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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설교 – 요한 계시록 3장 1-6절 – 사데 교회에 주는 멧세지는 무엇인가?
찬송 179장 –성령이 오셨네
마지막 설교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 사도행전 1장 4-8절
초등학교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 마지막 당부의 말씀 – 너희는 세상에 샘물이되어라 -
분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는 것 – 또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 마음에 담는 것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데 교회는 어떻게 시작된 교회인지 – 그 배경과 역사가 어떠한 것인지 전혀 성경에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세 교회를 대표하면서 상징하는 7교회중에 하나로 주님이 보시고
이 교회를 향해서 매우 진지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7교회 중에서 가장 초라한 교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 – 성지 순례 때 가보면 군데 군데 돌 덩어리만 남아 있는 교회 흔적을 볼 수 있다.
성적표로 말하면 가장 성적이 좋지 못한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사데 교회에 관한 것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읽기 싫은 본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읽으면 기분이 안 좋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이런 형편없어 보이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이 교회를 향해서 간절하게 경고하시고 권면하시고 또 격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깨닫습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화 –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죽이려고 때리는 부모는 없다. – 용서와 살리려고 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이런 생각이 저의마음에 들었습니다 – 이 사실이 내 마음에 닿았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저 주님께서 얼굴을 돌려 버리고 다시는 안 보겠다 – 너는 기대도 안 할 것같은 교회지만
-주님은 꺼져가는 등불같은 초라한 교회지만 주님께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신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마음으로 본문을 다시 읽어 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우선 먼저 본문을 보면 –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다.
-만일 주님이 나에게 찾아 오셔서 / 여러분에게 찾아 오셔서 – 사대 교회에 주신 이 말씀을 주신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또 여러분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 오셔서 이 말씀을 가지고 질문하신다면 – 아니 경고하신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1절을 읽어 봅시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한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중간에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이 말이 뭔 뜻일까요?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 만약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나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20-30년 목회한 교회를 놓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뭐라고 대답할까?
-무엇이라고 변명할까?
여러분도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본문에서 주님의 질문의 - Point -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 - 본문에서는 주님이 지금 믿음을 탓하지 않습니다는 것이다. – 성도의 행위를 가지고 질책하는 것이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믿음 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성도들에게 / 교회에게 믿음을 논하지 않으신다.
성도의 행위를 논하시고 계신다 – 오해 하지 말기 바랍니다. – 그 행위는 사람 앞에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 은밀히 보시는 주님의 눈에 들어온 우리 자신의 숨은 내면의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그 행위 – 그것을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읽어 보면 –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 -
다시 말해서 말만 살았지 실상은 죽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것을 현대 말로 말해서 – 세속화 – 라고 한다
– 교회 말로 – 크리스찬 세속화 –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 사람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 결점없고 하자가 없는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펼쳐 놓고 볼 때에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네 겉으로 사람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게 보이고 = 거대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게 안보인다는 것이 기가 막힌 것이다.
이런 모든 신앙을 – 크리스찬의 세속화 – 라고 말한다.
현대 크리스찬의 말과 행동 / 신앙과 생활 /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할렐루아 – 세상에서는 세상 가치관으로 육신의 욕심만 추구하는 성도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회색 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 이것을 - 크리스찬의 세속화 - 라고 말한다 –
여러분 우리는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의 살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이런 심각한 영적 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주님 눈에 내 자신의 삶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 내가 다니는 교회가 주님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 그렇게 생각하면 닭살 돋고 소름이 끼친다.
책 – 휴거 – 휴거되지 못한 사람들 - 대형 교회 목사와 성도들의 무리들의 아우성치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괜찮아 - / 우리 교회는 괸찬아 –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
둘째 - 이 말씀 묵상하면서 또 하나 놀라는 것이 있다. = 주님께서 교회를 진단할 때 양을 가지고 말씀 안한다. - 7교회를 보면 칭찬과 책망을 하지만 양을 가지고 칭찬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책망당하는 교회 보면 – 교회 성장이나 양의 숫자가 많고 적음 때문에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요?
-주님의 판단 기준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칭찬과 책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주님이 관심있게 보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 질 – 이다.
우리의 기준은 어떤가? 교회 성장하고 성도 숫자가 많으면 부흥이고 선교사 교회 몇게 개척했나?
교회에 모이는 사람 몇명이냐? 이것에 관심있게 질문한다.
-선교사 선교 보고할 때 – 한국 목사님 후원해 줄텐데 – 영상 자료 가져왔어요? 이것 있으면 어디 가서 얼굴 들고 다니지 그렇지 못하면 얼굴도 들지 못한다 – 당신 선교지에서 뭐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후원하느냐? 이렇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 세상의 기준이다.
저는 지금은 말할 수 있다 – 홈니스 선교 - 이것 가지고 보고하고 우츨대고 - 자랑하고 = 만족해서 행복해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주님의 눈에는 이것이 별로 인것 같다.
양도 중요하다 – 주님도 말씀하셨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 – 한 마리 양을 찾으러 99마리 양을 들에 놓고라고 찾으러 가시는 목자의 사랑으로 양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 이처럼 왜 양이 종요하지 않겠습니까만
-그런데도 주님이 교회를 체크하는 자리에서 주님이 양을 앞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주님의 교회를 체크할 때 종요하게 보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 질 – 이었다.
-질을 따진 것이다. - 7교외의 모습을 봅시다 –
1-에베소 교회 -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를 책망하셨다. - 2장 4절
2-서머니 교회 – 부요한 교회로 사탄의 회당이라 책망하셨다. – 2장 9절
3-버가모 교회 – 이단을 용납한 교회를 책망하였다 – 2장 14절
4-두아디아 교회 – 성적으로 타락한 교회를 책망하셨다. -2장 20절
5-사데 교회 – 행실이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고 책망하셨다 – 3장 2절
6-빌라델비아 교회 – 칭찬 받은 교회 – 3장 12절
7-라오디게아 교회 – 미지근한 교회를 책망했다 – 3장 15-16절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 / 이단을 용납한 교회 / 성적으로 타락한 교회 / 행실이 온전하지 못한 교히 / 미지근한 교회 – 전부 질을 따지는 것이다.
7교회에 주님의 책망과 질책의 기준이 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데 그것은 – 행위 – 라는 말이다.
여기서 행위는 곧 질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
-결국 주님은 우리 성도의 질을 가지고 따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에 주님이 질을 가지고 냉정하게 논하신다면 내가 주님 앞에 얼굴을 어떻게 들까?
솔직히 교회 성장이 목표로 – 목회 하지 한 영혼 한 영혼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겠다고 하는 질적인 문제로 기도하고 씨름하고 노력하는 교회 있어요?
주님의 시각과 나의 시각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 나의 관심은 성도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이고 주님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차이가 있다.
#사데 교회가 왜 이렇게 세속화 되어 버렸을까요?
주님의 책망 받는 교회 – 초라한 자리로 떨어지는 만큼 – 교회가 세속화 되었을까요?
1-첫째는 사데 교회는 과거에 화려한 전성기가 있었던 것같다. – 화려한 과거가 있었다. 과저에 은혜 충만히 받아 본 경험있다. – 성경 공부 열심히 한 경험있다. 성령의 은사도 받았고 – 찬양의 은사도 충만했고 눈물도 많이 흘리면서 기도했다. 교회 봉사는 솔선 수범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기적도 체험했다.
– 대 해 봤다.
– 다 배웠다.
– 다 체험해 봤다.
신앙 간증하라면 몇시간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끝이 없는 신앙 경력 많은 전성기가 있다.
-이런 사람 많이 만나 봤다 – 같이 교회 개척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목사님은 몇시간 기도하세요?
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 나는 사실 새벽기도도 목하고 있어요 ~ 선교지에서 ???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과거 신앙의 자랑 거리 – 과거의 신앙이 그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입만 살아 있다.
-등산으로 비유하면 - 너무 빨리 신앙의 정상에 올라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신앙 정상 - 교회가 신학생도 배출하고 - 아프리카 어린이 선교 헌금도 보내고 있고
성도들의 문화 선교적 비전도 가졌고 - 인터넷 설교도 동영상을 띄우기도 하고 있고
교회 행사 - 달란트 축제로 이웃 초청 잔치 그리고 동네 청소
교회 예배 때는 스트린으로 입체적 설교 자료 제공 등등 - 내가 갔을 때는 더 이상 새로운 프로그램 없다. 신성한 믿음 가질 수 없는 분위기 / 신선한 성경 지식 느끼지 못한 성경 지식 풍부함
설교는 너무 많이 들었다. 다 안다 - 다 해 봤다.
이렇게 신앙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부터 할 일은 뭘까요?
신앙 정산에서 내려 오는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 그 현상이 뭘까요?
한마디로 - 사탄의 역사 였다. - 교회 내부의 분열과 목사와 성도 / 성도와 성도의 불신
더 이상 담임 목사가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상태까지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담임 목사는 미국행 - 교회가 택한 것은 설교 만 하는 목사를 청빙하고 교회 행정과 운영은 성도들이 하겠다는 기형적인 시스템이 생겨난 교회가 되어 버렸다.
-1절 다시 읽어 보면 – 살았다하는 모습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자기 자랑거리 많은 성고 / 자랑 거리 많은 과거 화려했던 교회 – 오늘날 보면 영적으로 죽어 있다.
화려한 과거 가지고 있고 그 과거 가지고 먹고 산다.
하나님의 은혜 주실 대 – 눈에 보이는 것 더 중시했다. – 외적인 것에 더 관심가졌다.
이것은 목회가의 책임이다.
목회의 본질과 비본질 – 교회 성장 부흥 –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모일까하는 프로그램 만들고 그러다 보면 목회의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더 관심 가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비본질적인 것에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이 크게 운혜 주셨는데 목회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 사울 왕의 모습 – 처음 사랑을 버렸다.
우리가 여기에 조심해야 한다. 참으로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 화려한 교회라 해도 본질은 영적인 눈으로 영혼 사랑이다.
교회가 세상 따라 사는 교인으로 만드는 목회자의 입 – 설교 – 진정한 멧세지 란 뭘까요?
사람들이 좋아흔 멧세지만 전한다. 왜? – 교회 안 나오니까 일단 교회라도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슬픈 약점 대문이다.
–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
일본에서 한국 교회의 커다란 약점은 - 한국 간다 – 하면 만사 형통이다. O K 다. 설득할 수 없다.
설교 목사 – 제가 이런 면에서 자유로웠다. – 그래도 혹시 교인 수가 줄면 어떻하나 걱정했다.
담임 목사의 설교 – 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에 대해서 신경 쓴다 - 성도의 성향에 따라 구속받는다. – 혹시 이 말씀 듣고 다음 주에 교회 안나오면 어쩌나 - 걱정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교회에 나오게 하는 설교를 준배한다.
이것이 본질에서 비본질로 가는 단계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린다.
말씀 본문 선택하는 것도 부담스런 지옥 설교 / 당신은 죄인 입니다라는 설교을 되도록 하지 못한다
예 –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 – 진노하시는 하나님 손안에 든 죄인 - 이라는 지옥 설교 부담스러워서 못듣겠다고 본 교회에서 투표해서 쫓아 냈다.
단지 성도들의 관심있는 설교 - 듣기 좋고 성공하고 행복하게 하고 축복과 은혜스런 말씀을 선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분 좋게 하는 설교 – 예화 / 유모어가 있는 설교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설교 – 강단에서 쇼 하는 목사도 있다.
-이것을 – 값싼 복음 - 이라고 한다.
-값싼 복음이란 뭘까요?
여시서 성도의 특권과 책임에 대한 부분으로 나뉘는데 -
-당신은 죄인입니다 – 이런 싫어하는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 복음의 은혜스러운 부분과 계속 한다.
즉 성도의 특권만 전한다.
반대로 성도의 책임이 있는데 –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는 자로서의 책임을 말한다.
즉 순종하는 문제 / 헌신하고 봉사하고 사명 감당하는 것까지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구원이라는 특권에 - 우리의 위험한 함정이 있다.
여기서 16세기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말을 알아 봅시다.
루터의 종교 개혁의 구호는 – 이신 칭의 – 신앙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카돌릭의 면죄부 판패 등의 95개 조항으로 정리하여 개혁의 구호로 삼은 것이었다.
즉 행위보다 믿음으로 구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 루터의 값없이 운혜로 주시는 구원은 뭔가? = 은혜를 받은 자는 자기도 모르게 삶이 바뀌고 – 인격이 바뀌어서 주님 말씀대로 손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는 구원 받은 사람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하는 것은 율법적으로 지나친 강조다 – 이렇게 생각하고 무조건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만 강조하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고 힘을 쏟았다.
그랬더니 3-40년이 지난 후 – 루터가 나이 들고 노년기에 슬펐다고 한다.
95개조항을 내 걸었던 비텐부르크 대학에서 – 이신 칭의 – 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보니까 – 사람들의 삶이 방종해 버린 것이다. – 루터는 이것을 아주 심각하고 쇼크를 받았다.
그래서 그 도시를 떠나려했으나 제자들의 말류로 못 떠나고 / 설교를 중단했다. 한동안 설교 안했다.
왜냐하면 설교 해도 소용없었다.
복음이 너무 소중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 그렇게 소중한 복음도 값싼 복음으로 전락시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 칼빈의 위대함은 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자기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입증해야 된다 – 라고 말했다.
자기 신앙 입증 – 거룩한 삶으로 입증해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이라고 해서 구원 받은 후에 아무 렇게 나 살면 안된다는 것이다.
믿음 있으니 나중에 천국 간다 – 이런 식으로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뭔가 확실히 캐닫는 다면 =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가르쳐야 된다라고 칼빈은 말한다.
제네바는 칼빈이 죽은 후 60년이 지나도 세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학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앙에 자기 삶이 따라 가야 한다.
그러니까 제네바 교회에 주님께서 본문 1절의 말씀을 할 수 없다.
루터와 칼빈의 믿음으로의 삶 - 행위 - 에 대하여 강조한다
첫째 - 참고 ; 행16장 - 빌립보 교회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바울과 실라의 전도중 감옥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찬미하다 감옥이 무너지면서 만난 간주장
내가 무엇을 하여 구원을 받으리이까?
행16장 31절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런 간증을 가지면서 빌립보 교회는 탄생하였다.
두번째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의 의미로서의 하나 믿음의 삶은 무엇일까?
참고 ;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던 중에 참 예배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24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
25절 -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로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8절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절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절 -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이렇게 믿음은 행위하게 한다 - 즉 이신칭의 란- 거룩한 삶으로 믿음을 구현하는 것이다.
# 크리스찬의 세속화 = 세상을 닮아 가는 교회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화려한 신앙의 과거가 있었고 – 자기 자랑과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하나 도전이 약했던 것같다 – 교회가 비전에 대한 도전이 없을 때 사단이 활동한다.
물징 중심적 사고 방식과 세상 중심의 가치관 분쟁 / 이기심 / 우상 숭배 / 성적 문란 등
= 이런 여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결국 영적 침체와 영적 병에 걸려 버린다.
교회가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전에 대한 도전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복음 전하는 교회 = 사명 감당하는 교회 – 교회 존재 이유를 늘 찾고 기도하는 교회 되길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심을 전파하는 교회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과 거룩한 갈등의 조화를 이루는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교회는 핍박이 온다 – 교회는 공통을 당할 것이고 – 이런 교회는 절대 죽을 수가 없다.
도전하는 교회는 죽지 않는다. – 전도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교회이다.
비전에 도전하지 않고 / 전도하지 않고 세상과 공존하려니까 타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에게 정복 당한다. 한번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 쉽게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이렇게 사대 교회는 성령께서 경고와 책망으로 잠든 영혼을 깨우고 있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을 깨우는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계시록 3장 1절 읽어 보변
책망 1 – 이 교회가 주님이 왜 미지근하냐? 왜 열심하지 않느냐? – 라오디아 교회처럼 책망하고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런 것 보면 사데 교회는 그런대로 뭔가 열심히 한 것같다.
그럼 사데 교회의 문제는 뭘까요?
-나를대로 가슴이 뜨겁고 은혜 받고 눈물도 흘리는 것과 거룩한 삶과의 일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속화로 되게 한 것이다.
책망 2 - 또 사데 교회는 교리적인 문제도 잘못 됐다고 지적당하지 않았다 -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 그 말씀 잘 유지하고 있는 교회인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 우리 교회는 뭘 고민하고 / 뭘 지적하는지 주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들의 문제가 아니라 질을 따지시는 주님
세속화된 성도들의 문제
믿음 보다 행위를 보시는 주님
교회 열심으로 따지지 않고 – 가슴 뜨거운 것으로 따지지 않고 단지 세상적 삶이 사람을 감동 시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질이 떨어 진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빛이 나지 않고 소금 맛이 안난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살고 – 가슴도 뜨겁고 –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도 맏았다. – 목사 / 장로 / 권사
그러나 삶이 안 바뀐다 -
이것이 심각한 신앙인의 삶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울 수 있나요? – 행11장 26절 – 안디옥 교인들에서 그리스도인라
한국 교회 세속화 현상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목사 / 장로 / 성도 = 너무 돈 사랑한다. 그리고 너무 음란하다 – 너무 거짓말 잘한다. – 위증 죄에 해당
기독교인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기독교의 가치관을 끼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게 교회가 많고 대형 교회가 존재하는데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1절을 다시 읽어 보면
주님의 눈에 보니 살았으나 죽은자였다는 것이다. – 믿음에 삶이 따라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단 정치 – 개판 / 난장판 – 진흙탕 싸움 – 환멸을 느낄 지경이다.
여러분 보수란 뭔가요? = 진리를 수호하고 –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진리에 순교하는 영적 진리를 가진 자이다. – 생명 걸고 말씀 지킬 수 있나요?
교단 회의 전에 성찬식하고 난 후에 말과 행동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그리스도인의 도덕성이 온데 간데 없어지는 순간이다.
-목사도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 = 모든 교회의 문제는 돈 사랑하는 목사 때문이다.
총회장 선거 / 감독이나 감독회장 선거 – 몇십억 들었다 – 돈봉투 뒀다 받았다 – 돈 선거다.
돈 봉투 주고 받았으면서 나중에 안주고 안 받았다고 거짓말한다.
지금 예수님이 울고 계십니다.
주님이 사데 교히에 말씀하시는 것은 누구에게 하시는 것인가요? = 담임 목사에게 하시는 경고와 책망이다.
교회의 총제적인 위기다
-일본에서 그리스도일으로 살기 -
교회에 목사가 살아 있으려면 성도가 바로 서야 한다.
목사는 성도를 바라 보고 – 성도는 목사를 바라 본다 –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목사는 성도를 사랑한다.
그래서 성도가 목사를 버릴까 두려워하고 무서워 한다.
그래서 설교를 성도가 좋아하는 설교 – 말도 성도 기분 맞춰서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지금은 두렵고 떨려야 할 때다.
사데 교회처럼 우리 교회에 주님 말씀하시면 우리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가슴치고 회개 할 수 있나요?
회개 할 능력 있나요?
예 – 요나의 3일 길을 하루만 복음 선포 했는데도 – 니느웨는 회개하고 구원 받았다.
우리가 선한 싸움 싸워야 할 때다. – 영적 몸부림 치는 믿음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세속화되어가는 교회되어 버린다. 그래서 잃었던 기독교 도덕성과 가치관을 회복하고
세상에 영향력 끼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세속화란 뭔가?
-영적 전투 안하고 세상 가치관대로 살아 가는 것이다. – 단지 성경 들고 다니는 것만 다를 뿐이다.
요즘은 성경도 안들고 다닌다 –
-1절 – 주님 손에 일곱 별과 일곱 영이 들려 있다 – 주님은 성령이시다
선한 싸움 싸워 이기는 비결은 성령이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화 – 스룹 바벨 성전 재건 때
16년간 성전 짓기 중단되었다 – 이유는 방해를 받아서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으로 괴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할 힘이 없을 때 성령이 오셔야 했다.
-성령 받아야 한다. – 그럼 회개가 일어 난다 – 내가 처음 성령 받았을 때 – 찬송 179장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바울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 마치 농부가 봄에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땅을 갈아 업듯이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회는 심령 대 부흥회라는 것을 한다 - 그것은 우리 묵은 신앙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한해가 가기 전이나 새해 봄 계절에 자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교회는 부흥회 한번 해야 한다 - 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명이 생각 난다 – 하나님이 나를 왜 이곳에 있게 하셨는가? – 내가 왜 여기 있는가?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게 쓰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영이 이 교회에 임해야 한다 –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길 바랍니다.
오순절 성령은 먼저 공간에 바람 처럼 임했고 두번째는 각 사람위에 불로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교회 되길 바랍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다. – 회개하고 눈물 흘려고 –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한 감각도 없다.
-주님 우리가 회개해야하는데 회개할 능력이 없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또하나 4절을 읽어 봅시다.
주님은 사데 교회 희망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 그것도 몇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말은 뭔 말인가요?
-순결한 영을 가졌다는 것이다. –성적 타락에 빠지지 않았고 – 믿음으로 자기를 지켰다는 것이다.
오직 말씀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름 준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같은 성도를 말한다.
이것이 교회의 희망이다.
이것이 교회가 거듭나게 하는 그루터기 신앙인이었다. –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고 영적 싸움에 앞장 서게 하는 영적 리더를 말한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10명을 찾으셨다. – 하나님이 주목하는 몇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 몇 사람이 하나님 나라 소망이고 희망이었다.
초대 교회가 오늘날 교회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한 것은 몇면이 목숨걸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앙을 지키고 순교했기 때문이다.
토인비의 말 –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바꾸어 간다 - 창조적 소수 – 세속 역사도 그렇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성령에 붙들린 몇 사람에 의해서 이어져 나간다.
예 –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기록된 이름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을 보라 -
믿음 사람들은 성경의 맥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애굽 종되었던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광야에 나왔으나 광야가 목적이 아니었고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 주신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끊임없이 신앙의 전진을 해 나가는 믿음,
헌신된 몇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끊이지 않고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성령의 붙들려 쓰임 받기 원합니다.
이 말씀 듣게 하시는 이유 – 하나님이 이것에 쓰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는 몇 사람 – 기름 준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 거룩한 구별된 사람 되길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를 찿으시고 계신다.
이사야 6장 8절 –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 주님 찾고 계신다.
이 몇 사람이 희망이다.
-이것이 교회의 희망이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흰 옷입도록 성령이여 도우소서
이 자리에 임재하신 주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주시고 주님 뭐라 말씀하시는 지 그 음성 듣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교회가 살아나고 – 이 나라 이 민족이 복음화되고 이 나라 살릴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만져 주시옵소서
이사야가 주의 거룩한 영광을 보자 마자 – 자기 죄를 발견하고 주님 앞에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우리 눈을 열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 듣고 우리가 주을 따를 능력 주시옵소서
성령의 능력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명감을 깨닫게 하옵시고 - 이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 그래서 이 지역 사회에 빛과 소금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