁寶) 백년탐물 일조진(百年貪物 一朝塵)
삼일동안 마음을 닦으면 천년의 보배가 되나
백년동안 탐하여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 <懶翁和尙>
(331)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
옛 선인이 이르기를
인생 到處 有靑山 이라
바라보니 사방에 푸른 산이요
돌아보니 곳곳에 맑은 물이라
근심걱정 지내온 하 세월이
괜한 것임을 이제 알았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고
인생사 행불행 생각하기 나름이니
기쁜 마음 즐거운 생각
따뜻한 손 마주잡고
감사하며 살리라
웃으면서 살리라
故山終勝他山好 타산이 아무리 좋다 해도 고향산만 못하다
(332)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옛 시인의 시구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것으로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 이다.
이는 문화재위원 유홍준 교수가 민족문화 유산 답사에 연륜이 쌓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떠오른 경구로서 문화유산을 다듬는 이름 없는 손길들의 소중함을 기린 말이다.
(333) 인생하처 불상봉(人生何處 不相逢)
景行錄에 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에 不相逢이리오, 讐怨을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경행록에 이르기를, 은의(恩義)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망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334) 화호화피 난화골(畵虎畵皮 難畵骨) 지인지면 불지심(知人知面 不知心)
<明心寶鑑>
범을 그리면 가죽은 그리되 뼈는 그리기가 어렵고, 사람은 알되 얼굴은 알지만 속마음은
알기가 어렵다.
(335) 성인재지미취 균풍속지부제(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濟)
인재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인재에 이르게 하고, 풍속이 가지런하지 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 이는 성균관대학(成均館大學)의 교명이 유래한 근원이다.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대설이 내렸다.
제경공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눈이 계속 내리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안자가 경공의 곁으로 들어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함박눈에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날처럼 조금도 춥지 않군."
안자는 경공의 여우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공은 안자의 질문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도 않고 웃음을 짓기만 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가 피로해하지 않으까 염려했다고 합니다(推己及人).
그런데 경공께서는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군요."
안자의 페부를 찌르는 듯한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336)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천상천하유아독존은 부처님이 태어 나시자 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하신 말씀으로서 [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가 全文입니다. 여기서 我(아)는 개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을 가진 뭇 생명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로지 생명은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있으니 마땅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설화에는 태자가 탄생한 직후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은 다음,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우렁찬 목소리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하는 유명한 선언을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부처님의 전기를 전하는 경전 가운데는 이상과 같은 구절 다음에 삼계개고오당안지(三界皆苦吾當安之)라는 귀절이 이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336) 공수래공수거 성분후객산거(空手來空手去 成墳後客散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사람이 죽어 무덤에 들어가면 손은 다 떠난다. 는 뜻이다.
(337) 행원필자이(行遠必自邇) 등고필자비(登高必自卑) <中庸>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부터 시작해야하고,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부터 오르기 시작하여야 한다.
(338)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
성선설(性善說)을 맹자(孟子)가 주장한 학설로 인간 본래의 마음은 선하다고 본 것이고, 성
악설(性惡說)은 순자(荀子)가 주장한 학설로 인간의 마음은 본래가 악하다고 보는 학설이다.
또 제나라 고자(告子)는 성무선 무불선설(性無善 無不善設)을 주장하였고, 전한의 양웅(揚
雄)은 성선악혼효설(性善惡混淆設)을 주장하였으며, 당나라 시인 한유는 성품설(性品設)을
주장 하였다. 순자(荀子)는 덕오이양선(德惡而揚善)을 말하였는데 이는 덕이란 더러운 것을
버리고 착한 것 선한 것을 찾는 뜻이다.
한편 도울 김용옥 교수는 순자의 성악설을 성오설(性惡說)이 옳다고 주장하며 선이 퇴락하
면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지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악할 악자를 더러울
오자로 해석 한 것이다.
(339) 민인지흉(悶人之凶) 락인지선(樂人之善)
마음이 슬픈 사람은 흉하고,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선하다. 는 뜻이다.
(340)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뜻이다. 인간 삶에 행불행의 시작과 끝은 모든 가정
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정의 주인은 부모요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고 인도하면
자녀는 물론, 인류의 미래는 밝고 행복해진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표본이요, 행불행의
원천이다.
(341) 신언서판(身言書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인물평가(人物評價)의 척도와 표준으로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4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지적한 이론이다.
身言書判(신언서판)이란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身(=몸)·말씨[言辯]·書(=글씨[筆跡])·판단력[文理]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며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의미하며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서(書)는 글씨(필적)을 말하는데,그 시절,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했고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했다.
판(判)이란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하였다.
1. 지도자의 첫째 요소는 身(신)이다.身(신)은 신체적 조건을 말한다. 身(신)은 넓은 다의적(多義的)의미를 갖는다. 지도자는 몸이 튼튼해야 하고, 풍채가 훌륭해야 하고, 인상이 좋아야 하고, 음성이 낭랑해야 하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하고, 태도가 늠름해야 한다. 지도자는 남에게 위엄과 동시에 호감을 주어야 한다.일찍이 공자(孔子)는 온이여(溫而厲)라고 했다. 인품(人品)이 온화하면서 준엄해야 한다고 했다. 봄바람처럼 따뜻하면서, 가을의 서릿발처럼 늠름해야 한다. 지도자는 무리를 끄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범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녀야 한다.「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다.(The first impression the last impression)」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남에게 첫인상을 나쁘게 주면 그것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첫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 그것이 그대로 계속된다. 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될 수록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2. 둘째는 言(언)이다.
설득력, 표현력, 언변력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얼굴과 풍채와 인상을 본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인물을 평가한다. 말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사상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힘센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을 낳아라」, 「말 한마디에 천냥의 빚을 갚는다」, 「세치의 z혓바닥이 다섯 자의 몸 둥이를 죽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갈파한 말이다. 「言은 人이다」라고 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人格)과 교양(敎養)을 표시한다. 말의 힘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지성(至誠)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a다. 진정의 토로(吐露)는 우리를 감화시킨다. 정열을 가지고 외치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준다. 진실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다. 한 인간이 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감동력과 영향력 중에서 말의 힘처럼 큰 것이 없다.지도자는 강한 설득력을 가져야 하고 뛰어난 언변력을 지녀야 한다. 능변(能辯), 달변(達辯), 쾌변(快辯), 웅변(雄辯), 熱辯)은 모두다 우리에게 깊은 감화와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언변(言辯)은 훈련(訓練)의 산물(産物)이다」말을 하면 할수록 는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부터 말의 표현을 기르고 스피치 트레이닝(speech training)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의견과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언변력을 키워야 한다.
(342) 효(孝)
공자께서도 효(孝)는 만행의 근본(萬行의 根本) 이라고 가르치셨다.
예로부터 효(孝)는 백행지원(百行之源), 백행지도(百行之道)라 해서 인간 행동규범 가운데
으뜸으로 삼아왔다.
(343) 오월동주(吳越同舟) <孫子兵法>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와 처지에 함께 놓임.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오(吳)의 합려(闔閭)와 월(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이에 대해 손무(孫武)의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 (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 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동] 同舟濟江(동주제강) :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즉 원수라도 한가지 일을 위해서는 돕게 된다. 同舟相救(동주상구) :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면 자연히 돕게 된다. 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출전] '孫子兵法' 九地篇
(344)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韓詩外傳 9권>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히 섰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
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 풍목지비(風木之悲)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345) 식자우환(識字憂患) <明心寶鑑>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거리가 됨. ①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 ② 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른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전에 서서가 군사로 있으면서 조조를 많이 괴롭혔다.
조조는 모사 정욱의 말에 따라 서서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 손을 빌어 그를 불러들이려는 계획을 꾸몄다.
그러나 서서의 어머니인 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명필인 데다가 의리가 투철한 여장부였기에 아들에게 자기 걱정은 말고 현군을 잘 섬기라고 격려 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정욱의 계책대로 위부인의 글씨를 모방해서 서서를 돌아오게 하고 말았다.
나중에 위부인은 자식이 돌아온 것은 모방한 거짓 편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憂患)"
하며 위부인은 자식의 앞길을 망치게 되었음을 한탄하였다.
남존여비 시대에는 여자식자우환이라고 하여 여자에게는 글을 안 가르치기도 하고 여자가 똑똑하게 활동하려 하면 식자우환이란 말로 설치는 것을 비웃기도 했다
(346)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
유연자적(悠然自適)이라고도 함.
(347) 도골덕기(道骨德器) <安秉煜 人生論>
도인다운 뼈대와,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라.
진리에는 八正道가 있는데,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바른 태도). 正命(바른 삶). 正精進(바르게 행동함). 正念(바른 정신). 精定을 말함이다.
(348) 군계일학(群鷄一鶴) < 晉書>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平凡)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349) 역장불여 지장, 지장불여 덕장(力將不如 智將 智將不如 德將)
힘이 있는 장수는 지략이 있는 장수만 못하고, 지략이 있는 장수는 덕이 있는 장수만 못하다는 뜻이다. 논어의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논어의 공자님 말씀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德不孤 必有隣)
(350) 추기급인(推己及人)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대설이 내렸다.
제경공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눈이 계속 내리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안자가 경공의 곁으로 들어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함박눈에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날처럼 조금도 춥지 않군."
안자는 경공의 여우 털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공은 안자의 질문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도 않고 웃음을 짓기만 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가 피로해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합니다(推己及人).
그런데 경공께서는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군요."
안자의 페부를 찌르는 듯 한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51) 실사구시(實事求是) 공평무사(公平無私)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을 말하며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을 뜻한다.
실사구시는 한서(漢書)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실려 있는, '학문을 닦아 예를 좋아하고, 일을 참답게 하여 옳음을 구함.(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초기, 즉 청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계몽사상가로서 활약한 양계초(梁啓超)는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을 써서 청대(淸代) 학술의 개론을 시도한 사람이다.
양계초는 다시 능정감(凌廷堪)이 대진(戴震)을 위하여 지은《事略狀》에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이용하여 대진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드러내 밝히고 있다.
"옛날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은 실사(實事)에 대하여 옳음을 구하였다. 도대체 실사(實事)의 앞에 있으면서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교례당집 35권)
더구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학문의 표적으로서 존중한 것은 대진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후배에 해당하는 청나라 왕조의 학자들 중에는 주대소 (朱大韶)나 왕정진 (王廷珍)과 같이, 스스로를 '實事求是?'라고 아호를 붙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청조(淸朝)의 고증학파가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반동으로 내세운 표어이다.
고증학자(考證學者)들은 정확한 고증을 존중하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입장 을 취했다. [출전] '漢書' 河間獻王德傳
(352) '흥청망청'(興靑)
연산군은 조선 팔도에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를 파견, 아름다운 처녀와 건강한 말을 뽑고 각 고을에서 미녀와 기생들을 관리하게 했다.명칭도 기생에서 운평(運平)으로 바꿨다.또 원각사를 폐지하여 기생양성소로 개편하고,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도 학생들을 내쫓고 유흥장으로 만들어 버렸다.전국을 이처럼 접대부 양성소 및 대기소로 만들어 놓고 눈에 드는 운평은 대궐로 불러 들였다.궁중에 들어가면 명칭이 흥청(興靑)으로 바뀌며 지체가 높아졌다.그러나 흥청이라고 다 같은 흥청이 아니었다.임금의 마음에 들어 잠자리를 같이 하면 천과(天科)흥청이라 하여 급수를 높였다.그렇지 못한 흥청은 반대로 지과(地科)흥청에 머물렀다.벼슬아치나 선비들로 하여금 흥청들을 태운 가마를 메게 했으니 천지가 뒤바뀐다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렀다.그런 식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흥청들과 놀아났다.자신이 말이 되어 흥청들을 태우고 기어다니지 않나, 반대로 자기가 그녀들 등에 올라 타 말놀이를 즐겼다.그도 모자라 민간 유부녀도 이쁘다는 말만 들으면 불러다 함부로 겁탈하고, 심지어 큰 아버지인 월산대군의 부인까지 성추행했다.그 결과 중종반정이 일어나 왕좌에서 쫓겨나고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 해서 백성들간에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났다.
(353) 황극경세(皇極經世)
사람이 참되게 마음을 쓰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다. 다만 많고 적음의 다름에 있고 지식이 깊고 얕음이 있는 뿐이다. 사람은 덕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바 소인 가운데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재주는 믿을 수 없고, 덕은 얻기가 어렵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대체적으로 사물의 이치를 밝힌 것이다. 선천의 학문은 성(誠)을 위주로 한다. 지극한 정성이면 신명(神明)에 통하고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도를 깨칠 수 없다. 도(道)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깨달아 알 수 가 없다. 그러므로 도로(道路)의 도(道)를 빌려서 이름으로 삼았는데, 사람이 다닐 때 바드시 길로 다니기 때문이다.
임금이 자는 침전을 강녕전(康寧殿)을 황극(皇極)이라 불렀는데 이는 중용(中庸)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식욕 색욕 권력욕의 원초적 욕망을 잠재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침전에서 잠을 잔 연산군의 광난적 행실은 본인의 자멸은 물론 궁중역사의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354)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의 '엄이도종(掩耳盜鐘)'이다.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승상 여불위가 문객들을 동원해 만든 우화집 '여씨춘추'에서 유래했다.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한 백성이 종을 짊어지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망치로 깨서 가져가려고 종을 쳤더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다른 사람이 올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았다는 일화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는 이 일화를 인용해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짓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355 )여랑목양(如狼牧羊)
여랑목양은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하고 있다. '가디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1. 불교를 숭상하고, 사원의 폐단을 엄단하라.
2. 사원을 함부로 짓지 말라.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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