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은 얍복 나루터에서 기도하는 중에 정체 모를 괴한과 싸우다가 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그때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에게 행한 잔인한 복수극으로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게 된 야곱은 거기를 떠나 벧엘로 올라갔다. 주변에 흩어진 다른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그들이 야곱의 가족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개입하심 때문이었다. 야곱은 벧엘에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했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의 하나님이,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셨다.
(창 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엘)과 지배하다 혹은 싸우다(사라) 단어의 합성어다. 그래서 하나님과 싸우다 혹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번역될 수 있다. 야곱은 밤새도록 누군가와 싸웠다. 갑자기 나타난 괴한과 밤이 새도록 싸우면서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했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고 야곱은 순간적으로 절게 되었다. 그제야 야곱은 자신이 붙들고 싸우는 대상이 단순한 괴한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과연 야곱은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는가? 왜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고 했는가? 하나의 동작으로 야곱을 절게 하신 분이 힘이 부족해서 밤을 새우면서 야곱과 씨름을 했겠는가? 아니다. 그 긴 밤 동안 야곱은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싸움을 하면서도 온갖 지나간 세월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들을 회상했다. 우리도 그렇다. 위험이 엄습하고 위기가 닥치면 이 모든 것들이 자기의 죄와 허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에서의 군대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도, 갑자기 나타난 괴한의 침입도, 그래서 자신의 온 가족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일이 모두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밤새도록 이 괴한과 싸우는 동안 밀려왔다. 그가 싸운 것은, 괴한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과거와의 싸움이었고 자기의 죄와의 싸움이었다. 그를 짓누르는 괴한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였고 흉악하고 음흉한 자기의 아바타였다. 그는 그 고민의 밤을 온통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만을 구했다. 죄를 지어온 세월의 무게에 눌리고, 아버지와 형님을 속인 배신의 무게에 눌렸지만, 그는 자신에게 벧엘에서 나타나 언약하신 하나님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꾀를 의지하고 살았던 과거의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치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그분의 은혜에 내어 맡긴 야곱의 삶은 이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사람이요, 나라요,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자기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싸운다면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이스라엘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비록 우리의 허물이 중다하고 지난 과거를 무시할 수 없지만 오늘 이 새벽 다시 한번 주님의 팔에 매달립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들은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를 지배하시고 우리를 통치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