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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방(자작글,펌글) 스크랩 아버님산소 윤달 이장
포모스 추천 0 조회 86 12.04.30 21: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임진년 금년(2012년)은 윤3월이 있는 해라.. 손없는 윤달이라 해서 이장이 붐이다.

매장한 묘지는 대체로 개장을 하고는 습골을 하여 화장을 하게 되는데

윤달동안에는 화장터(승화원)의 예약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다행히 이장을 위탁받은 업체에서 화장시간을 예약했지만 늦은 오후 5시가 되어

이장할 장소가 공원묘원이라 근무시간 관계로 다음 날로 하관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토요일, 양력 4월28일 (윤 3.8)

 

어차피 이틀씩이나 작업(개장과 이장)을 해야 할 사정이므로

장남인 내가 넷째인 막내를 데리고 파주시의 파평중학교에서 12시에

이장 작업업체의 세 사람과 만나 파평산 아버님의 산소로 올랐다.

 

1980년 5월13일(음 3.29) 병환으로 유명을 달리 하신지 어언 32년의 세월

당시의 내나이 스물일곱 보다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되었구나..

 

전주이씨 담양군파의 종산(宗山)인 파평산은

서른두해 동안이나 내 아버님을 품어주신 어머님의 품속같은 산이다.

조상의 음덕과 고인의 보살핌 덕에

5남매가 모두 제 짝들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무탈하게 살고 있으니..

달리 어느 곳을 명당이라 하겠는가?

 

파평산 산신령께 그간의 고마움에 산신제를 올리고,

이제는 마지막이 되는 산소앞에서 파묘제를 올리고는 내가 첫삽을 떴다.

그렇게 매년마다 몇 번씩이나 산소를 찾았건만 꿩의 울음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파묘하는 동안 사방에서 장끼의 울음소리를 오랫동안 듣기는 참으로 기이했다.

산짐승도 아버님의 이장을 아쉬워하여 잘 가시라는 이별의 인사인 것 같다.

 

이장하는 곳은 파주 통일동산과 헤이리마을 옆에 있는 '동화경모공원묘원'

이북실향민을 위해 통일부의 지원하에 민간단체인 이북5도청이 조성한 공원묘원이다.

함경남도 이원 땅에서 1.4후퇴때 가족과 함께 내려와 영해에 자리를 잡은

실향민이셨던 어머님이 2005년부터 잠들고 계신 이 동화경모공원묘원에
이제야 7년만에 두 분이 합방을 하시게 되시니

아버님도 이 파평산을 떠나는 아쉬움보다는 어머님 곁으로 가시는 기쁨이 더 컸으리라..

 

이렇게 아버님을 어머님 곁으로 모시는 나름대로의 이유라면

1980년 당시에 아버님을 종산에 모시게 된 사연은 자식들이 어린 나이에다 집안의 형편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백부님의 도움으로 종친회의 협조를 얻어 종산인 파평산에

묘자리를 마련했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이후 어머님께서 살아 생전에 실향민을 위한 ‘동화경모공원묘원’이 개원이 되었기에 두 분을

위한 2기의 묘자리를 분양을 받아 두었다가 7년전인 2005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종산

자리한 아버님 곁으로 모시는 대신 공원묘원으로 화장 후 납골묘로 안장을 하면서 두 분이

떨어져 지내시게 된 연유이시다.

 

두 묘소가 떨어져 있던 관계로 성묘가 번거로워 당연히 어느 한쪽으로 이장을 해야 하는 이유

에다가 아버님의 산소를 오르는 산길이 평탄치 않아 가족들이 자주 찾아가기가 쉽지가 않았고,

형제 가족들이 모두가 접근성도 편하고 주변 환경도 좋은 공원묘원을 원하는 바라

아버님을 어머님이 계신 쪽으로 이장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홀로계신 25년, 그리고 돌아가시고도 7년,
이제 32년만에 두 분이 함께 하시게 되었다.

자식된 도리는 못할망정  두 분을 7년간이나 헤어지게 하였으니 ..
그간의 사정이 어찌되었건 이런 불효가 어디 있었겠는가?

 

3시간을 넘게 개장과 습골을 마치고는

벽제화장터로 더 알려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한 줌의 재로 승화하셔서

미리 준비한 유골함에 담겨 내 품안으로 아버님을 안아 보았다.

시간이 늦어 하관식은 내일로 해야 하는 관계로 아버님을 집으로 모시고 오게 되니

이 또한 회한의 그리움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이제 어머님 곁으로 가시기 전 당신의 큰 아들인 저와 하루 밤을 주무시지요.

화장의 온기가 남아 있는 유골함을 들고 거실부터 이 방 저방을 다니면서 설명을 해 드렸네..

이제 아들과 함깨 마지막 밤을 잘 주무시고 내일 아침 다시 뵙겠습니다.

 

일요일, 4월29일 (윤 3.9)

 

오전 10시, 동화경모공원묘원에 5남매가 모두 모였다.,

이미 와 계셨던 어머님의 비어 있던 옆 자리,

공원에서 미리 파 놓은 묘실에 유골함을 안장하는 하관식을 하고는

다시 흙으로 덮는 평토작업을 하고는 평토제를 올렸다.

작업하는 인부들은 윤달의 이장이 많이 겹쳐 석물조성이나 봉토는

바로 할 수가 없어 나중에 한다니 따를 수 밖에 없구나..

정말 이제 두 분을 함께 해 드렸으니.. 회한속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5월 첫주에 삼우제를 지내고 나면

이제 나도 큰 짐을 내려 놓게 되네..

 

아버님, 어머님

비록 천수는 다하지 못하신 생애였지만

살아 생전에 두 분께서 그리 좋으셨던 금슬만큼이나

이제는 두 손 꼭 잡으시고 다음 후천의 세상을 약속하십시오!

 

아버님,

매년 제 손으로 깍아드렸던 이발을 ..

올해부터는 제가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무척 섭섭해지겠습니다.

 

2012.4.30   불효한 큰아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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