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가고 또 다른 하루가 밝아온다. 오늘도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쁨에 젖는다. 아침을 깨우는 지인들의 까톡 소리가 내 삶의 맥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식이 뜸하면 혹여 많이 아프지는 않을까, 두려워 전화질도 머뭇거린다. 한동안 적적했던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부인이 남편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며 울먹인다. 반세기를 함께 이어온 인연 줄이 또 하나 뚝 끊어지는 소리. 그렇게 무심한 세월은 소리 없이 아프게 흘러간다.
코로나에 주눅 든 칩거 생활이 길어진다. 보고픈 사람 보지 못하고 계절의 속삼임에 침묵해야 하는 움츠린 시간들이 마음을 옥죄고 있다. 안달이 나지만 잠재된 상념들을 일깨워 창작에 몰두할 수 있고 내면을 다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섬긴다. 넘치는 시간 속에 살아온 길 되새김하고 개전의 정을 깨우치면서 팬데믹의 상황을 일상(日常)의 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창가에 모셔놓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드는데 인문학 선배님이 전화를 주셨다. “몇 달 동안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만 있으니 할멈 잔소리 땜에 미칠 지경이라고.” “선배님, 좋게 받아들이세요. 잔소리가 아니고 연민의 정입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매한가지였다. 티브이를 볼 때면 채널이 다르다고 들이댄다. 사과를 두껍게 깎는다고 잔소리하는가 하면 달걀 후라이 노란자가 터졌다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악의 없는 질책이기에 웃어넘기기가 수월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과 잔소리의 시간이 정비례 한다’는 공식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방콕 생활에 잔소리마저 없다면 집안이 얼마나 허허로울까. 대화의 연결고리로 좋게 받아들인다. 은퇴 후의 아내의 잔소리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치부한다. 그래야 속이 편하다. 대다수의 지인들이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을 의아해 한다. 무슨 재미로 가냐고, 안 싸우느냐고, 심지어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을 두고 ‘저녁 초대석에 가면서 도시락 싸가는 놈과 같다’고 하는 유명 작가님도 계신다. 제기랄, 딱히 하릴없는 은퇴자의 삶은 어떡하라고…….
가만히 있어도 송알송알 땀방울이 솟는 삼복더위, 시원한 팥빙수 생각이 절로 난다. 팥빙수 하면 용호동 할매 팥빙수, 곳곳에 분점까지 생겼으니 이미 유명세를 탔나 보다. 가격이 십 년 전보다 두 배로 올랐어도 여름이면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에 사람이 북적대는 곳은 두려워 대체품목을 찾아볼까 하고 아이스마켓을 찾았다. 첫눈에 팥빙수라는 상표가 눈에 쏙 들어온다. 제일 먼저 메이커를 살펴본다. 경험하지 못한 제품을 고를 때는 제일 먼저 제조회사를 보는 습성이 몸에 베어있다. 일류기업의 제품은 품질을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음은 가격이다. 할매 팥빙수의 절반 가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맛, 먹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시식용으로 팥빙수 두 통을 구매했다. 그날따라 한낮 뙤약볕이 불덩이 같았다. 아내가 무척 좋아할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뿐해 진다. 더구나 외출을 하고 집으로 가면 얼굴보다 내 손을 먼저 쳐다보는 그녀가 아닌가. 현관문을 열고 인기척을 하면 “뭐 사 왔는기요?” 하고 묻는다. 어쩌다 빈손이면 "고마 왔는기요?” 하며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반려동물처럼 길들여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시식용 팥빙수를 툭 던져준다. “어머, 팥빙수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팥빙수의 진 맛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황혼에 접어들면서 뒤늦게나마 그녀의 점수를 따고 싶은 자화상이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고픈 성심이다.
부부애의 진정한 시너지는 존경과 배려에서 나온다. 조그만 배려에도 크게 만족해하는 기쁨, 밥상머리에 앉아 서로가 잔소리가 많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돌아서면 껄껄껄 웃어대는 능청맞음, 사소한 말다툼으로 감정이 고조될 때면 현장탈출로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로움,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십 년 세월을 함께 보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이이스마켓에서 무엇을 살까 어슬렁거렸다. 망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집으로 간다. “뭐 사 왔는기요? 어, 아이스크림이네.” 그렇게 또 하루를 넘긴다. 생사의 고빗길에서도 해맑은 미소로 다가와 준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한 점 후회는 없다. 삶의 끝자락. 태풍이 몰아치는 까닭은 나를 결단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속 깊은 사랑으로 유유(唯唯)하게 흘러가라는 뜻이리라. 오늘도 나는 시장통을 싸돌며 찬거리를 살핀다.
첫댓글 곽 작가님 참 현명하게 살아내십니다. 여자들은 나이들면 왜 그렇게들 사나워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포용과 이해로 넘어가 줌도 사랑이겠지요? 재미있고 현명하게 살아내시는 부부애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